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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 - 지식의 초점 6-003 ㅣ (구) 문지 스펙트럼 3
박성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평점 :
이 책은 수사학의 기존의 개념을 기술하고, 각 개념의 형성이 일어난 역사적 배경과 그 과정에서 생겨난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수사학rhetoric은 [말을 통한 설득]이라는 최초의 정의에서 [잘 말하고 쓰는] 기술적 의미로 변화되어왔다. 최초의 수사학이 논거발견,논거배열,표현,기억,연기를 포함하는 목적지향적인 일련의 종합예술적 형태였음에 비해, 점차 표현술로서의 문체의 적합성과 규범의 일탈로서의 문채에로 그 관심이 이동해 왔다.
저자는 이런 과정이 기존의 이론과 달리 수사학의 쇠퇴의 과정이라기 보다 현대성 안에서의 수사학에 요구되는 상황 변화와 맞물려있다고 설명한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층, 혹은 신문의 등장과 연관된 논증의 대중적 역할확대, 중심 이데올로기의 해체와 연관된 상대주의적이고 열린 토론환경, 수사학적 영역의 확대로 빚어진 타 학문과 연계의 발생은 수사학에 다른 시대적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의사소통의 대중화(블로그, 개인 컬럼, 온라인 매체)는 수사학에게 [오래되었으나 새로운] 논거제시의 기법과 [어디서 본듯하나 시의적절한] 문채의 제시라는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우리시대의 [진실]이라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고대의 이데아 사상가들은 소피스트적 사고에 대해 [논리적이라도 진실은 아닌 것]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20세기를 통해 이런 이성에 기초한 보편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을 짓밟는 것인지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세계대전과 공산자본주의의 전쟁의 참 패배자는 이성주의였다. 이제 인문학적 보편주의가 물러앉은 자리엔 인문학을 조소하는 상대주의적 자연과학이 새로운 권력자이다. 이제 우리의 시대는 과학이 만들어내는 산물 이외의 것에서는 가치를 찾을 수 없는 또 다른 문제에 맞닥들임을 잘 알고 있으나 속수무책이다. 돈과 건강, 오피니언 생성과 미디어 장악이 중심가치를 이루어, 과학이라는 얼빠진 몸을 이루는 영혼역할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배경 아래에서 서로에게 [너는 진실하냐]고 묻는다.
[진리가 무엇이냐?] 이천년전 빌라도의 이 질문에 수사학은 답할 수 없다. 수사학은 이제 대중권력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역할을 부여 받았다. 소피스트들이 돌아온 듯한 매일의 TV 라디오 신문을 보며 무력감을 느낀다. 기법만이 남는다면 진실이 설 자리는 없고 또다시 우리는 이건 아닌데라고 느끼면서도 달변가들에게 휘둘리고 살 것이다. 이제 제발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곳에 살고싶다. 진실만이 진실인 곳은 이 지상에는 없는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