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료마
도몬 후유지 지음, 안희탁 옮김 / 지식여행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사카모토 료마라는 이름을 떠올린 것은 어렴풋한 2001년 쿄토의 기억 때문이다. 그때 무슨 상점 앞인가에 서 있던 [가 죽은 자리]라는 기념비를 본 적이 있다. 료마? 이름두 참...그 때는 이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 료마가 일본 역사에 남긴 자취를 보니 그 비석의 기억이 새롭게 와 닿는다.
 
료마는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다. 대부분의 일본인이 일정한 틀안에서야 편안함을 느낄 때, 그리고 자기가 태어난 곳을 평생 벗어나지 않던 시절, 그는 자기 성(城)을 탈출한 인물이었다. 당시 이런 행동은 성에 남게 될 가족 뿐 아니라, 그의 친적 모두가 성주에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돌아오거나 붙잡힐 때는 본인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외지로 나온 그는 아무런 학식이 없음에도 뛰어난 사람의 사상과 경험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였다. 그리고 행동하지 않는 머리뿐인 그 사람들을 뛰어넘어 쓰러져가는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일본이 힘을 합치도록 만드는 엄청난 역할을 해낸다. 그의 이런저런 중재를 통해 수백년 무소불이의 권세를 휘두르던 막부는 천황에게 정권을 이양하게 됐고, 천황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들이 단합하여 외세를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후천황이 중심이 된 메이지 유신과 귀족의 세력을 끌어들인 의회정치의 시작도 비로소 이런 배경에서 가능하게 됐다.

료마가 없었으면 일본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또 그 이웃나라인 우리는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일본은 우리처럼 외세 앞에서 자중지란에 빠져 어느 서양국가중 하나에 굴복하고 말았을테지. 그러면 일본의 조선침략도 불가능했을까?  적어도 친일파논란은 아예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됐겠지. 료마의 후계자중 한명인 이토오 히로부미도 역사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이런 만약에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분명 료마가 우리 입장에선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의 시초인 것은 사실이다.  
 
무엇이 미천한 무사출신의 한 사람을 나라를 구하는 인물로 만들었을까? 그에게서 수많은 탁월함을 본다. 겸손, 대안이 안되는 현재의 힘을 버릴줄 아는 결단, 주도면밀한 기획, 현실적 힘에 대한 존중, 자기힘의 최대활용, 자기희생, 재정적 자유, 그리고 조직을 활용하되 조직과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 점 등. 이 모든 걸 두루 갖춘 인물을 역사에서 발견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란 도도한 흐름인 전체 구성원의 의식의 변화, 경제적 요소에 의해 주도됨에 틀림없다. 하지만 어쩌면 한두 사람의 탁월함이 그 방향을 바꾸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려운 선택과 위기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북한의 핵,  경제성장의 불확실성, 국민들간의 갈등... 우리에게도 나라를 사랑하고, 피를 뿌려서라도 민족을 구할 사람들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들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인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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