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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살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6
나카마치 신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
책을 읽은 지는 조금 됐는데 이제야 서평을 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건
아직까지 내겐 조금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냥 간단하게라도 쓰면 좋은데, 뭐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잘 써야겠다는
일종의 강박증이 있는 것 같다. 대충 쓸 바엔 아예 쓰지 말자.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내 서평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잘 써진 서평이냐? 그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읽은 책들은 꽤 있어도 서평을 쓰지 않아 기록되지 못한 책들이 많다.
간단하게라도 서평을 남겼더라면 내가 읽어왔던 책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또 지금과 같은 경우처럼 어떤 책들은 뒤늦게라도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펼치면 내용이나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희미해서 애를 먹기도 한다. 결국 책의 스토리를 되짚어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사서 고생, 두 번
일하는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쓰려는 이유는 역시 '기록' 때문이다.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책을 읽고 책을 벗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책을 벗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기록함으로써 잊힐 뻔한 소중한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남는다. 시간이
지나 잊어버리더라도 다시 그 기록을 들춰보면 그때의 책 속 이야기와 당시 느꼈던 감동들이 오롯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기록하지 않아, 참 많은 책들이 내 머릿속에서 잊혔다. 아쉽지만!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서평을 남겨야겠다. 그게 책에 대한 작은
예의라 생각한다.
나카마치 신의<천계살의>는 1982년 발표한 단편 <산책하는 사자(死者)>가 전신이 된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 <모방살의> (원제는 '그리고 죽음이 찾아온다.') 가 그러했듯, 미스터리 팬들의 뜨거운 요청으로
1989년 재간되었다가 2005년 <천계살의>라는 새 이름을 얻으며 <모방살의>, <공백살의>,
<삼막살의>, <추억살의>와 함께 '살의 시리즈'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탄생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나 문체가 현재의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다. 현재는<서술트릭>이라는
장르가 비교적 흔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생소했다. 바로
이<서술트릭>이라는 신 장르를 과감하게 선보인 선구자가
바로 나카마치
신이다. 다만 당시의 풍조로 <서술트릭>은 일종의
기만이자 미완성품으로 그의 소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소설 뒷부분 '작가의 말'에서 그의 아내가 한 말 "당신의 데뷔작이나 초기 작품은 당신이 죽은 뒤에, 분명히 높이 평가받을 날이 올
거야. 그때 내가 잘 지켜봐 줄게."처럼 작가 사후에 비로소 인정받게 된다. 이 부분도 안타깝지만 예언과도 같은 말을 한 아내가
작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로 인해 당시 아내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리운 마음으로 한 잔 아닌 몇 잔의 술을 매일 밤 즐기고 있다는 생전
작가가 남긴 이 말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책장을 덮은 후 한동안 먹먹하기도 했다.
<천계살의>를
읽기 전에 <서술트릭>이라는 얘기를 들었기에 한 장 한 장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읽었다. 아니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당했다'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범인을 예측한 것도 사실 책의 중반부를 한참 지나서였으니. 한때는 잘
나가는 작가였지만 최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야규 데루히코가 <추리세계> 잡지 편집부 하나즈미 아스코에게 연락을
해온다.
"범인 맞추기 릴레이
소설......"
"네. 어떤 작가가, 이 경우에는 제가 되겠군요. 제가
쓴 '문제편' 원고를 다른 작가에게 보여주고 추리하게 한 뒤에 '해결편'을 집필하도록 하는 겁니다. 즉 범인 관점으로 쓴 '문제편' 바로 다음에
상대 작가의-탐정 역이라고 불러야 할까요-'해결편'을 싣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에 범인의 눈으로 쓴 '해결편'을 다시 싣는 구성입니다. 뭐, 두
사람의 지혜 대결이라고 할 수도 있죠." (p.11)
흥미를 느끼는 아스코와 기획이 취소되더라도 자신의
원고만큼은 끝까지 읽어달라 부탁하는 야규 데루히코. 이후 <호수에 죽은 자들의 노래가......>라는 '문제편'을 아스코에게
전달하고 마지막 범인의 눈으로 다시 쓰는 '해결편' 집필을 위해 잠시 온천여행을 떠나겠다는 야규. 그리고 떠나기 전 '탐정 역'의 해결편은
탤런트 겸 소설가인 '오노미치 유키코'가 써주길 요청한다.
아스코는 예전부터 본격추리의 참맛은 밀실이라든가 알리바이 트릭의 재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의 곡예와 결말의 의외성에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야규에게도 한 적이
있다.(p.59-60) 야규의 원고는 아스코가 바라던 바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합격점을 줄 수 있다. 다만 아주 비슷한 작품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는 기분이 든다. 결국 야규의 작품은 실제 사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임을 알게 된다. 지명과 심지어 실명까지. 당시 이 사건은 미궁에 빠졌으나 작품 속 야규는 범인이 누군지 아는 것처럼 보인다. 이
상태로<추리세계>에 야규의 작품을 실을 수 없어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하지만
"죽어서 남몰래 웃는다"(p.90)라는 뜻 모를 유서를 남긴 채 자살했다는 야규의 소식이
전해진다. 순수창작이 아닌 실제사건을 작품 인양 써낸 야규의 목적과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그는 정말 진범이 누군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정말 자살을 한 것일까? 또한 해결편의 상대 작가로 지목한 '오노미치 유키코'와는 어떤 관계인가? 모든 의문을 안고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아스코는 야규의< 원고 속 실제 사건 내용을 바탕으로 하나씩 사건 현장>을 찾아간다. 아스코의 시점을 따라가며 추리하는
과정에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들을 찾을 때마다 보란 듯이 조롱하듯! 용의자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한다. 더 이상 범인으로 지목할 만한
사람이 없는데...라고 생각한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충격이란!! '혹시'나 하고 의심은 했지만 '설마'했던 일이 벌어질
줄이야......
『
"추리소설이란 문자 그대로 추리가 주체가 되는 소설이지만, 근래에는 추리하는 맛이 희박해진
추리소설들이 범람하고 있다. 나카마치 신은 추리소설의 원칙을 살려 연쇄살인과 수수께끼 풀이를 테마로 정교하고 대담한 트릭을 구사하며 독자에게
두뇌 싸움을 걸고 있다. 당신이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듯 읽어나간다면 작가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겠지만, 무운이 다하여 패배하더라도 가슴속에는
"이거 한방 먹었는걸!" 하는 쾌감이 남을 것이다. 아무쪼록 작가가 설치한 덫에 걸려들지 않기를. 』 - 아유카와 데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