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원의 동료들

커다란 법원 건물 안 이반 에고로비치의 방에 판사들과 검사들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메리빈스키 사건 심리의 중간 휴식 시간이었다. 이야기는 우연히 요즘 떠들썩한 크라소프 사건으로 옮겨갔다.

 

후요돌 와시리에비치는 그것이 관할 착오라고 역설하며 흥분했다. 그러나 이반 에고로비치 역시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에는 흥미 없다는 듯 막 배달된 <새소식> 신문을 보고 있었다.

 

"여러분!"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말했다. "이반 일리이치가 죽었군요."

 

"아니, 정말이오?"

 

"이것 좀 읽어보세요." 그는 아직도 잉크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방금 인쇄된 신문을 건네 주며 후요돌 와시리에비치에게 말했다.

 

신문 한 쪽 검정 테두리 안에는 다음과 같이 부고가 실려 있었다.

 

'미망인 프라스코비야 후요도로브나 고로비나는 비탄에 가득 찬 심정으로 친척과 지우 여러분에게 삼가 알립니다. 법원 판사 이반 일리이치 고로빈이 지난 1882년 2월 4일 작고하였습니다. 발인은 오는 금요일 오후 1시에 거행합니다.'

 

이반 일리이치는 여기 모인 사람들의 동료였다. 모두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벌써 수주일 전부터 병석에 누워 있었다. 그는 불치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의 자리는 아직 비어 있으나 그가 죽으면 아래크세프가 그 자리에 임명될 것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또 아래크세프의 후임에는 브니코프나 슈타베리가 임명되리라. 이것은 확실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 방 안에 모여있는 여러 사람들의 한결같은 생각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으로 그들 자신이나 혹은 친지들이 어떻게 직책이 바뀌고 승진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번엔 틀림없이 슈타베리나 브니코프의 차지가 되겠군.' 후요돌 와시리에비치는 생각했다.

 

한편 표도르 이바노비치도 생각했다. '그 자리는 오래 전부터 내 몫으로 정해져 있지. 그 자리로 승진만 되면 독방에다 봉급이 8백 루블 추가되니까... 그렇게 되면 꼭 처남이 카루가에서 전임해오도록 해야지.'

 

'그렇게만 된다면 마누라가 무척 좋아하겠지. 또 나도 이젠 처갓집에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다는 잔소리는 면할 수 있겠지.'

 

"나도 그 친구가 얼마 못 가리라고 짐작은 했지."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서운한 듯이 말했다.

 

"참 안 됐어."

"아니 그런데, 도대체 무슨 병이었다던가?"

 

"의사들도 확실한 진단을 못 내렸다더군. 의사마다 진단 결과가 달랐다는 거야. 난 그래도 마지막 만났을 때 이제 회복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난 지난 번 축제 때부터 한 번도 문병을 가지 못했어. 늘 한 번 가본다고 벼르기만 했지..."

 

"재산 문제는 잘 마무리된 건가?"

 

"부인에게 얼마간 남겼다고 하던데, 그것도 그리 대단치는 않은가 봐."

 

"어쨌든 조문은 다녀 와야지. 그런데 우리 집에선 너무 멀단 말이야..."

 

"자네 집에서 가려면 멀다는 얘기지. 하긴 자네 집에선 가려면 어디든지 멀게 마련이지."

 

"이봐, 이 친군 내가 물 건너 사는 게 도무지 못마땅한 모양이군."

 

슈베크는 웃으며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말했다.

 

이후 그들은 시내 각 지역의 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법정으로 돌아갔다.

 

이반의 죽음은 그들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근무상의 이동이나 변화 외에도 그의 죽음을 알게 된 사람들의 마음에 '죽은 것은 그 친구지, 내가 아니다'는 기쁨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 그 친구가 죽었단 말이지...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있단 말이야.'

 

모두들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반과 친했던 소위 친구라는 사람들은 약간 다른 부담도 느껴야 했다. 또 그놈의 귀찮은 예의상의 의무를 위해 영결식에도 참석하고 미망인 위문도 해야한다는 생각이 아울러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특히 후요돌 와시리에비치와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반과 각별한 사이였다. 특히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반의 법률학교 동급생이었다. 게다가 이반에게 여러 가지로 신세를 졌다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그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내에게 이반 일리이치가 죽었다는 것, 처남이 이곳으로 전근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평소 저녁 식사 후에는 한숨 자던 것도 그만두고 연미복으로 갈아입은 후 바로 이반의 집을 향해 마차를 타고 떠났다.

 

이반 일리이치 집의 현관 앞에는 한 대의 고급 마차와 두 대의 합승마차가 멈춰 있었다. 아래층 응접실에는 외투걸이 옆의 벽에 분칠해 놓은 금(金) 모르와 장식술이 달린 무늬 없는 비단 관 덮개가 걸려 있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 두 사람이 털가죽 외투를 벗고 있었다. 한 사람은 표도르도 안면이 있는 이반의 누이동생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낯선 부인이었다. 동료인 슈발츠가 막 이층에서 내려오던 참이었다. 슈발츠는 표도르가 집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계단 위에 서서 마치 이렇게 말하듯 눈짓을 했다.

 

'이반도 어리석었지... 그렇지만 자네나 나는 다르지...'

 

영국식 구레나룻 수염을 잘 가꾼 슈발츠의 얼굴과 연미복을 입은 호릿한 몸매는 언제나 우아하고 장중했다. 평소 그는 떠벌이였지만, 그래도 이런 장소에서는 그의 용모가 뭔가 특별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숙녀들이 먼저 지나가도록 비켜섰다가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슈발츠는 걸음을 멈춘 채 계단 위에 서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즉각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분명 오늘 저녁 어디에서 빈트(트럼프 놀이)를 할 것인지, 의논하고 싶은 것이다.

 

여인들은 계단을 지나 미망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슈발츠는 입은 굳게 다문 채 눈과 눈썹만 장난치듯 움직여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오른쪽에 있는 빈소를 가리켰다.

 

이런 경우 누구나 그렇듯 표도르 이바노비치도 약간 당황한 기분으로 그 쪽으로 걸어갔다. 단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런 경우 성호를 긋고 절을 하면 된다. 그러나 과연 머리까지 숙여야 할 것인지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래서 표도르는 절충안을 택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빈소에 들어서면서 가슴 위에 십자를 긋고 약간 머리를 숙였다. 그는 손과 머리를 그렇게 하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방안을 두루 살폈다.

 

고인의 조카인 듯한 두 청년이 십자를 그으면서 방을 나가던 참이었다. 곁에는 한 늙은 여인이 서 있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여인이 노파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대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체구가 건장한 사제가 악의 세력이 와도 개의치 않는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무언가 큰 소리로 읽고 있었다.

 

식당 일을 돌보는 농부인 게라심이 가벼운 걸음으로 그의 앞을 지나치면서 바닥에 무언가를 뿌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그는 문득 썩어가는 시체의 희미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반을 옆에서 간호해온 이 농부를 이반은 유난히 아꼈던 것 같았다.

 

2. 미망인과 유족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몇 번 십자를 그으면서 관과 사제, 한구석에 안치된 성모상의 중간쯤 되는 곳을 향해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문득 너무 많이 십자를 그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는 동작을 멈추고 잠자코 죽은 이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시체는 으레 그렇지만 죽은 이는 굳어버린 사지를 관 바닥에 펴고, 영원히 굽어버린 목을 베개에 걸친 채 무겁게 누워 있었다. 움푹 패인 관자놀이와 벗겨진 이마가 마치 밀랍으로 빚은 것 같았다. 윗입술에 덮일 듯이 뾰죽한 코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였다.

 

시체는 그가 이반이 살아있을 때 마지막 보았던 것보다 더 여위어 있었다. 그 모습은 생전과 아주 달랐다. 그러나 시체의 얼굴은 어딘지 살아있을 때보다 더 아름답고 의젓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해야 할 일은 다 했다는, 아주 훌륭하게 의무를 다했다는 표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표정에는 살아있는 자들에 대한 힐책이나 경고 같은 것이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것은 아무 상관 없다. 그러나 어쩐지 그는 기분이 불쾌해져 다시 한 번 부지런히 십자를 긋고는 좀 경망하리만큼 허둥지둥 몸을 돌려 바쁘게 문쪽으로 걸어갔다.

 

슈발츠는 통로로 이어진 방에서 두 발을 꼿꼿이 버티고 서서 손으로 뒷짐을 지고 실크햇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명랑하고 말쑥한 슈발츠의 모습을 보자 금방 기분이 신선해졌다. '슈발츠란 이 친구는 이런 구질구질한 일 따위에는 개의치 않고 사는군. 남이야 언짢은 기분이건 말건 상관없다는 것이겠지...'

 

이반 일리이치의 장례식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해오던 일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다시 말해 그 어떤 것도 오늘 저녁 트럼프 놀이를 훼방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인은 이미 새 촛불을 네 개 가져다 세워 놓았고, 일행은 새 트럼프 한 벌을 열어놓은 상태였다. 이 장례식이 오늘 저녁 일행이 모여 즐기는 것을 잡칠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슈발츠는 그냥 가려는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귀에 대고 오늘 후요돌 와시리에비치 집에서 열리는 노름에 끼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저녁 트럼프 놀이를 할 운이 아닌 모양이다. 머리에 크레프를 쓴 여인이 아까 관 앞에 서 있던 여인처럼 유난히 눈꼬리를 치켜 뜨고 다른 여인들과 함께 방에서 나와 여인들을 빈소로 들여보내면서 말했기 때문이다.

 

"이제 장례 미사가 시작됩니다. 함께 들어가시죠."

 

이반 일리이치의 미망인인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라는 키가 작고 뚱뚱했다. 본인은 그렇게 보이기를 원치 않겠지만, 어깨로부터 밑으로 갈수록 점점 더 벌어져 보이는 전신을 검은 상복으로 감싸고 있었다.

 

슈발츠는 이 말을 받아들이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목례를 하면서 발을 멈췄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는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보자 한숨을 휴 내쉬면서 그에게 바싹 몸을 가져다 붙이고 손을 잡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선생님을 잘 알고 있어요. 선생님과 이반은 정말 친한 친구셨잖아요..." 여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말에 뭔가 그럴싸한 답변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아까 빈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여인의 손을 꼭 쥐고 한숨을 내쉬면서 "그렇구 말구요!" 하고 말해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했다. 그러자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제풀에 감동했고 그녀도 따라서 감동한 것이다.

 

"자, 시작하기 전에 들어가시죠. 사실은 선생님께 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미망인은 말했다. "팔을 좀 빌려주세요."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자기 팔을 내밀어 그녀가 잡게 한 후, 웃음을 참으며 눈짓을 하는 슈발츠의 앞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자넨 오늘 빈트 노름엔 못 끼겠군. 미안하지만 다른 친구를 끌어와야겠어. 요행히 빠져 나올 수 있다면 다섯이 함께 놀아도 상관없으니까...' 그의 짓궂은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더 한층 깊은 비탄의 한숨을 짓자 미망인은 감격해서 그의 손을 부여잡았다. 장미빛 크레튼 갱사로 갓을 씌운 흐릿한 램프불이 켜 있는 응접실에 들어와 두 사람은 탁자 옆에 앉았다. 그녀는 긴 의자에, 그는 스프링이 부러져 거북한 느낌을 주는 낮은 안락의자에 각각 앉았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는 그에게 다른 의자에 앉도록 권하려다가 그러는 것이 이 경우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 두었다. 낮은 안락의자에 앉으면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이치가 이 응접실을 설계할 때 그와 의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미망인은 긴 안락의자에 앉으려고 탁자 옆을 지나가다가(이 방에는 크기가 작은 살림살이와 가구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었다.) 검은 만치리야 크레프가 탁자 위에 놓여있던 조각상에 걸렸다.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걸린 옷자락을 떼어주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엉덩이 밑에서 깔려있던 안락의자가 파도처럼 흔들리면서 그의 엉덩이를 툭툭 쳐댔다.

 

미망인이 자기 손으로 옷자락을 조각상에 벗겨내기 시작하자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흔들리는 안락의자를 간신히 누르고 다시 주저앉았다. 그러나 미망인이 옷자락을 완전히 벗겨내지 못하자 그는 또다시 엉덩이를 일으켰다. 그러자 안락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흔들리며 이번엔 아주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내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모두 멎고 조용해지자 그녀는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들고 울기 시작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이 소동으로 기분을 잡치고 시무룩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반 일리이치네 식당 일꾼인 소호로프가 나타나 이 어정쩡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가 말했던 그 묘지는 가격이 2백 루블이나 하더라는 얘기를 했다.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마치 불행의 상징이나 되는 것처럼 슬픈 눈매로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건너다 보면서 프랑스어로 말했다. "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담배라도 피우세요."

 

그녀는 비탄에 잠긴 목소리로 너그럽게 말하고 소호로프와 묘지 가격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그녀가 묘지 가격을 자세히 묻고 결정을 내려주는 것을 듣고 있었다. 묘소를 고른 다음 그녀는 장례식에 부를 합창단에 대해서도 일일이 지시를 내렸다. 소호로프는 이야기를 마치고 물러갔다.

 

"일일이 다 제 손으로 해야 하는군요."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앨범을 한 쪽으로 밀어 놓으면서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말했다. 담배가 타들어가 재가 탁자 위로 떨어지게 된 것을 보자 그녀는 재빨리 표도르 이바노비치 앞으로 재떨이를 밀어주면서 말을 이었다.

 

"슬픔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에요... 죽은 그이를 위해 마음을 쓰고 뭔가 일을 하는 것이 저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되고, 슬픔을 잊게 해주는 거랍니다."

 

그녀는 또다시 울 것처럼 손수건을 꺼냈다가 갑자기 스스로를 억지로 참아 누르듯이 몸을 한 번 떨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참, 선생님과 상의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또다시 흔들거리는 의자를 간신히 누르면서 꾸벅 절을 하고 앉은 자세를 고쳤다.

 

"그이는 마지막 이삼일 동안은 정말 고통이 심했답니다."

 

"고통이 그렇게 심했나요?"

 

"정말 끔찍했어요. 마지막에 가서는 몇 분 아니 몇 시간씩이나 쉬지 않고 비명을 질러댔어요. 사흘 밤낮은 숨도 안 쉬고 그저 끔찍한 소리만 질렀어요. 참말이지 제가 그 끔찍한 소리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어요. 글세 골목이 세 칸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다 들렸어요. 그때 저의 심정이란 뭐라고 이루 말씀 드릴 수가 없어요."

 

"의식은 남아 있었나요?"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물었다.

 

"네."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요. 글쎄 그이는 죽기 15분 전에 우리를 모두 불러놓고 마지막 작별까지 하고 위로자를 데려가라는 말까지 했어요."

 

 

3. 나에겐 이런 일이...

처음엔 쾌활한 소년으로, 다음엔 학생으로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엔 트럼프 친구로서 그렇게 친하게 사귀던 사람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다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자 자기 자신과 이 여인의 위선에 대한 불쾌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치를 떨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죽은 이의 그 이마와 입술을 덮듯이 뾰죽하게 튀어나온 코를 생각했다. 뭔가 무서운 것이 자기 자신에게도 덮쳐 오는 것 같았다.

 

'그 무서운 사흘 낮과 밤, 그 다음에 오는 죽음... 이런 고통은 지금 당장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한순간 소름이 끼치는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이내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평소의 생각 - 이건 이반 일리이치에게 일어난 일이지 나에게 생긴 일은 아니야. 나는 그런 일을 겪을 리도 없고 그런 무서운 일은 나에게 생겨날 까닭이 없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지금 여기 어두운 분위기에 짓눌렸기 때문이야. 슈발츠처럼 이런 기분에 짓눌려지지 않도록 해야지... 이렇게 생각을 고쳐 먹었다.

 

마치 구원의 손길처럼 이렇게 스스로 기분을 다스리자,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침착한 기분으로 일종의 흥미마저 느끼며 이반 일리이치가 운명하던 순간을 자세히 캐물었다. 죽음은 이반 일리이치에게만 있는 특유한 사건으로 자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란 것처럼.

 

이반 일리이치가 겪은 그 무서운 육체적 고통을 상세히 설명한 후 미망인은 진짜 용건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아, 표도르 이바노비치씨, 이토록 무서운 일이 생기다니요... 이렇게도 괴로운 일이 있을 수 있나요...?" 그녀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슬픈 듯이 연방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가 코를 풀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울음을 그치고 코를 풀고 나자 그는 말했다.

 

"저를 믿고 말씀하세요."

 

그러자 그녀는 다시 넋두리를 늘어놓더니 이윽고 그에게 의논하고 싶었던 진짜 용건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하면 나라에서 돈을 조금이라도 더 타낼 수 있느냐는 것이 골자였다. 그녀는 아마 연금에 관해서 그의 의견을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실상 그가 알지 못하는 것, 즉 이 죽음을 꼬투리로 국고에서 타낼 수 있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아주 상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자기가 아는 것 말고도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돈을 타낼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보려고 하다가 이내 귀찮아졌다. 그는 그저 정부가 인색하다며 몇 마디 욕을 한 후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서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 이 손님으로부터 풀려날 것을 궁리하는 눈치였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도 그녀의 생각을 눈치채고 담뱃불을 끄고 일어섰다. 그는 미망인의 손을 한 번 더 잡아 주고는 여러 사람이 모여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식당에는 이반 일리이치가 언젠가 골동품 가게에서 샀노라면서 무척 기뻐하던 시계가 걸려 있었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거기서 목사 한 사람과 역시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와 있는 아는 사람들을 몇 만났다. 그 가운데서 그는 이반 일리이치의 딸을 발견했다. 그도 본 적이 있는 그 아리따운 아가씨는 온 몸을 검은 옷으로 감고 있었다. 날씬한 허리가 상복 때문에 더욱 가늘어 보였다.

 

그녀는 어둡고 의연한, 그러면서도 어딘지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으로 표도르 이바노비치에게 인사했다. 마치 그가 무슨 죄라도 저지른 것 같은 태도다. 그녀의 등 뒤에는 한 청년이 똑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녀의 약혼자라고 알려진, 재산이 많은 예심판사였다. 그 사나이는 침울하게 표정으로 그에게 머리를 수그리고는 시체가 누워있는 방으로 가 버렸다.

 

그러자 계단 위에서 이반 일리이치와 아주 닮은 중학생 아들이 나타났다. 그는 표도르 이바노비치가 법률학교 시절에 봤던 이반 일리이치의 모습과 흡사했다. 소년은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보자 신경질적으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그를 향해 가볍게 머리를 흔들어 보이고는 시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장례 미사가 시작되었다. 촛불, 신음소리, 향 연기, 눈물, 훌쩍거리는 울음소리.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얼굴을 찌푸린 채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발을 내려다 보면서 서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죽은 사람을 들여다 보지 않았다.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그 분위기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영향을 받지 않고 앞장 서서 나오는 사람들 틈에 섞여 그곳을 나왔다. 응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당 하인 농부인 게라심이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외투를 찾아왔다.

 

"요즘은 어떤가, 게라심? 이반은 참 안됐어..."

 

"모두 하나님의 뜻이죠. 누구나 결국엔 이렇게 가버리는 걸요..."

 

게라심은 농부답게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는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답게 바람이 불 정도로 잽싸게 문을 열고 마부를 불러 표도르 이바노비치를 태워주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마치 급히 해야 할 일을 생각해내기라도 한 것처럼.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향과 시체와 석탄산 등 퀴퀴한 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공기를 벗어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여간 유쾌하지 않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마부가 물었다.

 

"아직 그렇게 늦지는 않았겠지... 그럼 후요돌 와시리에비치네 집에 들러야겠군."

 

이렇게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의 짐작대로 로벨(트럼프 놀이)의 첫 판이 끝날 무렵에 그곳에 끼어들 수 있었다. 그는 마침 잘됐다 싶어서 다섯 번째 파트너로서 그 속에 끼어들었다.

 

 

4. 삶의 출발

이반 일리이치의 과거 생활을 극히 단순하고 평범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무서운 것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법원 판사로 일하던 마흔 다섯 살에 죽었다. 그는 뻬쩨르부르그에서 출세길이 탄탄하게 열려 있었던, 어떤 관리의 아들이었다.

 

그 출세의 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는 그 직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런 사실을 다들 알면서도 긴 과거 경력과 권위의 덕택으로 사직 당하지 않고 교묘하게 버틸 수 있는 길을 말한다. 억지로 마련한 지위와 6천 내지 1만 루블의 봉급을 누리면서 아주 늙은 뒤까지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마련해주는 지위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별로 필요 없는 기관의, 별로 필요하지 않은 인력의 한 사람이었던 삼등관 이리야 에피모비치 고로빈도 그런 부류의 하나였다. 그에게는 아들이 세 명 있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 가운데 둘째였다. 맏아들은 부친과 같은 출세의 길을 더듬어 올라와 이제는 타성적으로 봉급을 타먹을 수 있는 근무 경력을 쌓은 상태였다.

 

막내 아들은 실패자였다. 여러 가지 일을 해 보았으나 모두 실패하고 지금은 철도 일을 보고 있다. 그래서 부친이나 형들, 더구나 형수들은 그와 마주서기도 꺼릴 뿐 아니라 여간 특별한 일이라도 생기지 않으면 아예 그의 존재를 생각해내는 일조차도 거의 없었다.

 

누이동생은 뻬쩨르부르그의 전형적인 관리인 그레프 남작과 결혼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이른바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그는 맏아들처럼 융통성 없는 고지식한 성격도 아니며 아우처럼 분별없이 덤비지도 않았다. 그는 두 형제의 가운데서 - 슬기롭고 활발하며 명랑하면서도 예의 바른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아우와 함께 법률학교에서 공부했다. 아우는 졸업을 못하고 5학년 때 퇴학을 당했으나 이반 일리이치는 훌륭하게 전체 교육 과정을 마쳤다. 법률학교 시절에 이미 그의 뛰어난 면모는 잘 드러났다. 그는 유능하고 쾌활하며 서글서글하고 사람 사귀길 좋아하지만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일은 엄격하게 실천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의무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소년 시절이나 또 어른이 된 후에도 그는 특별히 남에게 아첨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주 어려서부터 마치 파리가 불빛에 끌려 가듯 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끌려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의 태도와 인생관을 본받고 그들과 친교를 맺었다. 어릴 때, 그리고 청년 시절에 한 때 열중했던 일들은 모두 그에게 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그도 한때 정욕과 허영과 마지막엔 자유 사상에도 빠진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때도 그의 감정이 일정한 한계를 넘는 일은 없었다.

 

법률학교 시절, 어렸을 때는 무척 추잡한 짓으로 여겨서 그 행위를 할 땐 자기 자신에 대해서 혐오를 느꼈던 그러한 행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런 행위가 지위가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행해지고 있으며 별로 비난을 받지도 않는 것을 보고서는 그는 거기 대해서는 어느덧 깨끗이 잊어버렸다. 간혹 다시 생각나는 일이 있어도 그는 그것을 별로 괴롭게 여기지 않았다.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십등관이 되어 이반 일리이치는 부친에게서 양복을 살만한 돈을 받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샤르멜 가게에서 양복을 맞추고 공작과 교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도온' 식당에서 동급생들과 파티를 했다. 이런 일들을 마치자 그는 고급 상점에서 최신 유행 가방과 내복, 양복, 면도 기구, 화장 기구, 수건 등을 마련해서 부친이 주선해준 지방의 주 지사 촉탁 관리로서 부임했다.

 

지방에 가서도 이반 일리이치는 이내 법률학교 시절과 같은 경쾌하고 명랑한 분위기를 자기 주위에 만들어냈다. 그는 성실하게 근무해서 출세 길을 착착 마련하는 한편 오붓하고 품위 있게 놀았다. 이따금 상관의 지시를 받아 군(郡)으로 출장도 나갔으나 그곳에서도 윗사람에게나 아랫사람에게 위엄을 갖춰 응대했다. 그리고 스스로 긍지로 삼고 있는 정확성과 결백함을 유지하며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잘 수행했다.

 

직무 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는 그 젊음과 가벼운 즐거움을 좋아하는 성품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조심스럽고 공식적이어서 오히려 엄격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반면 친구들 사이에서는 종종 농담을 즐기고 재치가 풍부하게 굴었다. 그는 항상 선량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해 그가 마치 부모처럼 여기고 드나들던 지사 부부는 그를 아주 꽤 쓸만한 사나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지방에 있는 동안 그는 자기를 좋아하는 여인 가운데 한 사람과 관계를 맺었다. 여자 디자이너와 친해졌으며 도시에서 온 시종무관과도 술자리를 같이 했다. 지사 뿐만 아니라 지사 부인에게도 적절하게 아첨했으나 아무도 그의 이러한 태도를 나쁘게 헐뜯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것들은 프랑스 격언이 말하듯 '젊은 한 때는 방탕해도 좋다'는 항목에 들어맞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말쑥한 손에 깨끗한 셔츠를 입고 프랑스어를 지껄이는 이런 것들이 그곳에선 가장 상류 계급에서 좋아하는 일들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거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렇게 이반 일리이치는 5년 동안 근무했다. 그러자 그에게 직업상의 전환기가 다가왔다. 새로운 재판 제도가 생겨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 새로운 인재가 되었다. 그는 예심 판사의 지위에 앉게 되었다. 새 근무처는 다른 지방이었으므로 그는 그 동안 사귀어오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나 다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망설이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로 떠나기로 했다. 그는 친구들과 작별 파티를 한 후 기념 사진을 찍고, 은제 담배 갑을 선물로 받은 후 새 근무지로 떠났다.

 

예심 판사 시절에도 그는 촉탁 관리 시절과 마찬가지로 착실하게 근무했다. 직무상 의무를 사생활과 구별하고, 여러 사람의 존경을 얻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예심 판사의 업무도 그에게는 이전의 일보다 훨씬 더 한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다. 전에도 물론 즐거웠다. 샤르멜에서 맞춰 입은 양복을 차려 입고 쭈뼛쭈뼛 접견을 기다리는 민원인이나, 부러운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관리들 사이를 지나 곧장 지사의 개인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서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 지사와 더불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것도 물론 더없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직접 자기 뜻대로 취급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그는 자기 뜻대로 휘두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무척 예의 바르게, 거의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자신이 그들을 얼마든지 억누를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자기가 너그럽게 친구처럼 거리낌없는 태도로 대해 주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잘 알려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심판사가 되고부터 그는 자기가 모든 사람들 - 그가 아무리 행세하는 사람일지라도 예외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일정한 문구를 관용 서류에 써 넣기만 하면 누구든지 어김없이 피고인이나 증인으로서 자기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원하기만 하면 그들을 자기 앞에 불러 세우고 질문을 던져 거기에 대답하도록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결코 자기의 직권을 악용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오히려 자기의 태도를 부드럽게 하려고 애를 썼다. 실은 자기가 가진 이 권력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권력을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는 이 새로운 일자리가 주는 가장 큰 흥미와 매력이었다.

 

업무 그 자체, 즉 일반 심리 사무에 있어서도 이반 일리이치는 극히 성공적이었다. 그는 아무리 복잡한 사건일지라도 자기의 개인적인 의견을 완전히 배제하고 필요한 모든 공식적인 형식과 방법에 근거해 무척 신속하게 해결했다. 그것은 과거 관료 사회에서 보기 힘든 사례였다.

 

이렇게 그는 1864년에 공포된 법률을 현실 업무에 적용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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