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 개정판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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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이별이란 정말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 그렇지만 거기서 멈춰버릴 수는 없는 거란다."

"난 행복한데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그냥 당신 곁에 있기만 하면 되는 걸요."

 

 

 

1년 전 사랑하는 아내이자 엄마를 잃은 다쿠미와 유지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은채 자신들의 별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이곳이 아닌 다른 별 '아카이브'라는 별에 살고 있다고 다쿠미는 자신의 아들 '유지'에게 이야기해준다. '아카이브'라는 별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사후세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어쩌면 '아카이브'라는 별의 존재는 남겨진 자들의 그리움이 쌓여 가슴속에 만들어진 별일 것이다. '미오'가 병으로 이 세상을 등진 후 다쿠미와 유지는 자신들의 기준에선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손길이 멈춰버린 그들의 생활공간은 정리되지 않은 것들로 가득차 있다. '미오'는 죽기 전 "다시 비의 계절이 돌아오면 둘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러 올 거야."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미오'는 비오는 계절, 다쿠미와 유지앞에 나타난다. 그렇게 기묘한 6주간의 동거가 시작된다. '미오'는 예전 그대로의 미오지만 기억을 잃은 채 그들에게 돌아왔다. 다쿠미는 그렇게 돌아온 그녀의 존재가 믿어지지 않지만 '유령'이라고 하기에는 오히려 그 단어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질 만큼 '미오'는 다쿠미가 사랑했던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미오'그 자체이다.

 

그녀는 숨을 쉬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문득 그녀의 마지막 나날들이 되살아나서 가슴에 통증이 내달렸다.

다시 한 번, 나는 잃어야 하는 것일까?

곁에 있고 싶다. 내내, 앞으로도 계속, 내가 죽을 때까지.

그녀가 유령이라도 상관없다. 우리의 일을 잊어버렸다 해도, 그래도 괜찮다.

곁에 있어만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비가 오는 계절에 돌아왔지만, 비가 오는 계절에 떠났던 그녀이기에 또 다시 '미오'를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워 다쿠미는 기억을 잃은 미오에게 거짓말을 한다. 지금까지 계속 함께 살아왔으며, 당신이 아파서 잠시 기억을 잃은 것 뿐이라고. 그리고 '유지'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엄만, 우리와 함께 주욱 함께 해왔던 것이라고. 미오가 기억을 되찾으면 다시 '아카이브' 별로 돌아갈지도 모르니까...그렇게 공범이 된 다쿠미와 유지의 행동과 말투는 '미오'에게 이상하게 어설프고, 낯설어 보이지만 '미오'가 돌아온 그들의 생활공간은 다시 예전처럼 정리되고 생기를 찾아간다. 그리고 '다쿠미'는 '미오'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중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되어 결혼하기까지의 과정들을 이야기해준다. '다쿠미'가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는 아련한 옛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일상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그들이 서로를 잊지 않고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편지였다. 책상 머리맞에 앉아 서로를 생각하며 편지의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은 완성되지 않은 밑그림에 색을 덧입혀 나가는 작업자의 신성한 의식처럼 고결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기억을 잃은 '미오', 그녀없이 1년의 공백을 보낸 '다쿠미'는 오늘 처음 만난 연인들처럼 다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랑을 하게 된다.

 

"잘 잤어요?라든가 "잘 자요", "음,맛있네"라든가 "괜찮아?", "푹 잤어?", "이리 와 봐" 같은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말들 모두에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 이런게 부부로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예전,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러던 어느 날 '미오'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다쿠미와 유지가 숨긴 사실에 대해 모든 것들을 알게 된다. '다쿠미'의 꿈은 소설가였는데, 자신과 '미오','유지'에 대해 썼던 글들을 '미오'가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곧 비의 계절도 끝나가고 있다. 만남엔 늘 이별이 존재한다. 그 어떤 것도 이별없는 만남은 없다. '미오'가 사실을 알았든, 알지 못했든 비의 계절이 끝나가는 날. 그녀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게 된다. 왜 그래야만하는지...그것은 '미오'도, '다쿠미'도 알지 못한다. 오직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 어떤 존재만이 알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거야. 아무리 이별이 거듭되어도, 아무리 먼 곳으로 흘러가도, 그래도 살아가."

 

처음 '다쿠미'와 '유지'곁을 떠났던 날처럼 '미오'는 다시 그들의 곁을 떠났다. 처음이든, 마지막이든 이별은 몇번을 해도 슬프다. 다른 것과 달리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다. '다쿠미'와 '유지'도 두번째 그녀와의 이별을 맞이한다. 다만, 차오르는 슬픔만큼 그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이 자주 걸었던 이슬젖은 숲속에서의 함께한 사진속 그들은 행복하게 웃고 있다. 어쩌면 '다쿠미'와 '유지'는 비가 오는 계절에 그녀가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아련한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쿠미는 공원에서 자주 얘기를 나누었던 '농부르 선생'에게 한통의 편지를 전달받게 된다. 그 편지는 6주간의 기이한 동거기간 동안 '미오'가 쓴 편지이다. 어릴적 자신들의 연애시절 '미오'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눈을 뜬 건 비오는 숲속 허물어진 공사장의 공터였다. 거기서 '미오'는 '다쿠미'와 '유지'를 만나게 된다. 비오는 계절. 그리고 시작된 6주간의 기이한 동거. 그녀는 8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뛰어 미래의 시간속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 '미오'는 자신앞에 다가올 모든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가 비록 중간에 헤어졌지만,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될 거란 것, '유지'라고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을 만나게 될 거란 것, 자신이 28살의 나이에 죽게 될 거란 것, 그리고 비오는 계절에 남편과 아이를 만나기위해 다시 찾아올 것이란 것까지... 어쩌면 그녀는 그 순간 다른 삶을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보았던 그 삶을 선택했다. 그것을 알기에 그녀는 다시 '다쿠미'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어릴 적, 다쿠미는 어떠한 이유로 미오에게 이별을 선언한다. 이 부분은 책을 통해!) 이 책의 마지막 반전이라면 반전일까.......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가야지요.

호수 역에서, 분명 그 사람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나의 멋진 미래를 안고서.

기다려주세요, 나의 도련님들.

 

지금, 만나러 갑니다.

 

평범한 일상속에 기묘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빛깔들로 채색된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을 아련하게 하는 소설이였다.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아카이브'별에서 자신들만의 또 다른 삶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도 그 별에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한 걸음 먼저 아카이브 별에 가 있을게.

언젠가 또 다시, 거기서 만나요.

내 옆자리는 꼭 비워둘 거니까.

그럼, 부디 몸조심하고.

유지를 잘 부탁해.

 

정말로 고마워.

사랑해.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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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
이채윤 지음 / 큰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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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역사에 관심이 많다보니 고려의 여인으로 원나라의 황후가 된 기황후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고 신기하여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관련 책들을 찾아 보았지만 턱없이 부족하여 그냥 몇 줄의 간단한 설명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러나 기황후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그녀의 삶이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관련 책들이 여러 출판사에서 많이 나오게 되었다. 내가 만나본 책은 한권으로 된 큰나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이채윤 작가의 책이다. 무엇보다 철저한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기에 더욱더 믿음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몽골제국의 시조인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가 원나라인데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할 만큼 그들의 힘은 막강했다. 중국의 송이 멸명하고 남송마저 그들의 발아래 굴복하고, 고려 또한 원나라의 침략으로 나라가 거의 황폐해지지만 다른 나라와는 달리 고려는 오랜 대몽항쟁으로 다행히 송과 같은 운명의 길은 걷진 않았다. 그러나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하면서 고려라는 나라의 자주적, 독립적 주권을 상실하게 된다. 바로 그즈음 원은 투항한 남송 군인들의 아내감으로 고려에 공녀(공물로 바치는 여자)를 요구했는데 그 비운의 시기에 기황후, 기순은 태어났다.

 

하지만 원나라의 공녀 요구는 1275년 충렬왕때부터 1355년 공민왕까지 약 80년간 행해졌다고 한다. 어쨌든 그녀 또한 공녀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는데 그녀가 공녀로 차출되어 고려를 떠나 원나라로 향하는 여정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씨가문은 대대로 국가의 녹을 먹는 높은 벼슬을 지냈던 명문가였으나 원에 아부하는 권문세족이 발현하면서 청렴결백했던 그들 가문은 된서리를 맞게 된다. 그런 명문가에서 태어난 기순이였기에 여성이지만, 시문에 능했고, 비파, 몽골어까지 할 줄 아는 영리하면서도 아름다운 미모를 갖춘 여성이였다. 16세라는 어린나이에 고국과 가정을 등지고 타국을 향해 그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게 되지만 그녀는 마냥 슬퍼하기 보다는 그 운명을 받아들여 원에서 자신만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리라 결심한다. 

 

그녀가 기황후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녀 자신의 노력과 운도 있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그녀의 오라버니 기철이였다. 공녀의 신분에서 궁녀로, 그리고 제 2황후에서 마침내 제 1황후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은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마치 우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담담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듣는 느낌만 들 뿐 그녀의 그 파란만장한 삶과 그녀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의 질곡 깊은 이야기들은 보통의 역사장편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이감과 몰입의 재미는 조금은 반감이 되는 느낌이다. 몽골제국의 전통을 중시하는 몽골파와 중국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통치할 것은 주장하는 한지파와의 전투씬, 원나라 내부에서 발생하는 여러 반역사건들, 홍건의 난과 같은 사건 및 전투씬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 계기는 될지 몰라도 그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나 긴박함은 다소 떨어지는 경향도 있다. 다만 기황후라는 인물외에 그녀를 도운 고려출신의 환관들 박불화,고용보,원나라의 유능한 인재 톡토 등 여러 인물들을 알게 된 사실은 새로운 흥미를 가져다 주었다. 

 

기황후 그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지만 어쨌든 그녀는 일개 공녀에서 대원제국의 황후에까지 오른 인물이며, 그녀의 몸은 비록 원나라에 있었지만 언제나 고려를 그리워했으며 자신의 조국을 잊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원나라의 고려에 대한 지배력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고려가 자주적인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고, 공녀라는 제도를 없앤 것도 그녀이다. 마지막 고려의 개혁군주인 공민왕이 등장하면서 비록 같은 고려인이지만 서로의 입지와 처해있는 상황이 달랐던 그 둘 사이에 배신 및 감정의 굴곡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였으리라. 황태자를 낳은 기황후의 입장에서는 점점 정사를 돌보지 않는 황제를 대신해 자신의 아들을 지키며 그 아들의 입지를 단단히 해야만하는 황후의 의무와 어머니로써의 결단도 필요했던 시기이다. 그녀는 고려가 자주적으로 독립되기를 희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너저가는 대원제국도 일으켜야만 했다. 내부적으로 곪아가고 있던 대원제국은 결국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에 의해 북쪽의 초원으로 내몰리게 된다. 역사는 그런 원나라를 초원으로 내몰린 초라한 제국으로 묘사했지만 1370년대 무렵에는 명나라가 장악한 중원의 땅보다 2배가 넘는 땅을 차지했다고 한다. 황제 순제가 죽고 중원이 아닌 초원에서 자신의 아들을 황제에 봉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후 그녀의 마지막 삶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려여인으로서 자신의 나라를 사랑했지만 원제국의 모후로써의 책무 또한 져버릴 수 없는 운명이였기에 역사는 그녀를 고려에서도 원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여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삶이 여성으로써, 원나라의 황후로써, 고려의 딸로써 다시 재조명 되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먼저 오래전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다간 그녀의 얼굴이, 그녀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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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 내 안의 여신을 발견하는 10가지 방법
현경 지음, 곽선영 그림 / 열림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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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잠깐의 쉼도 없이 몰입되어 읽었다. 미래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처럼 지금 내 삶속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여신의 힘을 깨울 수 있도록 하기위해 나에게 도착한 편지같았다. 저자 현경은 진보적 신학자로 모든 종교 및 문화를 품을 수 있는 통합적 사고를 소유하고 있는 여성, 환경, 평화운동가이기도하다. 그녀의 '튀는 유전자'를 물려 받은 조카 '리나'에게 편지글의 형식으로 쓴 책이지만, 모든 여성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하다. 나는 저자 현경이 사랑을 담아 '리나'라고 부르는 책의 첫 문장에 내 이름을 넣고 책을 읽었다. 이 책이 나온지는 벌써 12년이 흘렀다고 한다. 그때 이 책을 만나보았더라면 내 삶의 작은 부분이라도 어떤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을 나는 행운이라 생각한다. 기독교의 교리 중 십계명이라는 것이 있는데, 미래에서 온 편지에도 내 안에 잠든 여신을 깨우기 위한 10계명이 나온다. 각 한가지의 계명이 끝나는 마지막 장에는 그 계명들을 지키고 익히는데 참고가 될 영화, 책, 음악, 명상방법들을 소개한다. 조금씩 시간을 내여 그녀가 추천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명상을 꼭 해볼 것이다. 그러면 이제 그 10가지 계명들을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다.

 

첫번째 여신은 자신을 믿고 사랑한다.

: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가부장제안에서 여성은 늘 억압과 차별, 종속된 삶을 살도록 강요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야 여성들의 권위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차별은 존재하고 있다. 진정한 여신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들을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학습된 무기력성'으로부터 탈피해 어떤 일이 있어도 나 자신을 사랑해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긍정을 의미하며 이러한 사랑 즉 자기긍정이야 말로 내 자신을 이끄는 원천이며 힘인 것이다.

 

두번째 여신은 가장 가슴 뛰게 하는 일을 한다.

: 나는 누구이며, 이 세상에 왜 왔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장이다. 결국 내 안의 여신을 깨우기 위해서는 여성스스로 가장 자신있고, 가장 가슴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함으로써 그 일을 통해 주체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좋은 '신붓감', 잘 팔리는 '여자'가 되지 않기위해서 말이다. 저자가 제시한 방법들 중에 "상상으로 마음속에 그림 그려보기"가 있는데 바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하고 큰 꿈을 꿔보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그런 제약조건들은 다 무시한 채 말이다. 그래야 "처음에 호랑이 꿈을 꿔야 나중에 고양이라도 나오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너의 황홀함을 좇아가.

너의 가슴을 좇아가.

너의 사랑을 좇아가.

그러면,

우주가 네가 춤출 수 있도록 음악을 연주할 거야.

 

세번째 여신은 기,끼,깡이 넘친다.

: 기는 곧 생기이며 생명력이다. 가부장제의 틀안에서 '여자가 기가 너무 쎄면 안 된다'는 말로 우리 여성들은 자신의 기를 죽이고 살아와야했지만 그것은 곧 생기잃은 마른 나무와 같다. 이제는 그 기를 마음껏 발산하며, 끼로 승화시켜, 업악의 경계선을 허물 깡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자야한다. 자신만의 비전을 찾아보고 두려워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는 도전과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자기 고유의 리듬이 그대로 몸과 감성에 살아 있고, 자기 안에 강물이 흐르는 여자. 불꽃처럼 타오르는 정영로 횃불처럼 우리 길을 뚫어주는 여자. 그리고 자기의 성(Sexuality)을 즐거워하고, 성적인 힘을 키워가는 여자가 진짜 기,끼,깡이 있는 여자다.

 

네번째 여신은 한과 살을 푼다.

: 여성들이 갖춰야 할 미덕 중에 하나가 바로 화가 나더라도 화를 안으로 삭이는 것이다. 그것을 '인고의 미덕'으로 여겨왔다. 결국 그 화가 쌓여 여성들에게 우울증, 암과 같은 질병을 가져다 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진정한 여신은 화, 그러한 분노를 삭이는 것이 아니라 풀고 해결해야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사회의 부정의에 대해 분노할 때 그 분노는 내 안에서 삭혀지는 분노가 아니라 바깥으로 표출되는 분노가 되는 것이다. 결국 분노에 먹히지 않고 토설함으로써 오히려 그러한 분노, 슬픔, 한은 삶을 살아가는데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  

 

부정의에 대해, 세상에서 벌어지는 악함에 대해, 네가 당하는 부당함에 대해 분노해.

그러나 그 분노로 한과 살을 만들지 말고, 정의를 이루고 세상을 바꿔나가. 너 자신도 바꿔나가고.   

 

다섯번째 여신은 금기를 깬다.

: 이 장은 가부장적 사회문화에 오랫동안 짓눌려왔던 여성들의 (금기)Taoo라는 것이 부당하다면 과감하게 깰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맞서 세상에 뛰어들 용기가 필요하다. 다만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맹목적인 반항으로 금기를 깨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부서져 나갈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금기를 깨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그 동기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줄 알아야하며 확신이 들었을 때 철저하게 준비해서 금기를 깨야한다. 즉 '홧김에'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섯번째 여신은 신나게 논다.

: '잘 놀줄 아는 사람이 공부도 잘 한다'라는 말은 아마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제는 '잘 노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잘 노는 사람이 신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다'로 확장시켜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잘 논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과 어울려 놀지 못하는 완벽주의자나 나르시시스트들은 자기 긴장을 풀지 않기 때문에 아집이 강하고 남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일곱번째 여신은 제멋대로 산다.

: 여기서 말하는 제멋대로 산다는 것은 방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큰 자유 속에서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큰 신, 생명, 우주와 주파수를 맞추면서 그 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것, 방향 있는 자유와 목적을 말하는 자유이다. 즉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자기가 누군지 분명히 인식하고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독립성, 자신감, 용기, 실력, 그리고 영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의 삶속에는 생명력과 아름다움이 보인다.

 

질투는 '가난의 세계관'에 기인한다.

질투하는 마음을 고치려면 '풍요의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자리나 기회를 가지면 자기 것을 빼앗겼다 생각지 말고,

자신에게는 또 다른 방향으로부터 좋은 자리나 기회가 주어질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많은 자리와 기회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풍요한 세계관'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

 

여덟번째 여신은 과감하게 살려내고 정의롭게 살림한다.

: "당신의 침묵은 절대로 당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라는 흑인 여성 시인 오드레 로드의 말처럼 악의 세력이 판을 칠 때 침묵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싸워야 한다. 그런 운동이 있었기에 사회의 부조리,부정의 속에 은폐되었던 진실들이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종군위완부 할머니, 중세의 여성들이 마녀사냥을 당한 그 배후의 진실, 흑인 인권운동 등이 그 예이다. 여신은 '살림살이'가 더 이상 여자를 가정에 가두는 억압 기제로 쓰이는 그런 살림이 아니라 온 세상을 바꿔가는 '해방적 살림살이'가 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아홉번째 기도하고 명상한다.

: 기도와 명상을 통해 영적으로 더 깊이 있게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너무나도 바쁜 현대 사회속에서 잠깐의 시간을 내서 자신만의 기도 및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며 내 안의 진정한 여신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열번째 여신은 지구, 그리고 우주와 연애한다.

: 내 안의 잠든 여신 깨우기의 마지막 계명이다. 여성의 자궁이 생명의 탄생지라면 우리 인간은 바로 우주의 자궁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여신은 바로 생명을 존중하며, 지구와 우주를 품에 안아 그 생명력이 꺼지지 않게끔 노력하는 존재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며 존중한다. 그렇기때문에 단순한 패미니스트가 아니라 에코패미니스트인 것이다. 살림이스트라는 단어도 등장을 하는데, 살림이스트라는 것은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함을 뜻한다. 살림은 말 그대로 여성들이 매일 하는 가정일이다. 모든 사람들을 배부르고 행복하게 먹이는 것, 가족의 평화, 건강, 풍요함을 끌어내는 것, 아름다운 삶의 환경을 만드는 일 등 이 모든 것들은 여성들이 늘 해왔던 그 살림의 테두리에 안에 있는 것이다. 강한 생명력과 창조력을 가진 여성들이 침묵을 깨고 세상밖으로 나왔을때 이 지구는, 우주는 멸명과 종말이 아닌 더 큰 풍요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에코패미니스트는 여성우월주의를 추구하진 않는다. 다만 그 동안 가부장적 제도의 틀에 갇혀 억압되어왔던 여성들의 해방을 통해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그 '무한한 생명력'을 자신들 속에 잠들어 있던 여신을 깨워 자신뿐아니라 이제는 이 지구와 우주,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을 사랑하며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으로 바꿔 나가길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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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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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당신은 내 심장에 깊이 새겨져 있어요, 클라크. 처음 걸어 들어온 그날부터 그랬어요. 내 인생은 당신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이 바뀌었다는 걸 잊지 말아요.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지만, 운명처럼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읽어나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소설이 아니라 한편의 휴머니즘 혹은 너무나 가혹한 현실처럼 느껴져 책을 덮은 마지막에는 가슴이 먹먹해 한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눈물은 그렇게 떠나고 떠나보낼 수 밖에 없는 윌과 루이자를 위해 흘렸다. 마지막 결말이 너무나 소설같지 않아서 애꿋은 작가를 원망하기도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영국의 한적한 마을에 평범하게 카페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루이자 클라크. 그런 그녀가 실직을 하게 되고 구인구직센터를 통해 다시금 재취업을 하게 된 곳이 바로 사지마비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자리다. 내키진 않았지만 6개월이라는 한정직에 급여도 높고, 특히나 이것저것 따질 수 없는 집안의 형편때문에 그녀는 그곳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란 걸 알지도 못한 채... 전도유망하고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잘나가는 젊은 경영인이였던 윌 트레이너. 2년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지마비환자가되어 찬란했던 그의 인생은 산산히 조각나 부서져버리고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살아가던 순간 자신의 간병인으로 오게 된 루이자 클라크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둘은 운명처럼 만난다.

 

처음에는 그저 까칠하고 오만한 사지마비환자인 윌과 그런 그를 달가워하지 않는 미숙하고 독특한 옷차림의 루이자였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들은 서로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꿈이 생기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루이자는 간병인으로써 어려움없이 일을 잘 처리하게 되고 윌도 예전과는 다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생을 향해 한발 다가가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루이자는 윌의 어머니와 윌의 동생 조지아나가 하는 얘기를 듣게 된다. 윌이 자살시도를 했었던 일과 6개월 후 의학적 도움을 받아 자신의 생을 끝내려한다는 것을... 충격을 받은 루이자는 이 일을 관두기로 하지만, 이미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그녀는 6개월도 안 남은 시간동안 어떻게 해서든 그가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다시 살아갈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그 헌신적인 사랑으로 윌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또한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 되리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보통의 로맨스 소설들이 그러하니까. 사랑이라는 말을 앞세워 모든 것을 다 극복할 수 있다고 말들을 하니까. 사랑은 위대하다면서. 그러나 결국 윌은 자신의 의지대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녀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물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두고, 가족을 두고 그렇게 이 세상과 이별을 한다. 누구의 도움없이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씻는 것도, 기본적인 욕구조차도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던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자신의 판단과 의지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죽음뿐이였다. 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윌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기위해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고 또 그렇게 떠났던 모리셔스 해안에서 그들의 웃음은 얼마나 반짝였던가. 폭풍우치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서로의 향기를 느끼고 서로의 따스함을 공유했던 그들의 모습은 얼마나 슬프도록 아름다웠던가...그렇게 나는 윌이 그녀의 사랑으로 힘들지만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타인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가 그녀곁에 머물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나 역시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그런 아픔과 고통 그런 치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그렇게 살아가 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지 슬프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어서 그 어쩔 수 없는 슬픔에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걷고, 마시고, 달리고, 씻고, 입고, 숨쉬고, 먹고, 싸고 정말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여서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인데 윌은 그런 사소한 것조차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죽을때까지 끝임없는 고통과 병마와 싸워야하며 자존심도 인간의 존엄성도 다 버리고 그저 남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맞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사랑의 힘으로 끝까지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치욕스럽고 고통스럽겠지만...자신의 그런 상태를 받아들이고...그러나 윌이 이렇게 하기에는 (사고가 나기전) 자신의 삶을 너무나 사랑했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고백을 들었을 때 그 참담함과 돌이킬 수 없음에 또 얼마나 가슴이 메어졌는지... 윌이 죽음으로 루이자는 당분간 힘들겠지만, 그녀는 결국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으며 죽는 마지막 날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함께 보낸 시간들 속에서 그녀의 빛나는 잠재능력을 알아본 윌로 인해 그녀는 자신이 살던 그 좁을 곳을 벗어나 더 넓은 곳으로 자신을 내던질 용기를 갖게 되었다.

 

비록 그들의 사랑은 보통의 행복한 결말로 끝나진 않았지만 6개월이라는 그 짧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윌은 분명 그녀로 인해 행복했고, 자신의 불행한 삶속에서 죽기전까지 그녀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윌을 통해 그녀는 더 큰 세상을 품게 되었고 자신만의 꿈을 갖게 되었다. 너무나 아프지만 가끔은 윌의 까칠한 말투가 미치도록 그립겠지만 그가 주고간 그 사랑의 힘으로 루이자는 자신의 인생을, 삶을 더 깊게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빛나는 태양이 있는 곳으로...

 

 "당신은 내 심장에 깊이 새겨져 있어요, 클라크. 처음 걸어 들어온 그날부터 그랬어요.

그 웃기는 옷들과 거지 같은 농담들과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숨길 줄 모르는 그 한심한 무능력까지.

이 돈이 당신 인생을 아무리 바꾸어놓더라도, 내 인생은 당신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이 바뀌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감상에 빠져 질질 짜는 건 생각하기 싫어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사랑을 담아서,

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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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오늘의 젊은 작가 4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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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책표지가 아름답다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선택한 책이였다. 뭔가 아름다운 내용의 서정적인 소설이겠거니 하면서...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다른 내용과 결말에 책을 덮고 난 지금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혀 버렸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그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의 사고 또한 무너진 느낌이였다. 이것이 언어의 연금술사라 불리우는 이장욱 작가의 마법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주된 내용은 대학동창인 A의 부음소식을 전해 듣고 김,정,최가 K시에 있는 A의 장례식장으로 떠나는 여정속에 펼쳐지는 하룻밤의 기이한 행적을 담은 로드무비 형식의 소설이다. 총 13장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는데, 각 장마다 김,정,최가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하는 1인칭 시점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결국 각 장마다 주체가 되기도 하고 하나의 대상인 타자가 되기도 한다. 같은 이야기인데도 각 장을 읽어 갈때마다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분명 사람마다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도 모두 똑같이 보고, 느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질적으로 현실에서도 우리는 같은 것을 보았다고해서, 모두 동일한 느낌과 동일한 생각을 갖지는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이 소설속의 김,정,최의 이야기를 읽을때는 어쩐지 낯설게 느껴짐을 부인할 수 없었다. 

 

또한 각 장의 에피소드 제목은 어디서 들어본 듯한 낯익은 느낌을 받았는데, 바로 영화제목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무방비 도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매그놀리아,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등 본 영화도 있고, 보지 못한 영화도 있지만 그 영화의 내용으로 다음 장에 펼쳐질 에피소드를 예상한다면 그 예상은 빗나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핵심적인 몇가지 소재만을 차용했기때문이다. 김,정,최는 죽은 A에 대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회상한다. 읽어가다보면 그들이 A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A는 그렇게 그들의 회상속에 존재할 뿐, 별다른 실체는 책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은 실체도, 존재도 불확실한 알파벳 A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물론 그녀의 친구들 역시 명확한 이름으로 불리워지진 않는다. 단지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성'만이 존재 할 뿐이다. 이것 역시 현실과 환상의 모호함속에 그들을 담아두기 위한 작가의 장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어떤 그런 것... 

 

A가 죽기전에 김,정,최,염은 그녀의 반지하방에 모두 모여 그녀가 만든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주인공들이 자동차를 타고 길을 떠나는 내용이다. 긴 터널을 지나며 롱 테이크로 이어지는 시퀀스가 지루한 영화이다. 마치 김,정,최의 이야기와 너무나도 닮아있는 영화이다. 보는 내내 혹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텍스트가 A라는 그녀가 만든 영화인것인가? 내가 지금 그녀의 관객이 되어 그녀의 영화를 텍스트로 보고있는 것인가? 나는 단지 김,최,정의 이야기의 또 다른 독자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인데, 계속해서 기묘한 기분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도중 죽은 A에게서 온 문자메시지는 더더욱 충격적이였다. 다만 나의 충격과는 별개로 김,정,최는 그렇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담담함을 보인다. 다만 A의 문자는 그녀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모호하면서도 아름다운 언어여서, 두렵지만, 아름다운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김,정,최는 새벽녘 어느 한적한 고속버스터미널에 당도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들의 픽업을 기다리고 있는 염의 모습도 목격된다. 마지막 장 '염의 이야기'부분에서는 3인칭으로 시점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굽어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있음을 알게된다. 바로 시종일관 그들을 비추고 있었던 카메라의 존재를...그리고 그 카메라밖의 또 다른 시점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순간 충격과 전율에 책장을 덮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런 시점의 확장을 이용하여, 독자들을 하나의 프레임안에서 또 다른 프레임밖으로, 그리고 또 그 밖으로 몰아내면서 현실이라 믿었던 경계들을 하나씩 무너뜨린다. 종국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익숙함 속의 낯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결국 A의 장례식장이 있는 K시에 당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은 끝나게 되는데 카메라를 넘어선 프레임밖의 또다른 시선, 그것은 프레임 밖으로 내 몰린 나 자신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을지도 모를 A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염의 독백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시종일관 의문과, 묘한 끌림에 읽어나간 천국보다 낯선은 나에게 공포와, 기묘함, 뒤틀리고 엇갈린 진실속에 현실과 환상의 무너짐을 경험하게 해준 책이다.

 

 

『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염은 생각했다. 새벽 구름들 사이로 맑은 별들이 반짝였다.

그때 다시 엉뚱한 생각이 염의 뇌리에 떠올랐다. A가................

죽은게 아닐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제 겨우 삶을 시작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뒤따라왔다.

그는 방금 떠오른 두 개의 문장을 순서대로 천천히 발음해 보았다.

A가.....................죽은 게 아닐지도 몰라. 그 애는 이제 겨우 삶을 시작한 게 아닐까.

 

죽음 쪽에 남아 있는 건 그녀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아닐까.

A는 단지 영화의 프레임 밖으로 나간 게 아닐까.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닐까.』 

 

- 247page

 

 

『 인물들의 시선을 마주 보던 카메라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더 위로 올라갔다.

인물들이 점점 작아졌다. 터미널 건물과 광장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하늘의 한가운데서 카메라가 정지했다. 새벽 별빛이 은은하게 도시에 쏟아져 내리는 시간이었다.

이제 막 깨어나려는 듯 해안 도시의 불빛이 점점이 켜지는 시간이었다.

먼바다 쪽의 수평선에 붉은빛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천국보다 낯선,

그런 시간이었다.』

 

- 24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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