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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고리오 영감]은 발자크의 [인간희극] 91편 중 하나인 소설이다. [인간희극]의 풍속 연구, 철학적 연구, 분석적 연구중 3분의 2 이상의 소설이 풍속 연구에 속해 있다. [풍속 연구]에 속한 사생활 정경, 지방 생활 정경, 파리 생활 정경, 정치 생활 정경, 군인 생활 정경, 전원 생황 정경 가운데에서 작품 수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생활 정경이다. [고리오 영감]은 이 풍속 연구의 사생활 정경 항목 속에 분류되어 있는 작품이다.
1834년 나온 이 책은 1819-1820년의 파리의 한 아버지에게 초점이 맞추어진다. 두 딸을 위해 자신의 재산, 생활, 행복, 몸뚱아리 전체를 갈아 바친 삶을 산 아버지가 바로 고리오다. 그 두 딸은 자신들을 사랑한 아버지를 철저히 이용한다. 사랑이라는 족쇄는 인간을 이용하는데 더 할 나위 없는 덫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야유이며, 희생적 사랑을 당연시 하는 자들에 대한 고발이다. 이 고발은 고리오의 부성애 뿐아니라 여인들의 사랑을 이용해 돈을 떼먹고 달아나는 그 딸들의 남편과 그 애인들에도 역시 유효하다. 부모의 사랑과, 이성의 사랑. 얼마나 많은 희생들의 이유가 되어왔던가? 응답하는 사랑을 보였던 리어왕의 셋째 딸과 같은 구원이 없는한 이 사랑은 결국 일방적 비극이 되고 만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순수했던 청년 라스티냐크이다. 시골에서 올라와 법학을 공부하던 그는 세상의 힘을 소유하는 새로운 방법에 눈뜨게 된다. 사랑을 이용해, 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출세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다고 믿게 된 라스티냐크. 그는 고리오영감의 죽음에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이 사랑을 이용하는데는 얼마나 두 딸과 똑같은지는 인정치 않는다. 그는 갈등 속에서도 [상대적 선]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점점 이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렇게 심하게 이용해먹진 않는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미 들어선 것과 이제 막 들어서기 시작한 것의 차이 정도만으로 비칠 뿐이다. 발자크는 라스티냐크의 변모를 통해서 인간의 선하고자하는 마음이 어떻게 사회라는 환경속에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무너져가는가를 보여줌으로서,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병폐, 황금 만능주의, 인간성 상실의 코드로 읽혀지기도 한다. 또 한편으론 고리오를 나폴레옹의 유비 인물로 보아 지배계층이 단물 빨아먹고 부르조아층도 결국 떠나며 버림받아 유배로 삶을 마치는 것과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겐 단지 딸 생각도 나고 부모님 생각도 나게 하는 소설이다. 나의 사랑은 진정 딸에게 올바른 것인가?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얼마나 무감각하게 받아들였나? 고리오는 모두 자기 잘못이라고 한다. 딸을 잘못 길렀다는거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된거라고 고백한다. 현실의 상황이 그리 만들었다 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겠다. 시간이 없어서...다들 그 정도는 애들에게 해주니까...말하기전에 내리사랑의 본능이 아닌 올림사랑의 노력을 시작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