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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ㅣ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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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버지의 실험실을 놀이터 삼아 놀았던 호프 자런에게, 실험실이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안전함을 제공해 준 것이 과학이었다. 아버지에게 과학자라는 것이 단순한 직업이 아닌, 정체성이자 신분이었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과학자란 다른 꿈을 꿀 수 없는 뿌리 깊은 본능이자 유일한 꿈이었다. 과학은 그녀에게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느끼는 행복과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랩걸은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하나의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성장의 과정을 연상케 한다. 마찬가지로 호프 자런, 그녀 자신이 과학자로서 뿌리를 내리고 한차례의 성장통을 겪으면서 마침내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되는 성장의 과정들이 식물의 삶과 그녀의 삶으로 교차되며 이야기된다.
<뿌리와 이파리>
숲을 걷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나무가 만들어 낸 숲의 신비한 기운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우거진 나무의 우듬지를 찬탄의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발아래는 잘 쳐다보지 않는다. 땅속에 나무를 꿈꾸는 수많은 씨앗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들은 모두 그다지 가망은 없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기회를 기다린다. 눈에 보이는 나무가 한 그루라면 땅속에서 언젠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열망하며 기다리는 나무가 100그루 이상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아버지의 영향, 어머니와 함께 꾸몄던 정원, 병원 일에 대한 환멸감 그리고 과학자로서 그녀 인생의 소울 메이트가 된 빌과의 만남 등을 통해 호프 자런의 삶은 단단한 땅에 더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녀 인생의 첫 실험실에서, 과학자로서 첫 발견을 했을 때 벅차오르던 감정들, 그러나 연이어 행한 실험에선 쓰디쓴 실패의 경험을 맛봐야만 했던 그녀. 새로운 사고방식이 절실했다. 이방인의 입장이 아닌, 식물들의 세계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입장. 결국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은 그녀로 하여금 그녀 인생에, 더 많은 잎을 키울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 가루가 오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는 이 우주에 단 한 사람, 나뿐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나, 작고 부족한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바로 이날을 위해 일하고 기다려왔다. 그러나 그 큰 만족감에도 그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소한 일 혹은 엄청나게 재미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는 작은 발견에 눈물을 흘리는 나 자신이 창피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훔쳤다. 창밖을 보니 캠퍼스가 떠오르는 태양의 첫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다른 어느 누가 나처럼 숨이 멎을 듯한 이 아름다운 여명을 맞고 있을까 생각했다.
<나무와 옹이>
인류가 태동하기 훨씬 전, 이 지구 상의 오랜 주인은 식물들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적(곤충, 곰팡이 등) 과의 전투와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고, 더 진보된 형태로 진화하여 왔다. 그러나 인간이 먹이 사슬 맨 위에 군림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들의 삶은 황폐화되고 생태계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즉, 살지 않아야 할 곳에 사는 식물들이 생겨난 것이다. 바로 살지 않아야 할 곳에 번창하는 식물, 잡초다. 인간들은 잡초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잡초가 많이 자란 것을 보면 충격을 받은 척, 화가 나는 척한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 건강한 숲을 헤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나무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창밖을 내다보면, 빈약한 나무 몇 그루가 있을 뿐,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도로는 자가증식하는 균처럼 뻗어나가며, 식물들의 설자리를 빼앗고 있다. 인간은 결코 이들과 동떨어진 삶을 살 수 없다. 그 결과로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각종 자연재해와 질병 외에 더 나은 것이 있단 말인가? 나라에서도 환경과학 분야에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눈앞의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고, 별로 인기가 없는 분야에 대해선 제대로 된 지원은커녕, 예산을 동결하기까지 하는 것은 똑같은 모양이다. 호프 자런, 그녀도 끊임없이 자신을 압박하고, 초조하게 만들고, 무엇보다 연구의 걸림돌이 되는 재정적 문제가 늘 그녀를 괴로움에 시달리게 했다. 심지어 연구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그녀 스스로를 잠식시키고, 급기야 극에 달한 광기는 몸과 마음, 정신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그녀 인생의 소울 메이트인 빌이 그녀와 함께 했다. 초라한 실험실에서도, 수많은 곳을 떠돌며 현장실습을 나갈 때에도, 지속적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녀 자신의 열정도 있었을 테지만, 빌 그가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아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가 절대 연구 기금을 못 따게 되면? 내가 능력이 없으면?
우리가 가진 모든 걸 잃게 되면 어떡하지?" 나는 흥분해서 횡설수설했다.
"이렇게 되면, 저렇게 되면. 그런 말은 집어치워. 그런 말 해봤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빌이 소리쳤다. "연구 기금을 못 따면 어떡하냐고?"
여기 들어올 수 있는 열쇠가 우리 손에 있잖아. 내일 가서 그 열쇠들, 복사해둘게. <....> 이 거지 같은 실험실, 한 번 만들어본 걸 두 번 못 만들라는 법은 없어. 아니면 모든 걸 집어치우고 야반도주해버릴 수도 있지. 옆 타운에서 넌 손풍금을 치고 나는 모자 들고 동전을 거두면 되잖아."
그의 훈계에 위로를 받고 나는 희미하게 웃기 시작했다.
<꽃과 열매>
대부분의 꽃들은 자가 수정으로 씨를 맺고, 새로운 개체를 탄생시키지만 어떤 종이 계속 대를 잇고 진화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타가 수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꽃가루는 30센티미터, 혹은 3미터, 혹은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씨방에 성공적으로 도착해야 한다. 씨방 하나를 수정시켜 씨로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꽃가루 단 한 톨이다. 이렇듯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후손을 남긴다. 과학자로서 뿌리를 내리고 많은 이파리를 길러내고, 크고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기 위해 한 차례 크나큰 성장통을 겪은 그녀도, 사랑하는 남자 클린트를 만나 여성으로서 하나의 소중한 생명을 품게 된다. 그러나 임심 후 자신의 연구실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소우주인 자궁 속을 꽉 채우고 있는 사랑의 결실로 행복해야 함을 알면서도, 인생의 일부분이 끝날 것 같은 상실감에 오랫동안 깊이 슬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믿었다. 눈물로 뿌린 씨는 기쁨으로 거두듯, 어쩌면 자신도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고.
나와 아들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아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답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이제는 내 사랑이 아이가 이해하기에 너무 큰 건 아닐까 걱정한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알 필요가 있고, 나는 내가 느끼는 이 풍요로운 사랑을 모두 표현할 능력이 없어 무력감을 느낀다. 이제 나는 내 아들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렸던 기다림의 끝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아이는 불가능한 동시에 불가피했다는 것을 깨닫고, 누군가의 엄마가 될 단 한 번의 기회가 한 번 내게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문득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구절이 생각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알의 작은 씨앗이 땅속에서 움트길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 그 자신이 썩어져 새싹을 틔워내고 잎이 무성한 나무로 성장하여,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찬란한 고통이 만들어 낸, 기적과도 같은 자연의 선물, 나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은 조용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인류 문명은 4억만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생명체를 단 세 가지로, 즉 식량, 의약품, 목재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해버렸다. 우리의 끊임없고 점점 더 거세지는 집착으로 인해, 이 세 가지를 더 많이, 더 강력하게, 더 다양한 형태로 손에 넣고자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식물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 황폐의 규모는 수백만 년 동안의 자연재해가 끼친 피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1990년 이후 매년 우리는 80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어서 그루터기만 남기고 있다. 이런 속도로 건강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을 계속하면 지금부터 600년이 지나기도 전에 지구 상의 모든 나무들이 그루터기만 남을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 엄청난 비극에 대해 누군가는 걱정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