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결 언

지나친 외형화와 형식화 그리고 전제화에 빠진 기존 교회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에라스무스의 종교개혁은 한 마디로 신앙의 개인화와 영성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질상 루터의 종교개혁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루터의 종교개혁 초기에 루터 진영과 완전히 결별하기를 망설인 이유였고, 루터에게 처음 동정을 표명한 동기였다. 그러나 그가 끝내 루터의 종교개혁 진영과 결별한 것은 기독교 전 세계의 합의를 무시하고 종교개혁이 기존 기독교 세계의 통일을 무너뜨리고 평화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간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라스무스에게 루터와의 결별은 교회의 재결합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고, 관용과 양보를 통한 끊임없는 중재와 중도의 노력을 통해 기독교 세계를 하나로 화합시키는데 최선을 다했다. 신·구교의 어느 한 쪽에 뚜렷이 서지 않는 그의 이러한 중도적 노력은 그가 양 진영 모두로부터 배척을 받은 원인이 되고, 오늘날 그의 전기작가까지도 그를 우유부단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중도는 바로 그의 확고한 인생의 결론이었다.

에라스무스의 교회 화합의 호소는 교회 화합의 궁극적 근거를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한 몸이라는 교회관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 공동체는 예수를 머리로 하여 각기 직능이 다른 여러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문호가 개방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크게 두 가지의 성격으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평화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이웃을 배려하고 아낌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모습을 나타내야 하며, 교황을 비롯한 모든 성직자는 봉사하는 도구요 섬기는 자에 불과하다. 둘째, 에라스무스에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의 사랑과 일치를 통해 평화를 건설해야하는 평화의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사랑과 평화는 동전의 앞뒤와도 같다. 에라스무스에 의하면 성례전 특히, 세례와 유카리스트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데, 그런 역할의 중심에는 성령의 활동이 있다. 에라스무스의 평화적인 공동체로서의 교회관은 이미 루터의 종교 개혁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지만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현실에 부딪쳐 더욱 적극적이고 강하게 부각되지 않을 수 없었고, 이 때 에라스무스는 불화를 그리스도가 가장 미워하는 죄라고 단정하였다.

에라스무스가 기존의 가시적인 보편 교회를 영성화 내지 개인적인 차원으로 환원하려한 개혁자이지만 다른 차원에서 교회 화합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강조한 점은 개인주의와 보편주의의 절묘한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에라무스의 내면적인 영성주의는 신앙의 추구에 있어서 로마 교회라는 외부의 제도적이고 보편적인 압력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에 속한다. 반면 전 교회(기존의 제도적 교회의 경계선 너머까지 확대되는)를 그리스도의 한 몸이요 사랑과 평화의 한 공동체로 보는 것은 분명히 보편주의에 해당하며 이 보편주의는 중세의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획일적·계서제적인 보편주의와는 다르다.

에라스무스의 이 같은 균형은 처음과 달리 루터의 종교개혁이 격렬해짐에 따라 그 평형이 좀 흔들린 감이 있다. 왜냐하면 중도자 에라스무스는 기존 카톨릭 교회의 외적인 요소들에 대하여 이전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그 때까지 책을 통해 주장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본질적인 자세의 변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동종교개혁과 더불어 그의 책들은 카톨릭측의 종교회의에 의해 금서목록에 들어갔다. 에라스무스의 그러한 후기의 태도는 루터의 종교개혁이 승리할 경우 그가 기존의 교회를 비판하면서 본래 초기에 품었던 그의 비전 즉, 예수님의 한 몸으로서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보편 공동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근대사에서 신·구교간의 피나는 대립과 갈등을 겪어온 오늘날, 에라스무스적인 종교개혁이 진정한 개혁방향이 되었어야 했다는 평가가 많은 동감을 얻고 있다. 어떤 좋은 명분도 화합의 가치만큼 높지 않으며, 화합이 파괴된 개혁은 아무리 좋은 개혁이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임을 16세기 에라스무스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김평중(전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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