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곶의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

 
  읽는 내내 마음이 뭉클했다. 나의 몸은 나만의 작은 공간인 내 방안에 있지만 내 마음은 해안 절벽 무지개 곶 찻집에 오롯이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갈매기 울음소리, 부서지듯 물결치는 파도소리, 그리고 바다냄새. 내 기억 저편 언젠가 떠났던 여행의 경험을 빌려와 책 속 무지개 곶 풍경들을 상상하는 것은 행복했다. 찻집 주인 에쓰코씨가 정성스레 내려준 마법의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의 사연이 깃든 커피잔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나는 온전히 그곳에 있었다. 다만 나의 이야기를 통해 에쓰코씨는 나에게 어떤 음악을 선물해 주었을까? 아마도 책의 첫 에피소드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음악을 들려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직역하면 '놀라운 은혜' 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 노래의 제목. 그리고 같은 아픔을 가져본 사람만이 온전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에쓰코씨는 나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 주겠지.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잃지만, 또 그와 동시에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얻기도 하지요. 그 사실만 깨닫는다면, 그다음부턴 어떻게든 되게 마련이에요."라고. 물론 책 속 엄마를 잃은 노조미와 노조미의 아빠를 위해 해준 말이지만 나에게도 이 음악이, 이 말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내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고 내가 얻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무엇일까 하고. 그것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 내 삶이 아닐까 한다. 무지개를 타고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는 그곳. 그곳에 있을 나의 엄마가 이 세상에 남겨두고 간 나 그리고 내 삶.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이 기나긴 터널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살아있음으로 추억하고, 기억한다면 결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모리사와 아키오의 무지개 곶 찻집은 해안 절벽에 위치해 있는 작은 찻집이다. 마치 위태롭고 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마지막 막다른 골목에서 만나게 되는 한 줄기 희망의 빛처럼, 그곳에 파란빛으로 존재한다. 생전 남편이 남긴 무지개가 그려진 그림 속 풍경을 언젠가는 꼭 보길 바라며 홀로 찻집을 운영하는 에쓰코.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이곳을 방문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절이 바뀌면서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인연으로 엮여나간다. 에쓰코가 대접하는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라는 주문으로 만들어지는 따뜻한 커피 한 잔과 각자의 사연들을 위로해주는 에쓰코가 선곡한 아름다운 음악까지. 이렇게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생의 끝에서 마음의 위안과 위로를 받아 다시 자신의 생으로 나아간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걸즈 온 더 비치>, <더 프레이어>, <러브 미 텐더>, <땡큐 포 더 뮤직>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노래들을 책 속 다양한 사연과 함께 다시금 듣고 싶어졌다. 평화롭고 따뜻한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무지개 곶 찻집. 이곳이 더 특별해 보이는 건 음악과 커피, 풍경도 큰 역할을 하겠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사연들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들의 삶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 역시 음악과 풍경과 커피가 있는 아름다운 장소들이 내 기억 속에 많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주방 식탁에 앉아 엄마와 함께 수다 떨면서 마셨던 그 공간, 그 기억, 그 풍경, 그 음악, 그 커피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엄마가 남겨준 <어메이징 그레이스>, 나의 삶에 나의 인생에 주문을 건다.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 행복하게 울고 웃으며, 또 마법의 주문을 외면서.

 

 

 

 

 

 

<책 속 밑줄>

> ...틀림없이 이 세상의 모든 물체는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물체의 존재 의의까지 간단히 바꿔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노조미와 내가 이제부터 걸어갈 미래도 마음가짐 하나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36page-

 

>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과의 관계가 희박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홀로 고립된 나는 마침내 작은 자학 속에서 달콤한 쾌락에 푹 빠져가고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 카뮈, 가이코 다케시 같은 오래되고 무거우면서도 지나치게 아름다운 순수문학과 사랑에 빠진 채 마음은 점점 더 우울해졌다. - 79page-

 

> 풍요로운 바다 냄새. 온화한 잔물결 소리. 푸른빛의 투명한 바닷바람. 감청색 수면. 늠름한 후지산. 소나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창공. 이 순간 내가 완벽한 여름을 독점한 것 같아 괜히 소리도 질러 보고 싶어졌다. - 100page -

 

> 꿈이란 건, 사람에 따라서는 품고 있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되기도 하거든. - 110page -

 

> "내 경험으로는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을 선택하는 데에도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데."

- 113page -

 

> 인생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아.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설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는 나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말자. - 120page -

 

> "인간은 말이죠, 언젠가 이렇게 되고 싶다는 이미지를 품고, 그걸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만 꿈과 희망을 다 잃고 더 이상 기도 할게 없다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하지요."

- 146page -

 

> 내게 '상처'나 '아픔'은 왠지 달콤한 감상을 수반하는 일종의 '위안'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의 아픔을 느끼고 그 상처를 응시하고 있을 때만큼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의 운명에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 231page -

 

> 남편이 그리고 싶었던 것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그림이 아니라 오히려 마른 모래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처럼 사람들의 마음 사이사이로 살며시 스며들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듯한 그런 작품이었다.

- 27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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