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지음, 최승자 옮김 / 까치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침묵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언제 나는 그 고요를 맛보았던가? 매미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한 여름 오후, 끓어 오르는 길 위로 흐르는 정적. 흰 눈이 소복히 쌓인 어느 산속, 하얗게 쏟아지는 달빛의 고요함. 우리는 이 기쁨들을 잃었다. 거리에는 넘치는 말소리들, 지금도 사방에서 흘러넘치는 음악소리들, 기계, 자동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뱉아 내는 라디오 앞에서 우리 삶은 헝클어지고 부서져 내리고 있다.

오직 사람은 침묵에서 그 영양분을 얻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살고 있나? 하루 종일 사람들이 쏟아내는 수 많은 말들, 술자리에서의 똑같은 대화들, 소음의 홍수에 치어 집으로 돌아오면 텔레비젼에서 소리지르는 드라마의 주인공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가 없다. 정작 중요한 말들을. 아이의 고민, 아내의 사랑, 친구의 속사정, 동생의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리지가 않는다. 우리 귀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듣기에는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침묵은 우리 삶을 치료해 줄 수 있다. 시계 바늘소리 하나 없는 긴 침잠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어디선가 틀어진 나의 삶의 궤도, 정작 중요한 사람들, 삶에 가장 소중한 시간들. 이것들은 떠들고 있는 동안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어느 겨울날 혼자 오대산 자락을 누비다 돌아오던 날 느꼈던 마음의 잔잔함을 다시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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