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깊은
구절
당신은
내 심장에 깊이 새겨져 있어요, 클라크. 처음 걸어 들어온 그날부터 그랬어요. 내 인생은 당신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이 바뀌었다는 걸 잊지
말아요.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지만, 운명처럼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읽어나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소설이 아니라 한편의 휴머니즘 혹은 너무나 가혹한 현실처럼 느껴져 책을 덮은 마지막에는 가슴이 먹먹해 한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눈물은 그렇게 떠나고 떠나보낼 수 밖에 없는 윌과 루이자를 위해 흘렸다. 마지막 결말이 너무나 소설같지 않아서 애꿋은
작가를 원망하기도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영국의 한적한 마을에 평범하게 카페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루이자
클라크. 그런 그녀가 실직을 하게 되고 구인구직센터를 통해 다시금 재취업을 하게 된 곳이 바로 사지마비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자리다. 내키진 않았지만 6개월이라는 한정직에 급여도 높고, 특히나 이것저것 따질 수 없는 집안의 형편때문에 그녀는 그곳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거란 걸 알지도 못한 채... 전도유망하고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잘나가는 젊은 경영인이였던 윌
트레이너. 2년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지마비환자가되어 찬란했던 그의 인생은 산산히 조각나 부서져버리고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살아가던 순간 자신의 간병인으로 오게 된 루이자 클라크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둘은 운명처럼 만난다.
처음에는 그저 까칠하고 오만한 사지마비환자인 윌과 그런 그를 달가워하지 않는 미숙하고 독특한
옷차림의 루이자였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들은 서로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꿈이 생기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루이자는 간병인으로써
어려움없이 일을 잘 처리하게 되고 윌도 예전과는 다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생을 향해 한발 다가가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루이자는 윌의
어머니와 윌의 동생 조지아나가 하는 얘기를 듣게 된다. 윌이 자살시도를 했었던 일과 6개월 후 의학적 도움을 받아 자신의 생을 끝내려한다는
것을... 충격을 받은 루이자는 이 일을 관두기로 하지만, 이미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그녀는 6개월도 안 남은 시간동안 어떻게 해서든 그가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다시 살아갈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그 헌신적인 사랑으로 윌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또한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 되리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보통의 로맨스 소설들이 그러하니까.
사랑이라는 말을 앞세워 모든 것을 다 극복할 수 있다고 말들을 하니까. 사랑은 위대하다면서. 그러나 결국 윌은 자신의 의지대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녀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물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두고, 가족을 두고 그렇게 이 세상과 이별을 한다. 누구의 도움없이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씻는 것도, 기본적인 욕구조차도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던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자신의 판단과 의지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죽음뿐이였다. 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윌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기위해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고 또 그렇게 떠났던 모리셔스 해안에서 그들의 웃음은 얼마나 반짝였던가.
폭풍우치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서로의 향기를 느끼고 서로의 따스함을 공유했던 그들의 모습은 얼마나 슬프도록
아름다웠던가...그렇게 나는 윌이 그녀의 사랑으로 힘들지만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타인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가 그녀곁에 머물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나 역시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그런 아픔과 고통 그런 치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그렇게 살아가 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지 슬프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어서 그 어쩔 수 없는 슬픔에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걷고, 마시고, 달리고, 씻고, 입고, 숨쉬고, 먹고, 싸고 정말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여서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인데 윌은 그런 사소한 것조차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죽을때까지 끝임없는 고통과
병마와 싸워야하며 자존심도 인간의 존엄성도 다 버리고 그저 남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맞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사랑의
힘으로 끝까지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치욕스럽고 고통스럽겠지만...자신의 그런 상태를 받아들이고...그러나 윌이 이렇게 하기에는
(사고가 나기전) 자신의 삶을 너무나 사랑했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고백을 들었을 때 그
참담함과 돌이킬 수 없음에 또 얼마나 가슴이 메어졌는지... 윌이 죽음으로 루이자는 당분간 힘들겠지만, 그녀는 결국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으며
죽는 마지막 날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함께 보낸 시간들 속에서 그녀의 빛나는 잠재능력을 알아본 윌로 인해 그녀는 자신이 살던 그 좁을
곳을 벗어나 더 넓은 곳으로 자신을 내던질 용기를 갖게 되었다.
비록 그들의 사랑은 보통의 행복한 결말로 끝나진 않았지만 6개월이라는 그 짧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윌은 분명
그녀로 인해 행복했고, 자신의 불행한 삶속에서 죽기전까지 그녀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윌을 통해 그녀는 더 큰
세상을 품게 되었고 자신만의 꿈을 갖게 되었다. 너무나 아프지만 가끔은 윌의 까칠한 말투가 미치도록 그립겠지만 그가 주고간 그 사랑의 힘으로
루이자는 자신의 인생을, 삶을 더 깊게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빛나는 태양이 있는 곳으로...
"당신은 내 심장에 깊이 새겨져 있어요, 클라크. 처음 걸어 들어온 그날부터
그랬어요.
그 웃기는 옷들과 거지 같은 농담들과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숨길 줄 모르는 그
한심한 무능력까지.
이 돈이 당신 인생을 아무리 바꾸어놓더라도, 내 인생은 당신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이 바뀌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감상에 빠져 질질
짜는 건 생각하기 싫어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사랑을 담아서,
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