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최인훈이 보여주는 이명준은 광장을 찾기에 실패한 사람이다. 또 마땅히 찾아야 할 광장을 찾지 못한 우리이기도 하다. 4.19는 새로운 자유의 바람을 서울의 공기에 불어넣었고 그 때 이 책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분단과 자유, 꿈과 좌절의 그 시대의 사람의 고민과 같은 진동수를 가졌기 때문이리라.

광장은 공감이다. 모여서 느끼는 같은 마음, 너도나도 좋은 일을 같이 해보자고 들뜨는 마음, 우리 따로 다른 골방에 있다 나왔는데 어찌 그리 마음이 척척 맞는가하는 탄성. 그럴줄 알았다,해방은. 그리되었어야 했다, 해방은. 그 광장이 서로를 물고 뜯는 곳이 되었다. 다른 구호를 쓴 플랭카드 아래 적과 백의 스크럼이 서로 원수가 되었다.

광장은 자유다. 옥죄지 않는 공간, 돌아가는 강강수월래처럼 우리가 뛰기에, 같이 웃기에, 웃다 웃다 지쳐 눈물 짓기에 넉넉한 자유였어야 했다. 고문은 大韓 백성의 것이 아니고, 감옥은 더 이상 가둘 사람이 없어야 했다. 이명준은 그 감옥에서 고문을 당했고 새로운 광장을 찾고자 했다. 그는 북에서도 실패했고 스스로 광장을 허무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래서 광장은 공허이다. 말로 채워지는 공간,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공간이다. 숨쉬는 나의 혈육, 사랑하는 내 겨레 그 사람들로 꽉꽉 채워져야 했을 광장이 말만 가득한 내 겨레를 못박는 광장이 되었다. 이명준이 찾은 대용품은 바다이다. 상호교감하는 살아있는 광장이 아닌, 일방적이고 내적이기만 한 빈 공간, 서로의 자유를 마주보며 자신의 자유를 느끼는 광장이 아닌, 자유의 도피처로서의 내면적 깊이의 바다에 그는 가라앉는다. 실패한 인생, 실패한 나라, 불쌍한 백성. 박정희, 김일성, 전두환, 김정일.

2002년 시청앞은 붉게 물들었고, 2003년 그곳은 다시 촛불과 인공기 소각과 전경버스로 채워지고, 2004년 찬 공기만이 살벌한 이 백성의 머리위를 허허히 지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