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의 구성은 단순하다. 일반적으로 단테 자신으로 추정되는 한 인간이 기적적으로 저승세계로 여행 할 수 있게 되어 지옥·연옥·천국에 사는 영혼들을 찾아가게 된다. 그에게는 안내자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지옥'과 '연옥'을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이고 또 하나는 '천국'을 소개하는 베아트리체이다. 1300년 부활제인 성(聖)금요일 저녁부터 부활절(일요일)을 약간 넘긴 시간에 일어난 이 허구의 만남을 통하여 단테는 추방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물론 실제로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그는 이미 추방된 몸이었음). 이런 식의 구상을 통해 단테는 망명 중에 겪게 될 이야기를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자신의 재난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를 설명하고 이탈리아가 처한 난관의 해결책까지도 제시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 개인의 유랑은 한 나라의 제반문제를 포괄하는 소(小)우주가 되면서 아울러 인간의 타락상을 나타내게 된다. 단테의 이야기는 이처럼 역사적 특수성과 전형성을 지닌다. 〈신곡〉의 구조를 이루는 기본 구성 요소는 곡(曲 canto)이다. 이 시는 100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크게 〈지옥편〉·〈연옥편〉·〈천국편〉의 3편으로 나뉘어져 기법상 각 부마다 33개의 곡이 있다. 그러나 〈지옥편〉에는 시 전체의 서문 역할을 하는 곡이 하나 더 있다. 대부분의 곡은 136~151행 정도의 길이이며, 시의 운율체계는 3운구법(韻句法:aba bcb cdc 등)이다. 이처럼 이 시기에는 신성한 숫자인 3이라는 숫자가 이 작품의 어디서나 나타난다.
 
단테의 〈지옥편〉은 위치상으로나 목적상으로 볼 때 그보다 앞선 위대한 고전들과는 다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Odyssey〉(7권)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Aeneid〉(6권)에서는 저승세계의 방문이 이 중간에 나온다. 왜냐하면 이 책의 중간 부분에서 인생의 본질적인 가치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테는 전통을 따르되 실제로는 저승세계를 방문하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하게 함으로써 전통을 변형시켰다. 그 이유는 그의 시의 정신적 유형이 고전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이기 때문이다. 단테의 지옥으로의 여행은 세상을 떠나는 영혼의 행동을 나타내며, 또한 이것은 우연히도 그리스도 자신이 죽은 계절과 일치하고 있다(이런 점에서 단테의 방법은, 찬란하나 결함있는 반역 천사장 루시퍼를 비롯하여 그의 타락한 천사들이 맨 먼저 모습을 나타내는 밀턴의 〈실락원 Paradise Lost)과 유사함). 〈지옥편〉은 잘못된 출발을 나타내는데, 이곳에서 주인공 단테는 타락한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데 다소 방해가 되었던 해로운 가치들을 깨달았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지옥편〉의 복귀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단테가 지옥에 떨어진 망자들의 명부를 보는 것이 이 시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았던 중립자들, 지체 높은 이단자들,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필리포 아르젠티, 파리나타 델리 우베르티, 피에로 델레 비녜, 브루네토 라티니, 성직 매매 교황들, 오디세우스, 우골리노 등은 엄청난 힘으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지옥의 방문은, 베르길리우스와 후에 베아트리체가 설명하듯이, 진정한 회개를 시작할 수 있기 전에 거쳐야 할 극단적인 방법, 즉 고통스럽지만 꼭 겪어야만 할 일이다. 이것은 〈지옥편〉이 미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왜 불완전한지를 설명해 준다. 예를 들어 독자들은 흔히 34곡에서 마지막으로 사탄과 만나는 장면이 극적 혹은 감정적 힘이 부족하여 실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옥으로의 여행은 주로 이별의 과정을 의미하며 따라서 더욱 완전한 발전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독특한 반(反)클라이맥스로 끝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면에서 그런 끝맺음이 불가피한 이유는 사탄의 마지막 등장이 어떤 새로운 것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사탄이 인간 역사에 존재함으로써 생긴 슬픈 결과들은 이미 지옥을 통과하면서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연옥편〉에서는 주인공의 영혼이 갱생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시작된다. 사실상 이 부분의 여행을 이 시가 제시하는 진실한 도덕적 출발점으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순례자 단테는 연옥으로 올라가기 위하여 자신의 개성을 억누른다. 단테가 물리칠 필요가 있는 본보기들과 대면하게 되는 〈지옥편〉과는 대조적으로 〈연옥편〉에서는 본보기로 나타나는 인물이 거의 없다. 회개자들 모두가 인생의 길을 따라 순례하는 순례자들이다. 단테는 소외된 관찰자로서 공포감을 느끼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가담한다. 〈지옥편〉에서 본의 아닌 소외감에 대한 시가(詩歌)로서 거기서 단테가 자신이 예전 주장했던 것이 얼마나 유해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면 〈연옥편〉에서는 이상적인 그리스도교적 심상의 생활을 순례행각과 가장 어울리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당당한 모습으로 지상의 낙원에 다시 찾아 베아트리체가 단테에게 현세의 기만적인 약속들을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함을 상기시켜 준다.
 
엄격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연옥은 영혼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는 곳으로 좀더 넓은 시각으로 즐길수 있다. 〈지옥편〉(7곡)에서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에 관한 토론이 나오는 한 곡(曲)에서만 철학을 암시하지만, 〈연옥편〉에서는 역사·정치·도덕 분야의 모든 관점들이 개방되어 있다. 더욱이 〈연옥편〉은 시와 예술의 곡(曲)이기도 하다. 단테가 황량한 지옥세계를 지난 뒤에 "여기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시가 되살아나리니"하고 외쳤을 때 그것은 글자 그대로의 진의(眞意)였다. 지옥에 배정된 시인은 하나뿐이며 천국에 마땅한 시인은 둘을 넘지 않지만, 연옥에서는 독자들이 음악가 카셀라와 벨라쿠아, 시인 소르델로를 만나고 2명의 구이도, 즉 구이니첼리와 카발칸티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화가 치마부에와 조토를 비롯하여 여러 세밀화가들의 이야기도 듣게 된다. 연옥의 상단부분에서 독자들은 단테가 그의 고전적 전통을 재건하는 모습을 보게 되며, 다음으로 그가 포레세 도나티를 만났을 때 고전적 전통보다 더 고양된, 조국의 위대한 전통에 훨씬 가까이 가게 된다. 보나준타 다 루카와 만나면서 '청신체'의 진정한 원천에 관한 설명을 듣고, 구이도 구이니첼리를 만나서는 기교라든가 시적 제어력 등의 부분에서 그가 당시 세력을 떨치던 지방 시인 구이토네 다레초를 어떻게 능가했는지를 듣는다. 이 곡(曲)들은 〈지옥편〉(4곡)에 나타난 생각, 즉 단테가 지체높은 이단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서사시에 관한 계획을 알려주며 자기의 위치가 고전작가들과 나란히 "6번째"에 속함을 다시 알리는 내용이다. 〈연옥편〉에서 단테는 그 전통을 확장하여 스타티우스(그의 〈테바이드 Thebaid〉는 사실 지옥 밑바닥에 있는 더 음산한 현상들을 제공함)까지 포함시키지만 또한 그의 더 근대적인 전통이 구이니첼리에게서 시작된 것임을 보여준다. 구이니첼리와 만난 다음 단테는 바로 지상 낙원에서 오래도록 기다린 베아트리체와 재회하게 된다. 이와 같이 단테는 고전에서 그의 도덕적·정치적 이해뿐만 아니라 서사시의 개념, 즉 당대의 가장 중요한 쟁점들을 충분히 포함할 만큼 큰 범위를 지닌 이야기라는 개념을 끌어낸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그리스도교적 소재를 이루고 있는 사랑의 철학을 배운 것은 바로 조국의 전통에서였다.
 
이것은 물론 단테의 안내자인 베르길리우스가 다른 안내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극(劇)이 존재하지 않는 노래 속에서 베르길리우스를 거부함으로써 유일한 극적 사건이 이루어진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안내자로 등장시킨 것은 문학사상 가장 풍부한 문화적 전유(專有) 가운데 하나였다. 우선 단테의 시에서 베르길리우스는 고전적 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역사적 인물로서 〈지옥편〉(1곡)에서 이렇게 소개된다. "사람은 아니나 옛날엔 사람이었다. 나의 어버이는 둘다 만토바 출생의 롬바르디아 사람들이었고 나는 뒤늦게나마 율리오 치하에서 태어나 그릇되고 거짓투성이인 제신들의 로마에서 살았다." 더욱이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의 고향 (당대의 이탈리아 지역)과 연관이 있으며 그의 배경은 전부 로마제국이다(베르길리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시대에 태어나 아우구스티누스 대제를 찬양했음). 그는 시인으로 나타나며 그의 위대한 서사시의 주제는 단테의 시의 주제와 매우 비슷해 보인다. "나는 시인이었고 자랑스런 일리온이 타버린 뒤 트로이에서 온 안키세스의 정의로운 아들에 대해 노래했었다." 단테 역시 부당하게 쫓겨난 피렌체의 정의로운 아들을 노래했는데, 아이네아스가 더 나은 도시를 찾아야 했듯이 그의 경우는 천상의 도시를 찾아야 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가 주의깊게 연구한 시인이며 그로부터 얻어낸 시적 양식은 그 아름다움으로 단테에게 많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단테는 수년간 베르길리우스를 생각하지 않았으며 베르길리우스의 정신이 되돌아왔을 때는 오랫동안 침묵한 나머지 미약해보였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한 사람의 명문가를 넘어선 로마 제국의 시인이자 단테에게 대단히 중요한 주제이며 현자(saggio), 혹은 도덕적 스승이었다.
 
베르길리우스는 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긴 하나 신의 은총을 받은 특사로서, 그가 돌아온 것은 일찍이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믿음과 연결된 더 소박했던 신앙들이 소생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물론 베르길리우스 혼자로는 충분치 못했다. 그러나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거부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는 슬프게도 베르길리우스의 작품, 즉 그의 의식 어디에서도 역사의 지배 과정으로부터 개인적인 자유를 얻으려는 생각이 보이지 않음을 발견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추방객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도덕적 교훈을 베풀어주었으며, 그것이야말로 그 자신의 시의 주제이자 단테의 시의 주제였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역사의 과정에 대한 믿음을 고수했으며 로마제국에서 정점을 이루었던 역사의 과정은 그에게 깊은 위안이 되었다. 반면 단테는 역사를 초월하는 인물로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역사가 그에게는 악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천국편〉에서는 진정한 영웅적 실현이 이루어진다. 단테의 시는 죽음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거의 인물들을 묘사한다. 그들의 역사적 영향은 계속되어 그들의 모든 행위는 추종자들에게 경이감과 동화(同化)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고조부 카차구이다, 성 프란키스쿠스, 성 도미니쿠스, 성 베르나르두스 같은 인물들을 만나면서 단테는 자신을 승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천국편〉은 실현과 완성의 시이다. 그것은 앞의 2편에 이미 묘사되었던 것을 실현하고 있으며, 미학적으로는 기대와 회고로 이루어진 정교한 시체계를 완성하고 있다.
 
평가와 영향
 
단테의 〈신곡〉은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과 영예를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400년까지 이 작품이 지닌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 12개 이상의 주석이 나왔다. 조반니 보카치오는 이 시인의 일생에 대해 글을 쓴 뒤 1373~74년에 〈신곡〉에 관해 처음으로 공개강연을 했다(이것은 단테가 고대고전들과 함께 대학교과과정에서 채택된 첫번째 근대작가였음을 뜻함). 단테는 '시성'(詩聖 divino poeta)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1555년 베네치아에서 그의 위대한 시의 제목에 '성스러운'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인 훌륭한 책이 출판됨으로써 그의 시는 단순한 〈희극〉이 아닌 〈신곡〉이 되었다.
 
서사시가 호소력을 잃고 다른 예술 형식(주로 소설과 드라마)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때도 단테의 명성은 계속되었다. 사실 그의 위대한 시에서 독자들은 고전작품 특유의 힘을 즐길 수 있다. 후세대도 자신의 지적인 관심사가 단테의 시에 반영되어 있음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폴레옹의 시대에 이어 19세기에도 독자들은 〈지옥편〉에 등장하는, 힘세고 연민을 느끼게 하는 불운한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했고 20세기초의 독자들도 이 시가, 그 구조와 논지와는 무관하며 때로는 그것들과 대조를 이루기조차 하는 미학적인 언어표현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후대의 독자들은 이 시가 강한 건축물처럼 각각의 여러 부분들이 반영되고 조화되기도 하면서 잘 통합되어, 아주 복합적인 음향을 지닌 걸작임을 증명하는 데 열중했다. 단테는 생생한 묘사를 통해 뛰어난 전형들의 작품목록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예시(豫示)와 대응면에서 위대한 문장가적 재능을 갖춘 시를 창조했다. 더욱이 그는 중요한 정치적·철학적·신학적 주제들을 모두 조화시켜 작품을 쓰는 한편 도덕적 지혜와 고양된 윤리적 안목을 보여주기도 했다.
 
단테의 〈신곡〉은 650여 년 동안 인기를 누려온 시이다. 놀랍고도 상상력이 풍부한 착상이 주는 소박한 힘으로 끊임없이 여러 세대에 걸친 독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작품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구세계의 모든 고등교육에서 주요 교과목으로 쓰였으며 계속하여 현대에 와서도 중요한 시인들에게 지침이 되었고 자양분을 제공해주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단테를 "그리스도교적인 최고의 상상력"이라 불렀으며 T.S. 엘리엇은 "근대세계는 셰익스피어와 단테가 나눠 가졌다. 제3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함으로써 근대에서 단테에 필적할 만한 사람은 윌리엄 셰익스피어밖에 없다고 하여 그를 발군의 작가로 높이 평가했다. 사실상 근대사상과 관련을 맺으며 세계에 등장시킨 전형들을 창조하는 데 두 사람은 쌍벽을 이룬다. 단테는 셰익스피어처럼 역사적인 인물들로부터 보편적 전형을 창조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신화의 보고(寶庫)를 더욱 풍부하게 했다. R.J. Quinones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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