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
조지 오웰 지음, 김병익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조지오웰이 좌파적 지식인으로 [동물농장]과 [1984년]을 쓴 이유는 구소련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동물농장]이 [배신당한 혁명]에 대한 이야기라면 [1984년]은 이 체제를 존속시키고 있는 [기억을 조작하는 권력의지]에 대한 설명이다. 전체주의적 집단지도체제란 소수 권력을 위한 사회주의의 변형이며 이들 소수 권력엘리트들의 자기권력 유지를 위한 속임수라는 것이다. 날조되는 역사, 외부와의 차단, 숨겨진 정보들, 우월을 과시하려는 건축물과 첨단산업들. 이런 기만을 통해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이 속한 체제가 우월하며 거지가 들끓는 적대국보다 행복하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죽음과 아랍권력 붕괴를 즈음한 때 읽어보는 [1984년]은 다른 감회로 와 닿는다. 조지오웰이 그리던 사회의 전형인 공산독재체제국가인 북한은 이와 같은 인간에 대한 정신적  통제가 실제 가능하다는 것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정신적 통제가 가능한 것은 지배층의 [이중적 사고] 즉 현실적 판단을 유보하고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도 진실이라고 믿는 능력에 달렸다. 이중적 사고의 동기는 소수 엘리트층의 이익이다. 우리는 너무 유아적으로 북한을 이해하고 그들의 집단 권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 모른다. 결국 김일성 계보라는 것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노동자층이 김일성의 지상낙원에 대한 착각을 깨달았을 때 그가 제거되고, 다시 김정일이 그의 대표성을 상실했을 때 사라진 것처럼, 다수 독재의 이 형태는 그것으로 살아가는 소수의 지배계층의 이익이 그 중심이다. 결국 문제는 김정은이 아니라 평양을 중심으로 프롤에 얹혀 그들의 정신을 스스로 세뇌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배계층의 이기심과 불안에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권력 세습은 다시 이런 집단권력체제 즉 그들의 권력을 위한 집단적 이익이라는 인간의 이기심이 흔들리지 않는한 충실하게 이행될 것이다. 언제 이들이 스스로를 죽이고 다른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 권력을 내려 놓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대표인물을 갈아치울지라도 이 체제는 계속될 것이다.

 

이번 겨울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당하는 와중에도 쇼는 계속되고 다시 지도자에 대한 미화와 신화창조가 이어질 것이다. 과연 이 체제는 영원히 지속될 것인가? 혹 그 틈새는 중국이 될 수 있을까? 중국 국경을 통한 정보의 유입과 일반노동계층의 자각의 기회를 늘려 가는 것. 이 자각이 무력진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광기에도 휩쓸리지 않는 자들이 나와야만 한다는 오웰과 윈스턴적 기대인지 모른다. 아니면 구소련적 결말도 가능한가? 소련에서 장기간 확립되어오던 이런 체제의 괴멸은 공산당원 스스로의 의심과 권력에 대한 지속적 욕구의 소실로 달성되었다. 러시아 관료 지식인의 자기반성 능력이 철저히 [이중사고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여전히 명목상으로 존재하던 러시아정교로부터 비롯된 영향이 고르바초프같은 권력을 가진 계급내에서의 회의를 일으켰다. 실제로 소련은 권력층이 스스로 장악력을 포기함으로 붕괴가 진행되어질 수 있었다. 북한을 붕괴시키는 힘은 결국 지배층 내부로부터나 피지배층의 자각으로부터 나오는 수밖에 없다.

 

북한은 소련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북한 스스로가 원했던것은 중국같은 변신인데 그렇게 하기엔 자원과 자본이 너무 없다. 중국으로의 변신을 도왔던 우리의 노력은 옳았을까?  아니면 정말 노동자들의 고통만을 연장하고 말았던 것일까? 또 한 매듭을 넘어가는 북한을 보며 이 책이 찹찹한 마음을 다시 깊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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