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치료의 과정 

1)치료목표
  치료체계의 기본목표는 개인으로 하여금 자유가 두렵다는 것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수용하고 행동하게 돕는 것이다. 실존치료는 인간은 자유로부터 도피 할 수 없으며 그 자유는 책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실존치료는 엄격한 생활궤도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자유를 막아 버리는 편협하고 충동적인 성향에 도전하도록 한다. 비록 이 과정은 개인에에게 해방감과 자발성을 주지만 새로운 자유는 불안을 야기한다. 자유는 새로운 길로 가는 모험이며 거기에는 우리를 안내할 어떤 확실성도 없다. 이런 "현기증"(dizziness)과 자유에 대한 공포는 성장하려면 반드시 직면해야 한다.(May, 1981). 자신이 현재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사람은 두려움을 지닌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친근한 것에 매달려야 하는지 아니면 확실하지 않은 보다 도전적인 삶을 열기 위한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선택을 해야 한다. 삶에는 아무런 보증이 없다는 것에서 불안이 야기된다. 그래서 실존치료는 내담자가 자신은 단지 외계의 어떤 결정적인 힘의 희생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수용하고 선탱에 따른 불안을 수용하도록 돕는 데 그 목적을 둔다.


  메이에 의하면 내담자들은 내적으로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치료자)가 자유롭게 해주기를 기대하는 자기봉사적(self-serving)인 환상을 갖고 치료를 받으러 온다고한다. 그래서 그는 "심리치료의 목적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내담자의 '치료'에 있지 않으며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삶에서의 그런 희생적 역할 속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자각하도옥 돕는 데 있다."(1981)고 기술하고 있다. 러셀은 이것을 "치료를 통해 사람들은 전에 손해를 입고 고통을 당했던 사건에 책임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책임을 수용하게 된다. 치료과정은 개인으로 하여금 전에 '우연히 일어났던'( happening)것으로 간주하던 것을 자신이 스스로 '행한 것으로서'(as doing)자각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표현하였다.

  다음의 편지는 나의 옛날 내담자가 쓴 것으로 그녀의 동의를 얻어 여기에 실었다. 그녀의 글은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끌어 나가기 위해 매일매일 결심을 하면서 느꼈던 인식, 자유, 책임 그리고 불안과의 싸움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때때로 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실제의 나와 내가 느끼는 나라는 존재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서로 투쟁하는 것을 느낀다. 감정은 지금까지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과 미움을 느낀다는 것은 매우 새롭고 두려운 일이다.나는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러워하지만 다음 순간 그들이 떠나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비일관성과 의존성-독립성의 싸움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나는 가끔 정상적으로 죽었던 과거상태로 남았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때 내가 완전히 살아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늘 한 남자가 나를 포옹하였는데 잠시동안 매우 포근하고 마음이 놓이는 걸 느꼈다. 나는 그런 느낌을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한다. 그것은 나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신뢰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아마 어떤 관계에서든 항상 위험스런 요소가 수반되기 때문일 것이고 나는 것을 수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고통과 좌절을 모두 이겨낼 수 있을지,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가끔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느끼고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만약 내가 상담을 받지 않았더라면 만약 지금같이 자아통찰을 할 수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해 보려고 노력한다. 또는 만약 내가 마술을 써서 불안을 덜 느꼈던 정서적인 성장의 초기단계로 되돌아 간다면 그래서 거기 머무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도 상상해 본다. 그때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아름다움도 못느끼고 성취감도 없었으며 마음의 평화도 몰랐으나 그때가 더 안전한 것 같았다고 느꼈다. 그때는 내가 지금 처해 있는 것 같은 곤경도 없었고 단순하고 도전이 별로 없었던 안전한 세월이었다. 그러나 만일 마술로써 되돌아 갈 능력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결코 되돌아 가지 않을 것이다. 요즘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껏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기 때문에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겠다.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그러나 아직도 때때로 이 모든 고통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느끼기도 한다.

 

2) 치료자의 기능과 역할
  실존치료자들은 원래 내담자가 새로운 이해와 선택을 하도록 돕기 위해 내담자의 주관적인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내담자의 현재 상황에 중점을 두며 과거를 회상시키는 데 중점을 두지 않는다(May & Yalom,1984). 전형적으로 실존치료자들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한 내담자에게서 다른 내담자에게로 변화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한 내담자를 치료과정의 다른 국면에 처하도록 하게도 한다. 한편으로는 체계적 둔감법, 자유연상, 인지 재구조화의 기법을 쓰기도 하고 다른 학파의 치료자들에게서 통찰을 끌어내기도 한다.(Fischer & Fischer, 1983).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실존치료자들은 엄격하고 상식적이며 조작적이라고 생각하며 기법을 혐오한다. 치료과정에서 기법은 치료자로하여금 내담자를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도전하게 하는 치료관계를 형성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

 

 실존치료자들은 특히 내담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데 대해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내담자가 책임을 수용하도록 조언한다. 가령 내담자가 "나는 할 수 없어요."라고 하면 그들은 내담자의 말을 "나는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대치하도록 권한다. 만약 내담자가 궁지에 빠져 다른 사람을 비난하면 치료자는 내담자가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는지를 묻는다. 이런 관점에서 얄롬(1980)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자신이 처한 곤경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 결정하게 한다. 그리고 내담자에게 이런 통찰을 이야기해 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내담자 스스로 곤란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변화의 계기는 있을 수 없다".


  실존치료자들은 소위 "제한된 실존"(restricted existence)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상대한다. 이런 상담자들은 자신에 대해 제한된 인식을 하며 때로는 문제의 본질도 잘 모른다. 만일 삶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면 그들은 함정에 빠진 느낌을 갖거나 무기력해 한다. 이런 경우 치료자의 주요 임무는 내담자로 하여금 제한된 실존의 현장에 직면하도록 하며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자신들이었다는 것을 자각하도록 돕는 것이다.말하자면 치료자는 내담자가 점차적으로 자기직면을 하도록 거울을 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내담자는 자신이 지금껏 어떻게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의 삶을 확장시킬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요인들과 현재의 숨막히는 생활유형을 인식함으로써 내담자는 자신이 지금껏 어떻게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의 삶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요인들과 현재의 숨막히는 생활유형을 인식함으로써 내담자는 자신의 미래를 바꾸는 책임을 수용하게 된다. 치료과정에서 실존치료자가 실제로 해야 하는 치료의 예로서 다시 나의 옛 내담자의 편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만약 내담자가 치료기간 중에 자기의 느낌을 표현한다면 치료자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내담자가 말하는 것과 관련해서 그의 반응을 공유한다.


·내담자의 경험에 유사한 적절하고 타당한 경험을 드러내도록 돕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택해야 하는 그녀의 고뇌를 표현하도록 한다.


·그녀가 결정을 회패해 온 방법들을 직면하게 하고 이런 회피에 대해 판단하도록 촉구한다.


·그녀에게 "만일 당신이 기억하는 치료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신통한 길이 있다면 지금 되돌아 가기를 원하는가?"라고 질문하여 치료 전의 당시의 생활과정을 점검하도록 격려한다.

 

·그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존재의 특질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임을 함께 공유한다. 즉 그는 혼자이며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고 자신의 결정에 확신이 없는 것에 대해 불안해해야 하며 그리고 때로 무의미하게 보이는 세계에서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지금 배우고 있다는 것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3) 치료에서의 내담자의 경험
  실존치료에서의 내담자는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의 세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격려받는다. 그들의 세계에서 어떻게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였는지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효율적인 치료는 이런 인식을 머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치료자는 내담자가 치료과정을 통해 이런 통찰에 기초해서 행동하도록 격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자신의 세계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다르게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나아가 그들은 치료과정에서 적극적이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두려움, 죄의식, 불안을 어떻게 탐색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심리치료만 받으려는 경우도 앞의 기록에서와 같이 그 자체가 때로는 두려울 수 있다. 내담자가 안일함을 떠나 자신을 탐색하기 시작했을 때 경험하게 될 불안감을 잠작해 보자.

 

 나는 오늘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이 두려운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나는 무엇보다 제리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는 나를 변화시킬 힘을 같고 있다. 내가 그에게 그런 힘을 주었으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나를 당황케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는 아직 나 자신을 모르며 단지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만 안다. 나는 이것이 슬프고 겁이 난다. 나는 나의 삶으로부터 안전한 영역을 폐기시켰으며 장차 어떻게 되어갈지 두렵다.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없는 것이 슬프다. 나는 자신에게 솔직해졌고 내 속에서 새로운 나와 싸우고 있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또한 사람들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다르게 관계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모든 것에 불안을 느끼며 특히 나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요컨대 실존치료에서는 내담자는 자신을 개방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데 이런 경험은 때로 두렵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며 즐겁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한 경험이며 또한 이 모든 느낌들의 혼합이기도 한다. 내담자가 잠긴 문을 힘겹게 열 때 그는 자신을 심리적으로 묶고 있던 결정론의 사슬을 풀기 시작하게 된다. 점차로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은 어떤 사람인지를 자각하게 되며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장래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치료과정을 통해 그들의 비전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내담자가 자신의 무기력을 호소해 올 때 또는 힘이 없음을 확신하려 할 때 메이(1981)는 자유를 향한 그들의 여행은 한 발을 그의 도착점에 이르는 다른 앞면에 놓고 시작할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질수록 그들은 기본적인 보폭을 취함으로써 자신이 가야 할 영역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실존치료에서 내담자가 경험하는 또 다른 것은 당면한 문제에 대처하는 것보다는 궁극적인 관심사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메이는 "출생, 죽음, 사랑, 불안, 죄의식 등과 같은 주요 경험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직면되고 인식되어야 할 패러독스(역설)이다. 그래서 치료에서 우리는 삶의 이런 역설이 나타내는 의미를 분명히 하는 방법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조언해야 한다"(1981)라고 기술하였다. 치료기간 동안의 주요 주제는 불안, 자유, 책임, 고립, 소외, 죽음 등과 그것들이 삶에 주는 의미 그리고 의를 향한 끊임없는 추구 등이다.

 

4) 치료자와 내담자 간의 관계
  실존치료자들은 내담자와의 관계에 치료의 중심을 둔다. 관계는 그 자체로 중요한데 그것이 전이를 촉진하기 때문은 아니다. 치료상황에서의 이런 인간 대 인간의 질(quality)은 긍정적 변화의 자극제가 된다. 치료자는 내담자쪽으로 향해 있어야 하며 내담자를 솔직하고 통합적이며 용기있는 존재로 지각해야 한다. 치료관계는 함께 하는 여행이다. 부버(1970)의 "나/당신"관계의 개념은 여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내담자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공감의 과정을 통해 치료자는 치료관계를 깊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내담자의 반응을 공유한다.


  피셔와 피셔(1983)에 의하면 치료관계의 핵심은 존중(respect)이다. 실존치료에서 존중이란 내담자가 그들의 문제를 자발적으로 처리할 능력을 갖고 있으며 선택 가능한 대안을 탐색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어떻게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 왔는지 어떻게 제한된 실존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치료자와의 관계를 통해 내담자는 그들이 가져야 할 자유를 직면하고 선택할 능력을 갖게 된다.


  치료상의 관계를 서술하면서 죠라드(Jourard, 1971)는 내담자가 진지하고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행동을 통해 진실된 삶을 살도록 인도할 수 있는 치료자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또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나와 너의 관계를 형서하도록 도와야 하며 그런 관계에서 치료자의 자발적인 자기노출은 내담자의 성장과 진실성을 키워 준다고 보았다. 그는 "조작은 역조작을 낳고 자기노출은 또 다른 자기노출을 생기게 한다."고 하였으며 치료관계는 내담자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치료자도 변화시킨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자신의 존재와 성장을 시도하지 않은 채 버려두는 사람은 치료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역설하였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자발적인 행동을 조형하도록 돕는다. 관계가 적절하면 이것은 더욱 명료해질 수 있으며 치료자의 인간됨은 내담자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자극이 된다. 그는 만약 치료자가 치료기간 중에 자신을 숨기거나 또는 내담자에게서 야기된 증상과 같은 비자발적인 행동에 참여하면 내담자는 자신을 방어하고 비자발적인 행동방식을 고집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치료자는 적절한 때에 자신을 적절히 개방시킴으로써 내담자가 이방인이 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내담자의 떠도는 모든 느낌이나 생각을 제어하지 않고 다 수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끊임없이 내담자의 반응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의미하며 특히 이런 공유가 촉진적인 효과를 가져올 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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