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쟈크 엘룰 / 대장간 / 1992년 12월
평점 :
절판


 [기술의 역사]를 읽고 다시 읽은 이 책은 전에 느끼지 못한 강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들을 귀가 없을 때는 듣지 못하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왜 그토록 기술의 지배에 대해 경고하는지, 결국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자리매김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현대사회의 심각성]을 이해치 못하고 전에는 이 글을 읽었던 셈이다.

먼저 엘룰은 1장에서, 이 땅 가운데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이 그리스도를 보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지적한다. 삶이 변증이다. 특히, 평신도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2장은, [사실]에 대한 현대인의 복종과 ,그것을 뒤엎는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에 기초한 기술적 방법은 그 굴레에 갇힌 기술자신을 자살에서 구하지 못한다.오직 세상은 끝이 있고 심판이 존재함에 비추어 볼 때에만 [역사는 미친 광란에 불과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일의 실천에 강령과 원리란 없다.현재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나라 도래의 확실성만이 잣대가 된다. 

3장은 수단이 목적이 되는 [기술사회]에 대한 이해와, 수단을 목적에 종속시키는 유일한 대안이 [그리스도의 주권]임을 제시한다. 결과는 행동강령의 도출이 아닌, 자신의 모든 상황이 하나님 앞에 노출되어진 삶이다. 말과 습관,그리고 결정에 성령이 표현됨을 의미한다. 코람데오의 삶.

4장에서 그는 그리스도인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보여준다. 지성의 변화를 통해 각자의 영역에서의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 삶이다.  현실은 파악이 불가능하게 선전에 둘러쌓여있고, 지성은 기술적 수단이외의 것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의사소통의 길은 막히고, 사람들은 자포자기의 삶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다. 파악되지도 않는 세상과 가치의 척도. 맘대로 살자는 결론... 

대안은 세상과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객관적 현실을 발견하고자 이웃사이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의 실재를 보아야 한다. 오직 성령의 조명만이 이를 가능케 한다. 그때야 비로서 이웃은 [그리스도가 위해 죽으신 귀한 존재]가 되고,역사는 인류에게 발생한 최초이자 최후의 사건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사건이 비추어주는 의미있는 것이 된다. 삶에는 거룩한 영역이 존재케 되고 우리를 자살의 길에서 멈추게 할 수 있다.   

5장에서, 이를 위해 먼저 교회는 사람들로 경제적,지적,심리적, 육체적으로 인간을 회복하도록 해야한다고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게 된 사회는 혁명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일이다. 신앙을 삶에 실천하는 것은 결국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게 한다. 반드시 공동체로서 이루어야 할 부분이다.엘룰은 또한 그 원동력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와야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세상이 좋게 변해야 한다면, 그 일을 위한 마스터플랜과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 방법이 틀렸다면 또 다른 철학으로 뒤집어 엎고 시작하면 된다는 꿈을 꾸며 청년의 때를 지나왔다. 얼마나 방법에 의존한 인간의 변화를 위해 살아왔나? 항상 의문은 나를 교육시켰던 사람도, 뒤집어 엎자던 동료도,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처음 뜻과 달리 흐르고 더욱이 나 자신에 의해 깨어졌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그리하다 내리는 결론은, [악하고 세상에 매몰된 나자신이 무슨 선한 것으로 세상에 빛이 되나]하는 것이다.

엘룰은 애시당초 우리에게서 희망을 찾지 않는다. 세상을 사랑하고 아들을 보내시고 역사를 이끄시는 분만이 소경인 우리를 인도하신다. 매일의 묵상의 시간과 기도는 이제 삶의 기준이 되어 나를 뒤집고, 나의 허접한 목표들을 부수고 말것이다. 이것이 차마 세상을 바꿀 힘이 되도록 하신다고 한다. 내 힘이 빠지고 그분을 따를 때... 정말 가능한가요? 나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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