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아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
호메로스 지음, 유영 옮김 / 범우사 / 199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디세이아는 플롯으로 보면 너무도 간단한 글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육지에서 죽을 생고생 다하고 겨우겨우 집에 돌아온다. 그동안 그의 아내에게 청혼한다며 자기집에서 기생하며 가산을 말아먹던 무리를 오디세우스와 아들이 도살하며 막을 내린다.

왜 오디세이아는 고전일까? 위대한 작품이 그 뛰어난 완성도로 인해 인정받는건 아닌 것 같다. 독창성, 유일성, 오리지널리티가 더 중요한 지표가 아닐까? 기다리던 [님]이 돌아와 자기를 괴롭히던 원수를 진멸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아직도 많은 희곡과 소설의 단골메뉴가 아닌가? 또한, 전쟁에서 갖은 고통을 겪고난 뒤 귀향하는 이야기( 아이네이드와 캉디드), 각종 환타지와 괴물과의 싸움, 표류와 해변의 구조 등 수많은 이야기들의 원형이 이 안에 들어있다.

아직도 사람들은 이 재주 많은 이야기꾼 호머의 입담을 계속 반복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사는 삶이란 것이 척박하고 고달프며, 현실의 고통을 구원하여 줄 님을 바라는 마음만이 희망인 삶의 조건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 이야기의 춘향도 이도령을  기다리며 변사또의 괴롭힘을 참는다. 우리 백성도 춘향을 보며 현실의 구원을 꿈꾼다.위고의 고제트도 부모없는 절대 고립의 삶에서 고립을 공유하는 또다른 인물 쟝발장에 의해 구원된다. 프랑스 백성도 신을 잃은 뿌리없는 고통의 삶에서 누군가 다른 동료인간의 연대를 통해 사악한 압제로부터의 구원을 꿈꾸어왔다. 외부적 구원은 인류공통의 주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학밖에서도 이 주제는 살아있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도, 일제하의 한국민도 어둠이 깊어가는 절망의 끝에서 이런 희망을 바래왔다.  20세기에 이 주제는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점점 사람들은 [고도]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하고, 아가멤논의 클리타이메스트라처럼 돌아올 님을 죽여버리고, 현재의 타협한 상황을 연장하고자하는 독기로 변하고 있다. 신약의 포도원소작농처럼 이제 주인의 아들만 죽여버리면 제맘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라 믿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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