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브 공작 부인 밀레니엄 북스 91
라 파예트 지음, 김인환 옮김 / 신원문화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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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8년 라파예트 부인에 의해 쓰여진 이 책은 고전주의 소설의 시초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이전까지의 궁정한담과 같은 프레시오지테 소설이 심리적 변화의 묘사와 인간심리의 분석에 있어 이 책의 모태 역할을 하여 왔지만 이 소설에 이르러 비로소 라신의 비극에서  보이던 극적 전개의 탄탄함이 희곡에서 소설로 유입되어 소설의 신고전주의시대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 17세기 소설에 대해 아무 쓸모 없는 지식이라고 말해 反사르코지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 이 연애담은, 실제 21세기 우리 눈으론 그저 하이틴 로맨스 같은 느낌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 하이틴 로맨스라고 불리는 혹은 많은 연애 소설의 원조가 되는 이성적 판단과 감정의 충돌, 도덕적 사회 기반과 이성적 삶의 설계를 반하는 격정적 연애감정과 한눈에 반하기, 감출수 없는 표정과 손동작에 대한 표현들로 넘쳐난다.

라파예트 부인은 당시의 문학 흐름과 독자의 취향에 맞춰, 고전적 희곡 기법의 비극적 요소와 심리적 만족과 우아함의 당시 소설 기법을  동시에 어울어낸다. 비로소 소설이라는 형태로, 희곡이 만들어내던 긴장과 해소 속의 일체감, 즉 복선의 도입과 상승하는 갈등, 파국의 진행과 반전으로의 결말이 도입되었을 뿐 아니라, 소설 자체가 갖던 우아함과 말재주, 궁정심리의 재미들을 같이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르코지의 생각과는 달리 이 소설은 단지 그의 생각에 대한 반대로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를 위한 이정표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예술 창작에 있어 이러한 낭만주의적 자유성과 고전주의적 형식성의 조화는,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쳤을때 빚어지는 어색함을 극복하게 한다. 형식적 식상함이나 와닿지 않는 어설픈 낯설음의 양쪽 극단을 극복하여, 아름다움과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균형을 갖게 하는 것이다. 라파예트 시절의 프레시오지테의 가벼움이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라면, 라신적인 그리스 비극의 무거움이 우리가 그간 여러 자유로운 내용에도 간직하고 있던 형식미가 아닐까? 그리고 이것을 우리시대에 독자에 맞추어 엮어냄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결국 이 둘의 대화는 양쪽이 변화하고 닮아갈수록 더 기발한 방식의 융합을 요구할 것이다. 일본소설로 말하자면, 하루키보다는 무거운, 오사무보다는 가벼운, 소세키 정도의...
하지만, 21세기판.
 
우리 삶이란 클레브 부인처럼, 격정을 이기려하면 할수록 그 감정과 가벼움에 휩쓸릴 수 밖에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지지 않고 질서를 부과하려 하는 존재이기에 아직 희망을 갖는지도 모른다. 감정을 잘 알아차리되 숭고함의 틀에 잘 맞추어가는 것이 정말 인생의 재미있는 부분이지 싶다. 무미건조도 허랑방탕도 별 끌리지 않으니까. 우리가 기다리는 문학도 아마 그런 가볍고 따뜻하며 진실되고도 놀라운 무엇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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