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예찬.군주론.방법서설.잠언과 성찰 세계의 사상 7
에라스무스 외 지음 / 을유문화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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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가 40세가 되던 1509년, 뜻이 맞는 영국의 친구 토머스 모어경을 방문한 그는 당시의 세태를 비웃는 재미있는 글을 써 모어경에게 헌정한다. [광우예찬], 내가 배울 땐 [우신예찬]이라 했는데 번역자는 Moria라는 말을 사회와 인간조건의 부조리라 해서 狂愚라 했다.

광우예찬에서 에라스무스의 당시 사회와 인물들에 대한 비판은 루터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많다. 기존의 관행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 기준으로서 성서의 판단을 제시한다. 하지만 에라스무스의 비판은 처음부터 우회적이었다. 비유로 하는 간접적 비판으로 상대를 자극하는 강도를 낮추고자 한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나이브한 비난으로 상대의 증오나 비난을 일으키길 꺼린 것이다. 대신, 성직자 뿐 아니라 당시의 철학자, 왕, 지식인 일체가 도마위에 오른다.

루터는 직접적 도전으로 당시 교권의 首長들을 공격한다. 에라스무스는 이런 혹독한 비난은 상대가 선한 자라 하더라도 잘못을 고치기보다는 분노케하고 악을 드러내게 함을 우려했다. 하지만, 강한 비난은 상대로 방어적이 되게 하는 반면, 약화된 비난은 상대로 잘못을 깨달을 수 없게 함을 생각하면 과연 루터가 취한 방법이 꼭 틀린 방법일까? 에라스무스가 지적한 교황권의 오류와, 섬기는 자가 아닌 지배자가 된 추기경과 독일의 주교들. 루터는 이 문제에 대해 에라스무스와 같이 느꼈으나 다른 방법으로 반응했다.  느낀 문제에 대한 각 사람의 스타일이다.

에라스무스가 우려한대로 급격한 개혁의 흐름은 프로테스탄트의 탄생과 더불어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기반을 뒤흔드는 소동을 몰고왔다. 누가 더 옳은가? 모른다. 내 스타일은 에라스무스 쪽이다. 균형감각이 있으며 화해와 평화의 사도가 되고자 했다. 최선의 이성적 의지적 선택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역사는 에라스무스를 새로운 변화의 주축이 아닌 주변인으로 파묻고 만다. 사실 어떤 여건에 의해 에라스무스의 의견이 더 우호적으로 받아들여져서, 프로테스탄트의 필요가 없는 가톨릭의 개혁이 선행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충돌로 내달았고 에라스무스에게 어느 편인지를 선택하도록 요구했다. 온건우파인 그는 교황편에 섰고, 그의 [광우예찬]에 나타난 생각과 다르게 후대에 평가되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중간에 선 사람의 양측으로부터의 배척이다.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우리가 땅에서 하는 많은 생각과 학문, 합의와 대안들. 더 나아가서는 평생 마음을 두고 해 온 사명과 인생 자체가 쓸모없는 것임을 인생 마지막에 깨달을 수도 있다. 쓸모있게 써 주는 분이 없다면...

盡人事 待天命. 사명을 깨닫고 그것에 집중하며 사명을 완수한다 할지라도 세워주시지 않으면 어찌할까? 헛되고 헛된 것 뿐인 인생임을 토로하며 떠날 수 밖에...오늘하루 만날 사람, 그들에 대한 선한 뜻조차도 좌절과 고민만 일으키고 마는 일상 가운데서, 주께서 내 하는 일로 열매맺게 하시며, 복 주시어 기쁨 얻게 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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