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바드 기타 샴발라 총서 2
정창영 엮어옮김 / 시공사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힌두의 슈랏다(세계관)인 책이다. 바수데바를 섬기는 바가바타 종교의 시편이면서 [마하바라타]중 한 권으로, 기원전 4,5세기 뱌사하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베다 가르침의 결론인 [우파니샤드]의 내용을 응축하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의 구도를 알려주는 독특성으로 인해 가장 많이 힌두인에게 읽히는 책이라고 하다.

내용은 주인공 아르주나와 친구 바수데바(브리슈니 족의 왕자의 모습으로 그의 전차몰이를 하는 최고신의 현신, 크리슈나)의 대화내용이다. 아르주나의 존재론적 질문[크리슈나여, 도대체 삶이 무엇이길래 이런 동족살인의 전쟁을 해야 합니까?]에 대한 대답으로 크리슈나는 [신과 일체가 되어 윤회의 쳇바퀴에서 탈출하기위해, 고통과 유혹의 시험대인 삶을 책임과 선행, 무위와 수행으로 살다 죽는] 길을 제시한다.

그 방법으로 아루주나에게 제시되는 것이 카르마 팔라 탸가(행위의 열매 포기)이다. 프라크리티(질료세상)의 삿트바 구나(고요한 氣), 라자스 구나(활동적 氣), 타마스 구나(어두운 氣)가 만들어내는 마야(환영)에 현혹 되지 말고 푸루샤(신성)를 좇아 아트만(참자아)에 이르러 브라흐만과 합일하여 머무르라고 한다. 활동적 전사인 그는 라자스 구나에 지배되기 쉬우므로, 출발은 이 중 카르마 요가(수행의 길)를 통해 나아가야 하며, 그러나 즈냐나 요가(지혜의 길)와 박크티 요가(공양의 길)와 어우러져(이런 구분이 나중엔 없어지니까) 사마디(몰입)의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사실을 깨닫는 자는 이미 전생의 수행이 탁월하거나 크리슈나에게 사랑받는, 혹은 그를 사랑하는 자라고 한다.

분명 다른 종교에 대한 흡수력를 가진 체계이다. 또한, 다양한 계층과 기질의 사람을 흡인하는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기성의 정치,경제 체제와 충돌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 범위와 체계를 무시하거나 혹은 격리를 통한 자기보호를 한다고 하는 편이 맞는 것 같다. 힌두는 상대적 우월성에 의한 유일성을 주장한다.인도 페르시아, 바빌론 문화의 다신교 상황에서 우위를 주장하며, 다른 신들도 아수라의 일종이나 하위신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도 마호메트과 예수, 여호와와 알라, 붓다와 베다를 아우르는 대안으로 제시코자 하는 현대 힌두교적 흐름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보며, 서양문명일반에 미친 힌두의 영향을 본다. 쇼펜하우어와 카뮈 뿐 아니라 현대의 여러 작가와 고대 힌두와 접한 그리스인들의 생각도 이해할만 해진다. 가깝게는 불교를 거쳐 나타난 우리 작가에서도...  김수현이 썼던, 불치병을 앓으며 예정된 자신의 죽음에 절망하며 울부짖던 드라마가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는 유태인답기는 하지만 죽음 앞에 인생의 참된 의미인 사랑을 스토아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스토아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 기만성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직면과 내적 고요]를 이야기한다. 인류의 공통된 경험인 죽음, 인간은 그 앞에서  자신이 죽음을 의식하는 동물 이상의 인격person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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