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4세 [ Henry IV , 1366~1413.3.20 ]

 

랭커스터왕가의 시조. 랭커스터공(公) 존 오브 곤트의 맏아들. 에드워드 3세의 손자. 청년시절에 사촌형인 당시의 국왕 리처드 2세에 반항하는 귀족일당에 가담하였으나 뒤에 왕과 화해하고, 1397년 헤리퍼드 공작에 봉작되었다. 그 동안 대륙의 독일기사단의 군대에 참가하여 기사도적 행위에 열중하였으며, 1398년 대역(大逆)을 저지른 혐의로 프랑스에 추방되었다. 이듬해 아버지가 죽자 리처드 2세가 랭커스터 공령(公領)을 몰수하였기 때문에 급히 귀국하여 거병(擧兵), 왕군을 무찌르고 리처드 2세를 체포, 퇴위시킨 뒤 의회의 추대를 받아 즉위하였다.

 

그의 치세는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스코틀랜드와의 전쟁, 대내적으로는 웨일스의 반란, 이단(異端) 롤라드파의 봉기 등의 진압에 분망하였고, 많은 어려움과 맞서야 했다. 그러나 의회를 존중하여 어려움을 잘 극복함으로써 의회 발달사상 주목할 만한 획기적인 시기를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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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1597년에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역사극이다. 각각 5막으로 된 두 부분 중 첫번째 부분은 1597년에 초연되어 1598년에 출판되었다. 1398년에서 1422년 사이의 역사를 다룬 랭커스터 4부작의 중심을 이루며 《리차드 2세》와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절정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특히 인물과 장소, 풍부한 언어 표현형식 등의 면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작품에서 헨리 4세는 주인공이 아니며 주인공은 오히려 아들인 왕자 할(Hal)이다. 이상적이고 민중과 친숙한 지배자로서 뒤에 헨리 5세가 되는 왕자 할은 이 작품의 중심 테마를 이룬다. 헨리 4세는 1399년 합법적이지만 무능한 지배자 리처드 2세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그를 살해한다. 이 사건은 성공한 반란으로서 합법화되지만 세익스피어의 역사극과 튜더왕조의 역사에는 왕위 찬탈로 기록된다.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은 당시 영국 국민들의 역사책으로 사용되었고 동시에 반란을 일으켜 신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한편 팔스태프(Falstaff)라는 인물은 인물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전통이 결합된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그리스희극과 코메디아 델 아르테의 허풍장이 군인과 중세 도덕극의 유혹자 모습을 닮았는데, 팔스태프라는 인물과 분위기를 통해 《헨리 4세》는 희극적인 면과 사실적인 면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왕자 할의 영혼에 들어 있는 희극적이고 악마적인 성격과 영웅적인 덕성이 서로 투쟁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즉 할 왕자는 1부 첫부분의 독백을 통해 술주정뱅이와 도둑들의 세계와 거리를 두지만, 다른 한편으로 궁정세계의 의례와 정치적인 간계, 군인의 획일적인 덕성으로 자신의 세계를 가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할 왕자는 자신의 위치가 법과 질서 내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지배자가 되려면 사적인 삶의 형태를 더 이상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지만, 민중들 틈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귀족의 지배자가 아니라 민중의 지배자임을 인식하게 된다.

 

《헨리 4세》의 두 부분이 갖고 있는 내적인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오늘날의 셰익스피어 연구에서는 1부의 사건이 2부에서도 연결되어 진행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전체적인 주제와 구조상 두 부분이 처음부터 하나로 구성된 것으로 본다.

 

 

 

 

헨리 5세 [ Henry V , 1387.9~1422.8.31 ]

 

랭커스터왕가 출신. 헨리 4세의 맏아들. 1400∼1408년 웨일스의 반란을 토벌하고, 부왕(父王)의 만년에는 그를 대신하여 정무(政務)를 보았다. 치세 초기에는 롤라드파의 봉기(1414), 요크의 리처드 음모(1415) 등으로 위협을 받았으나 가차없이 진압하였다.

 

선왕시대 내치(內治)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외정(外征)으로 민심을 돌리려고 다년간 휴전 중인 백년전쟁을 재개, 1415년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프랑스에 상륙, 아쟁쿠르전투에서 대승하였다(1415). 1419년 루앙을 점령하고 파리에 육박, 1420년에는 트루아조약으로 프랑스왕 샤를 6세의 딸 카트린을 왕비로 맞아들이는 조건으로,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게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다수 귀족들은 이 조약을 인정하지 않고 반항을 계속함으로써 전쟁은 계속되었으며, 그는 남프랑스 뱅센의 진중에서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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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5막극으로 1599년에 초연되었다. 《리차드 2세》 《헨리 4세》와 이른바 랭커스터 4부작(Lancaster-Tetralogie)에 속하며 《요한 8세》 《헨리 8세》 등의 요크 4부작(York-Tetralogie)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을 대표한다. 랭커스터왕가와 요크왕가의 장미전쟁(Rosenkrieg) 시기를 그렸다.

 

헨리 5세는 경제적인 이유를 내세운 신하들의 권유에 의해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하고 직접 전쟁을 지휘한다. 헨리 5세는 아쟁쿠르(Azincourt) 전투에서 승리하여 프랑스 왕 샤를 6세의 딸 카트린과 결혼을 하고 평화를 맺는다.

 

이 작품의 특징으로는 에피스드적 구조와 합창단을 사용하여 통일성을 부여한 점을 들 수 있다. 각 장면에서 헨리 5세는 여러 상이한 기능, 즉 다양한 성격적 특징을 보여 준다. 정의감과 엄격함, 의무감, 개인적인 관심과 인간관계를 판단하는 정치가적 능력, 탁월한 전쟁 수행능력 등이 그것인데, 셰익스피어는 오랫동안 헨리 5세를 이상적인 군주상으로 여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미전쟁의 분쟁은 죄와 벌이라는 순환구조의 예로 사용된다. 이 순환구조의 첫 부분은 헨리 5세의 아버지인 헨리 4세에 의한 리차드 2세의 폐위로 시작된다. 헨리 5세의 즉위 시기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운명적인 복수가 수행되는 시기이다. 이는 헨리 5세의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덕성에 의해 비롯되며, 합창단은 왕의 덕성을 찬미하고 사건을 찬미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그린 헨리 5세는 보다 세심하며 주인공과 전쟁을 평가하는데 여러 상이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합창단이 찬미하는 왕의 모습과는 반대로 헨리 5세는 오히려 부정적이고 폭군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왕의 이상적인 성격은 줄거리가 전개되고 부수적 인물과 비교되면서 아이러니컬하게 상대화된다. 즉 군인들이 나누는 밤의 대화에서는 왕의 권위조차도 의심을 받고, 카트린과 헨리 5세의 결혼을 통한 영국과 프랑스와의 평화적 합일은 헨리 6세의 섭정기에 대한 언급(영국이 백년전쟁에서 패한 내용)으로 평가절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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