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이채윤 지음 / 큰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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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역사에 관심이 많다보니 고려의 여인으로 원나라의 황후가 된 기황후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고 신기하여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관련 책들을 찾아 보았지만 턱없이 부족하여 그냥 몇 줄의 간단한 설명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러나 기황후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그녀의 삶이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관련 책들이 여러 출판사에서 많이 나오게 되었다. 내가 만나본 책은 한권으로 된 큰나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이채윤 작가의 책이다. 무엇보다 철저한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기에 더욱더 믿음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몽골제국의 시조인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가 원나라인데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할 만큼 그들의 힘은 막강했다. 중국의 송이 멸명하고 남송마저 그들의 발아래 굴복하고, 고려 또한 원나라의 침략으로 나라가 거의 황폐해지지만 다른 나라와는 달리 고려는 오랜 대몽항쟁으로 다행히 송과 같은 운명의 길은 걷진 않았다. 그러나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하면서 고려라는 나라의 자주적, 독립적 주권을 상실하게 된다. 바로 그즈음 원은 투항한 남송 군인들의 아내감으로 고려에 공녀(공물로 바치는 여자)를 요구했는데 그 비운의 시기에 기황후, 기순은 태어났다.

 

하지만 원나라의 공녀 요구는 1275년 충렬왕때부터 1355년 공민왕까지 약 80년간 행해졌다고 한다. 어쨌든 그녀 또한 공녀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는데 그녀가 공녀로 차출되어 고려를 떠나 원나라로 향하는 여정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씨가문은 대대로 국가의 녹을 먹는 높은 벼슬을 지냈던 명문가였으나 원에 아부하는 권문세족이 발현하면서 청렴결백했던 그들 가문은 된서리를 맞게 된다. 그런 명문가에서 태어난 기순이였기에 여성이지만, 시문에 능했고, 비파, 몽골어까지 할 줄 아는 영리하면서도 아름다운 미모를 갖춘 여성이였다. 16세라는 어린나이에 고국과 가정을 등지고 타국을 향해 그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게 되지만 그녀는 마냥 슬퍼하기 보다는 그 운명을 받아들여 원에서 자신만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리라 결심한다. 

 

그녀가 기황후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녀 자신의 노력과 운도 있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그녀의 오라버니 기철이였다. 공녀의 신분에서 궁녀로, 그리고 제 2황후에서 마침내 제 1황후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은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마치 우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담담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듣는 느낌만 들 뿐 그녀의 그 파란만장한 삶과 그녀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의 질곡 깊은 이야기들은 보통의 역사장편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이감과 몰입의 재미는 조금은 반감이 되는 느낌이다. 몽골제국의 전통을 중시하는 몽골파와 중국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통치할 것은 주장하는 한지파와의 전투씬, 원나라 내부에서 발생하는 여러 반역사건들, 홍건의 난과 같은 사건 및 전투씬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 계기는 될지 몰라도 그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이나 긴박함은 다소 떨어지는 경향도 있다. 다만 기황후라는 인물외에 그녀를 도운 고려출신의 환관들 박불화,고용보,원나라의 유능한 인재 톡토 등 여러 인물들을 알게 된 사실은 새로운 흥미를 가져다 주었다. 

 

기황후 그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지만 어쨌든 그녀는 일개 공녀에서 대원제국의 황후에까지 오른 인물이며, 그녀의 몸은 비록 원나라에 있었지만 언제나 고려를 그리워했으며 자신의 조국을 잊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원나라의 고려에 대한 지배력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고려가 자주적인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고, 공녀라는 제도를 없앤 것도 그녀이다. 마지막 고려의 개혁군주인 공민왕이 등장하면서 비록 같은 고려인이지만 서로의 입지와 처해있는 상황이 달랐던 그 둘 사이에 배신 및 감정의 굴곡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였으리라. 황태자를 낳은 기황후의 입장에서는 점점 정사를 돌보지 않는 황제를 대신해 자신의 아들을 지키며 그 아들의 입지를 단단히 해야만하는 황후의 의무와 어머니로써의 결단도 필요했던 시기이다. 그녀는 고려가 자주적으로 독립되기를 희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너저가는 대원제국도 일으켜야만 했다. 내부적으로 곪아가고 있던 대원제국은 결국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에 의해 북쪽의 초원으로 내몰리게 된다. 역사는 그런 원나라를 초원으로 내몰린 초라한 제국으로 묘사했지만 1370년대 무렵에는 명나라가 장악한 중원의 땅보다 2배가 넘는 땅을 차지했다고 한다. 황제 순제가 죽고 중원이 아닌 초원에서 자신의 아들을 황제에 봉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후 그녀의 마지막 삶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려여인으로서 자신의 나라를 사랑했지만 원제국의 모후로써의 책무 또한 져버릴 수 없는 운명이였기에 역사는 그녀를 고려에서도 원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여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삶이 여성으로써, 원나라의 황후로써, 고려의 딸로써 다시 재조명 되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먼저 오래전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다간 그녀의 얼굴이, 그녀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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