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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ㅣ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3월
평점 :
+
나는 겁이 참 많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쓸데없는 망상 혹은 상상이 많다는 것이다. 안락한 공간인 집에 혼자 있을 때에도 온갖 망상들이 머릿속을 휘저어 놓곤 한다. 열린 문틈으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창가에 어스름하게 비친
그림자를 보곤 어떤 영혼이 내게 말을 걸기 위해 찾아온 것은 아닐까 등등.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불혹의 나이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이 정도면 중증이 아닐까 싶다. 휴. 심지어
고등학생 때 하교 후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밖에 놀고 있는 동생들을 찾아다니며 잡아오곤 했다. 덕분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운동장에 내가 나타나면 "야!
OOO다! 튀어!" 나의 동생들과 동생의 친구들은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도망 다니기 바빴다. 조금 더 어렸을 땐 동생들을 쉬이 잡아올
수 있었지만 이후 머리가 커진 사춘기의 남동생들을 잡아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날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집에 들어가 방구석 모서리에
가만히 앉아 있곤 했다. 최소! 한 면은 벽을 등지고 있어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 가관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자다가 오밤중에 깨어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이 무서워 요에
오줌을 싼 것이다. <화장실이 밖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날
아침 동생들은 다 큰 누나가 실례를 했다며 엄청 놀렸고 엄마는 최근 누나가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것이라며 에둘러 말씀하셨던 '웃픈' 기억도
난다. 이 정도의 전적(?)을 갖고 있는 내가 호러 미스터리의 세계 <미쓰다 월드>에 겁도 없이 발을 디딘 것이다. 결국 공포심을 이긴 건 '호기심' 때문이다. 안다. 그
후유증이 얼마나 클지. 또 며칠 잠을 설칠 것이다. 그래서 낮에 읽었다.
오싹함과 기괴함은 있었지만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릴 두려움의 땀방울은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았다.
<흉가>는 향후 출간될
<재원>(災苑),
<화가>(禍家)와 더불어 미쓰다 신조의 '집 3부작 시리즈' 중 하나이다. 안락하고 편안해야 할 집이라는 공간이 두려움과 공포의 공간으로
탈바꿈되고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성인이라면 최소한 자신의 의지로 그 공간을 벗어나거나 피할 수 있겠지만 어린아이라면 부모인 어른의 결정에 의해
행동이 제약되기 때문에 <흉가>가 주는 공포는 조금은
벗어나기 힘든 공포감을 준다. 초등학생인 쇼타는 어릴적 몇 차례의 섬뜩한
기운을 느꼈는데 그때마다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전근으로 토쿄를 떠나 나라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된
날도 섬뜩한 기운을 느끼고 불안해 한다. 새로 이사를 가는 집은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논밭을 지나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쇼타의 눈에 그 산은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보여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집 주변엔 짓다만 듯한 목조 건축물과 땅만 다져 놓고 그대로 방치한 듯한 공간이
을씨년스럽게 자릴 잡고 있다. 마치 누군가의 방해로 공사가 중단된 듯한 느낌이다. 설상가상으로 쇼타는 집안에서 알 수 없는 형체들을 목격하게
되고, 동생 모모미는 산속에 살고 있는 어떤 존재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쇼타는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집과 산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코헤이라는
친구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마을을 지켜주는 영산에 뱀신이 살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젠 혼자가 아닌 코헤이와 함께 쇼타는 이 마을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코헤이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의 대학생 '코즈키 키미'의 뱀과의 교접을 연상시키는 기괴하면서도 에로틱한 행동을 목격하게 되고, 한때 이 마을의 지주였으나
지금은 몰락한 타츠미 가의 마지막 생존자 센 할머니의 집에 갇히기도 한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센 할머니의 집에선 한때 자신의 집에 살았었던 '토코의
일기'를 발견하고 일기의 내용을 통해 쇼타는 이 두려움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간다. 일기의 마지막 '산 윗집에 살면 안 돼!' '지금 당장 도망쳐!'라는 글귀는 쇼타에게도 그리고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하는 경고같아
조금은 섬뜩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 모모미가 쇼타의 방에 찾아와 '그들이' 지금 집에 와 있다고 말한다. 쇼타는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동생 모모미와 함께 거실로 내려가는데, 그곳에서 마주친
그들이란.... 바로!! 그리고 뒤이어 찾아오는 쇼타의 반전까지....!!
낮에 읽었기에 망정이지 밤에 읽었다면 분명 보다 큰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난 후 다행히 큰 두려움 없이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밤이 찾아오자 불 꺼진 집안에서
느껴지는 정적은 책 속 이야기에 평소의 망상까지 더해져 잠자리에 들
땐 '작은 램프'를 켜고 자야만 했다. 눈을 감아 잠 속에 빠져들려 해도 자꾸만 어둠 속에 웅크린 누군가가 있는 것 같고, 책 속
'그것이' 스멀스멀 이불 위로 기어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으아아악!! 이렇듯; (평소의 망상은 지속되겠지만) 책을 읽고 머릿속에 그려
진 <흉가>의 영상들은 며칠간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휴. 그러면서 오늘 또 미쓰다 신조의 다른 책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의 세계는 입구는 있으나 출구는 없는 듯하다. 아 망상과 호기심이여!!!
가야 해.... 저 어두운 숲 속에서 부르고 있어... 포장된 길에서 한 걸음 내딛자마자, 쇼타는 묘하게 부드러운 흙과 잡초의 감촉이 발바닥에 느껴졌다. 그야말로 무기물에서 유기물 위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마치 엄청나게 거대하고 흉측한 어떤 생물의 피부 위에 올라간 듯, 그런 소름 끼치는 감촉이 신발 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중략> 이 산의 더 깊고 깊은 곳으로........아주 깊은 곳으로......... 자신의 몸이 들어간다. 이끌려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 다시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61페이지>
잠자리에 들기 전 쇼타는 동쪽 창문으로 폐허 저택을 내려다 보았다. 해가 지고 나면 틈틈이 그 저택을 살펴보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불빛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터무니없이 기묘한 산, 흉측하고 검은 숲, 어쩐지 기분 나쁜 집, 집 근처에 방치된 세 구획의 주택지, 수수께끼의 노파, 소름끼치는 폐허 저택, 정체불명의 히히노, 왠지 무서운 사람의 형체............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고 소용돌이치고 뒤섞이는 가운데,어느새 쇼타는 잠이 들었다. <70페이지>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영고성쇠라는 인생이자 시간의 흐름이자 사람의 운명이 아닐까? 반대로 말하면 그런 다양한 것들의 무수한 잔재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폐가다. <13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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