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를 뒤흔든 논쟁 -상
김기현 지음 / 길(도서출판)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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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과 칠정은 [측은,수오,사양,시비]와 [희로애구애오욕]이다. 性과 情의 면에서 볼때 둘은 모두 인의예지와는 달리 이미 發한 것이므로 情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단이 선한 속성인 반면 칠정은 선악의 구분이 없거나 혹은 아름답지 않아질 소지가 많은 감정이다. 기대승은 이것이 두개의 전혀 다른 情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정 가운데 사단은 선한 것만을 [가려내어 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퇴계는 4단과 7정을 엄밀히 구분하고 4단이 주로 理가 발한 것인 반면, 7정은 氣가 발한 쪽으로 해석한다.

과연 이런 구분이 왜 필요한가?
당시 유교는 조선의 국시이자, 파행과 인간적 욕심으로 얼룩지기 시작한 왕조의 기강에 유일한 해결방안이었다. 온전한 유교정치이념의 실현은 조선 유학자의 꿈이었고 [천명]이었다. 혼란의 원인은 유교적 관념의 교육의 적절한 시행과 그 엄밀화의 부재에 있다는 것이 퇴계의 생각이었다. 인의예지가 발한 사단의 마음이 널리 편만한 세상. 기대승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원전에 충실한 4단7정의 정립이 퇴계에 의해 왜곡된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퇴계는 왜 다소 독특한 4단7정의 견해를 갖는가?
이는 그가 정립코자한 유교체계의 연장선상에 있다. 우주원리, 인간본성, 예절과 정치, 수행과 善政이 그에게는 하나의 이념안에 있었다. 우주의 원리로 심성의 4단7정은 해석될 수 있고 해석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이기를 성정에 적절히 설명하는 것을 시도한 것이다. 즉 기대승이 결과론적 4단7정, 즉 모양새에 따라 둘을 구분하고(엄밀히 이 개념을 구분치 않았던 중국의 선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의하려 한 반면 퇴계는 원인론적 입장에서 논리적 귀결로 4단과 7정을 구분 지어 분류하려 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대승이 4단과 7정은 [서로 선이 다르다]라고 한 반면 퇴계는 [그 선함의 정도는 같다]고 설명한 것이 인식된다. 즉 선악의 결과가 아닌 동일한 선의 정도에 이와 기의 간섭 정도에 따라 둘이 나뉘게 본 점은 이런 유교전체를 아우르고자 했던 전체적 틀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이 책이 설명하는 도덕우선주의의 일탈은 아닌 셈이다. 또한 나라의 올바른 운행은 유교의 [기술적 운영의 묘-선악의 정도]에 달린 것이 아니라,하늘의 뜻과 일치되어 백성의 뜻과 선한 군주와 신하의 마음이 만날 때, 하늘의 도움으로 가능하다는 그의 정치론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 나에게 4단7정은 무얼 말하는가?
교육자와 학자로서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열정으로 산 한 사람을 본다. 그는 논변이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을 알았고 또한 이것이 올바른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일이라 믿었다. 영남과 기호의 우세가 아닌, 나라의 헌신된 인재를 키웠고 그 정신을 물려주었다. 공자왈 맹자왈은 그들의 입신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었겠지만 결코 그 제자들은 이 스승의 평생의 뜻만은 거스를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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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8-03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에, 잠시 덧붙일게요~ 퇴계가 이기호발설을 주장한 이유는 바로 수양론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선의 이기론 논쟁은 수양론으로 연결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이냐..약관의 기대승이 노학자의 이론을 걸구 넘어진건 조선유학사에서 희대의 사건이었습니다만, 퇴계는 기대승의 논리를 인정해 서신으로 답을 해 줍니다. 이것이 7년 서신의 결정체인 사단칠정논쟁입니다. 퇴계는 4단이 이가 발한 것이고 7정이 기가 발한 것이라고 하지만 기대승은 이 논리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발할 수 없고 발한 기 중에서 순선한 면만이 이라는 기대승의 논리가 더 타당합니다. 퇴계도 이 부분을 인정합니다만..퇴계는 수양론 때문에 끝까지 이기양발설을 고수합니다. 4단을 수양하여(발하게 하여) 7정을 다스리게 해야 하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게됩니다. 이는 뒤에 율곡이 기대승의 논지를 그대로 계승하여 기중심의 이기철학을 완성하게 됩니다. 쓰신 리뷰 중에서 제가 아는 부분과 좀 다른 면이 있어 주제넘지만 몇 자 남겼습니다~

카를 2010-08-0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