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틸유아마인 언틸유아마인 시리즈
사만다 헤이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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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범인'도 '범인'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이 더 눈에 밟혔다. 그들에게 '범인'은 사랑한 사람이고, 앞으로 더 사랑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범인'이 되어버린 '그 혹은 그녀'의 소식을 듣고 '남겨진 사람들'이 또다시 받게 될 상처를 생각하니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착잡하고 안타까웠다. 소설 <언틸유아마인>은 ​책표지에서 느낄 수 있듯 아이를 가진 행복한 여자의 모습 혹은 그와는 반대로 아이를 갖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여자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그림자를 잔인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모습으로 그려낸<범죄스릴러>이다.  


<​언틸유아마인>은 세 여자의 시점이 교차되며 서술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워킹맘 '클라우디아'이다. 그녀는 제임스와 결혼 전 여러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와의 사이에 소중한 딸을 품게 되었다. 제임스를 처음 만난 건 일 때문에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였다. 아내를 잃은 제임스와 엄마를 잃은 쌍둥이들.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사랑하게 된 클라우디아와 제임스. 결국 클라우디아는 그들과 한 가족이 된다. 남편 제임스는 해군으로 장기간 바다에 나가 있곤 하는데, 자신이 없는 동안 만삭인 아내와 쌍둥이들을 보살필 유모를 고용하게 되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조 하퍼'를 만나게 된다.

​『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삶 아니었나? 완벽한 가정생활. 어린 시절부터 늘 꿈꾸던 삶.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 나를 엄마로 받아준 두 아들, 탄탄한 직장, 장차 태어날 딸. 인테리어 잡지를 옮겨 놓은 듯한 멋진 집. 』 <p.76> ​『사실 제임스는 엘리자베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은 직후에도 웃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를 알만큼 알고 나니, 그것이 그 사람 나름의 대처 방식임을 깨달았다. 청난 스트레스에 직면한 사람은 그 스트레스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대해야 이겨낼 수 있다. 일종의 자기방어인 셈이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거기에 의존했다. 우린 둘 다 실연이나 이별의 아픔으로 힘든 상태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 <p.374> 

두 번째 주인공은 클라우디아와 제임스 가정에 고용된 유모 '조 하퍼'이다. 그녀는 오자마자 쌍둥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부부의 마음도 사로잡는다. 결국 주말까지 클라우디아와 제임스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어딘지 의심쩍다. 그건 클라우디아도 독자도 마찬가지다. 클라우디아가 집을 비우면 온 집안을 뒤지고, 클라우디아와 마주할 땐 유독 그녀의 만삭인 배를 의식하기도 한다. 첫날 이 집에 왔을 때 가방이 열리며 얼핏 보였던 임신 테스트기를 클라우디아에게 들키기도 했다. 클라우디아는 남편 제임스에게 불안한 마음을 털어 놓지만 임신 때문에 예민해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뿐이다. 얼마 후 제임스는 장기간 항해를 위해 떠나게 되고 만삭인 자신과 어린 쌍둥이들만 남은 이 상황에서 그녀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가는데...

​『 나는 옷장 구석에서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안쪽 주머니의 지퍼를 열고 푸른색과 흰색으로 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클리어 블루 임신 테스트기였다! 99%의 정확도를 자랑한다는 임신 진단 키트이다. 두 번이나 검사를 해봤지만 임신은 아니었다. 다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남들은 쉽게 하는데, 난 왜 이리 어렵단 말인가? 공허감과 무력감에 휩싸였다.  <p.100>

생각만 해도 겁이 났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러자고 대답했다. 거기 가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임산부에게 둘러싸일 것이다. 다들 모성이라는 덫에 걸려든 걸 후회하면서 두세 살 난 아이들을 우리에 가둬 놓고 거대한 배를 내민 채 수다를 떨겠지. 사방에 임산부가 널려 있었다. 그게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더 허전하고 더 외롭게 했다. 나 자신이 더 쓸모없게 느껴졌다. 전에는 가뿐히 해치웠던 일도 이젠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가진 않을 거라고 나 자신에게 타일렀다. 이런 식으로 영원히 살진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다. 』 <p.111>

 

세 번째 주인공은 여형사 '피셔'이다. 그녀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같은 형사인 남편과 함께 조사하고 있다. 만삭인 임산부를 상대로 배를 갈라 산모와 아이 둘 다 죽게 된 아주 잔인한 사건이다. 사건 해결도 해결이지만 그녀에겐 가정사도 문제다. 남편의 불륜고백, 10대 딸아이의 가출과 결혼 선포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한 것이 없다. 이런 와중에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을 하나 둘씩 찾아 나서는데...

소설 <언틸유아마인>은 세 여자의 시점을 번갈아 읽어나가며 그녀들의 내면을 엿보게 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며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일련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간다. 마치 떨어져 있던 각각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이 되어가는 것처럼. 내 눈앞에 펼쳐진 완성된 그림을 보았을 때, 여지껏 믿었던 혹은 의심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충격이란! 어쩌면 처음부터 그녀들을 의심하고, 믿었던 건 나 자신일 뿐이지, 그녀들은 그저 자신의 삶 일부분을 이야기했을 뿐이리라.


뱃속 아기를 잃을 때마다 내 일부분도 죽었다. 마틴은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까운 친구들은 물론이요, 내 몸의 일부를 떼어낸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기를 세 번이나 사산했다. 그리고 속옷에 피를 흘리며 유산한 숫자는 세는 것도 포기했다. 그런 일을 다 겪으면서 내가 겉모습만 여자일 뿐, 아기를 열 달 동안 품지도 못하는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억장이 무너지고 피눈물을 쏟아냈다.  <p.400>


여자이기 때문에 삶의 어느 과정에선 좋든 싫든 마주해야 하는 것.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뜻과 어긋날 때 비극은 시작된다. 한순간의 실수로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질 수도 있고, 너무나 간절히 원하지만 쉽게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내면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주변의 시선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소설 속 표현처럼 사방에 임산부가 널려 있는 곳. 갖지 못한 자에겐 힘들고 허전하고 외롭고 심지어 자신의 몸뚱어리가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SNS를 도배한다. 누군가에겐 희극이 누군가에겐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아이를 갖는 다는 것은 분명 축복받을 일이나 이렇게 얄궂게도 두 얼굴을 가진 것이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자이기에 여자라서 짊어져야 할 숙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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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혼 - 기억 없는 시간
감성현 지음 / 네오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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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지만 강렬한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감성현의 수혼(輸魂)은 '나를 수', '넋 혼' 글자 그대로 '혼을 나른다'라는 의미다. 인간의 몸을 옷처럼 갈아입고 벗어버리는 존재인 수혼인. 수혼인은 인간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그들에게 인간의 법칙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혼'을 <수혼>을 통해 타인의 육체를 강탈하여 온갖 범죄를 일삼는다. 살인, 강간, 강도, 폭행 등 인간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악행들을 수혼인은 서슴없이 겉으로 드러낸다. 그들이 강탈한 육체가 '온갖 악행'에 대한 강력한 면죄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죄의식'이란 없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면 그만이다. 자신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세상을 맘껏 조롱하며. 주인공 '연우'도 수혼인이다. 그에겐 여느 인간들처럼 사랑하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다. 그러나 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여동생 '연희'만 남았다.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울부짖던 그날 밤, 머리 위로 수없이 쏟아질 듯 펼쳐진 별들이 죄스럽게도 아름답다 생각했다. 살려내야 한다는 그날의 울림은 연우에게 벗어날 수 없는 기억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후 연우는 119 구조대원이 되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이렇듯 연우는 기존의 수혼인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소설 속에는 명확한 이유나 설명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유일하게 수혼인을 죽일 수 있는 존재인 '살해사' 무레르와 엘레테의 대화를 통해 유추할 뿐이다.

"수혼인 중에 선한 경우도 있을까요?"

"절대로."

"그렇지만 무레르, 수혼인은 인간으로부터 갖춘 탈바꿈을 통해 나타나잖아요. 인간이었을 때의 선함을 간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p.87)

소설 <수혼>은 Teaser, Sequence, Trailer로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각각의 용어에 맞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Teaser> : 영화나 방송 예고편의 한 형식으로 영화의 장면을 조금만 보여주거나 전혀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상물.  <Sequence> :​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들. <Trailer> : 필름의 종료 지점에 부착하는 빈 필름. 필름에 수록된 이미지와 사운드를 보호하고 마지막 프레임까지 정확하게 영사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중 가장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는 것은 Sequence로써 수혼인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사고 현장에서 영문도 모른 채 용의자가 된 사람들. 명백한 물증 앞에 그들의 동일한 자백은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말뿐이다.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왔던 마석은 우연치 않게 수혼을 경험하게 되면서 잠들어 있던 수혼의 정체성을 깨닫고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그의 악행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면수심의 두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떠올랐다. '살해사' 무레르의 말처럼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라는 물음엔 나조차도 쉽게 답을 할수 없었다. 소설 <수혼>은 일련의 사건 속에서 어렴풋이 수혼인의 존재를 눈치챈 형사 태훈과 마석의 대결, 연희를 지키기 위해 질주하는 연우와 무레르의 대결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특히 무레르를 쫓기 위해 <수혼>하며 질주하는 연우의 모습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가 <수혼>할 때마다 그의 뒤로 빈 껍질처럼 나뒹구는 인간의 육신, 다음 순간 전혀 다른 인간의 육신을 입고 무레르를 쫓아 질주하는 연우. 빠르게 돌아가는 영화 속 장면을 쫓듯 나의 시선 또한 <수혼>할 대상을 찾아 질주하는 연우의 뒤를 쫓고 있었다. 사람을 살리며 살겠다는, 그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죗값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내고 싶었던 단 하나. '연희'. 마지막 <수혼>후 무거운 육신의 옷을 입고 드디어 마주하게 된 '살해사' 무레르. 곧이어 그의 손이 연우가 입은 육신의 복부로 깊숙이 들어오는데...

마지막 장 Trailer. 이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나 순간 고민이 되었다. '반전'이라면 '반전'일까? 그러나 소설 마지막 문장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결국 내 나름대로 책 속 문장을 통해 결론을 내렸다. 수혼을 하다 보면 그 끝에서 악마와 마주하게 된다. 그 악마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다. (p.175)

소설<수혼>은 200page가 조금 넘는 얇은 책으로 금방 읽어 버렸는데, 그 내용이나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간에 대해, 인간의 이면에 대해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던지는 물음엔 '숨겨진 나의 욕망'이 드러날까 두려워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말해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훔칠 수 있다면

뭘 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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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6
나카마치 신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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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은 지는 조금 됐는데 이제야 서평을 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건 아직까지 내겐 조금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냥 간단하게라도 쓰면 좋은데, 뭐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잘 써야겠다는 일종의 강박증이 있는 것 같다. 대충 쓸 바엔 아예 쓰지 말자.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내 서평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잘 써진 서평이냐? 그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읽은 책들은 꽤 있어도 서평을 쓰지 않아 기록되지 못한 책들이 많다. 간단하게라도 서평을 남겼더라면 내가 읽어왔던 책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또 지금과 같은 경우처럼 어떤 책들은 뒤늦게라도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펼치면 내용이나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희미해서 애를 먹기도 한다. 결국 책의 스토리를 되짚어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사서 고생, 두 번 일하는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쓰려는 이유는 역시 '기록' 때문이다.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책을 읽고 책을 벗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책을 벗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기록함으로써 잊힐 뻔한 소중한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남는다. 시간이 지나 잊어버리더라도 다시 그 기록을 들춰보면 그때의 책 속 이야기와 당시 느꼈던 감동들이 오롯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기록하지 않아, 참 많은 책들이 내 머릿속에서 잊혔다. 아쉽지만!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서평을 남겨야겠다. 그게 책에 대한 작은 예의라 생각한다.

나카마치 신의<천계살의>는 1982년 발표한 단편 <산책하는 사자(死者)>가 전신이 된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 <모방살의> (원제는 '그리고 죽음이 찾아온다.') 가 그러했듯, 미스터리 팬들의 뜨거운 요청으로 1989년 재간되었다가 2005년 <천계살의>라는 새 이름을 얻으며 <모방살의>, <공백살의>, <삼막살의>, <추억살의>와 함께 '살의 시리즈'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탄생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나 문체가 현재의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다. 현재는<서술트릭>이라는 장르가 비교적 흔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생소했다. 바로 이<서술트릭>이라는 신 장르를 과감하게 선보인 선구자가 바로 나카마치 신이다. 다만 당시의 풍조로 <서술트릭>은 일종의 기만이자 미완성품으로 그의 소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소설 뒷부분 '작가의 말'에서 그의 아내가 한 말 "당신의 데뷔작이나 초기 작품은 당신이 죽은 뒤에, 분명히 높이 평가받을 날이 올 거야. 그때 내가 잘 지켜봐 줄게."처럼 작가 사후에 비로소 인정받게 된다. 이 부분도 안타깝지만 예언과도 같은 말을 한 아내가 작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로 인해 당시 아내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리운 마음으로 한 잔 아닌 몇 잔의 술을 매일 밤 즐기고 있다는 생전 작가가 남긴 이 말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책장을 덮은 후 한동안 먹먹하기도 했다.

<천계살의>를 읽기 전에 <서술트릭>이라는 ​얘기를 들었기에 한 장 한 장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읽었다. 아니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당했다'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범인을 예측한 것도 사실 책의 중반부를 한참 지나서였으니. 한때는 잘 나가는 작가였지만 최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야규 데루히코가 <추리세계> 잡지 편집부  하나즈미 아스코에게 연락을 해온다. 

"범인 맞추기 릴레이 소설......" 

"네. 어떤 작가가, 이 경우에는 제가 되겠군요. 제가 쓴 '문제편' 원고를 다른 작가에게 보여주고 추리하게 한 뒤에 '해결편'을 집필하도록 하는 겁니다. 즉 범인 관점으로 쓴 '문제편' 바로 다음에 상대 작가의-탐정 역이라고 불러야 할까요-'해결편'을 싣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에 범인의 눈으로 쓴 '해결편'을 다시 싣는 구성입니다. 뭐, 두 사람의 지혜 대결이라고 할 수도 있죠." (p.11)

흥미를 느끼는 아스코와 ​기획이 취소되더라도 자신의 원고만큼은 끝까지 읽어달라 부탁하는 야규 데루히코. 이후 <호수에 죽은 자들의 노래가......>라는 '문제편'을 아스코에게 전달하고 마지막 범인의 눈으로 다시 쓰는 '해결편' 집필을 위해 잠시 온천여행을 떠나겠다는 야규. 그리고 떠나기 전 '탐정 역'의 해결편은 탤런트 겸 소설가인 '오노미치 유키코'가 써주길 요청한다.

아스코는 예전부터 본격추리의 참맛은 밀실이라든가 알리바이 트릭의 재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의 곡예와 결말의 의외성에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야규에게도 한 적이 있다.(p.59-60) 야규의 원고는 아스코가 바라던 바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합격점을 줄 수 있다. 다만 아주 비슷한 작품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는 기분이 든다. 결국 야규의 작품은 실제 사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임을 알게 된다. 지명과 심지어 실명까지. 당시 이 사건은 미궁에 빠졌으나 작품 속 야규는 범인이 누군지 아는 것처럼 보인다. 이 상태로<추리세계>에 야규의 작품을 실을 수 없어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하지만 "죽어서 남몰래 웃는다"(p.90)라는 뜻 모를 유서를 남긴 채 자살했다는 야규의 소식이 전해진다. 순수창작이 아닌 실제사건을 작품 인양 써낸 야규의 목적과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그는 정말 진범이 누군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정말 자살을 한 것일까? 또한 해결편의 상대 작가로 지목한 '오노미치 유키코'와는 어떤 관계인가? 모든 의문을 안고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아스코는 야규의< 원고 속 실제 사건 내용을 바탕으로 하나씩 사건 현장>을 찾아간다. 아스코의 시점을 따라가며 추리하는 과정에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들을 찾을 때마다 보란 듯이 조롱하듯! 용의자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한다. 더 이상 범인으로 지목할 만한 사람이 없는데...라고 생각한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충격이란!! '혹시'나 하고 의심은 했지만 '설마'했던 일이 벌어질 줄이야......

"추리소설이란 문자 그대로 추리가 주체가 되는 소설이지만, 근래에는 추리하는 맛이 희박해진 추리소설들이 범람하고 있다. 나카마치 신은 추리소설의 원칙을​ 살려 연쇄살인과 수수께끼 풀이를 테마로 정교하고 대담한 트릭을 구사하며 독자에게 두뇌 싸움을 걸고 있다. 당신이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듯 읽어나간다면 작가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겠지만, 무운이 다하여 패배하더라도 가슴속에는 "이거 한방 먹었는걸!" 하는 쾌감이 남을 것이다. 아무쪼록 작가가 설치한 덫에 걸려들지 않기를.- 아유카와 데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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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14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알라딘 서재 글이 개인을 위해서 쓴 거라고 하지만, 완전히 공개되는 순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이러면 서평을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요. 평소에 엘리카님의 글을 읽어봤는데, 추리소설 서평을 꾸준히 남기시네요. 저는 추리소설을 읽고 나면 뭐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별해무 2016-04-14 23:3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실 그런거 신경쓰지 말고 쓰라고는 하는데 ㅎ 쉽지가 않네요. 아무래도 cyrus님의 말씀처럼 공개되는 공간이다 보니...ㅎㅎ 최근에는 추리소설을 주로 읽다보니 서평의 대부분이 추리소설이 되었네요 ㅎ 독서 편독을 하면 안 되지만 재미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네요. 사실 저도 추리소설이든 다른 소설이든..서평쓰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추리소설 서평도 힘든데, 더 어려운 책들에 대한 서평은 어찌 쓸지...벌써부터 걱정이네요 ㅎ 그래도 일단은 어떤 책이든 편견없이 아무리 가벼운 소설일지라도 그 책 안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얻으려 노력하며 서평을 씁니다. 쓰다보면 지난 제 추억도 떠오르기도 하고... 서평을 쓰면서 하고 싶은 이런 저런 말들을 늘어놓는 거죠 ㅎ 그러면서 스스로 위안도 받고 ㅎㅎ
 
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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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소설 『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라는 이름의 ​홍콩 작가이다. 국내에 13.67이라는 작품이 먼저 소개되었으나, 출간 시기는 『기억나지 않음, 형사』가 더 빠르다고 한다. 때문에 그 이후의 작품인 『13.67』이 재미나 완성도 면에서 더 높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나지 않음, 형사』부터 읽어 보기로 했다. 그래야 다음 작품인  『13.67』에서 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요즘 홍콩 작가뿐 아니라 중국 작가들의 걸출한 작품들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동안 추리소설은 대부분 일본 작품들을 많이 접해 왔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요즘이 참 즐겁다.

방 한가운데 두 구의 시체가 피범벅이 되어 누워있다. 남자와 여자. 부부인 듯, 심지어 여자는 잉태를 한 상태였다.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아이. 누가 이렇게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가? 서술자 '나' 쉬유이는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 다짐하며 처참한 사건 현장 한복판에 서 있다. 언뜻 죽은 여자의 눈이 살짝 움직인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고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한마디 "수고해요." 웃는 시체도 아닌 말하는 시체라니... 지독한 숙취인 듯 어지러운 머리를 감싸 쥐고 차 안에서 눈을 뜬 쉬유이. ​어제 어디서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주머니 속 수첩에 적힌 '둥청아파트'. 쉬유이는 지난주 홍콩섬 웨스턴 서덜랜드가에 있는 둥청아파트 3층에서 발생한 부부 살인 사건을 기억해 낸다. 다만 진범은 따로 있을 거라는 '묘한 위화감'만이 쉬 사라지지 않을 뿐 무거운 머리를 이끌고 근무지로 향한다. 어쩐지 주변 풍경들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이런 감각을 '미시감'이라 했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선택적으로 특정 기억을 잃거나 단기 기억상실증이 생기기도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하지만 이런 장애를 앓는 경찰관은 적잖기에 강한 의지로 극복하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웨스턴 경찰서 정문 앞에 도착한 쉬유이. 문득 전광판에 쓰인 날짜를 본다. 2009년 3월 15일. 이상하다. 그가 기억하는 올해는 분명 2003년이다. 그런데 왜? 그러고 보니 지나왔던 거리의 풍경도, 자신이 서 있는 경찰서의 모습도 어딘가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 6년 간의 기억이 없다. 도대체 지난 6년 동안 쉬유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쉬유이는 기억과 망각 사이를 오가며 '아청'이라는 잡지사 기자와 함께 '둥청아파트' 살인 사건을 다시 추적하기 시작한다.

소설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이렇듯 '나'라는 서술자 '쉬유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다만 중간중간<단락>이라는 파트가 내지의 색깔도 달리해서 '쉬유이'의 과거와 또 다른 인물 '옌즈청'의 이야기로 전개되기도 한다. 옌즈청 또한 쉬유이와 마찬가지로 어릴 적 끔찍한 사고의 영향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스턴트 맨으로 활동하며 가끔 단역으로 영화에도 출연하는 옌즈청은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 슬픔을 간직한 자아를 억제하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한 '또 다른 자아'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일종의 자기방어인 셈이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어버린 아버지와 이모. 이런 상처와 충격 속에 홀로 남겨진 옌즈청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고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린젠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둥청아파트' 살인범으로 현재 죽고 없다. 그가 범인일리 없다는 강한 생각과 함께 옌즈청 역시 '둥청아파트' 살인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사건에 한 발짝 다가간다. 하나의 같은 사건 선상 위에 서 있는 두 남자 쉬유이와 옌즈청! 

결국 '둥청아파트' 살인 사건의 진범은  쉬유이에 의해 밝혀지고 소설은 끝을 맺는가 싶었는데....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은, 아직 진범의 해석 과정조차 헷갈려 허우적 되고 있는 나에게 2연타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엔 '믿고 싶은 기억'과 '잊고 싶은 기억'이 있었다.

기억을 담당하는 우리의 뇌는 참으로 신비롭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 기억과 망각 사이. 우리가 인지하는 의식의 세계는 무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어떤 '진실'을 잊기 위해 기억을 조작하기도 한다. 그것이 '잊고 싶은 진실'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조작된 기억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찬호께이의 『기억나지 않음, 형사』 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인 뇌(기억)를 소재로 작가만의 문장력과 강한 흡입력으로 완벽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듯하다. 또 한편으론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홍콩의, 현재 도시문명 속에 매몰되어 버린 인간성에 대한 고발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잊어야만 하는, 잊고 싶은 기억의 편린들은 이런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이토록 천박한 도시다. 살인, 강도, 납치, 강간, 뭐든지 나와 상관없으면 시민들은 방관자적 입장에서 사건을 감상한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모두 냉혈동물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현대사회의 인간은 공감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좋게 말하면 이성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냉혹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정보는 더 쉽게 유통되고, 우리는 세상일에 점점 더 마비된다. 어쩌면 세상에 나쁜 일이 너무 많아서 냉혹해져야 했는지도 모른다. 한 겹 또 한 겹의 갑옷으로 자신을 감싸고서 이 `번화한 사회`에 적응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방관자적 입장에서 사물을 보아야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는다. <1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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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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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겁이 참 많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쓸데없는 망상 혹은 상상이 많다는 것이다. 안락한 공간인 집에 혼자 있을 때에도 온갖 망상들이 머릿속을 휘저어 놓곤 한다. 열린 문틈으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창가에 어스름하게 비친 그림자를 보곤 어떤 영혼이 내게 말을 걸기 위해 찾아온 것은 아닐까 등등.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불혹의 나이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이 정도면 중증이 아닐까 싶다. 휴. 심지어 고등학생 때 하교 후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밖에 놀고 있는 동생들을 찾아다니며 잡아오곤 했다. 덕분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운동장에 내가 나타나면 "야! OOO다! 튀어!" 나의 동생들과 동생의 친구들은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도망 다니기 바빴다. 조금 더 어렸을 땐 동생들을 쉬이 잡아올 수 있었지만 이후 머리가 커진 사춘기의 남동생들을 잡아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날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집에 들어가 방구석 모서리에 가만히 앉아 있곤 했다. 최소! 한 면은 벽을 등지고 있어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 가관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자다가 오밤중에 깨어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이 무서워 요에 오줌을 싼 것이다. <화장실이 밖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날 아침 동생들은 다 큰 누나가 실례를 했다며 엄청 놀렸고 엄마는 최근 누나가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것이라며 에둘러 말씀하셨던 '웃픈' 기억도 난다. 이 정도의 전적(?)을 갖고 있는 내가 호러 미스터리의 세계 <미쓰다 월드>에 겁도 없이 발을 디딘 것이다. 결국 공포심을 이긴 건 '호기심' 때문이다. 안다. 그 후유증이 얼마나 클지. 또 며칠 잠을 설칠 것이다. 그래서 낮에 읽었다. 오싹함과 기괴함은 있었지만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릴 두려움의 땀방울은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았다.

 

 <흉가>는 향후 출간될 <재원>(災苑), <화가>(禍家)와 더불어 미쓰다 신조의 '집 3부작 시리즈' 중 하나이다. 안락하고 편안해야 할 집이라는 공간이 두려움과 공포의 공간으로 탈바꿈되고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성인이라면 최소한 자신의 의지로 그 공간을 벗어나거나 피할 수 있겠지만 어린아이라면 부모인 어른의 결정에 의해 행동이 제약되기 때문에 <흉가>가 주는 공포는 조금은 벗어나기 힘든 공포감을 준다. 초등학생인 쇼타는 어릴적 몇 차례의 섬뜩한 기운을 느꼈는데 그때마다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전근으로 토쿄를 떠나 나라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된 날도 섬뜩한 기운을 느끼고 불안해 한다. 새로 이사를 가는 집은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논밭을 지나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쇼타의 눈에 그 산은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보여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집 주변엔 짓다만 듯한 목조 건축물과 땅만 다져 놓고 그대로 방치한 듯한 공간이 을씨년스럽게 자릴 잡고 있다. 마치 누군가의 방해로 공사가 중단된 듯한 느낌이다. 설상가상으로 쇼타는 집안에서 알 수 없는 형체들을 목격하게 되고, 동생 모모미는 산속에 살고 있는 어떤 존재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쇼타는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집과 산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코헤이라는 친구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마을을 지켜주는 영산에 뱀신이 살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젠 혼자가 아닌 코헤이와 함께 쇼타는 이 마을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코헤이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의 대학생 '코즈키 키미'의 뱀과의 교접을 연상시키는 기괴하면서도 에로틱한 행동을 목격하게 되고, 한때 이 마을의 지주였으나 지금은 몰락한 타츠미 가의 마지막 생존자 센 할머니의 집에 갇히기도 한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센 할머니의 집에선 한때 자신의 집에 살았었던 '토코의 일기'를 발견하고 일기의 내용을 통해 쇼타는 이 두려움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간다. 일기의 마지막 '산 윗집에 살면 안 돼!' '지금 당장 도망쳐!'라는 글귀는 쇼타에게도 그리고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하는 경고같아 조금은 섬뜩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 모모미가 쇼타의 방에 찾아와 '그들이' 지금 집에 와 있다고 말한다. 쇼타는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동생 모모미와 함께 거실로 내려가는데, 그곳에서 마주친 그들이란.... 바로!! 그리고 뒤이어 찾아오는 쇼타의 반전까지....!!

 

 낮에 읽었기에 망정이지 밤에 읽었다면 분명 보다 큰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난 후 다행히 큰 두려움 없이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밤이 찾아오자 불 꺼진 집안에서 느껴지는 정적은 책 속 이야기에 평소의 망상까지 더해져 잠자리에 들 땐 '작은 램프'를 켜고 자야만 했다. 눈을 감아 잠 속에 빠져들려 해도 자꾸만 어둠 속에 웅크린 누군가가 있는 것 같고, 책 속 '그것이' 스멀스멀 이불 위로 기어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으아아악!! 이렇듯; (평소의 망상은 지속되겠지만) 책을 읽고 머릿속에 그려 진 <흉가>의 영상들은 며칠간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휴. 그러면서 오늘 또 미쓰다 신조의 다른 책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의 세계는 입구는 있으나 출구는 없는 듯하다. 아 망상과 호기심이여!!!

가야 해....
저 어두운 숲 속에서 부르고 있어...
포장된 길에서 한 걸음 내딛자마자, 쇼타는 묘하게 부드러운
흙과 잡초의 감촉이 발바닥에 느껴졌다.
그야말로 무기물에서 유기물 위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마치 엄청나게 거대하고 흉측한 어떤 생물의 피부 위에 올라간 듯,
그런 소름 끼치는 감촉이 신발 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중략>
이 산의 더 깊고 깊은 곳으로........아주 깊은 곳으로.........
자신의 몸이 들어간다. 이끌려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 다시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61페이지>

잠자리에 들기 전 쇼타는 동쪽 창문으로 폐허 저택을 내려다 보았다.
해가 지고 나면 틈틈이 그 저택을 살펴보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불빛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터무니없이 기묘한 산, 흉측하고 검은 숲, 어쩐지 기분 나쁜 집,
집 근처에 방치된 세 구획의 주택지, 수수께끼의 노파,
소름끼치는 폐허 저택, 정체불명의 히히노, 왠지 무서운 사람의
형체............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고
소용돌이치고 뒤섞이는 가운데,어느새 쇼타는 잠이 들었다. <70페이지>​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영고성쇠라는 인생이자 시간의 흐름이자
사람의 운명이 아닐까? 반대로 말하면 그런 다양한 것들의 무수한
잔재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폐가다. <13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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