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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세계사 - 잔혹한 범죄에서 금지된 장난까지, 금기와 금단을 넘나드는 어른들의 역사 이야기 ㅣ 풍경이 있는 역사 4
이주은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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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아이들은 재우고, 우리끼리만 소곤소곤! 잠깐, 은밀한 세계사 입구로 들어가기 앞서 잠시 설을 풀어 보겠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긴 하지만 내가 배웠던 역사의 대부분은 시험, 대입, 취업을 위한 역사였다. 인류의 역사를 배운다는 것이 어찌 이리 지엽적이었는지.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제대로 배웠다면, 공부했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저 '달달달' 아무 의미 없이 외웠던 시간이었다. 이제 시험, 대입 등 이런 굴레와 강박을 벗어나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론 슬프지만;) 좀 더 자유롭게 내 스스로 역사를 공부하고, 익힐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다행스럽고 즐겁기도 하다. 특히 요즘 즐겨보는 것 중 '어쩌다 어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설민석'선생님의 역사 강의 코너이다. 어쩜 이리 귀에 착착 감기고, 설명이 쏙쏙 들어오는지! 암기과목 중 하나로만 생각했던 역사 과목이 '이해와 몰입'의 과목으로 대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이주은 작가님의 '은밀한 세계사' 역시 '이해와 몰입'을 통해 아주 즐겁게 읽었다. 제목 자체가 '은밀한 세계사'이다 보니 ~ 했더라, ~ 그랬다더라 등과 같이 단순 흥미를 끌기 위한 '야사'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엄연히 '정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만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대게 정치경제사나 사회사, 사상사 등이 중시되지만 사적인 영역의 내밀한 이야기도 역사의 일부이며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연구해온 분야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뒤바꾼 수많은 사건들은 결국 누군가의 사생활과 연결되어 있곤 하니, 사생활에 대한 연구는 전체적인 역사에 대한 이해와 완성도를 더욱 높여주기도 합니다. <머리말 中>'
위 내용처럼 나 역시 책 속의 '은밀하고 내밀한 사적인 영역'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을 읽어 나가면서,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그 시대의 배경과 커다란 역사적 흐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많이 배우고 싶은 욕심과 관심이 생겼다. 즐거움과 재미,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단 '어른'의 영역이라는 성(性)이나 폭력과 같은 소재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좀 더 큰 후'에 이 책을 만나보기로 하고, 우리 어른들끼리만 '은밀한 세계사'로의 탐험을 시작해 보자!
'은밀한 세계사'는 총 14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테마부터 나를 당혹케 했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도구'인 바이브레이터가 사실은 빅토리아 시대 여성 히스테리를 치료하는 도구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의사와 산파들 '손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상상이 가는가? 잠시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이 도구의 탄생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여성은 순종적이고 자애롭고 희생정신이 강하며 순결한 '집안의 천사'이자 '가정의 빛'이어야 했던 시대였다. 당시 사회가, 남편이, 여성에게 아내에게 이렇게 요구하고 강요했던 시대였다. 여성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본능에 따라 움직일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이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당시 빅토리아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그런 여성들의 마음도 모르고 순종하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면 '병에 걸렸다' '정신이 나갔다' 등등 '여성 히스테리' 또는 '여성 정신이상증'으로 분류해 버렸다. 그런 그녀들을 달랠 치료법으로 남편과의 性 관계를 추천했고, 미혼인 여성에겐 의사와 산파들이 직접 '손으로 위로를 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 히스테리 환자들이 급증하자 의사와 산파의 손목은 남아나질 않았으니 바이브레이터의 발명은 그 수고를 덜어준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20세기 초까지 카탈로그 가전제품으로도 인기 상품이었다니, 지금 시대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은 (앞서도 잠깐 말했지만) 성적 욕망이 없는 존재로 여겼다. 욕망이라곤 오로지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자애롭고, 희생정신이 강한' 욕망만 있다고 여겼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치료법 (의사와 산파의;)을 전혀 성적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 만약 이런 치료법을 사용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 결과는 굳이 말을 안 해도...;;
두 번째로 나를 당혹케 한 것은 중세 유럽 남성들의 민망한 패션 아이템 '코드피스 이야기'이다. 유럽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왕의 초상화나, 당시 남성들의 초상화 등 그림에도 관심이 있어서 간혹 보아왔었는데 내가 보았던 그 그림들 속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튜더 가문의 상남자, 여성 스캔들로도 유명한 헨리 8세의 초상화를 그렇게 자주 봤으면서도 전혀 눈치 채질 못했으니,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통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코드피스'란 무엇인가? 바로 남성들의 소중하고도 사적인 부분을 매우 강조한 패션 아이템이다. 당시에는 지퍼가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지를 오른 다리용, 왼 다리용 따로따로 입어 가운데 부분을 천으로 덧대어 끈이나 단추로 고정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위치가 위치인지라, 남성들의 소중한 그 부분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서 시작된 남성들의 자존심 대결이 시초가 되어 '코드피스'가 탄생했다는 이야기. 더 크고 화려하게 보석까지 넣어 강조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의 관심을 사기 위함이 아닌 주변 남자들에게 '내가 이렇게 대단한 남자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15~16세기까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평민에서 귀족까지 누구나 하고 다녔던 패션 아이템 코드피스!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그녀가 통치했던 시절 남성들의 패션은 그 전과는 다르게 여성적이고, 아름답게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에 엘리자베스 1세 여왕님께서 권좌에 앉으시며 '내가 이렇게 대단한 남자다'라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젠 바야흐로 남성이 아닌, 여성! 그녀의 시대가 도래했으니까. 어딜 감히! ㅋ(마지막 작가님께서 유행은 돌고 도니, 코드피스 또한 언젠가 우리 곁으로 돌아오려나요?라는 구절에선 혼자 터짐)
이렇듯 '은밀한 세계사' 속엔 흥미진진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마지막 한 테마 '안네의 일기'가 포르노다(?)에 대해서만 얘길 하고 마무리하려 한다. 나머지는 책을 통해 직접 즐거움을 누리도록! 미국에서 문학 수업시간에 배우는 '안네의 일기'가 포르노 같다며 학부모들이 항의했던 사건이 있었다. 아니 포르노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이야기란 말인가? 안네의 일기하면 떠오르는 건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숨 막히는 공포감 속에서도 매일같이 일기를 써 내려간 한 소녀의 영혼이 담긴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오해 속엔 속 사정이 있다. 안네의 일기는 총 3가지 판본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원본 A, 안네가 언젠가 일기를 출간하기 위해 편집한 B본, 수용소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안네의 아버지가 딸의 일기를 출간하기 위해 편집한 C본이다. 아마 대부분의 우리가 읽은 안네의 일기는 C본일 것이다. C본을 통해 우리는 안네를 성스러운 존재로 추앙(?) 하기도 했는데, 사실 안네는 10대의 소녀들이 그렇듯 그저 평범한 소녀였을 뿐이다. 원본을 보면 10대 소녀로서 충분히 호기심을 갖고 써 내려갔을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性 적 호기심에 발로한. 이걸 두고 포르노니 뭐니 그 난리를 친 것이다. '은밀한 세계사' 속에 안네의 일기 원본 중 일부가 실려있는데, 읽으면서 느낀 건 안네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기심 많고, 평범한 10대 소녀였구나. 더불어 여담이지만, 여성의 신체 부위 중 한 곳인 '그곳을' 디테일하게 표현한 부분을 보고, 성인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던 것에 살짝 충격을 받기도 했다. 오해하지 마시길. 나 또한 '금기'시 했던 시대적 풍조에 따라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시대의 피해자'일 뿐이니. ㅠ
이로써 '은밀한 세계사'의 긴 여정을 끝냈다. 별 다섯 중 반을 뺀 것은 '아쉬움'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는데 말이다.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이야기에 한창 빠져있는데 창밖으로 서서히 날이 밝아와 어쩔 수 없이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하는 심정! 앞으로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줄 이주은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아직 읽어보지 못한 스캔들 세계사 시리즈로 아쉬움을 달래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