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탐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어수웅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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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해서 책을 읽어 왔지만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인생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그동안 읽어 왔던 책들 속에서 나는, 내 나름대로 의미를 찾고, 이해하고, 곱씹어 보곤 했다. 때론 감동에 온몸이 전율한 적도 있고,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책 속 주인공의 삶에 몰입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책들이 내 삶을 통째로 바꿨다거나, 어떤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곤 생각지 않는다. 책, 독서의 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나. 아마도 내 독서 방향의 문제겠지. 음식도 먹던 음식만 먹으면 영양불균형이 생기듯, 독서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지금은 그냥 '독서습관'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 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속 어딘가 헛헛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분명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을 갖고 있을 것이다. 탐독 속 10인의 인터뷰이들처럼. 나 역시 책을 매개로 한 마법과도 같은 순간을 경험해 보고 싶고, 내 삶을 변화시킨 '내 인생 책'을 적어도 한 권 정도는 갖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이런 가운데 만나게 된 '탐독'은 작게나마 그 방향을 제시해 준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했다. 물론 탐독 속 인터뷰이들이 선정한 '내 인생의 책'들은 다분히 '개인적인 선정'이다. 나하고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그래도! 나보다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 길 끝에 나만의 길을 찾고, 나만의 인생 책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탐독'은 하나의 이정표이자, 길잡이, 참고서라 생각한다. 문화부 기자인 어수웅 작가님은 말한다.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생각은 지극히 낭만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있다는 것. 책상물림의 온전하지 못한 독서에서 벗어나, 활자의 울타리 밖에서 성취감을 확인하고 삶을 바꾼 사람들이. 그러한 '진짜 사람들'을 책을 통해 찾고 만나는 일. '나를 바꾼 책, 내가 바꾼 삶'. 이 주제를 바탕으로 그가 인터뷰한 총 10인의 주옥같은 이야기가 '탐독' 속에 실려있다.

김영하의 탐독 <달과 6펜스> 탈주의 서사로 책 속 주인공의 삶과 작가의 삶의 궤적이 너무도 닮았기에 작가의 인생 책이 되었다는 것.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행위는 이해할 수 없으며, 존재는 오리무중이다. 운명은 물음표 속에 갇혀 버리고, 작가는 그 물음표를 문장으로 바꾸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오늘도 소설을 쓴다." 조너선 프랜즌의 탐독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장편소설 <자유>와 <인생 수정> 단 두 권만으로 '위대한 미국 작가'의 반열에 오른 조너선 프랜즌. 그의 세계는 극단의 사실주의로 우리를 발가벗기지만 프란츠 카프카는 몽롱하게 일그러진 이미지로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얼핏 상반되어 보이지만 뒤틀린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눈을 존재의 맨 밑바닥까지 돌리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다는 이야기. "나는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독자들은 내 글을 읽지 않았었고, 내 말에 귀 기울이지도 않았어요. 1990년대 미국은 천박한 물질주의가 판을 치던 때였습니다. 새로 개발된 항우울제 따위가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식의 멍청한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어요. 저는 이 시점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김중혁의 탐독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니면 말고', '뭐라도 되겠지', 어딘지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느낌이 드는 작가 김중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아홉 번이나 읽었고 그때마다 다르게 다가왔다 한다. "책은 삶을 바꾸지 않지만, 대신 뭔가를 살짝 바꾼다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 큰 게 바뀌는 게 아니고, 한 권 읽고 나면 마음의 위치가 0.5센티미터 정도 살짝 옮겨지는 것 같다. 그 정도 바뀌는 게 좋은 것 아닐까?" 움베르토 에코의 탐독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 은희경의 탐독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무용가 안은미의 탐독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 영화감독 김대우의 탐독 <로빈슨 크루소>, 사회학자 송호근의 탐독 <서유견문>, 요리 연구가 문성희의 탐독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마지막 정유정의 탐독 켄 키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까지 총 10인의 탐독과 약간의 에피소드까지 곁들인 이야기들에 빠져들었다. 총 10인의 이야기들이 다 의미 있고, 재미있었지만 가장 마음이 끌렸던 건 작가 정유정이었다. 최근 <종의 기원>을 읽고 있기도 했고.

정유정 작가님의 이력에 대해선 작품과 한때 간호사로 일했었다는 것 외엔 없었는데 <탐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정유정 작가님의 <탐독>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작품보다 정유정 작가님 삶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25살에 간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한다. 간호사 재직 시절, 자신이 몸담고 있던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참담한 시간들이었다고 작가 정유정은 고백했다. "이제부터는 네가 집안의 엄마다. 동생들을 부탁한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으며, 정유정 작가에게 엄마는 하나님이었다고 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큰 위로를 받았다. 유방암으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나 역시 엄마는 내게 하나님이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정유정 작가님의 엄마보단 10년을 더 내 곁에 계셔 주셨구나. 작가님은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하나님 같은 엄마를 잃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에 난 또 눈물을 흘렸고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작가님이 있다는 것에 위로도 받았다. 14년이란 시간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고, 30대 중반부턴 소설을 쓰자고 결심했다 한다. 작가님 왈 "대책 없는 확신이 있었다."한다. 0아니면 100, 모 아니면 도, 자신은 타협없는 성격이란다. 아마 작가님의 이런 근성과 재능이 3무 작가라는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남편은 소방공무원이고, 3살 연하로 동생의 친구였단다. 그리고 늘 마음속으로 다짐해 왔던 그 대책 없는(?) 꿈을 딱 서른다섯에 선전포고했다. "이제는 신랑, 당신이 나를 먹여 살려라." 그러나 이후 6년 동안 문예지, 각종 공모전에서 줄줄이 낙방. 처음으로 슬럼프라는 것을 겪었다 한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쓴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가 세계청소년문학상에 당선되던 날 신랑과 함께 펑펑 우셨다는 작가님. "글을 쓰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인간 같아요. 마누라로서, 엄마로서 하는 역할이 있겠지만, 나는 '소설가 정유정'의 삶이 가장 중요해요. 그 자체로 '나'라고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거든요. 가족이 위기에 닥치면 당연히 제 역할을 해야겠지만, 일상을 살고 있을 때 저는 이기적입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만이 유일하게 존재감을 주는 걸 어떡하겠어요."  

 

 

작가님의 책상 위 작업노트를 공개했다. 직접 그린 지도들이 가득한 스케치북. 공간적 배경을 장악하기 위해 직접 그린다는, 수채색연필을 이용한 지도들이다. 스케줄 노트도 있다. 시간적 배경을 장악하기 위한 노트란다. 새 작품 하나에 들어가는 노트만 평균 십여 권. 엔터테인먼트로 훌륭하면서도, 동시에 기법 면에서도 웰메이드인 소설. 느슨하고 태만한 순문학보다 정교하고 재미있는 웰메이드 장르 소설을 잘 쓰는 게 꿈이라는 정유정 작가의 말씀.

<탐독>을 통해 10인의 ​'나를 바꾼 단 한 권의 책'을 만난 것, 그들 모두의 '영롱한 삶의 한 면을 공유'하게 된 즐거움까지. <탐독, 을 탐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 이제 다시 책을 읽으러 가야겠다. <나를 바꾼 단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많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단 0.5cm만이라도 내 마음이, 내 삶이 변화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 있고 행복하단 걸 알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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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별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 지음, 최상희 옮김 / 사계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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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북디자이너가 꿈인 적이 있었다. 기존에 하고 있었던 일은 웹디자인이었지만 책을 워낙 좋아해서 '책의 첫인상이랄 수 있는 겉표지'를 책의 내용을 토대로 아름답게 꾸며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던 시절. 『 여우와 별 』도 예전에 꾸었던 꿈의 한 조각을 떠올리며 읽게 된 책이다. 무엇보다 기존에 내가 읽어왔던 책과는 확연히 다른,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기도 했고. 『 여우와 별 』은 '펭귄 클로스바운드 클래식' 북 디자이너인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가 쓰고 그린 첫 책이라 한다. 원서의 느낌을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표지는 백박 천양장으로, 내지는 최고급 친환경 종이 문켄지 사용했다 한다. 책장을 넘겨보면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패턴 형식의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고, 몇 가지 색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색채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담고 있는  『 여우와 별 』은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내용은 여느 서사 못지않게 깊은 울림을 준다.

깊고 어두운 숲 속에 살고 있는 작고 겁 많은 여우에게 유일한 친구는 별이었다. 별빛의 도움을 받아 여우는 딱정벌레도 사냥하고 토끼도 사냥하며 수풀 사이를 쏜살같이 내달리곤 했다. 별과 함께 라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비가 와도 구름 사이로 별을 불러내어 빗방울과 함께 춤도 추곤 했다. '짝이는 별만 있다면 여우는 행복했다. 언제까지나 그럴 것만 같았다.' 여우의 커다란 두 눈동자엔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별은 사라지고, 여우가 머물렀던 숲은 다시 어둡고 스산해졌다. 땅 속 깊은 곳에 몸을 숨긴 채 여우는 어둠뿐인 공간에서 별이 다시 뜨길 꿈꿨지만 어둠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땅 속에 찾아 든 수많은 딱정벌레들을 상대로 어둠과 맞서 싸운 후 맛있게 딱정벌레도 먹고 기운을 차린 여우는 다시 별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가시덤불과 토끼, 나무들에게 별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고, 그렇게 별을 찾아 헤매며 도착한 곳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적막한 숲 속이었다. 여우는 지쳐 잠이 들었고 얼마 후 몸을 적시는 빗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한동안 우두커니 비를 맞고 있던 여우는 가슴속 어딘가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 마음 속 울림에 고개를 든 여우 앞에 펼쳐진 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도 아름답고 찬란한 눈부심 속에서 여우는 자신의 친구인 단 하나의 별도 빛나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여우는 사뿐 사뿐 걷기 시작했다. 그 어딘가로...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겪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고 그려진 ​ 『 여우와 별 』 은 조용한 목소리로 잔잔하게, 때론 리드미컬하게 읽힌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아주 어렸을 적,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강아지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온 적이 있다. 겁에 질려 있던 강아지를 밥도 먹이고 목욕도 시켜 주었는데, 그 순간 나를 쳐다보는 강아지의 눈망울 속에 나를 향한 신뢰의 눈빛이 담겨 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다 당시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퇴근 후에 강아지를 보고 집에서 키울 수 없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하셨고, 군 장병 한 분이 찾아와 강아지를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현관문 밖 계단참을 내려가는 군 장병 가슴에 안긴 강아지의 눈빛.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진 것인지,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던 그 눈빛이 나를 향해 뭐라고 말하려 했을지. 당시 어렸던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렇게 강아지를 보내야만 했다. 아주 오래전, 벌써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건,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애정을 갖고 의지했던 대상이라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기억과 함께 가슴속 영원한 별로 남는다. 그리움의 별, 희망의 별, 아픔의 별, 상실의 별 등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루를 살고 앞을 향해 사뿐사뿐 나아갈 수 있는 건, 가슴속 가득히 쌓여진 별들 때문이 아닐까. 아프지만, 슬프지만, 그 작은 빛들이 모여 삶은 더 깊어지고, 이별과 상실의 고통 속에도 분명, 함께 했던 추억이란 이름의 행복 역시 같은 크기로 우리 가슴속에서 언제까지나 빛나고 있을 테니까.

 

 

 

<기존에 있었던 책의 표지를 Re-Design 보았던 것>

: 론다 번의 시크릿, 하지은 얼음나무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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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세계사 - 잔혹한 범죄에서 금지된 장난까지, 금기와 금단을 넘나드는 어른들의 역사 이야기 풍경이 있는 역사 4
이주은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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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쉿! 아이들은 재우고, 우리끼리만 소곤소곤! 잠깐, 은밀한 세계사 입구로 들어가기 앞서 잠시 설을 풀어 보겠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긴 하지만 내가 배웠던 역사의 대부분은 시험, 대입, 취업을 위한 역사였다. 인류의 역사를 배운다는 것이 어찌 이리 지엽적이었는지.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제대로 배웠다면, 공부했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저 '달달달' 아무 의미 없이 외웠던 시간이었다. 이제 시험, 대입 등 이런 굴레와 강박을 벗어나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론 슬프지만;) 좀 더 자유롭게 내 스스로 역사를 공부하고, 익힐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다행스럽고 즐겁기도 하다. 특히 요즘 즐겨보는 것 중 '어쩌다 어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설민석'선생님의 역사 강의 코너이다. 어쩜 이리 귀에 착착 감기고, 설명이 쏙쏙 들어오는지! 암기과목 중 하나로만 생각했던 역사 과목이 '이해와 몰입'의 과목으로 대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이주은 작가님의 '은밀한 세계사' 역시 '이해와 몰입'을 통해 아주 즐겁게 읽었다. 제목 자체가 '은밀한 세계사'이다 보니 ~ 했더라, ~ 그랬다더라 등과 같이 단순 흥미를 끌기 위한 '야사'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엄연히 '정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만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대게 정치경제사나 사회사, 사상사 등이 중시되지만 사적인 영역의 내밀한 이야기도 역사의 일부이며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연구해온 분야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뒤바꾼 수많은 사건들은 결국 누군가의 사생활과 연결되어 있곤 하니, 사생활에 대한 연구는 전체적인 역사에 대한 이해와 완성도를 더욱 높여주기도 합니다. <머리말 中>'
위 내용처럼 나 역시 책 속의 '은밀하고 내밀한 사적인 영역'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을 읽어 나가면서,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그 시대의 배경과 커다란 역사적 흐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많이 배우고 싶은 욕심과 관심이 생겼다. 즐거움과 재미,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단 '어른'의 영역이라는 성(性)이나 폭력과 같은 소재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좀 더 큰 후'에 이 책을 만나보기로 하고, 우리 어른들끼리만 '은밀한 세계사'로의 탐험을 시작해 보자!
'은밀한 세계사'는 총 14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테마부터 나를 당혹케 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도구'인 바이브레이터가 사실은 빅토리아 시대 여성 히스테리를 치료하는 도구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의사와 산파들 '손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상상이 가는가? 잠시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이 도구의 탄생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여성은 순종적이고 자애롭고 희생정신이 강하며 순결한 '집안의 천사'이자 '가정의 빛'이어야 했던 시대였다. 당시 사회가, 남편이, 여성에게 아내에게 이렇게 요구하고 강요했던 시대였다. 여성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본능에 따라 움직일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이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당시 빅토리아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그런 여성들의 마음도 모르고 순종하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면 '병에 걸렸다' '정신이 나갔다' 등등 '여성 히스테리' 또는 '여성 정신이상증'으로 분류해 버렸다. 그런 그녀들을 달랠 치료법으로 남편과의 性 관계를 추천했고, 미혼인 여성에겐 의사와 산파들이 직접 '손으로 위로를 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 히스테리 환자들이 급증하자 의사와 산파의 손목은 남아나질 않았으니 바이브레이터의 발명은 그 수고를 덜어준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20세기 초까지 카탈로그 가전제품으로도 인기 상품이었다니, 지금 시대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은 (앞서도 잠깐 말했지만) 성적 욕망이 없는 존재로 여겼다. 욕망이라곤 오로지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자애롭고, 희생정신이 강한' 욕망만 있다고 여겼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치료법 (의사와 산파의;)을 전혀 성적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만약 이런 치료법을 사용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 결과는 굳이 말을 안 해도...;;
두 번째로 ​나를 당혹케 한 것은 중세 유럽 남성들의 민망한 패션 아이템 '코드피스 이야기'이다. 유럽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왕의 초상화나, 당시 남성들의 초상화 등 그림에도 관심이 있어서 간혹 보아왔었는데 내가 보았던 그 그림들 속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튜더 가문의 상남자, 여성 스캔들로도 유명한 헨리 8세의 초상화를 그렇게 자주 봤으면서도 전혀 눈치 채질 못했으니,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통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코드피스'란 무엇인가? 바로 남성들의 소중하고도 사적인 부분을 매우 강조한 패션 아이템이다. 당시에는 지퍼가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지를 오른 다리용, 왼 다리용 따로따로 입어 가운데 부분을 천으로 덧대어 끈이나 단추로 고정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위치가 위치인지라, 남성들의 소중한 그 부분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서 시작된 남성들의 자존심 대결이 시초가 되어 '코드피스'가 탄생했다는 이야기. 더 크고 화려하게 보석까지 넣어 강조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의 관심을 사기 위함이 아닌 주변 남자들에게 '내가 이렇게 대단한 남자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15~16세기까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평민에서 귀족까지 누구나 하고 다녔던 패션 아이템 코드피스!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그녀가 통치했던 시절 남성들의 패션은 그 전과는 다르게 여성적이고, 아름답게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에 엘리자베스 1세 여왕님께서 권좌에 앉으시며 '내가 이렇게 대단한 남자다'라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젠 바야흐로 남성이 아닌, 여성! 그녀의 시대가 도래했으니까. 어딜 감히! ㅋ(마지막 작가님께서 유행은 돌고 도니, 코드피스 또한 언젠가 우리 곁으로 돌아오려나요?라는 구절에선 혼자 터짐)
이렇듯 ​'은밀한 세계사' 속엔 흥미진진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마지막 한 테마 '안네의 일기'가 포르노다(?)에 대해서만 얘길 하고 마무리하려 한다. 나머지는 책을 통해 직접 즐거움을 누리도록! 미국에서 문학 수업시간에 배우는 '안네의 일기'가 포르노 같다며 학부모들이 항의했던 사건이 있었다. 아니 포르노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이야기란 말인가? 안네의 일기하면 떠오르는 건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숨 막히는 공포감 속에서도 매일같이 일기를 써 내려간 한 소녀의 영혼이 담긴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오해 속엔 속 사정이 있다. 안네의 일기는 총 3가지 판본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원본 A, 안네가 언젠가 일기를 출간하기 위해 편집한 B본, 수용소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안네의 아버지가 딸의 일기를 출간하기 위해 편집한 C본이다. 아마 대부분의 우리가 읽은 안네의 일기는 C본일 것이다. C본을 통해 우리는 안네를 성스러운 존재로 추앙(?) 하기도 했는데, 사실 안네는 10대의 소녀들이 그렇듯 그저 평범한 소녀였을 뿐이다. 원본을 보면 10대 소녀로서 충분히 호기심을 갖고 써 내려갔을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性 적 호기심에 발로한. 이걸 두고 포르노니 뭐니 그 난리를 친 것이다. '은밀한 세계사' 속에 안네의 일기 원본 중 일부가 실려있는데, 읽으면서 느낀 건 안네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기심 많고, 평범한 10대 소녀였구나. 더불어 여담이지만여성의 신체 부위 중 한 곳인 '그곳을' 디테일하게 표현한 부분을 보고, 성인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던 것에 살짝 충격을 받기도 했다. 오해하지 마시길. 나 또한 '금기'시 했던 시대적 풍조에 따라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시대의 피해자'일 뿐이니. ㅠ
이로써 '은밀한 세계사'의 긴 여정을 끝냈다. 별 다섯 중 반을 뺀 것은 '아쉬움'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는데 말이다.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이야기에 한창 빠져있는데 창밖으로 서서히 날이 밝아와 어쩔 수 없이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하는 심정! 앞으로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이주은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아직 읽어보지 못한 스캔들 세계사 시리즈로 아쉬움을 달래 보련다.

 

* 본 포스팅은 <인터파크도서 활자중독 1기> 서평단 활동으로 체험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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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바다
김재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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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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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소생하는... 그해 봄날, 나는 살인자의 '누나'가 되어 있었다. 나, 희영에게 그해 봄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파스텔 톤의 투명한 제주 앞바다를 연상케 하는 표지 속 한 소년의 뒷모습은 그해 봄 '진실이란 것'을 유리어항 속에 감춰 둔 것처럼 보였다. 보이지만 외면해 버리는 것, 깨진 유리 조각에 마음이 베여 아픈 것, 가냘프고 처연한 것. 어항 속 '진실'은 그렇게 부유하는 듯했다. 2014년 6월 16일 희영은 제주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날로부터 10년 만이었다. 2004년 6월 희영의 동생 '준수'는 살해 용의자가 되어 체포되었다. 집 앞에 몰려든 사람들, 경찰들, 신경을 울리는 사이렌 소리. 모든 것이 현실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 같았던 그날, 희영과 그녀의 엄마 김순자의 가슴에 새겨진 것은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이었다. 만큼 살인이라는 죄를 저지른 가족을 두고 있다는 것은 천형처럼 희영과 김순자를 옭아매고 붙들어 버렸다. <p74> 그 후 동생 준수는 구치소에서 목을 메 자살했다. 그 전날 희영에게 자신의 결백을 고백한 후에... 그의 나이 17세였다. 그런 희영에게 제주도는 가슴 시린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기억하고 싶지 않았지만 잊히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한담해변가의 녹색 물빛, 새별 오름의 푸르뎅뎅한 풀빛과 억새풀이 바람에 잔잔하게 나부끼는 모습, 그리고 말들이 목초를 뜯어 먹는 모습들. 건초더미에서 나는 마른 냄새, 각종 잡풀들에서 나는 생생한 풀내음은 여전히 코밑을 근질거리면서 기억을 더듬게 했다. 제주의 사람은 잊었지만 제주의 풍광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p83> 눈을 감기 전 엄마는 희영에게 준수의 결백을 부탁했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며 홀로 싸웠던 엄마였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게시글 하나. 2004년도 살인 사건과 2014년 새롭게 발생한 살인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한 글이었다. 제주도에서 발생한 두 사건은 같은 장소, 비슷한 범행 수법 등을 근거로 연쇄 살인 사건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유력한 용의자로 바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 오영상을 지목하고 있었다.

2014년 6월 16일 희영은 '진실'을 찾기 위해 그렇게 제주도, 바다 게스트 하우스로 떠난 것이다. 도망치듯 제주도를 떠난 후 10년이란 세월을 살아가면서 희영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인터넷상에서 무분별하게 떠돌던 가족사진. '살인자의 가족',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은 희영을 사람들과의 관계 속으로 쉬이 들어갈 수 없게 하는 장애물이었다. 외롭고, 아프고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바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현우'는 유일하게 자신의 아픔과 속마음을 내비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어떻게도 위로가 안 되겠지만, 불행이 있고 나서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영적인 성숙과 더불어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대요."<p114>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방향감각과 판단 능력을 상실한 체 오로지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빛만을 의지하며 걷고 있던 희영에게 '현우'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불어 넣어 준다. 홀로 오영상 주변을 조사하던 희영은 결국 현우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밝혀지는 비밀을 마주한 순간! 깨진 유리어항 조각에 베인 상처를 보게 될 것이다. 후회와 외면했던 시간들의 아픔을 동반한 선연한 핏빛 물방울.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보인 건 김재희 작가님의 이번 작품 <봄날의 바다>가 처음인 것 같다. 주인공 희영의 시선을 좇아 나 역시 한동안 제주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때론 그 풍광에 압도되어, 때론 희영의 처연한 마음에 압도되어.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을 짊어지고 살았을 희영의 마음이 아파서, 동생 준수에 대한 회한과 후회의 마음이 아파서. 그리고 엄마를 떠나보내던 날 세상에 온전히 혼자가 된 희영의 모습이 아파서.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하는 서정적 배경 속에 감추어진 쪽빛 비밀. 이 문장처럼 <서정 스릴러>라는 타이틀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다. 더불어 이 세상 어딘가에 희영처럼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 시간이기도 했다. '가해자의 가족'이란 결국 또 다른 '피해자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것을.

<책 속 밑줄>​

: 신 김치, 상한 나물 반찬 몇 가지 외에 텅 비어 있는 냉장고. 희영은 그제야 혼자 남았다는 것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차라리 고시원에서 혼자 살 때는 이렇게 외롭지 않았다. 하늘 아래 엄마가 그 고통을 나눠서 진다는 생각에 그래도 버티고 살아나갔다. 싸우고도 엄마였고, 화가 나서 소리쳐 외쳐도 엄마가 그 자리에 있었고, 욕을 들어도 엄마였고 서로에게 모진 말로 상처를 주고받아도 엄마가 있었고 부를 수 있었다. 그런데 완전히 혼자가 된 것이다. <p190>

 

: 고통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그로 인해 한 단계 성숙해진다는 말은 얼마나 가혹한 말인가. 만약에 신이 더 나은 생을 위한 아픔을 기꺼이 감수하겠느냐고 묻는다면 희영은 그 아픔을 겪지 않고 그냥 이대로 일상을 살아가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p205>

 

: 비자나무의 코를 찌르는 상쾌한 냄새가 어디선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밤하늘 구름에 가렸던 하현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이 상황에 왠지 어울릴 것처럼 보였다. 수백 년을 살아온 비자나무에 비하면 우리 사람의 생은 얼마나 짧은 것이냐고 말해주던 현우의 음성이 귓가에 낭랑하게 울렸다. 하지만 희영은 인생이 짧고 시간이 흘러가고, 그렇게 살아도 아깝게 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 그리고 아픈 마음은 절대로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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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제주도의 하늘을 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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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말들이 목초를 뜯어 먹는 모습들.

책 속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떠올랐던 사진이다.

제주도에서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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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바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 짙은 풀내음, 드넓은 하늘.

가을 녘에 찍은 사진이지만 언젠가, 봄날의 제주도를 다시 찾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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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 책 숲에서 건져 올린 한 줄의 힘
신정일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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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아한 표지의 한 줄기 꽃과 함께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 제목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순간 이 책을 읽고 싶다, 갖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거세게 일렁였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 마음일까? 책을 좋아하고,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책과의 만남을 통한 이런 두근거림은 자주 접하게 된다. 이렇게 인연이 된 책들을 읽고, 기록하며, 소중히 간직하기도 한다. 책 속에 담겨있던 많은 이야기들이 내 안에 쌓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신을 좀 더 성숙시킨다. 책은 그 자체로 지혜의 샘이자 스승이다.

책을 읽다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하거나, 감정이입이 되는 문장이 나오면 모서리 부분을 살짝 접는다. 때론 밑줄을 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이렇게 접는 편이다. 다 읽고 난 후엔 접었던 부분을 다시 펼쳐서 그 장에 담겨 있던 문장이나 구절들을 노트나 블로그에 기록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곱씹어 읽어 본다. 책이라는 넓은 바다에서 문장이라는 물고기를 낚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은 읽다가 접는 부분이 많아져서 접기를 포기했다. 이 책은 그 자체로 '명문장의 집약' 인 것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 읽으면서 얼마나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에 빠지기도 했는지 모른다. 내가 접해 보지 못 했던 작가와 작가의 작품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혹 접해 보았으나 그 속에 이런 명문장이 있었던가? 싶은, 재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책은 1부 : 번민으로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2부 : 냉혹한 세상 속 당신에게, 3부 : 진정한 행복을 꿈꾸는 당신에게, 4부 :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는 당신에게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좋지만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것, 지금 나의 상황 등을 고려해 해당되는 '부'를 먼저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지나간 것을 좇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은 마음에 두지 말라. 과거는 이미 흘러가버렸으며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단지 지금 하고 있는 일만을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하라. 흔들림 없이 동요 없이 오직 오늘 해야 할 것을 열심히 하라.  『일야현자경 中』 <p.24​>

나보다 앞서 살다간 동서고금의 수많은 현인들의 가르침과 지혜의 정수가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 또한 오랜 독서 생활을 통해 다양한 책을 접해왔고, 그 책 속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을 이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아냈다. 삶이 힘들고, 지치고 아플 때, 외롭고 고독할 때, 저자를 다시 살게 한 것도 그의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던 문장이었음을 고백한다. 살아가는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그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나보다 먼저 그런 어려움과 아픔을 겪었고, 슬픔을 겪었던 사람들. 그들이 체득한 삶 속에서 건저 올린 문장과 글들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해 준다. 괴로움을 겪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도 숭고하게 될 수 없다. 괴로움은 영혼을 숭고하게 만든다. 괴로움을 견디면 견딜수록 비천한 인격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사상적 감정과 의지가 순화되어 고상하고 의젓한 기품을 갖게 된다. 『세네카의 말 中』 <p.124​>

이렇듯 책 속 문장을 통해 우리는 문장 속 내재된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된다. 때론 하나의 문장이 내 가슴에 영롱하게 빛나는 별이 되어 걸리기도 한다. 그만큼 문장의 힘은 강력하며 힘들고 생각이 복잡해지는 시대를 가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희망이라는 물꼬를 터준다. 나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우는 책 속 문장과 글은 분명 어제보다 나은 삶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삶을 더 탄탄하고 견고하게 만들어 줄 힘이 되리라 믿는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러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의 시 '진정한 여행' 中』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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