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증
마리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박하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

 '고충증'이라는 독특한 제목과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에로틱한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된 작품이다. '마리 유키코'라는 작가는 처음 접하는 작가였기 때문에 작가와 책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최근 작품으로는 '여자친구'와 '골든애플'이 있고, 2008년 입소문을 통해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이란 작품도 있다. '고충증'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고충증'이 2005년도 '마리 유키코'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만큼 내용 자체도 충격적이고 표현도 너무 리얼해서 나도 모르게 읽으면서 인상을 쓰게 되고, 다 읽고 난 후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찝찝함 속에 허우적 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매년 챙겨 먹었던 구충제를 다시 복용하기도 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이런 '찝찝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이야미스'라는 조어가 있다고 한다. 불쾌하다는 뜻의 '이야'와 미스터리의 '미스'가 결합된 것으로 '읽고 나면 기분 나빠지는 미스터리'라는 뜻이란다. 최근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새로운 충격과 전율을 안겨줄 수 있는 건 그녀만의 '독특한 작풍'의 힘이 아닐까 한다. 기리노 나쓰오와 미나토 가나에를 이어 '다크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등극한 '마리 유키코'는 '고충증'으로 '메피스토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메피스토'란 파우스트와 계약을 맺은 악마의 이름이기도 한데, 어쩐지 상 이름 자체도 그녀의 '작풍'과 너무도 잘 어울려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고충증'은 저자 '마리 유키코'가 '기생충'과 관련된 수많은 책들을 탐독하며 6년이란 세월을 헌신한 결과 탄생한 작품이라 한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투자해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집필하고 퇴고하는 그 모든 과정에 작가의 열정이 느껴져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고충증'은 작중 주인공인 '마미'와 '나미'의 입장에서 서술된 1장과 2장,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3장까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사립 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는 딸과 함께 다카모리의 고급 맨션 스카이헤븐에 살고 있는 주부 마미. 남부러울 것 없이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녀는 동생 명의로 빌린 허름한 아파트에서 매주 월, 수, 금 다른 남자들과 '프리섹스'를 즐긴다. 그녀의 무분별한 성관계가 초래한 일일까? 음부의 극심한 가려움증을 동반하게 되고, 그녀와 성관계를 맺은 남성 중 한 명이 온몸에 블루베리 크기의 작은 혹이 잔뜩 돋은 상태에서 사망하게 된다. 이후 마미는 자신의 집에서 '파삭파삭파삭파사삭....'하는 기괴하면서도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벌레소리 같기도 한 이 소리는 집안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자신의 몸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다. 결국 그녀는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자신의 오른손을 자른 후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동생 나미는 형부와 함께 사라진 언니의 행방을 쫓기 시작한다.

'마미'의 행방을 쫓기 위해 언니 집에 머물러 있던 '나미'는 <문예 다키모리>발행인으로부터 ​'마미'가 썼다는 '소설'을 돌려받는다. '마미'의 일상이 적나라하게 표현된 이 작품은 미완성 작품으로 결국 채택되지 못해 반송된 것이다. '마미'의 원고를 읽은 '마미의 남편'은 크게 분노하지만 원고 속 내용이 어딘가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나미'와 '마미의 남편'이 '원고'를 바탕으로 '마미' 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과 인물들의 궤적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밝혀지는 범인의 실체, 평범하게만 보였던 이웃들의 비밀, 저열하고도 추악한 인간의 욕망 등 그 모든 사건의 시발점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마지막으로 독자를, 나를, 너무나 혼란스럽게 만든 작가의 '서술트릭'을 동반한 반전까지!!

'마리 유키코'의 '고충증'은 '기생충'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이면의 음습하고 추악한 욕망의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해 낸 작품이다. 표면상으론 무분별한 성관계가 불러온 참극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속에 내재된 이야기들은 더 참혹하기만 하다. 인간의 몸을 숙주로 순환하며 성장하는 '기생충'은 성충이 될 때까지 인간의 몸을 점차 잠식해 나간다. 이 모습과 과정은 어딘가 인간의 감춰진 추악함과 닮아 있다. 미움은 미움을 낳고, 증오는 증오를 낳듯, 순환과 동시에 그 크기도 커져 인간의 정신을 점차 잠식해 나간다. 결국 그 추악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혹은  매스컴을 통해서 심심찮게 엿볼 수 있다.

현실 속 '추악함'이 소설 속 '비현실'이 되고, 소설 속 '추악함'이 현실 속 '현실'이 되는 이 순환과정 또한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영원히 마주할 수밖에 없는 그림자이다. 결국 그 누구도 '욕망이라는 그림자'로부터 결백할 수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고로 이 소설 '고충증'의 작중 인물들 또한 모두 결백하지 못하다. 때문에 범인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안도감도 느낄 수 없었다. 

"유리코의 웃음에는 인간의 본성을 끌어내는 속임수가 숨어 있다.
그 망측스러운 웃음을 보면 감추고 있던 또 다른 얼굴이 무심코
나타난다." <p.85>

"이런 일로 죽다니... 아이들 시험 준비에 악영향을 끼치면
곤란하다." (중략) 어쩌면 아이들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그러도록 온갖 수단으로 사건을 얼버무리
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다른 원인을 끄집어내어 거기다 모든
책임을 전가하겠지.

인간이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모든 죄를 짊어진다면 인간은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인간은 비겁자가 되어서라도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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