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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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스케는 자연으로의 선택을 하고 만다. 그리고 결국 지는 동백꽃과 같은 붉음으로의 추락. 감정의 결을 따라감으로 인한 현실의 안락으로부터의 단절이다. 사랑으로 인해 물질적 혜택을 버리는 근대적 일본 청년상의 탄생이라고도 하고, 혹은 반자본주의 또는 심미주의의 촉발이라고도 해석하지만, 나에게 다이스케는 작가자신을 그려내는 자화상으로 비친다.1907년 동경제대와 제1고등학교 전임강사 자리를 사임하고 쓴 [산시로]에 이은 두번째 아사히 신문 연재 소설. 그에게 포기하려고 했던 문학이 결국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라도 다시 찾지 않으면 안 될 숨이 꺼져가는 그의 사랑이었다. 문학을 위해 교수직을 버린, 혹은 소명으로 인해 安住를 버린 작가의 어절한 마음이 미치요를 향한 다이스케의 마음에 묻어난다. 소세키는 정말 사랑하는 것을 위해 인습을 깨고 말았다.

그가 그리는 20세기초 일본에서의 삶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속의 연명일 뿐이었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믿을 수 없게 되어가는, 근대화에 끼어버린 인간들이 모여사는 곳. 자본주의적 삶의 논리에 휘말려, 전통적 가치를 말하나 스스로는 져버린 사무라이였던 아버지. 칼잡이 무사였던 한 청년이 양복과 공장과 귀족의 삶을 누린다. 하지만 근대화의 뻥튀기 위에 자기의 인간됨과 고고함을 포기한 사람들. 뇌물과 횡령의 유혹에 걸려든 친구 그리고 기자가 되자 다이스케 아버지의 비리를 눈감아 주듯 말하는 태도, 그들에게 한때는 숨쉴 공기였던 신뢰와 존경을 이제는 찾기 힘들어져 버린 낯선 사회. 수입물품으로 집안을 장식하고 유럽에 직접 주문한 원단으로 옷을 지어입는 호사들(그러나 하필 그 원단이 메이드인 재팬이라니),  왠지 굉장히 친숙한 풍경이다. 우리도 반복했었고(하고 있고?) 중국도 시작한...돈을 위해 무언가는 잃어버리고 있는 동양나라들... 시리즈물 같다.

이런 삶을 살다보면 언뜻 죄의식이란 것이 머리를 든다. 근대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과 내 안에 있는 어떤 기준과의 충돌이다. 다이스케 안에 들끓던... 이른바 근대적 인간상과 인간 본성간의 충돌이다. 이 인간본성이란 그냥 옛날부터 우리가 지니고 있던 우리 안의 전근대성의 잔재일까 아니면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던 정말 나락의 끝에 발견하는 인간성 그 자체일까? 그 후 일본이라는 나라는 스스로를 미화하기 시작했다. 공무원은 청렴하고 사회는 깨끗하며, 근대화도 옳고 전근대성도 보존해야 한다고... 세뇌하고 선전했고, 스스로 믿다보니 스스로 변하기도 했다. 그들 나름의 가치관 확립과 사회통제, 일탈과 엽기. 발전의 모델과 파국의 모델 사이를 여전히 오가고 있는 그들. 그들은 지난 백년동안 소세키가 그려냈던 근대화 초기의 일본으로부터 어쨌든 여기까지 변형시켜 왔다. 우리는 우리 사회를 위한 무슨 좋은 대안이나 묘수가 있는가? 아니면 일본따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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