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결혼

예심 판사의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고장으로 이사 온 이반 일리이치는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고 새로운 지위를 이룩했다. 생활 태도도 약간 달라지게 되었다. 그는 지방 관청 당국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 고장의 부유한 귀족과 법관들 가운데서 엘리트들만 골라 서클을 조직했다. 그리고 정부에 대해 적당히 불만을 나타내는 자유주의, 문화주의적인 태도를 연출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우아한 몸가짐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다만 턱수염만은 깎지 않고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이반 일리이치의 생활은 새로운 고장에서도 아주 원만했다. 주 지사에게 불만을 품은 친구들도 마음이 맞는 다정한 사람들이었으며, 봉급도 많아졌다. 특히 당시 새롭게 시작한 빈트 놀이는 그의 생활에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트럼프 놀이에 있어서도 그는 원래 머리를 잘 굴리고 명랑하고 재치 있게 노는 재주를 유감없이 발휘, 대체로 따는 편이었다.

 

이곳에서 2년간 근무했을 때 이반 일리이치는 장차 아내가 될 아가씨를 만났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 미헤리는 그가 드나드는 써클에서 가장 매력 있고, 머리가 좋고, 화려한 아가씨였다.

 

일상적인 판사 업무를 마친 다음 필요한 오락과 휴식을 위해 그는 그녀와 농담 비슷한 가벼운 관계를 맺었다.

 

그는 촉탁 관리 시절에는 대체로 춤을 많이 추는 편이었으나 예심 판사가 되고부터는 가끔씩 예외적인 경우에만 춤을 추었다. 자신이 직분상으로는 오등관이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남에게 뒤지지 않는 춤 솜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 그는 춤을 추곤 했다.

 

그는 야회가 끝날 무렵에 이따금씩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와 춤을 추었으며 주로 그 춤을 추는 시간을 이용해 그녀를 정복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특별히 그녀와 결혼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인쪽에서 그를 그리워하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이 문제를 자신의 일신상에 관련된 진지한 문제로서 검토했다.

 

'하기는 결혼하지 말아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지.' 그는 자기 자신을 타일렀다.

 

프라스코비야 후요드로브나는 제법 지체가 있는 집안의 딸이었다. 외모도 단정하지만 그녀가 물려받을 재산도 적지 않았다. 물론 이반 일리이치는 그보다 조건이 좋은 처녀를 찾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조건도 괜찮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자신이 받는 봉급 정도의 수입은 그녀도 갖고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사실 그녀는 학벌도 좋고 귀엽고 예쁘며 나무랄 데 없는 그런 처녀였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의 결혼은, 그 때 주위 사람들이 둘이가 무척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서로 합의해서 결혼했다. 그는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런 방식대로 실행했다. 그러한 결혼, 그러한 아내를 맞이함으로써 자신을 위해서 보다 유쾌하고 동시에 훌륭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혼 과정 그 자체와 부부간의 애정 표현, 새로운 가구, 새 식기, 새 내의 등으로 치장되는 결혼 생활 초기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아내가 임신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래서 이반 일리이치는 일찌감치 결혼이란 것은 사회에서도 인정 받는 것이고, 경쾌하고 즐겁고 흐믓한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예절 바른 생활 분위기를 파괴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켜주는 것으로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내가 임신 2,3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이 결혼 생활에는 무언지 새로운, 생각하지도 못했던 불유쾌한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침울하고, 무척 볼성 사나운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것들을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방법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내는 아무 이유도 없이, 심심풀이 삼아 그의 생활의 즐거움과 예의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 그녀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그를 질투하고 자신의 비위를 맞춰달라고 요구하고 공연히 대들곤 한다 - 그에게는 그런 것들이 불쾌하고 난폭한 행동처럼 느껴졌다.

 

처음 얼마 동안 이반 일리이치는 경쾌하고 점잖은 생활 태도를 취함으로써 이런 불쾌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태도는 전에도 그를 곤경으로부터 구출해 주었다. 이런 기대 때문에 그는 아내의 감정에 별로 개의치 않고 종전처럼 경쾌하고 유쾌한 생활을 계속했다.

 

친구들을 초대해 집에서 노름판을 벌리기도 하고 혼자서 클럽이나 친구에게 놀러 가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는 때때로 굉장히 억척스럽게 막된 말투로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가 그녀의 요구를 무시하면 그때마다 더욱 집요하게 비난을 퍼부어서, 그가 마침내 굴복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역시 그녀처럼 항상 집안에 틀어 박혀서 침울하게 시간을 보내게 될 때까지 결코 그런 행패를 그치지 않은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제야 부부 생활이라는 것이, 적어도 아내와의 생활이 언제나 생활의 즐거움과 품위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즐거움과 품위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그는 스스로 이런 파괴 행위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근무는 아내를 위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였다. 그는 그것을 방패 삼아 자기의 독립된 세계를 지키면서 아내와 대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출생과 양육 및 거기 따르는 여러 가지 실망, 장모의 병(이반 일리이치는 이 문제에 자기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등 거듭되는 사건들은 그를 더욱 가정 밖으로 내몰았다. 가정 밖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전보다 더 근무에 열중하게 됐고, 거기에 대해 명예심을 갖게 되었다.

 

결혼 후 1년도 못 되어 그는 부부 생활이라는 것이 생활에 어느 정도 편의를 줄 수 있으나 실제로는 아주 복잡하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즉, 사회에서 인정 받는 예의 바른 생활을 꾸리기 위해서는 근무에 임할 때와 같은 일정한 태도를 꾸며서 대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부부 생활에서 이러한 태도를 스스로 꾸며냈다. 그는 가정에서는 그저 집에서의 식사, 주부의 역할, 잠자리 등 아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편의와 외면상의 형식적인 품위만을 요구했다. 집에서 그는 명랑과 유쾌와 고상한 것만을 기대했으며 간혹 그런 것이 발견되면 무척 기뻐했다. 그러다가 저항이나 불평에 부딪치면 벽으로 둘러싸인 근무라는 별세계로 피난을 가서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직무 수행에서 훌륭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 받았고, 3년 후에는 검사보로 승진했다. 새로운 직무와 그 중요성, 모든 사람들을 투옥하고 기소할 수 있는 가능성, 논고의 공개성과 여기에 대한 자신의 성공, 이런 것들 때문에 그는 한층 더 근무에 몰입했다.

 

아이들은 계속 태어났다. 아내는 점점 더 말이 많고 화를 잘 내는 여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잔소리도 이반 일리이치의 가정 생활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 고장에서 7년 동안 근무한 뒤, 다른 주의 검사로 영전되어 갔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부임했다. 그러나 돈이 딸리고 새로운 고장은 아내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봉급은 전보다 많아졌으나 생활비는 더욱 많이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를 둘이나 잃게 되어 그의 가정 생활은 더욱 즐겁지 못한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새로 옮겨온 지방에서 무엇이고 좋지 않은 일만 생기면 남편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부부가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면 아이들 양육 문제 때문에 말다툼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싸움이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부부 사이에 드물게나마 서로 사랑하는 기분이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런 것은 결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문제 때문에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런 상태가 특별히 불편하지도 않았고, 이제 그런 상태를 아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심지어 이것이 가정에 있어서 자기가 해야 할 역할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는 그 역할과 목표를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을 점차 줄임으로써 이루어 나갔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할 경우에는 제 3자와 자리를 함께 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생활의 흥미를 모두 이 직업의 세계에서 찾았다. 자기의 권력의식, 미운 사람은 누구든지 혼내 줄 있는 가능성, 법정에 들어갈 때나 동료들과 만났을 때 갖추는 위엄, 상관이나 부하 등 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 특히 자신도 느끼고 있는 사무 관리상의 수완 등 이것들은 언제나 그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 밖에 동료들과의 대화나 식사, 트럼프 놀이 등도 그의 생활의 윤활유였다. 이처럼 이반 일리이치의 생활은 전반적으로, 그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으로 여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흡족하고 품위 있게...

 

그는 그 지방에서 7년 동안 더 살았다. 맏딸은 벌써 열 여섯이 되었다. 아이를 하나 더 잃어버리고 남은 사내 아이 하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 애가 항상 가정 불화의 원인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사내 아이를 법률학교에 보내려고 했으나 아내는 그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 억지를 부려 중학교에 입학시켜 버렸다. 딸 아이는 집에서 공부를 하고 훌륭하게 성장했으며 어쨌든 아들도 착실한 편이었다.

 

 

6. 위기

결혼하고 나서 17년 동안 이반 일리이치의 생활은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그는 이미 고참 검사였다. 그는 보다 좋은 자리가 나설 것을 기대하면서 두 세 군데 전임 요청을 거절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그의 생활의 평화를 밑바닥부터 뒤집어 엎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반 일리이치는 전부터 대학이 있는 도시의 법원장 자리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노릇인지 후배인 코페가 그를 뛰어넘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그는 공연히 화를 내며 아무 것에나 트집을 잡고 동료나 친근한 상관들과 말다툼을 했다. 자연히 사람들은 그를 피하게 됐고, 냉담해져서 그는 다음 번 인사 이동에서도 빠지고 말았다.

 

그것은 1880년의 일이었다. 그 해는 이반 일리이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해였다. 봉급은 생활비를 하기조차 턱없이 부족했고, 사람들은 그를 잊어버렸다. 아버지조차도 그를 도우려고 들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누구나 연봉 3천5백 루블인 그의 지위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부러워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아무도 그의 불행을 인정하고 도와주려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 남들이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아내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진저리를 내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수입 이상으로 낭비한 탓에 빚에 쪼들리고 있다. 아무도 이걸 알아주지 않는다.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라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느끼고 있다.

 

그 해 여름 휴가 때, 그는 휴가비를 줄이기 위해 처남이 있는 시골집으로 아내와 함께 내려갔다. 이반 일리이치는 시골에서 근무 없이 무료하게 지냈다. 이반 일리이치는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심심함에 질려 버렸다. 그는 견디기 힘든 우울함을 느끼고 단단히 결심했다 - 이런 상태로는 살아갈 수 없다. 뭔가 결단을 내리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이반 일리이치는 잠이 오지 않아 테라스를 어슬렁거리며 꼬박 밤을 샜다. 그는 뻬쩨르부르그에 올라가기로 마음 먹었다. 상관들이 그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될 것이다. 다른 관청으로 옮겨 버리는 거다... 그는 결심했다.

 

다음날, 아내와 처남이 한사코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뻬쩨르부르그로 떠났다. 그는 단 한 가지, 연봉 5천 루블을 받는 지위를 얻기 위해 먼 길을 떠난 것이다. 이제 그는 어떤 관청이든, 또는 일의 방향이나 성격 등은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연봉 5천 루블일 뿐이다. 행정 방면이든 은행이나 철도든 또는 마이야 황후 학원이나 세관일지라도 꺼릴 것 없었다. 그저 5천 루블만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신을 중요하게 쓸 줄 모르는 지금의 소속 관청으로부터 어떻게 해서든 떠나 버리고 싶었다.

 

이반 일리이치의 이번 여행은 뜻밖의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클스크에서 그의 친구 에프 에스 일리인이 같은 일등차에 올라탄 것이다. 일리인은 방금 클스크 주지사로부터 전달된 전보를 보여 주었다. 그것에 의하면 며칠 안으로 주 청사의 인사 이동이 있으며, 표도르 이바노비치 자리에 이반 세미요노비치가 임명되리라는 것이었다.

 

이 인사 이동은 이반 일리이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즉 표도르 이바노비치와 그의 친구인 자할 이바노비치의 역할 변경은 이반 일리이치에게 다시 없이 유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소식을 모스크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뻬쩨르부르그에 도착하자 이반 일리이치는 자할 이바노비치를 찾아가서 자기가 전에 근무했던 사법성에서 확실한 지위를 약속 받았다. 일 주일 후 그는 아내에게 전보를 쳤다.

 

'자할 미르레르의 후임으로 제 1차 보고시에 임명 됐음.'

 

이반 일리이치는 에상치 못했던 이 인사 이동 덕분에 동료들보다 2계급이나 뛰어오게 됐다. 게다가 5천 루블의 봉급과 부임 수당으로 3천 5백 루블까지 덤으로 받게 되었다. 그는 이전의 경쟁자들과 관청 전체에 대해 품었던 적개심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아주 행복한 기분에 잠길 수 있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만족스럽고 쾌활한 표정을 되찾고 시골로 돌아왔다.

 

그의 아내도 옛날처럼 명랑해져 두 사람 사이엔 휴전이 맺어졌다. 이반 일리이치는 뻬쩨르부르그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았다. 예전엔 적이었던 사람들이 체면 따위는 던져 버리고 이제 그에게 아첨하게 된 것이다. 모두들 그의 지위를 부러워했다. 특히 뻬쩨르부르그에서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 의심 없이 믿는다는 표정을 하면서 단 한 마디도 반박하지 않았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해 갈 고장에서의 생활에 대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보는 것이었다.

 

아내가 말하는 계획은 이반 일리이치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했다. 그는 서먹서먹하고 씁쓸했던 생활이 이제 멀리 사라지고,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즐겁고 점잖은 생활로 되돌아 가는 모습을 흐믓한 기분으로 지켜보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잠시 머무를 생각으로 시골에 돌아왔던 것이다. 9월 10일에는 새 임무를 맡아야 했으며 그밖에 새 부임지에서의 생활을 준비하고 시골에서 이삿짐을 전부 옮겨야 했다. 살림도구도 새로 장만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그의 머리 속에서 꾸몄던대로, 또 아내의 결심대로 정비되어야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됐다. 완전히 의견이 일치한 그들 부부는 사이가 무척 좋아졌다. 신혼 때에도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곧 가족들과 함께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처남 부부가 갑자기 그들 가족을 융숭하게 대접하고, 굳이 붙잡는 바람에 일단 혼자 떠나기로 했다.

 

이반 일리이치는 새 임지로 출발했다. 직업적인 성공 그리고 아내와 화합한 것이 그에게 흐믓하고 즐거운 기분을 안겨 주었다. 그 만족감은 점점 더 커졌다. 이사할 멋진 집도 하나 찾아냈다. 그들 부부가 전부터 가슴 속에 그리던 이상형의 그런 집이었다. 고풍스럽게 넓고 높게 설계한 응접실, 편리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는 서재, 아내와 딸의 방, 아들이 쓸 공부방 등 모든 것이 마치 그들을 위해 일부러 주문해 만든 것 같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몸소 집 정리에 나섰다. 벽지를 선택하고 가구를 사들였다. 일부러 아주 고풍스러운 물건을 사들였다. 그것이 특별히 우아하게 보이도록 덮개를 장만하여 마음 속에 그렸던 이상에 가깝게 꾸며 나갔다.

 

집 정리를 절반 정도만 했는데도 그 효과는 그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는 집 정리가 완전히 끝나고 나면 속되거나 상스러운 구석이란 찾아 볼 수 없는, 우아하고 고상한 분위기가 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밤에 잠들면서도 그는 머지 않아 완성될 넓은 응접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손님방을 둘러보며 벌써부터 벽난로와 칸막이, 선반,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의자와 벽에 걸린 큰 접시, 오래 된 접시들과 청동 장식품들이 각기 제 자리에 놓인 모습을 여러 가지로 상상해 보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얼마나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혼자서 흐뭇한 기분에 잠겼다. 특히 방 전체에 아주 고상한 품위를 갖추어 줄 오래된 물건들을 찾아내서 싸게 사들인 것이 무엇보다 성공적이었다. 그는 나중에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보고 더욱 놀라도록 하기 위해 이런 일들을 실제보다 축소해서 편지로 써 보냈다. 이런 일들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려 그는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새로운 직무에 대해서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할 지경이었다.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때때로 딴 생각에 잠기곤 했다. 커튼 윗 부분은 어떤 식으로 주름을 잡을까, 직선적인 게 나을까, 좀 여성적인 것이 좋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때로는 너무 생각에 열중한 나머지 몸소 가구를 고쳐보기도 하고 커튼을 갈아 보기도 했다.

 

한 번은 좀 서툰 미장이에게 직접 지시를 하려고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다행히 워낙 몸이 날쌔고 튼튼했으므로 옆구리를 모서리에 부딪쳤을 뿐이었다. 옆구리는 약간 아팠으나 이내 나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 동안 즐겁고 건강하게 생활했다. 그는 때때로 편지에도 썼다 - 나는 나이가 열 다섯 살이나 젊어진 것 같다고. 그는 9월 중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정리되리라고 예상했지만 일은 10월 중순까지 끌었다. 그러나 결과는 아주 훌륭한 것이었다. 그만이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마다 모두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는 별로 부유하지 못하면서 부유한 척 보이려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두꺼운 비단 커튼, 흑단 목재 가구, 꽃, 융단, 번쩍이는 것들이 모두 일정한 종류의 사람들이 그 일정한 종류의 사람답게 보이기 위해 장치해 놓은 것일 뿐이었다. 그의 집에 있는 것들은 모두 그런 것이어서 실상 별로 주목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모든 것들이 무슨 특별한 것처럼 가치 있게 느껴졌다.

 

그는 철도 정거장으로 가족을 마중 나갔다. 그리고 그들을 완전히 정리된, 눈부신 새 집으로 데려왔다. 하얀 넥타이를 맨 하인이 꽃으로 장식된 대기실의 문을 열어 젖혔을 때 모두들 응접실로 서재로 돌아다니면서 와! 하고 감탄의 함성을 터뜨렸다. 그는 너무 행복해 그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그들의 찬사를 마음껏 즐겼다.

 

그날 밤 차 마시는 자리였다. 그는 아내의 물음에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이 사다리에서 뛰어 내려 미장이를 놀라게 했던 모습을 몸짓까지 섞어가며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체조를 배운 게 뭐 장난인 줄 아나?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여기를 좀 부딪쳤을 뿐이야. 아직 만지면 아프긴 해도 이젠 거의 다 나았어. 가벼운 타박상일 뿐이라니까."

 

이렇게 그들은 새로운 집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매사가 그렇듯 이 새 집에서도 얼마쯤 살다 보니 방이 하나쯤 더 있었으면... 수입도 한 5백 루블쯤 더 많았으면 하는 사소한 불만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로웠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직 갖추어진 시설이 좀 부족했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부부가 이것저것 장만하고 고쳐 달라기도 하고 바꿔 놓을 때가 가장 좋았다. 부부 사이에는 무언지 아직 석연치 않은 구석도 남아 있었으나 둘 다 아주 흡족한 상태였다. 또 해야 할 일도 많았으므로 별로 크게 싸우는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더 이상 손 댈 것이 없어졌을 무렵, 약간 지내기가 심심했지만, 그 무렵에는 새로 친구도 생기고 습관도 정해지고 생활도 충실해졌다.

 

 

7. 가볍고 유쾌하고 고상하게

이반 일리이치는 오전을 법원에서 보내고 점심은 집에 와서 먹었다. 처음 얼마 동안 그의 기분은 문자 그대로 최고였다. 집안 일 때문에 약간 골치를 썩기도 했지만, 그의 생활은 지금까지 그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갔다. 가볍고 유쾌하고 고상하게...

 

그는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은 다음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법원으로 나간다. 법원에는 그가 달고 일해야 하는 목걸이가 마련되어 있다. 법원에 도착하자마자 그것을 목에 달아야 했다.

 

사무실에서 민원인들을 조사하고, 사무실 자체 업무나 회의, 공판과 공판 준비 회의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를 둘러싼다. 이것들 가운데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회색의 생활이 끼어든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이것을 배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바꿔 말하면 사람을 다룰 때에 직무 이외의 어떠한 관계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일의 동기는 오로지 직무상의 것이어야 하며, 사람을 대하는 것도 직무상 허용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가령 누가 무언가 알아보기 위해 사무실로 찾아 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직무를 떠난 자연인 이반 일리이치는 그 사람과 아무런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만약 그 사람의 용무가 관리와 관련된 것이며 공문용지에 기재될 성질의 것이라면 이반 일리이치는 그러한 관계의 범위 안에서 규정이 허용하는 모든 일을 자세히 알아봐 준다. 덧붙여 그는 인간적으로도 깍듯이 예의를 지킨다. 그러나 직무상의 일이 끝나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반 일리이치는 직무상의 일을 분명히 구분, 자신의 진짜 사생활과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해왔다. 이 방법을 이반 일리이치는 최대한 이용했다. 그것은 오랜 경험과 재능에 의해 이상할 정도로 잘 다듬어져 있었다.

 

그는 가끔 가벼운 농담이라도 하듯이 인간적인 관계와 직무상의 그것을 자신이 혼동하는 모습을 연출해 보이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스스로 정한 원칙의 속박을 풀어버리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언제든지 필요하면 또다시 직무상의 관계를 칼처럼 구별, 인간적인 측면을 떼어버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어진 업무를 손쉽고 유쾌하고 의젓하게 처리했다. 그 솜씨는 실로 달인의 경지라고 평가할 만했다. 직무를 처리하는 사이사이에 그는 담배를 피우고 차를 마시며 간단한 정치 관련 화제를 입에 올리는 일도 있었다. 또 일반적인 세상사나 트럼프 놀이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들의 화제는 대부분 인사 이동에 관련된 의견 교환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역할을 솜씨 있게 해치운 명인처럼,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의 제 1 바이올리니스트의 한 사람처럼 피곤해져서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는 아내가 딸과 함께 외출했거나 손님이 와 있거나 한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가정교사와 예습을 하거나 학교에서 배운 것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말하자면 매사가 전혀 흠 잡을 데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저녁 식사 후 찾아온 손님이 없으면 이반 일리이치는 이따금씩 평판이 좋은 책을 읽기도 한다. 그리고 더 늦은 밤에는 다시 일에 열중한다.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관련 법규를 조사하고, 진술 내용을 법률과 대조해보고 들어 맞는 조문을 찾아내곤 했다. 이런 일은 지루하고 갑갑하기만 했다.

 

물론 빈트 노름을 할 때도 지루해지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아내하고 함께 있거나 혼자서 우두커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반 일리이치의 즐거움은 조그마한 만찬회를 마련하고 사회적으로 훌륭한 지위에 있는 신사 숙녀를 초대해서 그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의 집에서 가든파티를 열고 무도회를 가진 일도 있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흐믓한 기분이었고, 파티도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음식 문제로 아내와 대판 싸워야 했다. 아내는 그녀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다. 그가 우겨서 고급 음식점에서 음식을 장만했으나 손님들이 다 먹지 못해서 음식이 많이 남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음식점에 치루어야 할 계산이 45 루블이나 되었다. 아내는 남편이 어리석게 고집을 피운다고 몰아세웠고, 남편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홧김에 이혼까지 서슴지 않는 식의 말을 중얼댔다.

 

그러나 야유회는 눈부셨다. 모두 일류급 인사들만 모여서 이반 일리이치도 포르포온노 공작부인과 춤을 추었다. 근무상의 기쁨은 자존심을 충족시키는 데서 생기는 것이며, 사교적인 기쁨은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데서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가 진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빈트 놀이를 할 때였다.

 

이렇게 그들은 생활했다. 그들은 사교계에서 제 1급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조직된 서클에 들어갔다. 이 서클에는 나이 든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 서클에 관해서는 남편과 아내, 딸까지도 완전히 의견이 일치했다. 그들은 별다른 약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벽에 일본 도자기 접시가 걸려있는 그들의 객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종류에 제한을 가했다. 실속도 없이 말만 앞세우는 귀찮은 친구들과 차림새가 허술한 축들은 상대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집에는 최상류층 사람들만 드나들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이반 일리이치의 딸인 리잔카를 자주 화제에 올리곤 했다. 특히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페트리시체프의 아들이며 상속자인 예심판사 페트리시체프가 가장 관심이 많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진작부터 그 문제에 관해서 아내와 상의하곤 했다. 두 젊은이를 트로이카로 드라이브를 시키거나 또는 함께 소인극을 연출시켜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오고갔다. 이런 식으로 그들의 생활은 변함없이 그대로 흘러갔다. 만사는 아주 순조로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