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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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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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겁이 참 많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쓸데없는 망상 혹은 상상이 많다는 것이다. 안락한 공간인 집에 혼자 있을 때에도 온갖 망상들이 머릿속을 휘저어 놓곤 한다. 열린 문틈으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창가에 어스름하게 비친 그림자를 보곤 어떤 영혼이 내게 말을 걸기 위해 찾아온 것은 아닐까 등등.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불혹의 나이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이 정도면 중증이 아닐까 싶다. 휴. 심지어 고등학생 때 하교 후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밖에 놀고 있는 동생들을 찾아다니며 잡아오곤 했다. 덕분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운동장에 내가 나타나면 "야! OOO다! 튀어!" 나의 동생들과 동생의 친구들은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 지르며 도망 다니기 바빴다. 조금 더 어렸을 땐 동생들을 쉬이 잡아올 수 있었지만 이후 머리가 커진 사춘기의 남동생들을 잡아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날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집에 들어가 방구석 모서리에 가만히 앉아 있곤 했다. 최소! 한 면은 벽을 등지고 있어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 가관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자다가 오밤중에 깨어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이 무서워 요에 오줌을 싼 것이다. <화장실이 밖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날 아침 동생들은 다 큰 누나가 실례를 했다며 엄청 놀렸고 엄마는 최근 누나가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것이라며 에둘러 말씀하셨던 '웃픈' 기억도 난다. 이 정도의 전적(?)을 갖고 있는 내가 호러 미스터리의 세계 <미쓰다 월드>에 겁도 없이 발을 디딘 것이다. 결국 공포심을 이긴 건 '호기심' 때문이다. 안다. 그 후유증이 얼마나 클지. 또 며칠 잠을 설칠 것이다. 그래서 낮에 읽었다. 오싹함과 기괴함은 있었지만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릴 두려움의 땀방울은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았다.

 

 <흉가>는 향후 출간될 <재원>(災苑), <화가>(禍家)와 더불어 미쓰다 신조의 '집 3부작 시리즈' 중 하나이다. 안락하고 편안해야 할 집이라는 공간이 두려움과 공포의 공간으로 탈바꿈되고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성인이라면 최소한 자신의 의지로 그 공간을 벗어나거나 피할 수 있겠지만 어린아이라면 부모인 어른의 결정에 의해 행동이 제약되기 때문에 <흉가>가 주는 공포는 조금은 벗어나기 힘든 공포감을 준다. 초등학생인 쇼타는 어릴적 몇 차례의 섬뜩한 기운을 느꼈는데 그때마다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전근으로 토쿄를 떠나 나라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된 날도 섬뜩한 기운을 느끼고 불안해 한다. 새로 이사를 가는 집은 양옆으로 펼쳐져 있는 논밭을 지나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쇼타의 눈에 그 산은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보여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집 주변엔 짓다만 듯한 목조 건축물과 땅만 다져 놓고 그대로 방치한 듯한 공간이 을씨년스럽게 자릴 잡고 있다. 마치 누군가의 방해로 공사가 중단된 듯한 느낌이다. 설상가상으로 쇼타는 집안에서 알 수 없는 형체들을 목격하게 되고, 동생 모모미는 산속에 살고 있는 어떤 존재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쇼타는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집과 산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코헤이라는 친구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마을을 지켜주는 영산에 뱀신이 살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젠 혼자가 아닌 코헤이와 함께 쇼타는 이 마을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코헤이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의 대학생 '코즈키 키미'의 뱀과의 교접을 연상시키는 기괴하면서도 에로틱한 행동을 목격하게 되고, 한때 이 마을의 지주였으나 지금은 몰락한 타츠미 가의 마지막 생존자 센 할머니의 집에 갇히기도 한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센 할머니의 집에선 한때 자신의 집에 살았었던 '토코의 일기'를 발견하고 일기의 내용을 통해 쇼타는 이 두려움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간다. 일기의 마지막 '산 윗집에 살면 안 돼!' '지금 당장 도망쳐!'라는 글귀는 쇼타에게도 그리고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하는 경고같아 조금은 섬뜩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 모모미가 쇼타의 방에 찾아와 '그들이' 지금 집에 와 있다고 말한다. 쇼타는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동생 모모미와 함께 거실로 내려가는데, 그곳에서 마주친 그들이란.... 바로!! 그리고 뒤이어 찾아오는 쇼타의 반전까지....!!

 

 낮에 읽었기에 망정이지 밤에 읽었다면 분명 보다 큰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난 후 다행히 큰 두려움 없이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밤이 찾아오자 불 꺼진 집안에서 느껴지는 정적은 책 속 이야기에 평소의 망상까지 더해져 잠자리에 들 땐 '작은 램프'를 켜고 자야만 했다. 눈을 감아 잠 속에 빠져들려 해도 자꾸만 어둠 속에 웅크린 누군가가 있는 것 같고, 책 속 '그것이' 스멀스멀 이불 위로 기어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으아아악!! 이렇듯; (평소의 망상은 지속되겠지만) 책을 읽고 머릿속에 그려 진 <흉가>의 영상들은 며칠간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휴. 그러면서 오늘 또 미쓰다 신조의 다른 책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의 세계는 입구는 있으나 출구는 없는 듯하다. 아 망상과 호기심이여!!!

가야 해....
저 어두운 숲 속에서 부르고 있어...
포장된 길에서 한 걸음 내딛자마자, 쇼타는 묘하게 부드러운
흙과 잡초의 감촉이 발바닥에 느껴졌다.
그야말로 무기물에서 유기물 위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마치 엄청나게 거대하고 흉측한 어떤 생물의 피부 위에 올라간 듯,
그런 소름 끼치는 감촉이 신발 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중략>
이 산의 더 깊고 깊은 곳으로........아주 깊은 곳으로.........
자신의 몸이 들어간다. 이끌려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 다시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61페이지>

잠자리에 들기 전 쇼타는 동쪽 창문으로 폐허 저택을 내려다 보았다.
해가 지고 나면 틈틈이 그 저택을 살펴보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불빛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터무니없이 기묘한 산, 흉측하고 검은 숲, 어쩐지 기분 나쁜 집,
집 근처에 방치된 세 구획의 주택지, 수수께끼의 노파,
소름끼치는 폐허 저택, 정체불명의 히히노, 왠지 무서운 사람의
형체............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고
소용돌이치고 뒤섞이는 가운데,어느새 쇼타는 잠이 들었다. <70페이지>​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영고성쇠라는 인생이자 시간의 흐름이자
사람의 운명이 아닐까? 반대로 말하면 그런 다양한 것들의 무수한
잔재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폐가다. <13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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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1 (10주년 기념 양장) - 태양을 향해 달리는 말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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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 속 최고의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를 최근 양장본 전집으로 구매 후 보물을 다루듯 한 권씩 꺼내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분명 완결까지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는 '드래곤 라자'는 새로웠다. 흐릿한 기억 속에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내용이 있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롭기도 했다. 드래곤 라자는 1세대 판타지 소설로 한때 PC 통신상을 뜨겁게 달궜었다. 그 뒤로 판타지 장르의 인기에 힘입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던 무늬만 판타지 소설들. 잠깐 반짝이는가 싶더니 결국 시간은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알려 주었다. 흐르는 세월 속에 졸작들은 사람들에게 잊혔고 몇몇 인정받은 작품들만이 현재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영도 작가'님의 '드래곤 라자'가 아닐까 싶다. 방대한 세계관과 위트 넘치는 유머 그리고 철학적 요소들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상상력의 결정체'이다. 드래곤 라자는 인간과 드래곤, 엘프, 드워프 등 다양한 종족이 공존하는 세계이다.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존재들을 기본 구성으로 가져가는 것처럼 드래곤 라자도 그런 기본 구성을 갖고 출발한다. 서양의 대표적인 판타지 소설인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때문에 혹자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자신은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위 '판타지 장르'의 문학을 '하위 문학'이라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이는 내 주변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내 평생 읽지 않을 책이구먼.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싫다. 등등의 말로 거부감을 드러내곤 한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니 굳이 내가 뭐라 할 것까진 없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존재들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속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분히 현실적이라는 것을.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의 기본 전제는 '인간의 본질', '인간의 진실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감정 등)이 '판타지 소설'에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종족들에게까지 그들 각자의 사고방식 및 감정 등으로 확대되어 있을 뿐이다. 즉 지금 우리의 현실에, 우리의 일상에 상상속 존재들, 상상속 대륙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지 그뿐이다. 그런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면 삶이 너무나 재미없지 않을까? 상상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큰 힘일 테니, 그런 힘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학 콘텐츠<전설, 신화 등등>가 탄생하는 것일 테고... <그렇게 본인이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평생 '뉴스'나 봐라! 흥칫뿡!!!>

 먼저 드래곤 라자를 읽기 전에 '드래곤 라자'란 무엇을 뜻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드래곤 슬레이어', '드래곤 나이트'라는 말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거대하고 신성한 때론 흉포하고 두려운 존재인 드래곤이 존재하는 세상에 '드래곤 라자'는 그런 드래곤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하나의 상징<드래곤 라자의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드래곤 라자가 됨>이랄 수 있다. 즉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상징 혹은 매개체인 '주술사', '무당', '목사', '신부' 등등으로 이해하면 쉬을 것이다. 다만 이런 매개체가 있어도 기도<원하는 것이 있어 부탁을 할 때 등등>를 할 때는 대부분 신을 향해 직접 하듯이 마찬가지로 '드래곤 라자'를 통하지 않고 '드래곤'에게 직접 부탁을 한다. 반대로 '드래곤 라자'가 없는 드래곤은 '인간의 통제권'을 벗어나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설 '드래곤 라자'는 '드래곤 라자'가 없는 '드래곤 아무르타트 정벌 9차 원정대'의 출발로 시작한다.  

 헬턴트의 작은 영지​. 다른 영지의 영주들과는 달리 이곳 영주는 검소하고 영지민들에게도 평판이 좋다. 작은 영지라 마을 주민들끼리도 사이가 좋다. 다만 언제부턴가 '드래곤 아무르타트'가 그 너머 산자락에 둥지를 틀면서 헬턴트 영지는 아무르타트의 앞마당이 되었고 이후 산에서 쫓겨난 수많은 몬스터들은 마을을 자주 습격하게 된다. 아무르타트 정벌을 위해 여덟 차례의 원정대까지 출정했으나 많은 희생자를 낳았을 뿐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헬턴트 영지의 마을 사람들은 늘 죽음과 두려움을 마주한 채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주인공 후치'는 아버지와 함께 영주의 성에 초를 납품하는 '초장이'이다. 어느 날 헬턴트 영지에 한 무리의 병사들과 '드래곤 자라'를 동반한 거대한 화이트 드래곤 '캇셀프라임'을 보게 된다. 바로 '9차 아무르타트 정벌'을 위해 수도에서 파병한 것이다. 거대한 드래곤을 마주한 마을 사람들은 흥분하게 되고 기존 정벌과 다르게 <드래곤 VS 드래곤>의 싸움은 '이번 9차 원정대'에 분명 승리를 안겨 줄 거라 생각하며 그들의 출정을 배웅하며 환호한다. 이 정벌군에 주인공 후치의 아버지와 후치와 친한 수비대장 샌슨도 합류하게 되는데 결과는, 안타깝게도 실패로 돌아간다. 이 비극적인 소식은 겨우 살아서 도망친 병사에 의해 마을에 전해지고, 수비대장 샌슨도 겨우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르타트'는 '캇셀프라임'을 죽이고 원정대에 참전한 대부분의 병사들을(후치 아버지 포함) 인질로 잡아 어마어마한 금액의 배상금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소식에 가난한 영지인 헬턴트는 배상금 지원 요청과 패전 소식을 전하기위해 수도로 사절단을 보내게 된다. 사절단으로 주인공 후치, 수비대장 샌슨, 영주의 이복동생 칼 헬턴트가 합류해 마을을 떠나게 된다. 17세의 후치는 사절단의 한 사람이 되어 비로소 작은 영지인 마을을 벗어나 '거대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휴다인 고개, 휴다인 계곡의 12인의 다리, 레너스 시의 12인의 여관과 실리키안 남작의 저택 등을 거치면서 '엘프 이루릴 세레니얼', '드워프 엑셀핸드 아인델프' 등 새로운 인연을 맺기도 한다. 모험의 시작이 되는 1권 <태양을 향해 달리는 말>. 앞으로 후치 일행의 앞날에 어떤 모험과 여정이 펼쳐질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2권을 펼쳐봐야겠다.

 

 

 

 

 
 

"이런 옛이야기가 있지. 엘프가 숲을 걸으면 그는 나무가 된다.
인간이 숲을 걸으면 오솔길이 생긴다. 엘프가 별을 바라보면 그는 별빛이 된다. 인간이 별을 바라보면 별자리가 만들어진다. 엘프의 변화를 잘 나타내는 말이지." -239페이지​-

​우리는 많이 당하고, 빨리 잊는다.
그러지 않으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농담을 좋아한다.
우리는 쾌활하다. 하지만 별로 즐겁지는 않다. - 101페이지-

주위에 많은 마을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고 있긴 했지만, 난 정말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난 환송이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보낸다는 의미가 있는 어떤 짓도 하고 싶지 않았다. -109페이지-

"그럼,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엘프 이루릴의 고풍스러운 인사말 중>​ -238페이지-

"자네들의 여정에 카리스 누멘의 가호가 있기를."
"그 모루와 망치의 불꽃의 정수가 그대에게."
<드워프 엑셀핸드의 인사말 중> - 270페이지-

"여행은 항상 새 지식의 습득이라는 유쾌한 선물을 준다네."
- 295페이지-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눈으로 보이는 형벌을 받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법일세. 왜냐하면 죄에 대한 형벌은 이미 그 사람 속에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일세. 형벌이라는 것은 다른 곳에 있지 않네. 그리고 지혜로운 심판관이라면 죄인의 죄에 대한 가장 적절한 형벌은 이미 그 죄인의 내부에 있음을 알고 있지." -39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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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곶의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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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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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내내 마음이 뭉클했다. 나의 몸은 나만의 작은 공간인 내 방안에 있지만 내 마음은 해안 절벽 무지개 곶 찻집에 오롯이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갈매기 울음소리, 부서지듯 물결치는 파도소리, 그리고 바다냄새. 내 기억 저편 언젠가 떠났던 여행의 경험을 빌려와 책 속 무지개 곶 풍경들을 상상하는 것은 행복했다. 찻집 주인 에쓰코씨가 정성스레 내려준 마법의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의 사연이 깃든 커피잔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나는 온전히 그곳에 있었다. 다만 나의 이야기를 통해 에쓰코씨는 나에게 어떤 음악을 선물해 주었을까? 아마도 책의 첫 에피소드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음악을 들려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직역하면 '놀라운 은혜' 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 노래의 제목. 그리고 같은 아픔을 가져본 사람만이 온전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에쓰코씨는 나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 주겠지.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잃지만, 또 그와 동시에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얻기도 하지요. 그 사실만 깨닫는다면, 그다음부턴 어떻게든 되게 마련이에요."라고. 물론 책 속 엄마를 잃은 노조미와 노조미의 아빠를 위해 해준 말이지만 나에게도 이 음악이, 이 말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내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고 내가 얻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무엇일까 하고. 그것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 내 삶이 아닐까 한다. 무지개를 타고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는 그곳. 그곳에 있을 나의 엄마가 이 세상에 남겨두고 간 나 그리고 내 삶.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이 기나긴 터널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살아있음으로 추억하고, 기억한다면 결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모리사와 아키오의 무지개 곶 찻집은 해안 절벽에 위치해 있는 작은 찻집이다. 마치 위태롭고 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마지막 막다른 골목에서 만나게 되는 한 줄기 희망의 빛처럼, 그곳에 파란빛으로 존재한다. 생전 남편이 남긴 무지개가 그려진 그림 속 풍경을 언젠가는 꼭 보길 바라며 홀로 찻집을 운영하는 에쓰코.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이곳을 방문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절이 바뀌면서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인연으로 엮여나간다. 에쓰코가 대접하는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라는 주문으로 만들어지는 따뜻한 커피 한 잔과 각자의 사연들을 위로해주는 에쓰코가 선곡한 아름다운 음악까지. 이렇게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생의 끝에서 마음의 위안과 위로를 받아 다시 자신의 생으로 나아간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걸즈 온 더 비치>, <더 프레이어>, <러브 미 텐더>, <땡큐 포 더 뮤직>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노래들을 책 속 다양한 사연과 함께 다시금 듣고 싶어졌다. 평화롭고 따뜻한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무지개 곶 찻집. 이곳이 더 특별해 보이는 건 음악과 커피, 풍경도 큰 역할을 하겠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사연들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들의 삶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 역시 음악과 풍경과 커피가 있는 아름다운 장소들이 내 기억 속에 많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주방 식탁에 앉아 엄마와 함께 수다 떨면서 마셨던 그 공간, 그 기억, 그 풍경, 그 음악, 그 커피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엄마가 남겨준 <어메이징 그레이스>, 나의 삶에 나의 인생에 주문을 건다.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 행복하게 울고 웃으며, 또 마법의 주문을 외면서.

 

 

 

 

 

 

<책 속 밑줄>

> ...틀림없이 이 세상의 모든 물체는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물체의 존재 의의까지 간단히 바꿔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미와 내가 이제부터 걸어갈 미래도 마음가짐 하나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36page-

 

>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과의 관계가 희박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홀로 고립된 나는 마침내 작은 자학 속에서 달콤한 쾌락에 푹 빠져가고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 카뮈, 가이코 다케시 같은 오래되고 무거우면서도 지나치게 아름다운 순수문학과 사랑에 빠진 채 마음은 점점 더 우울해졌다. - 79page-

 

> 풍요로운 바다 냄새. 온화한 잔물결 소리. 푸른빛의 투명한 바닷바람. 감청색 수면. 늠름한 후지산. 소나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창공. 이 순간 내가 완벽한 여름을 독점한 것 같아 괜히 소리도 질러 보고 싶어졌다. - 100page -

 

> 꿈이란 건, 사람에 따라서는 품고 있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되기도 하거든. - 110page -

 

> "내 경험으로는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을 선택하는 데에도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데."

- 113page -

 

> 인생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아.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설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는 나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말자. - 120page -

 

> "인간은 말이죠, 언젠가 이렇게 되고 싶다는 이미지를 품고, 그걸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만 꿈과 희망을 다 잃고 더 이상 기도 할게 없다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하지요."

- 146page -

 

> 내게 '상처'나 '아픔'은 왠지 달콤한 감상을 수반하는 일종의 '위안'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의 아픔을 느끼고 그 상처를 응시하고 있을 때만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의 운명에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 231page -

 

> 남편이 그리고 싶었던 것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그림이 아니라 오히려 마른 모래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처럼 사람들의 마음 사이사이로 살며시 스며들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듯한 그런 작품이었다.

- 27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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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의 저주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8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좌 : 한국어판 표지 / 우 : 일본어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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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를 알게 된 작품은 최근 작품 <흉가>를 통해서다. 주변에서 많이들 읽기에 흥미가 생겼고 재미있다는 평도 있어 <흉가>를 구매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흉가>외에 미쓰다 신조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작가의 '공통된 이미지'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호러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융합'이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호러'라는 장르까지 결합된 미스터리는 어떤 느낌의 작품일까? 그의 작품세계가 몹시 궁금해졌다. 해서 최근작 <흉가>를 읽기 전에 '사상학 탐정 시리즈'를 먼저 읽어 보기로 했다. 미쓰다 신조의 기존 작품들에 비해 재미가 덜 하는 평이 있어 재미있는 작품들을 먼저 읽었다가는 이 시리즈는 손도 안 댈 것 같아 먼저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사상학 탐정'이라는 제목이 참 낯선데 한국어 판 표지에서는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반면 일본어판 표지의 경우 한자로 표기되어 있어 대략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사상(死相) : 말 그대로 죽음의 형태, 죽음의 어떤 모습을 말한다. 주인공 쓰루야 슌이치로는 타인의 모습에서 바로 이러한 '사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유치원 시절 간사이에 있는 외가에 갔을 때 슌이치로는 처음으로 죽음의 형태와 맞닥뜨린다. 외가의 안라 마을, 유독 골목이 많은 오래된 사찰 마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좁은 돌계단을 더듬어 나가는 슌이치로.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경외심 이 뒤섞인 산책길에서 슌이치로는 문득 이상한 냄새를 맡고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그리고 마주치게 된 기이한 형태의 양복 입은 낯선 남자. 어린 슌이치로였지만 그 존재가 인간이 아님을 간파하게 된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다시 찾은 그 장소에서 남들에겐 보이지 않고 자신에게만 보이는 이 능력이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란 걸 알게 된다. 할머니 슌사쿠 아이는 유명한 영매이고 할어버지 쓰루야 슌사쿠는 괴기소설 작가이다.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없는 능력을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이른바 격세유전이라 할 수 있다. 며칠 후 슌이치로는 위험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나 되려 주변 사람들로부터 '괴물취급'을 받게 된다. 그 사건은 그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 것이고 성장해서도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결국 일상생활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게 된 슌이치로는 부모님 곁을 떠나 외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 자라게 된다. 영매인 할머니는 슌이치로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슌이치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 후 20살이 되던 해 슌이치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품을 벗어나 도쿄에 자신의 이름을 건 '탐정 사무소'를 열어 독립하게 된다. 그의 사무소에 찾아온 첫 번째 의뢰인은 '나이토 사야카'로 사신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같다 말하지만 슌이치로의 눈엔 그 어떤 '死相'도 보이지 않아 그녀를 돌려보낸다. 그리나 며칠 후 다시 찾아온 그녀에겐 피부 여기저기를 파고들어 꿈틀거리는 거무튀튀한 지렁이 형태의 '死相'이 보이는데...... 

 그렇게 자신의 첫 번째 의뢰인인 '사야카'를 통해 슌이치로는 탐정으로서 사건 현장인 이리야 가에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잇따른 괴현상과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리야 가문에 얽힌 비밀, 숫자 13과 연관 있는 괴현상의 의미와 해석,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실과 진범 등. 그 이면에는 인간의 탐욕과 주술, 저주가 있었다. 마지막 진범이 밝혀졌을 땐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라 놀랐었고 범행동기에 조금은 동정심이 일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간에 살해 여부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과 마지막엔 그 살인을 멈추고자 나름 노력했던 모습에 더 그런 마음이 생겼던 것도 같다. ​

 '사상학 탐정'은 그동안 읽어왔던 책 속의 주인공들이 보여줬던 모습들과는 달리 탐정으로서 활약하는 부분이 다소 미숙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때문에 명탐정의 대활약을 기대하고 이 소설을 접하게 된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오히려 이 부분이 '사상학 탐정'이 가진 매력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할머니를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는 해도 탐정이기 전에 슌이치로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두려움을 ​느끼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 한 예로 슌이치로는 '死相'을 스위치를 ON/OFF 하듯 켰다 끌 수 있다. 즉 <보이게 한다/안 보이게 한다>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슌이치로는 여전히 자신의 눈앞에 닥쳐 올 존재에 대해 무의식 깊은 곳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곳을 기피하고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 한다면 고개를 떨군다. 오랜 시간 이렇게 성장해온 그가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제대로 된 대화를 했을 리 만무하다. 그것은 탐정으로써 갖춰야 할 여러 가지 자격들로 보자면 분명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사야카'와 함께 사건 현장이랄 수 있는 '이리야 가'에 방문하여 그곳의 가족들과 대면하는 과정에서도 제대로 된 '대화' 혹은 '진술'을 끌어내지 못해 사건 해결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까?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무뚝뚝한 말투의 슌이치로가 오랫동안 짊어져야 했을 그 힘의 무게가 버거워 보여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도 그 자신이 '부족한 자질'에 대해 충분히 자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2권에서는 지금보다 탐정으로서 조금 더 성장한 슌이치로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ps>

: 13의 저주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일련의 괴현상을 해결하고 설명하는 부분을 읽을 땐 살짝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 다양한 사건들을 숫자와 연결시키기위해 작가가 ​얼마나(?) 고민했을까.... 생각하며 나름 썩소를 좀 지었던 것도 사실이다. ^3^;

 

탐정 사무소를 꾸려 나가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 - 타인과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 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지금까지 의뢰인과의 대화를 포함해 타인을 대하는 문제는 할머니가 전부 대신해 줬다.

자신은 그저 보이는 것을 말하고, 할머니에게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면 끝이었다. 한마디로 안락의자 탐정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무소를 세워 독립한 지금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사상이 보이는 것만으로는 의뢰인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

즉 이대로는 탐정으로서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 사시라는 지극히 특수한 힘을 지녔으면서 타인과 제대로 대화할 수는 없다니, ​이렇게 기막힌 일도 없다. 슌이치로는 이것이 앞으로도 자신에게 크나큰 과제가 되리라 생각하면서도 곧바로 고민을 그만뒀다.

어쨌든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다. - 17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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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 탐정 그림의 수기
기타야마 다케쿠니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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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읽은 <앨리스 죽이기>역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고전소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새롭게 각색한 추리소설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난 직후라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를 물리트릭의 귀재라 불리는 '기타야마 다케쿠니'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재탄생시킨 이 작품 '탐정 그림의 수기 인어공주' 또한 기대하며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 겉표지에 적힌 '살해된 왕자, 용의자는 인어공주!'라는 다소 자극적인 문장도 한몫을 했다. <앨리스 죽이기>역시 주인공 앨리스가 작품 속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사건을 추리 해결해 나가는 방식인데, 인어공주의 주인공인 인어공주 또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그 후의 사건들을 추리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다. 이 두 작품이 묘하게 닮기도 닮았거니와 기존 원작의 주인공들이 새롭게 각색된 작품들에서는 죄다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다소 당황스러운 이 상황이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결국 책을 읽게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기타야마의 '인어공주'는 기존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의 스토리를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버린 인어공주의 슬픈 사랑 이야기. 동화는 그렇게 끝을 맺지만 간혹 그 뒷이야기 즉, 후일담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해피엔딩인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면 더더욱. 왜냐하면 해피엔딩의 경우 정말?이라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바로 이 '뒷이야기'에 ​착안해 트릭과 추리, 살인을 접목해 자신만의 '인어공주'를 새롭게 탄생시켰다.


1816년 덴마크 오덴세. 마녀의 단도로 왕자의 심장을 찔러 자신을 구할 수 있지만 인어공주는 스스로 물거품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틀 뒤 왕자는 살해된 채 발견된다. 여러 가지 정황 상 왕자를 살해한 용의자로 인어공주가 지목되고 그 사건은 인간 세상과 바닷속 인어 세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사건 해결을 위해 실존 인물들을 작품 속에 등장시키는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을 아버지를 일찍 여읜 어린 소년으로, 루트비히 에밀 그림은 어딘지 수상쩍지만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탐정역으로 탈바꿈시킨다. 작가의 이런 재치 있는 시도는 나로 하여금 작품을 더 몰입하여 읽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자신의 막냇동생인 인어공주의 살인누명을 벗기기 위해 마녀에게 심장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인간이 되어 뭍으로 올라온 넷째 셀레나까지 등장하여 결국 이 세 사람은 사건 해결을 위해 뭉치고 진범 찾기에 돌입한다. 붕케플로드 목사 부인의 도움을 얻어 궁으로 들어간 세 사람. 루트비히는 모든 상황들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사건 해결에 다가가려 하고, 한스와 셀레나 역시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나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한다.

2층 방 안, 마녀의 칼이 등에 꽂힌 채 살해된 왕자 그러나 외부의 침입 흔적은 없고, 목격자도 없다. 궁 안 사람들의 알리바이도 명백한 상황. 사건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수상쩍은 행동과 예전 인어공주를 닮았다는 이유로 셀레나가 왕자 살해범으로 몰려 궁에 갇히게 된다. 한스는 셀레나 자매들의 도움으로 그녀를 구출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미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온 '루트비히'에 의해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게 되면서 그에 의해 진범이 누구인지, 왕자 살해 동기와 살해 방법 등이 밝혀지게 된다. 살해 방법의 경우 물리트릭의 귀재라는 이름에 걸맞게 책 속 자세한 그림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루트비히'에 의해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이 사건은 하나의 커다란 사건의 줄기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1793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대략적인 내막은 이렇다. 역사적 실존인물인 나폴레옹을 사랑한, 한때는 그녀 역시 아름다운 인어공주였을 마녀의 외롭고도 헌신적인 지독한 사랑이 이 사건의 중심이었다. 그녀가 벌여놓은 판에 자신은 꼭두각시였음을 깨달은 인어공주는 왕자를 죽이지 않고 단도를 바다에 버리고 자신도 바다로 뛰어드는데 그 와중에 예기치 못한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면서 인어공주 역시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자신이 인어공주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왕자는 그녀를 찾아 떠나고 그런 왕자를 용서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인물에 의해 왕자는 살해당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사랑이란 형태로 빚어진 일련의 사건들. 사랑에도 다양한 모습과 종류가 있겠지만 그 사랑이 마음속 욕망과 뒤섞일 경우 사랑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독이 될 수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몸이 타들어갈 것을 알면서도 뜨거운 불꽃에 날아드는 불나비처럼 무모하게 뛰어들 수 있는 것이 사랑이 가진 강력한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루트비히'의 마녀의 존재에 대한 추리는 작가의 마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진행됐는데 어떤 이들은 이 부분을 꽤 불편해했지만 나의 경우는 나름 가벼운 충격과 신선한 관점으로 보게 되어 괜찮았다.

 


* 외롭고 지루한 현실 바로 옆에 꿈을 꾸는 듯한 동화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한스가 지금까지 살아 온 원동력이었다.언젠가 그 세계를 두 눈으로 보는 것이 꿈이었다. 말하자면 셀레나는 한스가 사랑해 마지않는 세계에 사는 존재였다. - 7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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