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증
마리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박하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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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충증'이라는 독특한 제목과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에로틱한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작품이다. '마리 유키코'라는 작가는 처음 접하는 작가였기 때문에 작가와 책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최근 작품으로는 '여자친구'와 '골든애플'이 있고, 2008년 입소문을 통해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이란 작품도 있다. '고충증'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고충증'이 2005년도 '마리 유키코'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만큼 내용 자체도 충격적이고 표현도 너무 리얼해서 나도 모르게 읽으면서 인상을 쓰게 되고, 다 읽고 난 후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찝찝함 속에 허우적 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매년 챙겨 먹었던 구충제를 다시 복용하기도 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이런 '찝찝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이야미스'라는 조어가 있다고 한다. 불쾌하다는 뜻의 '이야'와 미스터리의 '미스'가 결합된 것으로 '읽고 나면 기분 나빠지는 미스터리'라는 뜻이란다. 최근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새로운 충격과 전율을 안겨줄 수 있는 건 그녀만의 '독특한 작풍'의 힘이 아닐까 한다. 기리노 나쓰오와 미나토 가나에를 이어 '다크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등극한 '마리 유키코'는 '고충증'으로 '메피스토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메피스토'란 파우스트와 계약을 맺은 악마의 이름이기도 한데, 어쩐지 상 이름 자체도 그녀의 '작풍'과 너무도 잘 어울려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고충증'은 저자 '마리 유키코'가 '기생충'과 관련된 수많은 책들을 탐독하며 6년이란 세월을 헌신한 결과 탄생한 작품이라 한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투자해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집필하고 퇴고하는 그 모든 과정에 작가의 열정이 느껴져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고충증'은 작중 주인공인 '마미'와 '나미'의 입장에서 서술된 1장과 2장,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3장까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사립 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는 딸과 함께 다카모리의 고급 맨션 스카이헤븐에 살고 있는 주부 마미. 남부러울 것 없이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녀는 동생 명의로 빌린 허름한 아파트에서 매주 월, 수, 금 다른 남자들과 '프리섹스'를 즐긴다. 그녀의 무분별한 성관계가 초래한 일일까? 음부의 극심한 가려움증을 동반하게 되고, 그녀와 성관계를 맺은 남성 중 한 명이 온몸에 블루베리 크기의 작은 혹이 잔뜩 돋은 상태에서 사망하게 된다. 이후 마미는 자신의 집에서 '파삭파삭파삭파사삭....'하는 기괴하면서도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벌레소리 같기도 한 이 소리는 집안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자신의 몸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다. 결국 그녀는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자신의 오른손을 자른 후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동생 나미는 형부와 함께 사라진 언니의 행방을 쫓기 시작한다.

'마미'의 행방을 쫓기 위해 언니 집에 머물러 있던 '나미'는 <문예 다키모리>발행인으로부터 ​'마미'가 썼다는 '소설'을 돌려받는다. '마미'의 일상이 적나라하게 표현된 이 작품은 미완성 작품으로 결국 채택되지 못해 반송된 것이다. '마미'의 원고를 읽은 '마미의 남편'은 크게 분노하지만 원고 속 내용이 어딘가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나미'와 '마미의 남편'이 '원고'를 바탕으로 '마미' 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과 인물들의 궤적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밝혀지는 범인의 실체, 평범하게만 보였던 이웃들의 비밀, 저열하고도 추악한 인간의 욕망 등 그 모든 사건의 시발점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마지막으로 독자를, 나를, 너무나 혼란스럽게 만든 작가의 '서술트릭'을 동반한 반전까지!!

'마리 유키코'의 '고충증'은 '기생충'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이면의 음습하고 추악한 욕망의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해 낸 작품이다. 표면상으론 무분별한 성관계가 불러온 참극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속에 내재된 이야기들은 더 참혹하기만 하다. 인간의 몸을 숙주로 순환하며 성장하는 '기생충'은 성충이 될 때까지 인간의 몸을 점차 잠식해 나간다. 이 모습과 과정은 어딘가 인간의 감춰진 추악함과 닮아 있다. 미움은 미움을 낳고, 증오는 증오를 낳듯, 순환과 동시에 그 크기도 커져 인간의 정신을 점차 잠식해 나간다. 결국 그 추악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혹은  매스컴을 통해서 심심찮게 엿볼 수 있다.

현실 속 '추악함'이 소설 속 '비현실'이 되고, 소설 속 '추악함'이 현실 속 '현실'이 되는 이 순환과정 또한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영원히 마주할 수밖에 없는 그림자이다. 결국 그 누구도 '욕망이라는 그림자'로부터 결백할 수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고로 이 소설 '고충증'의 작중 인물들 또한 모두 결백하지 못하다. 때문에 범인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안도감도 느낄 수 없었다. 

"유리코의 웃음에는 인간의 본성을 끌어내는 속임수가 숨어 있다.
그 망측스러운 웃음을 보면 감추고 있던 또 다른 얼굴이 무심코
나타난다." <p.85>

"이런 일로 죽다니... 아이들 시험 준비에 악영향을 끼치면
곤란하다." (중략) 어쩌면 아이들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그러도록 온갖 수단으로 사건을 얼버무리
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다른 원인을 끄집어내어 거기다 모든
책임을 전가하겠지.

인간이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모든 죄를 짊어진다면 인간은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인간은 비겁자가 되어서라도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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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틸유아마인 언틸유아마인 시리즈
사만다 헤이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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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범인'도 '범인'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이 더 눈에 밟혔다. 그들에게 '범인'은 사랑한 사람이고, 앞으로 더 사랑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범인'이 되어버린 '그 혹은 그녀'의 소식을 듣고 '남겨진 사람들'이 또다시 받게 될 상처를 생각하니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착잡하고 안타까웠다. 소설 <언틸유아마인>은 ​책표지에서 느낄 수 있듯 아이를 가진 행복한 여자의 모습 혹은 그와는 반대로 아이를 갖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여자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그림자를 잔인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모습으로 그려낸<범죄스릴러>이다.  


<​언틸유아마인>은 세 여자의 시점이 교차되며 서술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워킹맘 '클라우디아'이다. 그녀는 제임스와 결혼 전 여러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와의 사이에 소중한 딸을 품게 되었다. 제임스를 처음 만난 건 일 때문에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였다. 아내를 잃은 제임스와 엄마를 잃은 쌍둥이들.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사랑하게 된 클라우디아와 제임스. 결국 클라우디아는 그들과 한 가족이 된다. 남편 제임스는 해군으로 장기간 바다에 나가 있곤 하는데, 자신이 없는 동안 만삭인 아내와 쌍둥이들을 보살필 유모를 고용하게 되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조 하퍼'를 만나게 된다.

​『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삶 아니었나? 완벽한 가정생활. 어린 시절부터 늘 꿈꾸던 삶.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 나를 엄마로 받아준 두 아들, 탄탄한 직장, 장차 태어날 딸. 인테리어 잡지를 옮겨 놓은 듯한 멋진 집. 』 <p.76> ​『사실 제임스는 엘리자베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은 직후에도 웃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를 알만큼 알고 나니, 그것이 그 사람 나름의 대처 방식임을 깨달았다. 청난 스트레스에 직면한 사람은 그 스트레스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대해야 이겨낼 수 있다. 일종의 자기방어인 셈이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거기에 의존했다. 우린 둘 다 실연이나 이별의 아픔으로 힘든 상태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 <p.374> 

두 번째 주인공은 클라우디아와 제임스 가정에 고용된 유모 '조 하퍼'이다. 그녀는 오자마자 쌍둥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부부의 마음도 사로잡는다. 결국 주말까지 클라우디아와 제임스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은 어딘지 의심쩍다. 그건 클라우디아도 독자도 마찬가지다. 클라우디아가 집을 비우면 온 집안을 뒤지고, 클라우디아와 마주할 땐 유독 그녀의 만삭인 배를 의식하기도 한다. 첫날 이 집에 왔을 때 가방이 열리며 얼핏 보였던 임신 테스트기를 클라우디아에게 들키기도 했다. 클라우디아는 남편 제임스에게 불안한 마음을 털어 놓지만 임신 때문에 예민해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뿐이다. 얼마 후 제임스는 장기간 항해를 위해 떠나게 되고 만삭인 자신과 어린 쌍둥이들만 남은 이 상황에서 그녀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가는데...

​『 나는 옷장 구석에서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안쪽 주머니의 지퍼를 열고 푸른색과 흰색으로 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클리어 블루 임신 테스트기였다! 99%의 정확도를 자랑한다는 임신 진단 키트이다. 두 번이나 검사를 해봤지만 임신은 아니었다. 다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남들은 쉽게 하는데, 난 왜 이리 어렵단 말인가? 공허감과 무력감에 휩싸였다.  <p.100>

생각만 해도 겁이 났지만 아무렇지 않게 그러자고 대답했다. 거기 가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임산부에게 둘러싸일 것이다. 다들 모성이라는 덫에 걸려든 걸 후회하면서 두세 살 난 아이들을 우리에 가둬 놓고 거대한 배를 내민 채 수다를 떨겠지. 사방에 임산부가 널려 있었다. 그게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더 허전하고 더 외롭게 했다. 나 자신이 더 쓸모없게 느껴졌다. 전에는 가뿐히 해치웠던 일도 이젠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가진 않을 거라고 나 자신에게 타일렀다. 이런 식으로 영원히 살진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다. 』 <p.111>

 

세 번째 주인공은 여형사 '피셔'이다. 그녀는 최근 잇따라 발생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같은 형사인 남편과 함께 조사하고 있다. 만삭인 임산부를 상대로 배를 갈라 산모와 아이 둘 다 죽게 된 아주 잔인한 사건이다. 사건 해결도 해결이지만 그녀에겐 가정사도 문제다. 남편의 불륜고백, 10대 딸아이의 가출과 결혼 선포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한 것이 없다. 이런 와중에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을 하나 둘씩 찾아 나서는데...

소설 <언틸유아마인>은 세 여자의 시점을 번갈아 읽어나가며 그녀들의 내면을 엿보게 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며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일련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간다. 마치 떨어져 있던 각각의 퍼즐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이 되어가는 것처럼. 내 눈앞에 펼쳐진 완성된 그림을 보았을 때, 여지껏 믿었던 혹은 의심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충격이란! 어쩌면 처음부터 그녀들을 의심하고, 믿었던 건 나 자신일 뿐이지, 그녀들은 그저 자신의 삶 일부분을 이야기했을 뿐이리라.


뱃속 아기를 잃을 때마다 내 일부분도 죽었다. 마틴은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까운 친구들은 물론이요, 내 몸의 일부를 떼어낸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기를 세 번이나 사산했다. 그리고 속옷에 피를 흘리며 유산한 숫자는 세는 것도 포기했다. 그런 일을 다 겪으면서 내가 겉모습만 여자일 뿐, 아기를 열 달 동안 품지도 못하는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억장이 무너지고 피눈물을 쏟아냈다.  <p.400>


여자이기 때문에 삶의 어느 과정에선 좋든 싫든 마주해야 하는 것.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뜻과 어긋날 때 비극은 시작된다. 한순간의 실수로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질 수도 있고, 너무나 간절히 원하지만 쉽게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내면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주변의 시선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소설 속 표현처럼 사방에 임산부가 널려 있는 곳. 갖지 못한 자에겐 힘들고 허전하고 외롭고 심지어 자신의 몸뚱어리가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SNS를 도배한다. 누군가에겐 희극이 누군가에겐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아이를 갖는 다는 것은 분명 축복받을 일이나 이렇게 얄궂게도 두 얼굴을 가진 것이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자이기에 여자라서 짊어져야 할 숙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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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혼 - 기억 없는 시간
감성현 지음 / 네오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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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지만 강렬한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감성현의 수혼(輸魂)은 '나를 수', '넋 혼' 글자 그대로 '혼을 나른다'라는 의미다. 인간의 몸을 옷처럼 갈아입고 벗어버리는 존재인 수혼인. 수혼인은 인간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그들에게 인간의 법칙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혼'을 <수혼>을 통해 타인의 육체를 강탈하여 온갖 범죄를 일삼는다. 살인, 강간, 강도, 폭행 등 인간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악행들을 수혼인은 서슴없이 겉으로 드러낸다. 그들이 강탈한 육체가 '온갖 악행'에 대한 강력한 면죄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죄의식'이란 없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면 그만이다. 자신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세상을 맘껏 조롱하며. 주인공 '연우'도 수혼인이다. 그에겐 여느 인간들처럼 사랑하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다. 그러나 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여동생 '연희'만 남았다.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울부짖던 그날 밤, 머리 위로 수없이 쏟아질 듯 펼쳐진 별들이 죄스럽게도 아름답다 생각했다. 살려내야 한다는 그날의 울림은 연우에게 벗어날 수 없는 기억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후 연우는 119 구조대원이 되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이렇듯 연우는 기존의 수혼인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소설 속에는 명확한 이유나 설명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유일하게 수혼인을 죽일 수 있는 존재인 '살해사' 무레르와 엘레테의 대화를 통해 유추할 뿐이다.

"수혼인 중에 선한 경우도 있을까요?"

"절대로."

"그렇지만 무레르, 수혼인은 인간으로부터 갖춘 탈바꿈을 통해 나타나잖아요. 인간이었을 때의 선함을 간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p.87)

소설 <수혼>은 Teaser, Sequence, Trailer로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각각의 용어에 맞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Teaser> : 영화나 방송 예고편의 한 형식으로 영화의 장면을 조금만 보여주거나 전혀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상물.  <Sequence> :​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들. <Trailer> : 필름의 종료 지점에 부착하는 빈 필름. 필름에 수록된 이미지와 사운드를 보호하고 마지막 프레임까지 정확하게 영사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중 가장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는 것은 Sequence로써 수혼인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사고 현장에서 영문도 모른 채 용의자가 된 사람들. 명백한 물증 앞에 그들의 동일한 자백은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말뿐이다.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왔던 마석은 우연치 않게 수혼을 경험하게 되면서 잠들어 있던 수혼의 정체성을 깨닫고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그의 악행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면수심의 두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떠올랐다. '살해사' 무레르의 말처럼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라는 물음엔 나조차도 쉽게 답을 할수 없었다. 소설 <수혼>은 일련의 사건 속에서 어렴풋이 수혼인의 존재를 눈치챈 형사 태훈과 마석의 대결, 연희를 지키기 위해 질주하는 연우와 무레르의 대결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특히 무레르를 쫓기 위해 <수혼>하며 질주하는 연우의 모습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가 <수혼>할 때마다 그의 뒤로 빈 껍질처럼 나뒹구는 인간의 육신, 다음 순간 전혀 다른 인간의 육신을 입고 무레르를 쫓아 질주하는 연우. 빠르게 돌아가는 영화 속 장면을 쫓듯 나의 시선 또한 <수혼>할 대상을 찾아 질주하는 연우의 뒤를 쫓고 있었다. 사람을 살리며 살겠다는, 그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죗값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내고 싶었던 단 하나. '연희'. 마지막 <수혼>후 무거운 육신의 옷을 입고 드디어 마주하게 된 '살해사' 무레르. 곧이어 그의 손이 연우가 입은 육신의 복부로 깊숙이 들어오는데...

마지막 장 Trailer. 이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나 순간 고민이 되었다. '반전'이라면 '반전'일까? 그러나 소설 마지막 문장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결국 내 나름대로 책 속 문장을 통해 결론을 내렸다. 수혼을 하다 보면 그 끝에서 악마와 마주하게 된다. 그 악마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다. (p.175)

소설<수혼>은 200page가 조금 넘는 얇은 책으로 금방 읽어 버렸는데, 그 내용이나 시사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간에 대해, 인간의 이면에 대해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던지는 물음엔 '숨겨진 나의 욕망'이 드러날까 두려워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말해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훔칠 수 있다면

뭘 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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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6
나카마치 신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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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은 지는 조금 됐는데 이제야 서평을 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건 아직까지 내겐 조금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냥 간단하게라도 쓰면 좋은데, 뭐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잘 써야겠다는 일종의 강박증이 있는 것 같다. 대충 쓸 바엔 아예 쓰지 말자.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내 서평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잘 써진 서평이냐? 그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읽은 책들은 꽤 있어도 서평을 쓰지 않아 기록되지 못한 책들이 많다. 간단하게라도 서평을 남겼더라면 내가 읽어왔던 책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또 지금과 같은 경우처럼 어떤 책들은 뒤늦게라도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펼치면 내용이나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희미해서 애를 먹기도 한다. 결국 책의 스토리를 되짚어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사서 고생, 두 번 일하는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쓰려는 이유는 역시 '기록' 때문이다.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책을 읽고 책을 벗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책을 벗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기록함으로써 잊힐 뻔한 소중한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남는다. 시간이 지나 잊어버리더라도 다시 그 기록을 들춰보면 그때의 책 속 이야기와 당시 느꼈던 감동들이 오롯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기록하지 않아, 참 많은 책들이 내 머릿속에서 잊혔다. 아쉽지만!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서평을 남겨야겠다. 그게 책에 대한 작은 예의라 생각한다.

나카마치 신의<천계살의>는 1982년 발표한 단편 <산책하는 사자(死者)>가 전신이 된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 <모방살의> (원제는 '그리고 죽음이 찾아온다.') 가 그러했듯, 미스터리 팬들의 뜨거운 요청으로 1989년 재간되었다가 2005년 <천계살의>라는 새 이름을 얻으며 <모방살의>, <공백살의>, <삼막살의>, <추억살의>와 함께 '살의 시리즈'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탄생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나 문체가 현재의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다. 현재는<서술트릭>이라는 장르가 비교적 흔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생소했다. 바로 이<서술트릭>이라는 신 장르를 과감하게 선보인 선구자가 바로 나카마치 신이다. 다만 당시의 풍조로 <서술트릭>은 일종의 기만이자 미완성품으로 그의 소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소설 뒷부분 '작가의 말'에서 그의 아내가 한 말 "당신의 데뷔작이나 초기 작품은 당신이 죽은 뒤에, 분명히 높이 평가받을 날이 올 거야. 그때 내가 잘 지켜봐 줄게."처럼 작가 사후에 비로소 인정받게 된다. 이 부분도 안타깝지만 예언과도 같은 말을 한 아내가 작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로 인해 당시 아내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리운 마음으로 한 잔 아닌 몇 잔의 술을 매일 밤 즐기고 있다는 생전 작가가 남긴 이 말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책장을 덮은 후 한동안 먹먹하기도 했다.

<천계살의>를 읽기 전에 <서술트릭>이라는 ​얘기를 들었기에 한 장 한 장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읽었다. 아니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당했다'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범인을 예측한 것도 사실 책의 중반부를 한참 지나서였으니. 한때는 잘 나가는 작가였지만 최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야규 데루히코가 <추리세계> 잡지 편집부  하나즈미 아스코에게 연락을 해온다. 

"범인 맞추기 릴레이 소설......" 

"네. 어떤 작가가, 이 경우에는 제가 되겠군요. 제가 쓴 '문제편' 원고를 다른 작가에게 보여주고 추리하게 한 뒤에 '해결편'을 집필하도록 하는 겁니다. 즉 범인 관점으로 쓴 '문제편' 바로 다음에 상대 작가의-탐정 역이라고 불러야 할까요-'해결편'을 싣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에 범인의 눈으로 쓴 '해결편'을 다시 싣는 구성입니다. 뭐, 두 사람의 지혜 대결이라고 할 수도 있죠." (p.11)

흥미를 느끼는 아스코와 ​기획이 취소되더라도 자신의 원고만큼은 끝까지 읽어달라 부탁하는 야규 데루히코. 이후 <호수에 죽은 자들의 노래가......>라는 '문제편'을 아스코에게 전달하고 마지막 범인의 눈으로 다시 쓰는 '해결편' 집필을 위해 잠시 온천여행을 떠나겠다는 야규. 그리고 떠나기 전 '탐정 역'의 해결편은 탤런트 겸 소설가인 '오노미치 유키코'가 써주길 요청한다.

아스코는 예전부터 본격추리의 참맛은 밀실이라든가 알리바이 트릭의 재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의 곡예와 결말의 의외성에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야규에게도 한 적이 있다.(p.59-60) 야규의 원고는 아스코가 바라던 바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합격점을 줄 수 있다. 다만 아주 비슷한 작품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는 기분이 든다. 결국 야규의 작품은 실제 사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임을 알게 된다. 지명과 심지어 실명까지. 당시 이 사건은 미궁에 빠졌으나 작품 속 야규는 범인이 누군지 아는 것처럼 보인다. 이 상태로<추리세계>에 야규의 작품을 실을 수 없어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하지만 "죽어서 남몰래 웃는다"(p.90)라는 뜻 모를 유서를 남긴 채 자살했다는 야규의 소식이 전해진다. 순수창작이 아닌 실제사건을 작품 인양 써낸 야규의 목적과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그는 정말 진범이 누군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정말 자살을 한 것일까? 또한 해결편의 상대 작가로 지목한 '오노미치 유키코'와는 어떤 관계인가? 모든 의문을 안고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아스코는 야규의< 원고 속 실제 사건 내용을 바탕으로 하나씩 사건 현장>을 찾아간다. 아스코의 시점을 따라가며 추리하는 과정에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들을 찾을 때마다 보란 듯이 조롱하듯! 용의자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한다. 더 이상 범인으로 지목할 만한 사람이 없는데...라고 생각한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충격이란!! '혹시'나 하고 의심은 했지만 '설마'했던 일이 벌어질 줄이야......

"추리소설이란 문자 그대로 추리가 주체가 되는 소설이지만, 근래에는 추리하는 맛이 희박해진 추리소설들이 범람하고 있다. 나카마치 신은 추리소설의 원칙을​ 살려 연쇄살인과 수수께끼 풀이를 테마로 정교하고 대담한 트릭을 구사하며 독자에게 두뇌 싸움을 걸고 있다. 당신이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듯 읽어나간다면 작가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겠지만, 무운이 다하여 패배하더라도 가슴속에는 "이거 한방 먹었는걸!" 하는 쾌감이 남을 것이다. 아무쪼록 작가가 설치한 덫에 걸려들지 않기를.- 아유카와 데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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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14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알라딘 서재 글이 개인을 위해서 쓴 거라고 하지만, 완전히 공개되는 순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이러면 서평을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요. 평소에 엘리카님의 글을 읽어봤는데, 추리소설 서평을 꾸준히 남기시네요. 저는 추리소설을 읽고 나면 뭐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별해무 2016-04-14 23:3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실 그런거 신경쓰지 말고 쓰라고는 하는데 ㅎ 쉽지가 않네요. 아무래도 cyrus님의 말씀처럼 공개되는 공간이다 보니...ㅎㅎ 최근에는 추리소설을 주로 읽다보니 서평의 대부분이 추리소설이 되었네요 ㅎ 독서 편독을 하면 안 되지만 재미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네요. 사실 저도 추리소설이든 다른 소설이든..서평쓰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추리소설 서평도 힘든데, 더 어려운 책들에 대한 서평은 어찌 쓸지...벌써부터 걱정이네요 ㅎ 그래도 일단은 어떤 책이든 편견없이 아무리 가벼운 소설일지라도 그 책 안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얻으려 노력하며 서평을 씁니다. 쓰다보면 지난 제 추억도 떠오르기도 하고... 서평을 쓰면서 하고 싶은 이런 저런 말들을 늘어놓는 거죠 ㅎ 그러면서 스스로 위안도 받고 ㅎㅎ
 
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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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소설 『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라는 이름의 ​홍콩 작가이다. 국내에 13.67이라는 작품이 먼저 소개되었으나, 출간 시기는 『기억나지 않음, 형사』가 더 빠르다고 한다. 때문에 그 이후의 작품인 『13.67』이 재미나 완성도 면에서 더 높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나지 않음, 형사』부터 읽어 보기로 했다. 그래야 다음 작품인  『13.67』에서 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요즘 홍콩 작가뿐 아니라 중국 작가들의 걸출한 작품들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동안 추리소설은 대부분 일본 작품들을 많이 접해 왔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요즘이 참 즐겁다.

방 한가운데 두 구의 시체가 피범벅이 되어 누워있다. 남자와 여자. 부부인 듯, 심지어 여자는 잉태를 한 상태였다.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아이. 누가 이렇게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가? 서술자 '나' 쉬유이는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 다짐하며 처참한 사건 현장 한복판에 서 있다. 언뜻 죽은 여자의 눈이 살짝 움직인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고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한마디 "수고해요." 웃는 시체도 아닌 말하는 시체라니... 지독한 숙취인 듯 어지러운 머리를 감싸 쥐고 차 안에서 눈을 뜬 쉬유이. ​어제 어디서 누구와 술을 마셨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주머니 속 수첩에 적힌 '둥청아파트'. 쉬유이는 지난주 홍콩섬 웨스턴 서덜랜드가에 있는 둥청아파트 3층에서 발생한 부부 살인 사건을 기억해 낸다. 다만 진범은 따로 있을 거라는 '묘한 위화감'만이 쉬 사라지지 않을 뿐 무거운 머리를 이끌고 근무지로 향한다. 어쩐지 주변 풍경들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이런 감각을 '미시감'이라 했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선택적으로 특정 기억을 잃거나 단기 기억상실증이 생기기도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하지만 이런 장애를 앓는 경찰관은 적잖기에 강한 의지로 극복하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웨스턴 경찰서 정문 앞에 도착한 쉬유이. 문득 전광판에 쓰인 날짜를 본다. 2009년 3월 15일. 이상하다. 그가 기억하는 올해는 분명 2003년이다. 그런데 왜? 그러고 보니 지나왔던 거리의 풍경도, 자신이 서 있는 경찰서의 모습도 어딘가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 6년 간의 기억이 없다. 도대체 지난 6년 동안 쉬유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쉬유이는 기억과 망각 사이를 오가며 '아청'이라는 잡지사 기자와 함께 '둥청아파트' 살인 사건을 다시 추적하기 시작한다.

소설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이렇듯 '나'라는 서술자 '쉬유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다만 중간중간<단락>이라는 파트가 내지의 색깔도 달리해서 '쉬유이'의 과거와 또 다른 인물 '옌즈청'의 이야기로 전개되기도 한다. 옌즈청 또한 쉬유이와 마찬가지로 어릴 적 끔찍한 사고의 영향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스턴트 맨으로 활동하며 가끔 단역으로 영화에도 출연하는 옌즈청은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 슬픔을 간직한 자아를 억제하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한 '또 다른 자아'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일종의 자기방어인 셈이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어버린 아버지와 이모. 이런 상처와 충격 속에 홀로 남겨진 옌즈청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고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린젠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둥청아파트' 살인범으로 현재 죽고 없다. 그가 범인일리 없다는 강한 생각과 함께 옌즈청 역시 '둥청아파트' 살인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사건에 한 발짝 다가간다. 하나의 같은 사건 선상 위에 서 있는 두 남자 쉬유이와 옌즈청! 

결국 '둥청아파트' 살인 사건의 진범은  쉬유이에 의해 밝혀지고 소설은 끝을 맺는가 싶었는데....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은, 아직 진범의 해석 과정조차 헷갈려 허우적 되고 있는 나에게 2연타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엔 '믿고 싶은 기억'과 '잊고 싶은 기억'이 있었다.

기억을 담당하는 우리의 뇌는 참으로 신비롭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 기억과 망각 사이. 우리가 인지하는 의식의 세계는 무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어떤 '진실'을 잊기 위해 기억을 조작하기도 한다. 그것이 '잊고 싶은 진실'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조작된 기억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찬호께이의 『기억나지 않음, 형사』 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인 뇌(기억)를 소재로 작가만의 문장력과 강한 흡입력으로 완벽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듯하다. 또 한편으론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홍콩의, 현재 도시문명 속에 매몰되어 버린 인간성에 대한 고발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잊어야만 하는, 잊고 싶은 기억의 편린들은 이런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이토록 천박한 도시다. 살인, 강도, 납치, 강간, 뭐든지 나와 상관없으면 시민들은 방관자적 입장에서 사건을 감상한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모두 냉혈동물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현대사회의 인간은 공감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좋게 말하면 이성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냉혹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정보는 더 쉽게 유통되고, 우리는 세상일에 점점 더 마비된다. 어쩌면 세상에 나쁜 일이 너무 많아서 냉혹해져야 했는지도 모른다. 한 겹 또 한 겹의 갑옷으로 자신을 감싸고서 이 `번화한 사회`에 적응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방관자적 입장에서 사물을 보아야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는다. <1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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