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신현상학 ㅣ 쉽게 읽는 철학 3
랄프 루드비히 지음, 이동희 옮김 / 이학사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헤겔의 [역사속의 이성]을 읽고자 먼저 잡은 책이 이 책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그의 역사철학, 논리학, 법철학, 종교철학을 [정신현상학]의 발췌에 지나지 않다고 할만큼 그의 모든 사상의 체계와 윤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때문이다.
1806년 멀리 예나의 외곽지역으로부터 나폴레옹 군대의 포성소리가 들려올때, 이 위대한 철학자의 가슴속에는 정신현상의 포성소리, 독일정신을 깨우는 포성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그의 신학적 배경으로부터 나온 교회의 표상을 극복코자하는 마음의 기획과, 당시의 프랑스로부터 밀려들어온 새롭게 한 민족의 역사를 쓰는 정신의 만남이었다.
종래의 철학이 절대정신 혹은 이성의 완성을 성부적 절대자에게서 찾았다면, 헤겔에게 있어 절대정신은 이제 육화된 세계정신이었다. 이것은 마치 성육신의 유비이며, 주인으로서의 신이 육화되어 지옥의 끝까지를 온전히 겪은 후 누리는 화해와도 같다. 이 새로운 피조물 즉 부활한 절대정신인 자기의식은 이제 새로운 세계를 보며, 지상의 삶 또한 궁극적 가치로 파악될 수 있게 된다.
프로테스탄트의 기치를 올린 독일민족에게, 루터가 파악한 이 진리는 300년이 지난 후 그 후손에 의해 철학으로 바뀌어진다. 하지만 변증은 원래의 계시 위에 하나님의 무조건적 화해의 규정과 이성에 의한 자기세계 구축이라는 인간적 생산물을 들이댄다.
또한, 정신의 일대혁명과 이를 역사속에 행동으로 구현한 프랑스인들은 이제 코밑에 다다랐다. 그의 육화된 절대정신은 이제 독일민족 안에서의 현실이 되어야 했다..인간이 왜 존재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의 형이상학적 논의(칸트)가 아닌, [그따위 철학이 무엇에 쓸모있다는 말인가?] 라는 명제에 충실한 현실로의 철학의 전회다. 그는 독일연방의 통일과 국가 이데올로기의 제조에 그리고 단일국가에 익숙치 않은 독일 민족 구성원의 복종에 허다한 말들을 쏟아놓는다. 그래서 결국 강한 종교적 성향의 파편화된 민족을 새로운 탈종교적 삼위일체로 묶어내고자 한다. 어찌보면 abuse of theological concepts for the foundation of profane nation로 볼 수도 있지만 [철학이란 자신의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명제를 따른다면 당연한 운동인지 모른다.
[쉽게 읽는 헤겔]이라 붙힌 제목이 무색하게 몇번을 어려움을 느끼게 한 책이지만, 이 책을 마치고 집어든 [역사속의 이성]이 너무나 재미있고 와닿는 것이 된걸 보면, 분명 [정신현상학]의 원본 읽기 대신 선택한 것이지만 나와 같은 의도를 갖는 독자에겐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