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토끼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1960년 토끼연작의 첫 작품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1971년 [돌아온 토끼] 1980년 [토끼는부자다] 1990년[토끼 잠들다] 1995년 [사랑의 수고] 중 [기억 속의 토끼]로 이어지는 그의 토끼 시리즈는 작가 자신의 연령과 함께 나이들어가는 래빗 앵스트롬(불안한 토끼)을 추적해간다.

 이 작품의 사상적 배경으로 작가는 키에르케고르와 바르트를 지목한다. 그가 당시 이 소설에 적용한 기독교적실존주의적 구원 이해는 그로 하여금 기꺼이 인간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드러낼 용기를 주었다고 말한다. 노골적 성묘사에 드러나는 그의 [존재의 용기]가 그가 이런 인물, 혐오스런 그러나 구원받는 인물을그려냈다고 말한다. 그 이후 업다이크는 바르트에서 그의 사상을 틸리히로 옮겨간다. 이 책 속에서도 사실 루터교적 배경의 틸리히가 연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업다이크의 믿음은 인간이 죄인이며 그래서 애시당초 인간에게 희망이라고는 없다는 것이다. 여유로와지고 살만해진 인간은 더욱 가관이 되었다. 미국적 기독교인들이 살아가는 일상은 회심 혹은 열려있는 세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궁극적 관심]이다. 내세에 대해 열려있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존재에게 변화란 꼭 일어나지 않더라도 희망은 있다. 인간의 구제 불가능성 위에 내리는 이해할 수 없는 용서와 은혜.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버티는 것. 그것이 혐오할만한 래빗을 통해  자신있게 내보이는 신학적 인간이해이다.

그는 우리 자신이다. 뼈속까지 무책임하고 더러우며 속이고 부끄로워하지 않고 변명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는 호손처럼 잘 보여주고 바르트처럼 당연히 여긴다. 똑같은 나에게도 그와 같은 구제불능적 어두움이 있다는걸 깨닫게 하는 찢어짐이 이 책에는 있다.  

 혹 이것은 은혜의 구원에 대한 조롱인가 싶을 정도이다. 부시 부자가 아버지때와 아들때 모두 예술,인문훈장을 준 사실까지 합치면 정말 약간 코믹한 느낌이 들 정도다. 구원은 과연 그런 것인가? 비록 애초에 인간에게 희망이 없고 변하지 않아도 그래도 그 구원은 유효한 것인가? 이런 믿음은 과연 성경적인가? 이것이 이 책의 독후감으로서 올바른 질문이 되겠다. 혹 본회퍼가 말하는 싸구려 복음은 아닌가? 우리는 이 바르트적 절대 은혜 위에 섹스의 죄됨의표상을 보는가? 아니면 그 용납을 보는가? [사랑의 수고]는 아마도 그 해답이 될듯하다. 결국 하나님께서 뒷처리를 담당하신다는...결국 이 모두는 실존적 이해 위에 선 미국적 복음 오해는 아닌가? 아니면 내가 아직도 죄인으로서의 단독자로 서지 못한 까닭에 포기하지 못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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