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 -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중단하라 서해클래식 15
토마스 홉스 지음, 신재일 옮김 / 서해문집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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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홉스의 시대의 영국은 바야흐로 유럽 패권의 중심에 서 있었다. 에스파냐의 패권시대가 지나고 네덜란드와 프랑스와 함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은 하지만 아직 종교의 갈등과 이로 인한 국가분열 국가라는 내환이 더 큰 문제로 등장한다. 홉스는 이런 국가정체의 혼란기에 국가의 의미를 조명하고, 그 기반이 될 수 있는 계약적 국가관을 제시하여 영국을 통합하고자 한다.

그에게 있어 이상적 국가는 군주체제의 국가이다. 여러 차례의 귀족중심적 혁명으로 인한 유혈 사태를 경험한 그에게 이런 선택은 어쩔 수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현재적 국가관으로 본다면 거리가 있는 것이다. 어떤 국가관이 과연 옳으냐의 문제보다 이 책의 가치는  그래서 국가관의 탄생시기에 있어서 어떤 생득적 인간권리들이 국가 아래에서 양보 혹은 억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보여주는데 있다.

지난 2년 미국생활을 하며 느낀 것은 미국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법개념과 통치개념, 경찰국가적 형태가 계약국가에 의한 국민의 권리이양의 개념위에 서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계약론적 국가관은 사실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식민지적 지배를 옹호하며, 이로 인해 종이 된 자들의 [백년의 고독]은 설 자리가 없는  개념이다. 일본 또한 이러한 개념하에 그들의 식민지를 지배했고, 당시 종살이 했었던 나라에서는 이러한 계약개념의 국가관을 처음부터 [억압]으로 경험하였기에 쉽사리 계약적 국가관을 받아들이기에는 심리적 장벽이 있는 것이다. 

남미와 우리나라 국민의 계약국가 저항적 국민권리관이란 그래서 단순히 근대국가 이행의 시간적 차이가 아닌 역사적 질곡으로 인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우리의 안전을 위한 동의가 아닌 억압과 수탈의 주체로 보는 관점이 정치인과 국민 사이에 남아있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적 국가발전은 큰 걸림돌 앞에 있는 셈이다. 

홉스는 3,4부에서 교회의 국가지배에서 유럽사회의 정치적 희생과 살육이 시작되었으며 이를 바로잡는 방법으로서 교회의 정치적 분리와 국가권력의 인정이 성경적 유추임을 제시한다. 혹 이러한 과거 가톨릭적 국가관이나 사제관이 개신교 안에도 그 뿌리를 내려 목회자의 지배권이나 기독교인의 정치적 권한행사라는 행동을 유발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신교는 여전히 구교의 영향 중 가장 벗어나려 한 것에 여전히 묶여있는 셈이다. 신앙은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권력을 통해서는 아니다. 이것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여전히 유효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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