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KIM)
루드야드 키플링 지음, 하창수 옮김 / 북하우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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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디어드 키플링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의 영국 전성기를 살았던 [정글북]의 작가이다. 그 자신이 뭄바이미술관장이었던 부친 아래에서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교육 받고 다시 졸업후 인도로 돌아가 저널리스트로 10여년을 보내었던 경험이 그대로 이 소설 [킴]에 담겨있다.

 

이 소설은 두개의 큰 흐름, [큰 게임]이라고 불리는 영국 정보부의 첩보활동과  [신비의 강]을 찾아나선 라마승을 따라다니며 강을 찾도록 돕는 제자로서의 삶이 병행하여 진행된다. 영국 식민지인 인도의 조건, 남하를 원하는 러시아의 정보활동, 북왕국의 반란 움직임 속에 영국의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인도출생의 백인아이가 바로 [킴]의 이성적 삶의 행태라면, 인도인의 삶에 대한 태도에 깔려있는 부적과 저주, 기복과 예언의 단계를 넘어 신에게로의 귀속, 해탈, 브라만과 하나됨,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을 좇는 구도자의 제자로서의 총명한 [만인의 친구]가 그의 종교적 양태이다.

 

이성만을 위해 사는 자로서도 무의미하고, 희망만을 좇는 자로서도 살 수 없는, 어느 한쪽의 모습으로도 가 닿을 수 없는 것이 [킴]이 좇는 목표이다. 희망의 이유가 존재해야한다는 것, 그것은 사실 작가 자신의 영국적 삶에 대한 회의와 인도적 삶에 대한 온전히 받아들일수 없는 갈등의 표현이다. 한편으로 모든 것을 등지고 희망 하나만을 위해 살고 싶지만, 그의 현실은 자신이 영국인인 것에 기대어 명성과 생계를 꾸리기 위해 희망으로부터 내려와 땅에 살아가야하는 존재여야 했다. 인간은 이 존재 조건에 몸부림쳐본다. 죽음을 향해 부질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걸고 의미를 부여하거나[큰게임] 가없는 희망을 찾아 자신의 이성과 결별하여야 한다[신비의 강].

 

작가에게 인도적 삶만은 해답이 아니었나보다. 그들의 삶은 희망을 근거로만 성립되어있다. 희망이 삶으로 나타난 종교적 사회인 천축국에서 그들은 삶의 방향이 또다른 욕심에 물들어간 채로 외양만을 희망으로 치장하여 살고 있다. 영국적 삶도 마찬가지다. 어리석은 영국인 또한 종교를 이름뿐 만으로 가진자들이어서 그들의 배가 부른 것만으론 만족치 못하고 허기를 더 많은 부와 권력과 우월감으로 채우려한다. 종교를 위해 평생을 얽매어 사는 자들이나 종교를 수단거리로 삼는 자들이나 모두 희망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사이에서 해답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막상 라마승으로 대표되는 진짜 희망을 찾아다니는 자는 그 근거를 가지지 못하는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에 지쳐있다. 광기와의 경계를 드나드는 희망의 끝. 거기에 기댈만한 근거가 어디엔가 솟아 올라와야 인간은 살 수 있는데 그 샘은 어디나 있으나 찾는 자에게 보이지 않고 어린아이에게만 주어진다. 두 노력이 만나지 못하고 한 없이 평행으로 이어지는 까닭은 그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출발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찾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찾아온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참고: 키플링의 『킴』에서 드러난 소설의 내적 분열 : 아일랜드 소년과 라마승과 제국, 오은영(Eunyoung Oh), 19세기영어권문학회, 19세기 영어권 문학, 제14권 2호 2010.8, page(s): 11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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