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론소 끼하노의 죽음
돈키호테라는 표상의 죽음에 대한 확인 이후에 이제 돈키호테는 사라지고 새로운 표상을 탐색한다 그가 먼저 염두에 둔 것은 목자 놀이였다 신부 이발사 산손 까라스꼬가 이 놀이에 동조한 반면 가정부는 또 다시 반대하고 나서며 이렇게 말한다
제발 집에 좀 계세요 가업도 돌보시고 종종 고해성사도 보시고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도 베푸세요 그게 싫으시다면 제게라도 베푸시던가
이것이 마을로 돌아온 주인공에게 남겨진 삶의 모습이며 이 모습은 돈키호테가 되기 이전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 같은 소박한 생존은 한때 돈키호테였던 주인공에게 의미가 없다 이에 대한 돈키호테의 대답은 1부 5장의구절을 연상시킨다
돈키호테가 그들에게 대답했다 조용히 하거라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는 내가 잘 알고 있다 아무튼 나를 침대로 데려가 다오 아무래도 몸이 성치 않은 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알아두어라 내가 편력 기사로 남아있든지 앞으로 양치기가 되어 돌아다니든지 간에 너희들에게 필요한 일은 언제나 잘 챙겨줄 것이다 어차피 앞으로 보면 알겠지만
그러나 나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 와는 달리 여기서 강조된 문장은 앞에서 대명사로 표현된 존재의 본질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모습이 편력 기사일 수도 있고 앞으로 목자나 다른 그 무엇도 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은 본질의 표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문장 다음에 직접 화법으로 등장하는 목소리를 통해서 주인공은 알론소 끼하노로의 변신을 선언한다
여러분들 기뻐해 주시오 나는 이제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아니라 알론소 끼하노요 나의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선한 사람 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알론소 끼하노란 말이오
그러나 그들은 알론소 끼하노를 또 다른 광기에 사로잡힌 돈키호테로 받아들이며
이 말을 들은 세 사람은 그가 틀림없이 새로운 광기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했다
산손은 빈정거리듯 장난까지 친다
돈키호테님 지금 우리들은 둘씨네아님이 막 마법에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제 우리가 목자가 되어 왕자처럼 인생을 노래하며 살려고 하는데 은둔자라도 되겠다는 겁니까 제발 그런 말씀 마시고 장신 좀 차리세요
이상한 점은 자신이 알론소 끼하노라고 선언한 주인공의 말을 듣고 신부 이발사 산손 까라스꼬가 그를 또 다른 미친 사람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의 말 가운데 상식을 벗어난 구절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사람들은 왜 그를 미친 사람으로 보고 있으며 그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알론소 끼하노라는 이름이 그의 본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름만이 문제가 될 뿐 임종을 앞둔 그의 말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이어지는 새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이름을 제외하면 그가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인정한다 마치 주변 인물들이 죽음이 임박한 사람에게 더 이상 이름 가지고 문제 삼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돈키호테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알론소 끼하노도 이성과 광기가 하나로 결합된 애매한 인물로 규정할 수 있다
2부의 돈키호테를 주변 인물들이 속이고 소외시켰다면 상황은 알론소 끼하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알론소 끼하노는 돈키호테처럼 소외되어 있다 그의 죽음이 임박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카 가정부 산초가 남겨준 유산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모습이 새로운 인물이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집은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카딸은 식사를 끊지 않았고 가정부는 축배를 들었으며 산초도 즐거워했다 뭔가를 유산으로 받는다는 것이 그들에게 슬픔의 기억들을 지우거나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 슬픔이 상속의 이유인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죽어가는 주인공에게 소외는 인식의 분열을 일으키지 않는다 자신의 진실이 주변 사람들의 거짓으로 인해 그 진실성이 의심될 때 마법을 통해 합리화했던 돈키호테와 달리 알론소 끼하노는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합리화가 필요할 만큼 지켜야할 가치 기사도의 세계와 둘씨네아는 이미 사라졌고 그 대신 죽음을 통한 영생이라는 알론소 끼하노의 존재 이유가 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돈키호테의 변신은 또 다른 광기의 시작이다 돈키호테의 기사도적 광기가 사라지고 나서도 돈키호테의 영웅적 성격은 알론소 끼하노를 통해 연장된다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죽게 놓아두었다는 것이 알론소 끼하노의 유일한 광기이자 영웅적인 성격이다 돈키호테의 광기가 지루하고 반복적인 시골양반의 삶을 버리고 존재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모험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알론소 끼하노의 광기는 대명사로 표현된 그 존재의 의미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그는 기사도의 세계 그리고 둘씨네아를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 뒤의 삶은 감당할 수 없다 비록 의사는 그의 병을 우수와 자폐로 진단하지만 알론소 끼하노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존재 근거에 대한 긍정이며 영원한 생존에 대한 약속이다 따라서 죽음은 산초의 말처럼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광기이면서 알론소 끼하노의 마지막 영웅적 행위가 된다 이러한 존재에 대한 긍정이 바로 죽음으로 표현된 것이다 산손 까라스꼬가 쓴 묘비명의 구절 [죽음은 그가 죽었음에도 삶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처럼 죽음은 한때 돈키호테였으며 알론소 끼하노였던 주인공의 죽음에도 승리하지 못하고 그의 이름들을 영원하게 만들었다 알론소 끼하노라는 또 다른 표상의 광기를 통해 주인공은 새로운 영웅으로 태어난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대명사로 표현된 주인공의 본명과 삶의 진실을 알 수 없다 다만 해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