제1부 삶

이 세계의 고통의 근원에 대한 물음
1804년16세 [여행기]
  자신의 삶과 특히 다른이의 불행에 대해 강렬한 느낌
  삶의 비통함
  이 세상은 선한 존재의 작품이 될 수 없다
1845년 [부록과 첨가]
   그리하여 인간은 체념의 상태에서만 대화에 임해야 한다
   개별화와 자신의 고유인격에로의 집중
   고독을 사랑하지 못하면 자유를 사랑하지 못한다
   사고의 진실과 중요성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인내심과 강력한 표현을 생각해내는 감동이 일어난다
   대화로 표현될 때 사고는 희생된다
   자기사상을 지닌 사람은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고유한 견해로부터 이야기한다
   세계라는 미지의 공연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천문학이면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것이 철학이다
   삶의 지혜에 가장 중요한 지점은 올바른 관계, 부분적으로 현재를 부분적으로 미래를 위해 이바지
   고통이 가득한 삶은 곧 밝아질 희망 가운데 있다. (무신론적 팡세)  
  
제2부 이념

원인과 작용에 대한 연구의 이유-고통의 원인을 찾기위함
고통을 느끼게 되는 조건이 인간의 사고의 특성 속에 놓여있다
1813년 25세 [충족근거율의 4가지 뿌리에 대해서]
     객체는 주체 없이 절대 표상될 수 없다
     만약 객체가 있다면 주체도 있다
     왜라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인식의 근거에는 근원적 명제가 존재한다
     인식하는 의식, 즉 감성, 오성, 이성은 주체와 객체로 분리되며 그 이외 어떤 것도 포함치 않음.
     감응은 오성에 감각자료 제공하여 직관적 세계 산출
     보편화 시키는 이성에 의하여 인식을 산출
    의식의 대상은 표상이라 칭함. 표상은 서로 선천적으로 규정이 가능한 결합(주객체 관계)에 따라 합법칙적인 형식에 놓임


제3부 작품
1818년 30세
1. 제1권
-표상으로서의 세계(1장~16장)
세계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인간을 위한 삶과 연관되는 세계에 대한 질문
세계는 오로지 개별자의 삶의 공간에서만 의미가 있다.
세계관의 변화가 인간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간고통의 원인에 대한 소식
인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다.
표상의 내용으로서의 세계에 대해서만 말할뿐 (물자체-칸트)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모든 인식은 항상 표상임을 의식한다(반성과 추상)
세계에 대한 인식조건
객체와 주체의 분리야 말로 모든 부분의 공통형식(선험적 진리,경험의 조건)
시간,공간,인과성은 그 자체로 지각이 불가능하지만, 의식의 확실성에서 나온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의 형식
주체는 세계의 전달자이며,모든 존재하는 것은 주체에 의해서만 존재
시간 공간은 이 근거율의 [형태]이며, 물질(인과성)은 시간 공간에 대한 [지각가능성]
인식하는 오성
오성-감성적 직관의 대상을 사고하는 능력
이성-선천적으로 인식의 원리를 제공하는 능력
순수한 감성-시간과 공간에 대한 주관적 상관성
오성-인과성의 주관적 상관성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오로지 오성에 의하여 존재하며,오성을 위하여 존재
이성-지각되어진 것을 재생한 상을 반성하여 추상적으로 반사
개념을 통해서만 세계사의 배후를 이해-고통의 근원
지식-판단을 자기의 정신에 의해 의도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것. 이성에 의해 고정시켜 놓은 추상의식
개념들은 판단들로 결합되고 확정된다. 판단은 표상이라고 명시되는 개념들로 형성된다.
지식은 추상의식이므로 광범위한 적용이 가능해짐
지식의 가치에 대해서
행위는 감정에 의하지 개념에 따라 일어나지 않는다
추상적 인식의 가치는 항상 직관적인 인식과의 관계에 있다. 즉 표상 형성에 관여
반성적 인간만이 미래를 걱정하는 현존방식을 갖는다.
이성은 결국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온다.
 
 
2. 제2권
-의지로서의 세계 (17장~29장)
육체의 확실성
인간은 세계 속의 개별자로 육체로 존재한다. 육체를 매개로 전체세계와 결합하며 의지를 작용한다
의지는 생명의 원리이며 생명 에너지이다.
의지(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와 육체 활동(오성을 위한 직관 속에 주어진 것)은 결국 하나이다.
육체는 표상이며 의지, 세계 또한 표상이며 의지이다
의지의 활동은 상황에 의존하는 동기에 따르는 것
의지 자체는 어떠한 계기도 따르지 않고 촉발과 자극,육체능력에 선행한다(의지를 의지케 하는 의지는 없다?)
신체의 부분은 의지의 욕구를 반영한다(이빨,목구멍,소화기는 객관화된 배고픔)
자연에서의 의지의 작용에 대하여
자연에서 관찰되는 모든 현상이 의지의 작용
의지의 작용에 대한 반성은 현상을 너머 물자체(일자Einer)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자연속의 의지의 지속적인 작용을 확인한다면 의지는 인간정신이 그려낼 수 있는 모든 것의 내적 원리
물자체로서의 의지는 현상과 다르며 현상의 형식에서도 자유롭다
의지의 작용은 오직 표상이 가능한 형식들의 다양성(시간 공간 인과) 속에서만 경험될 수 있다
하지만 일자인 의지는 이 모든 다양성으로부터 자유롭다 (태초에 의지가 있었다)
인간의 의지는 자유로우나 의지가 표현될 때 이미 형식과 필연성에 지배된다.
인간과 동물 모두에 필연성에 영향 받지 않는 포괄적 의지가 존재한다
의지는 같은 정도로 자기를 구현한다. 다양화는 시간과 공간에서만 의미를 갖는다(인간과 동물의위치)
자유와 필연성
자연법칙은 표상의 영역인가 순수의지의 영역인가
의지-이념(자연법칙)-현상
이념인 자연력은 낮은 단계의 의지의 객관화.자연법칙은 현상 형식(시,공,인)에 대한 이념idee의 관계이다
모두 자신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서로의 물질을 박탈하려한다-불화,투쟁과 승리
의지는 목적 없이 활동하며 항상 새로운 실현을 추구한다 (의지의 변증법)
인간의 의지는 자연을 종속시키고, 세계를 표상으로 이해하여 그 의지현상의 전체성으로부터 고립한다(자연의 의지에 대한 독립적 죄의 탄생)
인간은 사고능력으로 이 세계의 의지를 벗겨내나, 그 자신도 이 세계의 일부이다(생존보존)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3. 제3권(30~52장)
-표상으로서의 세계, 충족 이유율에 근거하지 않는 표상(이념)
이념들에서의 의지의 현상
이념을 이해하려면 개별성을 포기해야 한다.
물자체(의지)의 표본인 이념은 이해될 수 있다(인식의 최고단계,개별성 벗기,칸트보다 관념적...)
개별자는 오직 표상형식(시,공,인)을 통해서만 객체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
이념은 어떻게 인식되는가
인식의 예외적인 경우-일반적 인식에서 이념의 인식으로의 전환
근거율을 따르지 않고 다른 사물과의 연관에서 벗어나 주어진 대상을 靜觀하는 것(꿰뚫어보기禪)
대상속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인식함(이념)
개별자가 아닌 순수하고 의지없고 고통없으며 시간으로부터 해방된 인식의 주체이다
직관으로의 몰입(사마디)은 자연의지(브라흐만)에 합일하여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여기게 한다.
인간의 역사, 사건,국가와 시대에 따른 인간의 삶은 우연이며 무의미하다(브라흐만의 유희)
이제 본질적인 것으로서의 이념을 바라보는 자는 지상 위의 이방인이 된다.
예술의 과제
인식의 예외적 상태는 예술에서 그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학문은 탐구하려는 관심에서 즉시 새로운 질문으로 옮겨가고 만다
예술은 정관의 대상을 고립시키며 그것을 둘러싼 시간의 바퀴를 멈추게 한다.이념
천재의 본질은 이러한 정관능력에 있다. 천재성은 바로 가장 완전한 객관성이다(크리슈나의 사랑)
정관의 능력이 없는 모든 이들은 [평범한 인간]일뿐 아니라 [자연의 공산품]이다
예술가의 작품에 대해서
천재는 이성이 아닌 감정과 비이성적 정열에 이끌리며, 개념이 아닌 직관적 인상을 따른다.
현재의 강렬한 인상이 그를 무분별,정열,격정으로 몰고간다(니체,피카소,로댕)
이성이 아닌 감각과 오성(표상에 의한 인식이 아닌, 의지에 의한 인식)이 이끔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보지 않고 이념을 본다
예술 작품은 이런 인식의 반복이며, 이 인식과 미적 만족감을 공유하며, 이념 인식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한다
천재-이념으로서의 객체에 대한 인식과 순수한 주체의 특성(개별자의 의지적 요구가 정지)의 결합
모든 의욕은 욕구와 결핍과 고뇌에서 온다.주관 없는 사물의 관조는 평온을 가져온다.(우파니샤드)
의지가 지양되는 순간 천재는 [의지의 강제노동으로부터의 안식]을 얻는다.
아름다움의 작용
예술적 만족감은 욕구가 그치는 순간 잠시 스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인식의 의지없는 주체로 고양을 유도한다.(이끌림)
숭고함은 강압적으로 자기확신과 같은 의지와 관계하는 인식과,의지를 넘어서는 의식적 고양을 통해 순수의식이 획득된다. (자의적 선택)
아름다움에서 숭고로의 이행은 강력한 자연 앞에 자신의 초라함과 또 그 전달자로서 자신의 의식에서 발생한다.(개별자의 소실과 전달자의 탄생)
의지의 객관화로서의 이념을 인식하게 하는 각각의 사물은 아름답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의지의 가장 완전한 객관화, 인간의 조각을 통해 자연이 애쓴 것을 예견(로댕)
시는 각각의 개념들의 보편성을 폐기하고 이념을 직관하도록 한다
시인은 특정한 측면을 표현함으로써 자기자아의 본질을 파악한다
비극은 고통의 원인인 의지의 개별화된 갈망을 보여주며, 일반적 의지가 개별화된 의지에서 제거되는 [자기 분열]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음악은 이념을 거치지 않고 의지의 현존자체를 보여준다.
예술은 의식이 명석할수록 깊어지는 고뇌와 이질적 삶에서 느끼는 고독감을 보상한다
 
4. 제4권(53~71장)
-의지로서의 세계, 자기 의식에 도달한 경우에 있어서
철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해서
철학은 왜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세계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어야 한다
과거와 미래는 항상 현상과 관계하므로, 의지는 바로 여기의 삶인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 현실화되어야한다(삶에로의 의지)
의지가 존재하는 한 삶은 계속되며 개별자만이 생성과 사멸된다.
죽음에 대한 사고가 두려움의 근원이나(까뮈), 개별자가 아닌 전체적인 것만이 지속의 의미를 가짐을 인식하면 자연의 표현인 죽음은 더 이상 고통의 원인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의지의 자유란 개별자 인간이 스스로를 표상의 주체로 인식하는 [자기의식화]에서 얻어지는 필연성으로부터의 탈출이다. (현상은 표상일뿐, 원효의 해골바가지)
그러나 이 탈출 자체는 여전히 이미 결정된determined 체계 안에 있는 선택일 뿐이다.(손바닥 안!)
의지는 한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행위와 영향을 규정한다(성격)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경험적 성격)
이성을 통해 성격의 규정성을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나 현상안에서 의지는 동기에 의해 필연적으로 규정되고만다.
이런 능력의 결핍 즉 자신의 인식에 의한 최고의 길과 자신과의 괴리는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죽기로 되어있는 인생에서 행복은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소망과 성취의 간격에 달려있을 뿐.
의지와의 조화 속에 있는 삶
[여기있는 존재,실존]라는 것은 산다는 과정이고 결국, 방심의 순간을 기다리는 죽음(페스트)에 대한 지속적인 반항이다. 그래서 실존은 현재 삶에 대한 고뇌이며, 그의 존재 자체가 고통의 근원이다
인간존재 자체가 고통의 원인이라면 인간 삶의 전망이란 없다.
행복은 결핍, 욕구, 고통의 [순간적 부재]일 뿐이다.
선택은 [의지의 긍정] 혹은 [의지의 부정]
의지의 긍정은 인간의 삶의 의욕자체를 방해하지 않는 것(번식),그러나 다른 개별자와 조화 필요
개별자는 세계의 주체이므로 자신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히 여김
다른 개별자의 신체에 나타나는 힘을 빼앗아 자기의 의지에 봉사케 함으로써 자기의지를 확장시킴
어떻게 덕이 작용할 수 있는가
개별자에게 공통적인 이성(!)은 이런 의지의 부정행위로 인한 즐거움보다 이로 인한 만인의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최상의 유일한 수단임을 인식한다.
이런 경험에 기반을 둔 범위에 한해서 윤리규정은 타당성을 지닌다.즉 (헤겔의) 국가가 주체가 되지 않는다.
고통과 노고는 참고 견디어야 할 어떤 불행이 아니라, 오직 의지로서의 현상의 다양한 국면일 뿐이다. 불행을 인식하지 않으려면 이 땅에 나타난 악인의 흥왕과 선인의 고통이 오직 현상(마야)일뿐 물자체(의지)는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타자도 나와 동일한 의지의 현상를 가졌다는 인식은 덕의 본질을 이루는 기초다.
덕에 대한 통찰은 인식되나 개념으로 파악되어 전달되지 않는다(이념?). 오직 직관적 인식으로부터 나와 자기자신과의 직접적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인식은 덕과 경건의 확신이며 구원의 도정이다.
타인의 고뇌에 자신을 일치시키어 그것을 경감코자 하는 행위는 [동정심]이 원인이다.
삶에로의 의지의 부정은 물자체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 평정(무욕)의 상태이다
현상 속에 반영된 자신을 긍정하지 않고 부정해 버린다(카르마 팔라 탸가)
세계는 오직 육체의 생명을 통해 경험하는 의지일 뿐이므로 인식의 주체이길 포기하고 삶의 의지를 부정하면 세계의 표상은 소멸해 버린다(요가를 통해 고통을 벗는다)
자살은 의지의 부정이 아닌 강력한 삶의 긍정현상이다. 다만 그 삶에 만족하지 못할뿐...
인간이 자유에 도달하는 유일한 가능성은 자기거부에 있다.
의지를 거부하고자하는 충동은 이 세상의 고통을 체험하는 인간 안에 잠재하고 있다가 피할 수 없이 일어나게 된다.
무nichts에로의 이행, 의지를 거부함으로서 그 현상인 세계도, 보편적 형식인 시간,공간,인과성 그리고 근거율인 주체와 객체도 사라져버린다.無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