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요 개념들

 1) 인간본성에 대한 관점
  심리치료에서 실존치료의 결정적 중요성은 이것이 기법으로 치료를 하려는 경향에 대한 반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존재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 치료의 기초를 두는 치료이다. 실존치료는 인간을 존중하는 관점에 입각해 있다. 또한 인간행동의 새론운 면을 탐색하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새로운 방법을 탐색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가정에 기초된 치료로서 여러 가지 접근법을 사용한다.


  인간본질에 대한 실존적 관점은 우리의 실존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영원히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에 기초해 왔다. 오히려 우리는 자신의 설계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실존을 인식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과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우리가 제기하는 특수한 질문들이 각 발달단계에 따라 다양하지만 기본 주제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우리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 있는가"와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먼저 존재했던 것도 없고 주어진 의미나 부과된 의미도 없으며 이 세상에는 어떤 목적도 없다(Fischer & Fischer, 1983).


  실존적 접근법에 의하면 인간조건의 기본 영역은 즉 ① 자기인식의 능력, ② 자유와 책임,  ③ 자신의 정체감의 발견과 다른 사람과의 의미있는 관계의 정립 ④ 의미·목적·가치·목표의 추구, ⑤ 삶의 조건으로서의 불안, ⑥ 죽음과 무의식등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2) 전제 1 : 자기인식의 능력
   인간존재로서 우리는 자기인식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반성할 수 있고 선택을 할 수 있다. 인식이 넓어질수록 자유의 가능성도 커진다.  그래서 인식을 넓히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사는 능력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인간실존의 핵심이 되는 인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자각하게 해준다.

 

·우리는 유한하며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잠재적 능력을 갖고 있다. 행동을 취하는 것은 하나의 결정이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선택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의 운명을 부분적으로 창조할 수 있다.


·의미는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 추구한 산물이며 독특한 목적을 창조하는 것이다.


·실존적 불안은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이 자유를 가졌다는 자각이며 삶의 본질적 부분이다. 유용한 선택에 대한 자각이 늘수록 이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감도 는다.


·우리는 고독과 무의미와 공허감, 죄의식 그리고 고립감을 경험하도록 운명지워져 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혼자이다. 그러나 다른 존재와 관계할 기회를 갖고 있다. 

 

3) 전제 2 : 자유와 책임
  우리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우므로 삶을 이끌어 갈 책임을 수락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이 사실을 피하려 할 것이다. 사르트르(1971)가 말했듯이 우리는 끊임없이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며, 실존한다는 것은 이같은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을 "관여"(commitment)라고 했는데 실존적 죄의식은 관여를 회피하거나 선택하지 않아야 할 것을 선택한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택이다."(We are our choices)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에서 자유라는 것과 인간존재는 그 의미가 같다.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유롭도록 운명지워진 존재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애와 생활 그리고 실패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갖고 있다. 자유와 책임은 병행한다.이런 관념을 언급하면서 러셀(1978)은 책임의  정의는" 작자"의 개념을 포함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과 삶의 상황과 문제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삶의 제작자이다. 다른 삼을 계속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수용하지 않는 내담자는 치료에서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책임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변화의 기본조건이다.(Yalom, 1980).


  프랭클(1978)도 역시 자유와 책임의 관련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the Statue of Liberty on the East Coast"는 "the Statue of Responsibility on the West Coast"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익살스럽게 시사하였다. 프랭클의 기본전제는 자유는 어떤 제한에 의해 묶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는 그런 제한에 저항한다. 궁극적으로 이들 조건은 우리의 결정에 달려있다.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다.

 

4) 전제 3 : 정체감의 추구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람은 그들의 고유성과 중심성을 유지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사람이나 자연과 관계를 갖고 싶어한다. 우리 각자는 자기를 발견하려 한다. 즉 자기의 정체감을 발견하려고 한다. 이것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며 용기가 필요한 과정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주어야 하며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많은 실존작가들이 고독, 뿌리가 뽑혀 나간 것같은 허탈감, 소외 등을 논의하는데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이나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한 결과이다. 이런 실패는 산업화와 도시화 사회에서 개인에게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으며 고독에서 도피하려는 절망적인 몸부림으로 개인은 고독한 군중 속에서 타자지향적인 사람이 되어 간다(Riesman, Reuel & Glazer, 1950). 내적 공허감과 텅빈 느낌, 존재에 대한 자기인식의 결여의 결과로 개인은 익명의 군중 속으로 자신을 가라앉히려고 한다.
  

 우리의 대부분이 겪는 고통은 외계의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지시와 대답과 가치, 신념을 추구하는 데 있다. 우리 내부에서 스스로 자신을 찾으려는 믿음이나 삶의 길에서 대답을 찾으려는 믿음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됨으로서 우리를 팔아버린다. 우리의 존재는 그들의 존재에 뿌리를 두게 되므로 우리는 더욱 자신에게 낯설게된다.

 

(1) 존재하고자 하는 용기
  우리의 존재의 핵심을 발견하거나 내면으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Tillich, 1952). 우리는 존재의 내부 깊숙이 있는 핵심을 발견하고 창조하고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내담자의 가장 큰 두려움은 그가 자신에게 핵심이 없고 자기가 없으며 실체감이 없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그대하는 것을 반영하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내담자는 "내 두려움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고 내게는 정말 아무것도 없으며 자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나는 빈 조개껍데기, 내부가 텅빈 공허, 그리고 만약 나의 가면을 벗긴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라고 말할 것이다.


  실존적 치료자들은 내담자들에게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의 총체에 불과하다고 느끼는지 또는 그저 단지 부모의 투사물이나 대체물로 느끼는지를 명확히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질문을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느끼는가? 이런 식으로 영원히 머물러야 될 운명인가? 출구가 있는가? 그들은 만약 자신이 진정한 자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자기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어디로 갈 수 있는가? 일단 내담자가 이 두려움을 인식할 용기를 보이면 그것을 언어화하고 치료자와 공유하려고 한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바깥에서 살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중심으로부터 길을 탐색하도록 이끄는 것이 치료의 시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 외로움의 경험
  실존철학자들은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은 인간존재의 한 부분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자신을 들여다 보고 고독감과 분리감을 느껴 보는 경험에서 힘을 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분리의 감각은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의존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 할 때 생겨난다. 즉 혼자서 자신의 삶에 의미감을 부여해야 하며 어떻게 상아야 하는 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혼자일 때 스스로 견뎌낼 수 없다면 어떻게 타인들에게 친구가 되어 누군가를 풍요롭게 해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과 어떤 견고한 관계를 갖기 전에 먼저 자신과 견고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곁에 서기 전에 먼저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홀로인 동시에 다른 사람과도 관계되어 있다는 명제는 본질적으로 역설이다. 우리가 인간조건을 고칠 수 있다든가 그것이 고쳐져야 한다든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혼자이다.

 

(3) 관계의 경험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지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세계에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하며 다른 사람의 존재가 우리의 세계에 중요하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혼자 설 수 있을 때, 자신의 힘으로 깊숙이 침잠할 수 있을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우리의 내부에 자리를 잡으며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개인적으로 박탈감을 느낀다면 다른 사람에게 매달리는 기생적이며 공생적인 관계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치료의 기능의 하나는 내담자가 다른 사람에게 신경증적이고 의존적인 애착과, 치료자와 내담자 양쪽 모두가 고양되는 치료관계와를 구별하도록 돕는 것이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그들의 관계에서 무엇을 얻는지, 친숙한 접촉을 어떻게 회피하는지, 동등한 관계를 어떻게 방해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치료적이고 건강하며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는지 검토하도록 내담자에게 촉구할 수 있다.

 

5) 전제 4 : 의미의 추구
  인간의 특성 중 가장 뚜렷한 것의 하나는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삶의 목적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의미와 개인적 주체성을 추구한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치료자와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갈등은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내가 나의 인생에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인생에 의미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에서 의미의 근원은 무엇인가?"와 같은 실존적 문제로 집약될 것이다.


  실존치료는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내담자가 자신의 인생의 의미에 도전하도록 돕는 개념적 체계를 제공할 수 있다. "당신의 삶의 방향을 좋아하는가? 현재의 당신과 형성되어 가고 있는 당신에 대해 만족하는가? 이상적 자아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가? 만약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혼동하고 있다면 분명한 해답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1) 인습적인 가치관을 버리는 문제
  치료상의 문제들 중의 하나는 대체시킬 다른 절절한 가치관을 발견하지 못한 채 전통적인 가치관, 자기에게 부과된 가치관을 버리는 것이다. 내담자가 실제로 도전받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내면화 할 수 도 없었던 가치관을 버리고 이제 공허해 한다면 치료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담자는 자신을 "키"없는 배와 같다고 느끼면서 자신의 새로운 측면에 적합한 새로운 지침과 가치관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당분간은 그것들 없이 지내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 치료과정에서의 과업은 아마도 내담자의 존재방식과 일치하는 생활방식에 기초한 가치체계를 창조하도록 내담자를 돕는 데 있을 것이다.


  치료자의 역할은 의미있는 삶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가치체계를 내담자 스스로 그의 내부에서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내담자는 확실한 가치관이 없기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며 불안스러워할 것이다. 내담자에 대한 치료자의 신뢰는 새로운 가치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내담자가 갖고 있다고 내담자 스스로 확신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2) 무의미성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면 내담자는 어려운 투쟁을 계속하는 것이 가치있는지 심지어는 사는 일이 가치있는지까지도 회의하게 된다. 죽음에 직면할 때 우리는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걸까, 결국 죽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일단 내가 죽으면서 내가 한 모든 것들은 잊혀질 것이 아닌가? 죽음이  확실히 주어졌다면 왜 나는 하찮은 일들로 바빠야 하는가?"와 같이 스스로 묻는다. 우리 집단 중의 한 남자는 인간 개인의 존엄성을 간명하게 파악하고 있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내 자신이 마치 급히 넘겨진 책 속의 한 페이지 같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아무도 그 페이지를 힘들여 읽으려 하지 않았어요."그런 무의미성을 프랭클(1978)은 현대의 삶에 잇는 실존적 신경증이라고 보았다.

 

(3)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기
  로고테라피는 시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을 도와주도록 고안되었다. 삶의 의미성에 도전하다는 것은 인간존재의 표지이다. "의미에의 의지"(the will to meaning)는 개인의 기본적인 추구이다. 삶이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의미를 발견하고 창조하여야 한다.(Frankle, 1978). 우리 자신의 의미를 창조하는 과제는 삶이 게속되는 한 결코 끝낼 수 없다.


  치료자의 기능은 내담자에게 그들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고난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 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Frankle, 1978). 이 견해는 실존주의 철학은 염세적 경향을 지니지 않았으며 고난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개인이 취하는 자세에 따라 삶의 고난(삶의 비극적이며 부정적인 측면)은 성취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프랭클은 인간은 고통, 죄의식, 저망, 죽음에 직면할 수 있으며 일단 그것에 직면하면 그 절망에 도전하여 승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의미란 우리가 직접 찾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성적으로 그것을 찾으면 찾을수록 우리는 더욱 그것을 잃는다. 얄롬(1980)과 프랭클은 쾌락처럼 의미도 완곡하게 추구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참여"(engagement)의 부산물인데 그 참여란 창조하고 사랑하고 일하며 삶을 정립해 가는 것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6) 전제 5 : 삶의 조건으로서의 불안
  생존하고 유지하며 자신을 주장하기 위한 개인적 열망이 일어날 때 우리는 인간조건의 필수적 부분으로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 실존치료자들은 정상적 불안과 신경증적 불안을 구분하는데 그들은 불안을 성장의 잠재적 근원으로 본다. 정상적 불안은 직면한 사건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다. 나아가 이런 종류의 불안은 억압되어서는 안되며 변화의 동기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보통 의식되지 않으며 개인을 활성화시켜 준다. 왜냐하면 우리는 불안이 전혀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 불안을 제거하는 것은 치료과제가 아니다. 불안이 없다면 삶은 영위될 수 없으며 죽음 또한 직면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정상적 불안, 실존적 불안의 구조적 형태는 우리가 점차 자유를 인식해가고 그 자유를 선택하거나 거부했을 때 생기는 결과를 인식해 가는 것 같은 인간 성장을 위한 자극제가 된다. 사실 우리가 자신을 재구성하겠다는 결정을 하면, 이때 수반되는 불안은 변화의 준비가 되었다는 지표이다 그 신호는 건설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런 신호의 미묘한 내용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감히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상담을 원하는 내담자의 대다수는 불안을 근절시킬 해결첵을 원한다. 환상을 만들어 불안에서 도피해 보려고 하지만 우리가 환상을 만들어 불안에서 도피해 보려고 하지만 우리가 확고한 안전성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삶을 구축함으로써 불안을 줄이고 선택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를 연다는 것은 불안이 열리는 것을 의미하며 간헐적 불안에 과도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자신에 직면하려는 용기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당황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불안을 기꺼이 가지려는 사람은 개인치료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확신한다. 너무 빨리 편안해지려는 사람은 잠시의 휴식을 가질 수는 있지만 결국은 옛날 방식에 고착되어 좌절을 경험한다.


  메이(1981)에 의하면 자유와 불안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불안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 수반되는 흥분과 비슷한다. 그래서 우리는 잘 아는 영역에서 나와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갈 때 불안을 느낀다. 불안에서 도피하기 위해 우리 대부분은 미지의 세계로의 도약을 회피한다. 메이는 이것을 " 우리는 모험을 하지 않으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즉 자유를 묶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이 의식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불안 때문에 그들의 영감을 잠가 버리기 때문에 가장 창조적인 생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고 표현하였다.(1981). 

 

7) 전제 6 : 죽음과 무에 대한 인식
  실존주의자들은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인간조건으로서 삶에 의미를 주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인간존재의 특성은 미래의 실재성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파악하는 능력에 있다. 만약 삶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실재에 대항해 방어한다면 삶은 어리석고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우리의 과제를 완성하는 데 영원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 아니므로 따라서 현재의 순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삶에 향기와 맛과 창조성을 제공하는 근원이 된다. 죽음과 삶은 상호의존적이며 비록 육체적 죽음이 우리를 파괴한다 하더라도 죽음의 관념은 우리를 구제한다.(Yalom, 1980)


  죽음에 대한 인식은 심리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기가 없는 삶의 유형을 보다 신뢰로운 삶으로 옮겨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Yalom,1980). 그래서 실존치료에서는 내담자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정도를 탐색하는 데 중점을 둔다. 죽음이 주는 과거와 현재의 위협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지면 죽음에 대한 인식을 할 때 자신이 어떻게 잘 살았으며 삶에서 무엇을 변화시키고 싶어했는지를 평가해보는 건강한 감각으로 무를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두려움은 상호관련적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두팔을 벌려 삶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불안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나 만일 가능한 한 최대로 현재의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한다면 삶의 종말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삶도 두려워한다. 결코 참된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직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무로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무와 직면하는 데서 도피하려고 하면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메이는 이것을 "죽음을 부정하는 데 대해 치루어야 하는 대가는 막연한 불안과 자기소외이다."라고 말하였다.(May, 19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