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저 놈만이 진실이란 말인가

이반 일리이치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은 아무래도 생소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끊임없는 절망의 나날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다른 생각을 계속 끌어대 그 속에서 마음을 의지할 지주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디, 다시 한 번 근무에 정력을 쏟아보자. 사실 난 그것으로 살아온 셈 아닌가...'

 

그는 자신의 머리에서 모든 의혹의 상념을 쫓아 버리면서 부지런히 법원에 가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랜 습관대로 의자에 걸터앉아 무슨 의미가 있는 듯한 눈초리로 사람들을 둘러 보았다. 야윈 두 팔을 회전 의자의 팔걸이에 올려놓고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동료를 향해 한 두 마디 작은 목소리로 말은 주고 받으며 몸을 숙여 서류를 밀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를 꼿꼿이 한 다음 늘 써 먹는 말로 심문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옆구리의 통증이 그의 존재를 빨아 들이는 것 같은 작업을 개시했다. 사건 진행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식이다. 그는 귀에 신경을 집중시켜 이 통증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통증은 태연하게 작업을 계속했다. 드디어 그놈(죽음에 대한 생각)은 그의 눈 앞을 가로막고 선다. 그리고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몸이 움츠러들고 눈에선 빛이 사라진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 본다.

 

'정말 저 놈만이 진실이란 말인가...?'

 

동료들과 부하 직원들은 이반 일리이치 같이 뛰어나고 능숙한 법관이 갑자기 말을 더듬고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몸을 떨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면서 억지로 공판이 끝날 때까지 견디었다.

 

그는 이제는 법원 일도 전처럼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며 그놈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서글픈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그놈이 자기를 꼼짝 못하게 해놓고, 그놈만을 바라보도록 만든 것이다.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결코 외면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 무엇을 방패막이로 세워 놓아도 그놈은 기어이 그걸 뚫고 들어오고야 만다. 아무리 해도 막을 길이 없다.

 

그는 어느날 그 응접실 - 바로 그가 몸소 장식한,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사다리로부터 떨어져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병을 얻게 된 - 그 응접실에 들어 갔다. 그는 그곳에 놓여 있는 탁자에 칼 자국 같은, 긁힌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 원인을 생각해 보다가 드디어 그것이 끝이 구부러진 앨범의 청동 장식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자신이 애정을 쏟아서 만들어 놓은 그 귀중한 앨범을 들춰 보았다. 그리고 딸과 그 친구들이 칠칠치 못하고 뒤끝이 깨끗치 못한 것에 화가 나고 못마땅해졌다. 앨범은 군데군데 찢어졌고, 사진들도 아무렇게나 뒤죽박죽 붙여져 있었다.

 

그는 힘을 들여서 그것을 깨끗이 정리하고 구부러진 장식도 고쳐 놓았다. 그러다 문득 앨범이 놓여 있는 탁자를 꽃이 놓인 다른 구석으로 옮기고 싶어졌다. 그는 하인을 불렀다. 그러나 아내와 딸이 와서 그의 계획을 반대하며 말다툼을 벌렸다. 그러나 그는 보통 때 같으면 부아가 났을 이 일에도 별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그놈(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또 어디에도 그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몸소 탁자를 옮기려고 하자 아내가 말리면서 말했다.

 

"그만 두세요. 딴 사람을 시켜요. 그러다가 또 몸이 상할 거에요."

 

그러자 갑자기 그놈(죽음)이 또 칸막이 너머에서 어른거렸다. 그는 그놈을 보고 만 것이다. 그놈이 잠깐 어른거렸기 때문에 금방 꺼져버릴 줄 알았다. 그러나 그놈은 어느 틈에 생각치도 못하게 그는 옆구리에 늘어붙어 있었다. 거기에는 역시 같은 것이 도사리고 앉아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역시 전처럼 욱신거린다. 이제는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놈은 꽃 뒤에서 뚜렷이 그를 지켜 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그렇다. 나는 바로 여기 이 창문에서 마치 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목숨을 떨어뜨린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이란 말인가? 그런 무서운, 그런 어리석은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럴 수 없지. 그럴 수는 없어...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일이 바로... 여기 있단 말이야.'

 

그는 또다시 그놈과 단 둘이 있게 되었다. 그놈과 눈을 마주 치면서도 그놈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저 그놈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몸이 얼어붙고 있을 뿐이다.

 

12. 게라심

이반 일리이치가 병석에 드러누운 지 3개월째가 됐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워낙 눈에 띄지 않게 일이 진행된 탓으로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새 아내도 딸도 아들도 그리고 하인들이나 친지들, 의사, 심지어 이반 일리이치 자신까지도 이제 남은 것은 다만 그가 저 지위를 내놓을 날이 언제인가 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문제는 살아남을 자들이 그의 존재로 인해 생기는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날은 언제이며 또한 그 자신 스스로의 고통으로부터 풀려날 날은 언제인가 하는 것들로 모아진 것이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거리는 모두 그것일 뿐이었다.

 

그는 갈수록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모르핀 주사를 맞고, 아편을 먹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그를 괴로움에서 구해주지는 못했다. 반 마취상태에서 몽롱한 슬픔을 느끼면서 처음 얼마 동안은 비교적 견디기가 쉬웠으나, 나중에는 그것이 분명한 고통처럼 아니 그보다 더 큰 괴로움으로 변했다.

 

의사가 특별한 음식을 처방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날이 갈수록 그런 음식들조차 맛이 없고, 먹기가 싫어졌다. 배설을 하려면 특별한 장치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변을 볼 때마다 그는 더 큰 고통을 느껴야 했다. 불결함, 어색함, 지독한 냄새 등을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치르어야 하다니... 그는 그 배설에 필요한 절차가 끔찍했다.

 

견딜 수 없이 불쾌한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반 일리이치에게 한 가지 위안을 주는 것이 생겨났다. 그것은 변을 본 뒤엔 으레 식당 하인 게라심이 치우려고 온다는 사실이었다. 게라심은 도회지의 음식을 잘 먹고 살이 찐 미끈하고 건강한 젊은 농부출신 사나이였다. 그는 항상 명랑했다. 처음엔 언제나 말쑥한 러시아식 제복을 입고 이런 궂은 일을 하는 사나이의 모습이 적지 않게 이반 일리이치를 당황케 했다.

 

하루는 변기에서 일어섰다가 바지를 끌어올릴 기력이 없어 그는 푹신한 팔걸이 의자 위에 쓰러진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는 힘줄만이 앙상하게 드러나 힘없이 벗겨진 넓적다리를 비참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두꺼운 장화를 신고, 베 앞치마를 걸치고 말쑥한 무명 셔어츠 팔소매를 걷어붙인 게라심이 가볍고 힘찬 걸음걸이로 방에 들어왔다. 그는 병자가 모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의 모습을 외면하면서 변기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 빛나는, 삶에 대한 즐거운 태도를 그는 숨기고 있었다.

 

"게라심." 이반 일리이치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게라심은 자기가 무슨 실수를 저지른 것이나 아닌가 놀라서 몸을 떨었다. 그 젊은이는 재빠른 동작으로 턱수염이 겨우 날까말까 한, 생기가 넘쳐 흐르는 선량하고 단순한 얼굴을 그에게 돌렸다.

 

"무엇을 해 드릴까요?"

 

"항상 생각하는 것인데, 너도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겠지... 미안하다... 그러나 용서해라.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까..."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게라심은 눈을 빛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말했다.

 

"원, 이런 일이 뭐 그리 대단합니까? 나리께선 지금 병환 중이신데요."

 

그는 억센 두 손으로 익숙하게 일을 재빨리 해 치우고 가벼운 걸음으로 물러 나갔다. 그리고 한 5분쯤 지나 똑같이 가벼운 걸음으로 되돌아 왔다. 그때까지 이반 일리이치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게라심, 이리 와서 나를 좀 도와주렴."

 

게라심이 그에게 가까이 왔다.

 

"나를 일으켜다오. 아무래도 혼자선 옷을 입기 힘들구나. 마침 드미트리가 심부름을 가는 바람에..."

 

게라심은 든든한 두 팔로 이반 일리이치를 안아 조심스럽게 가만히 일으켰다. 마치 그의 발걸음처럼 경쾌한 동작이었다. 그런 다음 한 손으로 바지를 끌어올려 입혀주고 다시 자리에 앉혀 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자신을 긴 의자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게라심은 별로 힘도 안 들이고 그를 너무 세게 누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겨드랑을 받쳐 안아 긴 의자에 앉혀 주었다.

 

"고맙다. 너는 정말 뭐든지 다 잘하는구나."

 

게라심은 싱긋 웃더니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아주 흐뭇했다. 그래서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거기 그 의자를 이리 좀 갖고 오너라. 아니, 바로 이렇게 응, 그래 다리 밑에 말야. 그렇지... 이렇게 다리를 고여 놓으면 좀 편해지거든."

 

게라심은 의자를 들고 와서 소리도 내지 않고 아주 익숙하게 마루 바닥에 내려 놓았다.그리고 그 위에 이반 일리이치의 다리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이반 일리이치는 게라심이 다리를 높이 들어 주자 아주 편안해진 것을 느꼈다.

 

"다리를 더 높이 고여 놓으니까 훨씬 편하군. 저기 저기 있는 의자 세 개도 가져다가 좀 받쳐 다오."

 

게라심은 시키는 대로 했다.

 

"게라심, 너 지금 다른 바쁜 일은 없니?"

 

"제가 뭐 대단스러운 일을 하는 게 있습니까? 해야 할 일은 미리 다 해 놓았습니다. 내일 쓸 장작만 패 놓으면 다 끝납니다."

 

"그래, 그럼... 내 다리를 좀 들고 있어 주겠니?"

 

"네에... 그렇게 해 드려야죠."

 

게라심은 다리를 높이 받쳐 들었다. 이반 일리이치는 이렇게만 하고 있으면 괴로움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장작 패는 것은 어떻게 하지?"

 

"염려 마세요. 제 때에 쓸 수 있게 다 해 놓을 수 있으니까요."

 

이반 일리이치는 게라심에게 의자를 가져와 앉아 다리를 들고 있도록 일렀다. 그리고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는 게라심이 다리를 들어 주고 있는 동안은 몸이 아주 편한 것 같았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이반 일리이치는 자주 게라심을 불러 자신의 다리를 그의 어깨 위에 올려 놓고 그와 이야기하곤 했다. 게라심은 그런 일을 전혀 힘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자진해서 단순한 태도로 그런 일을 했다. 그의 태도에는 이반 일리이치를 감동시키는 단순하고 순박한 것이 있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지닌 건강과 힘, 젊음은 모두 이반 일리이치에게 모욕감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게라심의 힘과 젊음은 그를 괴롭히거나 슬프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고 위안이 되어 주는 것이었다.

 

이반 일리이치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허위였다. 그것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거리였다. 남들은 이반 일리이치가 단순히 병을 앓고 있을 뿐이지, 결코 죽어가는 게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가 침착하게 치료를 받기만 하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식의 태도였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그런 허위를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가령 무슨 방법을 써본다 해도 이보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을 가져다 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는 죽음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허위, 허위, 그의 죽음의 전야에 그에게 행해지고 있는 이 허위... 그의 죽음이라는 이 엄숙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나 창문에 드리우는 커튼, 식탁에 오르는 연어 고기 따위 평범한 일상으로 끌어내리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저히 그렇게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이러한 허위, 바로 이것이 이반 일리이치에게는 견딜 수 없이 무섭고 괴로웠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그런 허위에 찬 태도를 보일 때마다 외치고 싶었다. 그 따위 입에 발린 수작은 그만 둬!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당신들이나 나나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그러니 제발 그러지 말아줘! 그런 거짓말은 그만두란 말이야! 이런 말이 혀 끝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는 아무리 해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라는 무섭고 우울한 사실을 그저 우연히 생긴 불유쾌한 일 정도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또는 그저 사소한, 예의 바르지 못한 사태 정도의 범상한 일로 격하시키고 말았다. 아무도 이반 일리이치를 가엾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누구도 그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한 사람, 게라심만이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를 진심으로 가엾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반 일리이치는 게라심과 단 둘이 있는 것이 좋았다.

 

게라심 한 사람만은 그를 거짓으로 대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그만이 진실로 이해하고 또 그것을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그만이 이 병들고 쇠약해진 주인을 지극한 정성으로 가엾게 여긴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이반 일리이치가 그를 그만 돌려 보내려 하자 게라심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고 말아요. 무엇 때문에 제 몸을 아끼겠습니까?"

 

게라심은 자기가 이렇게 누군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정성껏 돌봐주면 언젠가 때가 와서 자기도 이런 처지가 되면 또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돌봐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가 이렇게 정성껏 주인을 돌봐주는 이유가 거기 있다는 것을 그는 나름대로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허위 이외에 또는 허위의 결과로 이반 일리이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누구 한 사람 그를,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동정해 주지 않는 것이었다. 모진 고통을 오래 겪고 나면 사람들은 한 가지를 가장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창피스럽게 느껴질지라도...

 

병을 앓는 아이들처럼, 사람들은 때로 남들로부터 진정으로 동정을 받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 역시 사람들이 아이들을 어르고 위로해 주듯이 그를 애무해 주고 입 맞춰 주고 그를 위해 울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것이다.

 

그는 당당한 관리에다, 턱수염이 희끗희끗해진 나이가 지긋한 남자였다. 따라서 자기 자신 역시 스스로가 그런 것을 바란다는 게 무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 속으로 그것을 애타게 바라고 있었다. 게라심과의 관계 역시 어딘지 그런 그의 바람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게라심은 그에게 위안이 됐던 것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울고 싶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애무해 주고 자신을 위해 울어 주길 원했다. 그럴 때 동료 판사 슈베크가 문병을 온다. 이반 일리이치는 울고 떼를 쓰고 칭얼대는 대신 갑자기 엄격하고 사려 깊은 표정을 지으면서 대심원 판결의 의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고 집요하게 그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타성에서 나온 행위였다. 그의 주위와 그 자신 속에 깃들인 이 허위가 무엇보다도 짙게 그의 삶의 마지막 나날을 해치고 있었다.

 

13. 모든 것이 똑같다

아침이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게라심이 물러가고 하인 표도르가 들어와서 촛불을 끄고 커튼을 걷으면서 방 안을 치우기 시작했으므로 그저 아침이 됐다는 것을 짐작할 따름이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혹은 금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모두가 변함없이 마찬가지일 뿐이었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절망적으로 끊임없이 멀어지면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생명에 대한 의식, 그리고 끈덕지게 엄습해 오는 저 가증스러운 죽음 그것만이 유일한 현실이다. 그리고 항상 변함없는 그 허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날짜가 바뀌고 시간이 변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차를 드릴까요?"

 

'이 놈은 매일 아침 제 주인이 차를 마신다는 습관이 있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없어...'

 

"그만둬."

 

"긴 의자로 바꿔드릴까요?"

 

'방을 치워야 하는데, 내가 가로 걸리는 모양이군. 이들에게 나는 곧 불결이며 무질서일 따름이지.'

 

"아니, 내버려 둬."

 

그래도 하인은 곁에서 뭔가 부스럭거리고 하고 있다. 이반 일리이치가 팔을 벌리자 하인은 공손히 다가온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시계."

 

하인은 옆에 있는 시계를 집어 든다.

 

"여덟 시 반이군. 저쪽 방에선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나?"

 

"네, 아직 주무시는데요. 도련님은 학교에 가셨구요... 마님께선 나리가 부르시거든 깨워달라고 그러셨어요. 가서 일어나시라고 할까요?"

 

"그만 둬라."

 

'차라도 마셔볼까...' 그는 생각한다.

 

"그래, 차를 좀 가져와라."

 

하인은 문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이반 일리이치는 갑자기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워진다.

 

"표도르, 거기 약부터 좀 집어 주렴."

 

'글쎄, 어쩌면 운이 좋아 약이 효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약 효험이 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그는 숟가락으로 약을 마신다. '이까짓 게 들을 리 없지, 순 엉터리인 걸.' 그는 입에 익숙한, 들척지근한 그 맛을 느끼자 절망적으로 이렇게 단정한다. '그런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이 고통, 이건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제발 일 분 간만이라도 이 고통이 멎어 줬으면...'

 

그는 끙끙 앓기 시작한다. 하인이 다시 들어온다.

 

"나가 봐. 가서 차를 가지고 오렴."

 

하인이 물러가자 이반 일리이치는 또다시 앓는 소리를 냈다. 고통도 심했으나, 그보다도 그는 외롭고 쓸쓸했다.

 

'모든 것이 언제나 그렇다.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는 낮과 밤들. 제발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그러면 그 다음엔 무엇이 오나? 죽음, 암흑, 정말 끔찍하다... 그 무엇이 오더라도 죽음보다는 낫지!'

 

하인이 쟁반에 차를 받쳐 들고 들어오자 그는 오래도록 멍하게 하인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여기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표도르가 그런 시선에 당황하여 어물거리자 이반 일리이치는 비로소 제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잘했다. 거기에 그냥 놓아라. 그리고 내가 세수하고 셔츠 갈아 입는 것을 좀 도와주렴."

 

이반 일리이치는 세수를 시작했다. 쉬엄쉬엄 손과 얼굴을 씻고, 이를 닦은 다음 머리에 빗질을 하면서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다. 푸른 기가 도는 이마에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어 있었다.

 

셔츠를 갈아 입을 때 자신의 몸을 보면 더욱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보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가운을 걸치고 담요로 몸을 감싸고 차 쟁반을 앞에 놓았다. 이렇게 팔걸이 의자에 기대 앉는 짧은 순간 그는 상쾌한 기분을 맛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찻잔을 입에 대자 또다시 그 메스꺼움과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는 억지로 차 한 잔을 마신 다음 두 다리를 뻗고 모로 드러누웠다. 그리고 하인을 내보냈다.

 

그저 모든 것이 똑같다. 때로는 희망이 한 방울 반짝이는 듯 하다가 다음 순간 절망의 거친 바다가 파도를 일으킨다. 언제나 그 고통, 똑같은 그 고통, 그리고 외로움과 우울함, 모든 것이 항상 같을 뿐이다.

 

혼자 있노라면 무섭고 침울해진다. 그래서 누구든지 옆에 불러 같이 있고 싶었으나 또 누가 곁에 있으면 더욱 침울해진다.

 

'모르핀을 놓아 달라고 할까... 이 고통을 잊을 수만 있다면... 이번에 의사한테 부탁해서 좀 다른 방법을 써 달라고 부탁해야겠어. 제기랄, 이건 정말 미치겠군. 정말 못 견디겠어...'

 

한 시간 두 시간 이런 상태로 흘러간다. 문득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난다.

 

'의사가 온 것이겠지.'

 

과연 뚱뚱한 의사가 팔팔하고 생기에 가득찬 표정으로, 쾌활한 태도로 들어선다. 마치 '이런, 또 시름에 잠겨 계시는군. 이제 곧 다 낫게 해 드리죠' 하는 듯한 표정이다. 의사 역시 자신의 쾌활한 표정이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런 표정이 얼굴에 굳어져 버려 바꿀 수가 없다. 마치 아침부터 연미복 차림으로 여러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의사는 힘차게 위로라도 해주는 것처럼 두 손을 비빈다.

 

"몸이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추위가 대단하군요. 잠깐만 불을 좀 쪼이겠습니다."

 

마치 '불을 쪼이는 동안만 잠깐 참으면 곧 금방 낫게 해 드리죠'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픈 건 좀 어떠세요?"

 

'요즈음 경기는 좀 어떠세요?' 의사는 이렇게 묻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지난밤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이렇게 묻는 것이라고 느낀다. 적어도 이반 일리이치의 느낌은 그렇다.

 

'자네는 늘 거짓말만 늘어놓으면서도 그게 부끄럽지 않은가?' 이반 일리이치는 이렇게 묻는 표정으로 의사를 본다. 그러나 의사는 이런 질문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반 일리이치는 말했다.

 

"항상 마찬가집니다. 통증이 도무지 줄어들거나 덜하지도 않아요. 좀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환자들은 으레 그렇게 말하는 법이죠. 이제 겨우 몸이 좀 녹았습니다... 까다로운 프라스코바아 후요드로브나께서도 이제 제 손이 차다는 소리는 못하겠죠... 어디, 좀 볼까요?"

 

의사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표정을 싹 바꾸어 근엄한 얼굴로 진맥을 하고 열을 재어 본 후 손으로 환자의 몸을 두드리고 청진기를 대보기 시작한다.

 

이반 일리이치는 이런 것들이 모두 쓸데없는, 공허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의사가 무릎을 굽히고 자신의 몸 아래 위로 청진기를 대어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진찰에 열중하는 것을 보노라면 어느결에 그의 태도에 빨려 들어가곤 했다. 마치 법정에서 변호사의 변론을 듣고 있노라면 그들이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 거짓말을 하는 이유까지 훤히 보이면서도 어느덧 거기에 빨려 들어가듯이.

 

의사가 긴 의자 옆에 무릎을 굽히고 이반 일리이치의 몸을 똑똑 두드리고 있는데, 문에서 아내의 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의사가 왔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하인을 나무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방에 들어오면서 남편에게 입을 맞추기가 무섭게 자기는 벌써부터 일어나 있었다는 것, 의사가 집에 온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방에 오지 않았다는 등 변명을 해댔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온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이다. 그녀의 하얀 살결과 알맞은 몸집, 고운 팔목, 윤기 있는 머리카락, 생명력에 가득찬 눈 등이 모두 그에게는 트집 잡을 구실일 뿐이다. 그는 모든 정신을 기울여 그녀를 증오한다. 그녀와의 접촉은 그런 증오를 그에게 가득차게 했다. 그것은 그를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

 

그와 그의 병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과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한 번 정해 놓으면 결코 고치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가 그를 대하는 태도도 그랬다. 즉 그가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서 저 지경이 되었다는 것, 모두 그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 그러나 자기는 애정을 갖고서 이를 나무라고 있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 태도를 완성해놓고 결코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이 양반은 남의 말을 통 듣질 않아요. 약도 때 맞춰 드시지 않구요.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그래도 다리를 치켜 들고 주무신다니까요. 그러니 열이 위로 오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글세...?"

 

그녀는 남편이 게라심을 시켜 다리를 쳐들고 눕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의사는 비웃는 듯, 불쌍하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마치 '뭐 별 수 없죠. 환자란 이따금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곤 하니까요. 그래도 그 정도야 봐 주어야죠.' 라고 말하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