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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틸유아마인 ㅣ 언틸유아마인 시리즈
사만다 헤이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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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범인'도 '범인'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이
더 눈에 밟혔다. 그들에게 '범인'은 사랑한 사람이고, 앞으로 더 사랑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범인'이 되어버린 '그 혹은 그녀'의 소식을
듣고 '남겨진 사람들'이 또다시 받게 될 상처를 생각하니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착잡하고 안타까웠다. 소설 <언틸유아마인>은
책표지에서 느낄 수 있듯 아이를 가진 행복한 여자의 모습 혹은
그와는 반대로 아이를 갖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여자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그림자를 잔인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모습으로 그려낸<범죄스릴러>이다.
<언틸유아마인>은 세 여자의 시점이 교차되며 서술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워킹맘 '클라우디아'이다. 그녀는 제임스와 결혼 전
여러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와의 사이에 소중한 딸을 품게 되었다. 제임스를 처음 만난 건 일 때문에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였다. 아내를 잃은 제임스와 엄마를 잃은 쌍둥이들.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사랑하게 된 클라우디아와 제임스. 결국 클라우디아는 그들과 한
가족이 된다. 남편 제임스는 해군으로 장기간 바다에 나가 있곤 하는데, 자신이 없는 동안 만삭인 아내와 쌍둥이들을 보살필 유모를 고용하게
되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조 하퍼'를 만나게 된다.
『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삶 아니었나? 완벽한 가정생활. 어린 시절부터 늘 꿈꾸던 삶.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 나를 엄마로
받아준 두 아들, 탄탄한 직장, 장차 태어날 딸. 인테리어 잡지를 옮겨 놓은 듯한 멋진 집. 』 <p.76> 『사실 제임스는 엘리자베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은 직후에도 웃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를 알만큼 알고 나니, 그것이 그 사람 나름의 대처 방식임을 깨달았다. 엄청난 스트레스에 직면한
사람은 그 스트레스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대해야 이겨낼 수 있다. 일종의 자기방어인 셈이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거기에 의존했다. 우린 둘 다 실연이나 이별의 아픔으로 힘든 상태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 <p.374>
두 번째
주인공은 클라우디아와 제임스 가정에 고용된 유모 '조
하퍼'이다. 그녀는 오자마자 쌍둥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부부의 마음도 사로잡는다. 결국 주말까지 클라우디아와
제임스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어딘지 의심쩍다. 그건 클라우디아도 독자도 마찬가지다. 클라우디아가 집을 비우면 온
집안을 뒤지고, 클라우디아와 마주할 땐 유독 그녀의 만삭인 배를 의식하기도 한다. 첫날 이 집에 왔을 때 가방이 열리며 얼핏 보였던 임신
테스트기를 클라우디아에게 들키기도 했다. 클라우디아는 남편 제임스에게 불안한 마음을 털어 놓지만 임신 때문에 예민해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뿐이다. 얼마 후 제임스는 장기간 항해를 위해 떠나게 되고 만삭인 자신과 어린 쌍둥이들만 남은 이 상황에서 그녀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가는데...
『 나는 옷장 구석에서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안쪽 주머니의 지퍼를 열고 푸른색과
흰색으로 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클리어 블루 임신 테스트기였다! 99%의 정확도를 자랑한다는 임신 진단 키트이다. 두 번이나 검사를 해봤지만
임신은 아니었다. 다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남들은 쉽게 하는데, 난 왜 이리 어렵단 말인가? 공허감과 무력감에
휩싸였다. 』 <p.100>
『
생각만 해도 겁이 났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러자고 대답했다. 거기 가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임산부에게 둘러싸일 것이다. 다들 모성이라는 덫에 걸려든 걸 후회하면서 두세 살 난 아이들을 우리에 가둬 놓고 거대한 배를 내민 채
수다를 떨겠지. 사방에
임산부가 널려 있었다. 그게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더 허전하고 더 외롭게 했다. 나 자신이 더 쓸모없게
느껴졌다. 전에는
가뿐히 해치웠던 일도 이젠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가진 않을 거라고 나 자신에게 타일렀다. 이런 식으로 영원히 살진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다. 』 <p.111>
세 번째 주인공은 여형사 '피셔'이다. 그녀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같은 형사인 남편과 함께 조사하고 있다. 만삭인 임산부를 상대로 배를 갈라 산모와 아이 둘 다 죽게 된 아주
잔인한 사건이다. 사건 해결도 해결이지만 그녀에겐 가정사도 문제다. 남편의 불륜고백, 10대 딸아이의 가출과 결혼 선포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한 것이 없다. 이런 와중에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을 하나 둘씩 찾아
나서는데...
소설 <언틸유아마인>은 세 여자의 시점을
번갈아 읽어나가며 그녀들의 내면을 엿보게 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며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일련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간다. 마치 떨어져 있던 각각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이 되어가는 것처럼. 내 눈앞에 펼쳐진 완성된
그림을 보았을 때, 여지껏 믿었던 혹은 의심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충격이란! 어쩌면 처음부터 그녀들을 의심하고, 믿었던 건 나 자신일 뿐이지,
그녀들은 그저 자신의 삶 일부분을 이야기했을 뿐이리라.
뱃속 아기를 잃을 때마다 내 일부분도
죽었다. 마틴은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까운 친구들은 물론이요, 내 몸의 일부를 떼어낸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기를 세 번이나 사산했다. 그리고 속옷에 피를 흘리며 유산한 숫자는 세는 것도 포기했다. 그런 일을 다 겪으면서 내가 겉모습만 여자일
뿐, 아기를 열 달 동안 품지도 못하는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억장이 무너지고 피눈물을 쏟아냈다. <p.400>
여자이기 때문에 삶의 어느 과정에선 좋든 싫든 마주해야
하는 것.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뜻과 어긋날 때 비극은 시작된다. 한순간의 실수로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질 수도 있고, 너무나 간절히 원하지만 쉽게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내면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주변의 시선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소설 속 표현처럼 사방에 임산부가 널려 있는 곳. 갖지 못한 자에겐 힘들고 허전하고 외롭고 심지어 자신의 몸뚱어리가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SNS를 도배한다. 누군가에겐 희극이 누군가에겐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아이를 갖는 다는 것은 분명 축복받을 일이나 이렇게 얄궂게도 두 얼굴을 가진 것이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자이기에 여자라서 짊어져야 할
숙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