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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탐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어수웅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
책을 좋아해서 책을 읽어 왔지만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인생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그동안 읽어 왔던 책들 속에서 나는, 내 나름대로 의미를
찾고, 이해하고, 곱씹어 보곤 했다. 때론 감동에 온몸이 전율한 적도 있고,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책 속 주인공의 삶에 몰입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책들이 내 삶을 통째로 바꿨다거나, 어떤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곤 생각지 않는다. 책, 독서의 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나.
아마도 내 독서 방향의 문제겠지. 음식도 먹던 음식만 먹으면 영양불균형이 생기듯, 독서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지금은 그냥 '독서습관'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 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속 어딘가 헛헛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분명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을 갖고 있을 것이다. 탐독 속 10인의 인터뷰이들처럼. 나 역시 책을 매개로 한 마법과도 같은 순간을 경험해 보고 싶고,
내 삶을 변화시킨 '내 인생 책'을 적어도 한 권 정도는 갖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이런 가운데 만나게 된 '탐독'은 작게나마 그 방향을 제시해 준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했다. 물론 탐독
속 인터뷰이들이 선정한 '내 인생의 책'들은 다분히 '개인적인 선정'이다. 나하고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그래도! 나보다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 길 끝에 나만의 길을 찾고, 나만의 인생 책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탐독'은 하나의 이정표이자, 길잡이, 참고서라 생각한다. 문화부 기자인 어수웅 작가님은 말한다.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생각은 지극히 낭만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있다는 것. 책상물림의 온전하지 못한 독서에서 벗어나, 활자의 울타리
밖에서 성취감을 확인하고 삶을 바꾼 사람들이. 그러한 '진짜 사람들'을 책을 통해 찾고 만나는 일. '나를 바꾼 책, 내가 바꾼 삶'. 이
주제를 바탕으로 그가 인터뷰한 총 10인의 주옥같은 이야기가 '탐독' 속에 실려있다.
김영하의 탐독 <달과
6펜스> 탈주의 서사로 책 속 주인공의 삶과 작가의 삶의 궤적이 너무도 닮았기에 작가의 인생 책이 되었다는
것.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행위는 이해할 수 없으며,
존재는 오리무중이다. 운명은 물음표 속에 갇혀 버리고, 작가는 그 물음표를 문장으로 바꾸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오늘도 소설을
쓴다."
조너선 프랜즌의 탐독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장편소설 <자유>와 <인생 수정> 단 두 권만으로 '위대한 미국 작가'의
반열에 오른 조너선 프랜즌. 그의 세계는 극단의 사실주의로 우리를 발가벗기지만 프란츠 카프카는 몽롱하게 일그러진 이미지로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얼핏 상반되어 보이지만 뒤틀린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눈을 존재의 맨 밑바닥까지 돌리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다는 이야기. "나는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독자들은 내 글을
읽지 않았었고, 내 말에 귀 기울이지도 않았어요. 1990년대 미국은 천박한 물질주의가 판을 치던 때였습니다. 새로 개발된 항우울제 따위가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식의 멍청한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어요. 저는 이 시점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김중혁의 탐독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니면 말고', '뭐라도 되겠지', 어딘지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느낌이 드는 작가
김중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아홉 번이나 읽었고 그때마다 다르게 다가왔다 한다. "책은 삶을 바꾸지 않지만, 대신 뭔가를 살짝 바꾼다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 큰 게 바뀌는 게 아니고, 한 권 읽고 나면 마음의 위치가 0.5센티미터 정도 살짝 옮겨지는 것 같다. 그 정도 바뀌는
게 좋은 것 아닐까?" 움베르토 에코의 탐독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
은희경의 탐독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무용가 안은미의 탐독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 영화감독 김대우의
탐독 <로빈슨 크루소>,
사회학자 송호근의 탐독
<서유견문>, 요리 연구가 문성희의 탐독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마지막 정유정의 탐독 켄 키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까지 총 10인의 탐독과 약간의 에피소드까지 곁들인
이야기들에 빠져들었다. 총 10인의 이야기들이 다 의미 있고, 재미있었지만 가장 마음이 끌렸던 건 작가 정유정이었다. 최근 <종의
기원>을 읽고 있기도 했고.
정유정 작가님의 이력에 대해선 작품과 한때 간호사로 일했었다는 것 외엔 없었는데 <탐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정유정 작가님의
<탐독>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작품보다 정유정 작가님 삶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25살에 간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한다. 간호사
재직 시절, 자신이 몸담고 있던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참담한 시간들이었다고 작가 정유정은 고백했다. "이제부터는 네가 집안의 엄마다. 동생들을
부탁한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으며, 정유정 작가에게 엄마는
하나님이었다고 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큰 위로를 받았다. 유방암으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나 역시 엄마는
내게 하나님이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정유정 작가님의 엄마보단 10년을 더 내 곁에 계셔 주셨구나. 작가님은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하나님 같은 엄마를 잃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에 난 또 눈물을 흘렸고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작가님이 있다는 것에 위로도 받았다.
14년이란 시간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고, 30대 중반부턴 소설을 쓰자고 결심했다 한다. 작가님 왈 "대책 없는 확신이 있었다."한다. 0아니면 100, 모 아니면
도, 자신은 타협없는 성격이란다. 아마 작가님의 이런 근성과
재능이 3무 작가라는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남편은 소방공무원이고, 3살 연하로 동생의 친구였단다. 그리고 늘 마음속으로
다짐해 왔던 그 대책 없는(?) 꿈을 딱 서른다섯에 선전포고했다. "이제는 신랑, 당신이 나를 먹여 살려라."
그러나 이후 6년 동안 문예지, 각종 공모전에서 줄줄이 낙방. 처음으로 슬럼프라는 것을 겪었다 한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쓴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가
세계청소년문학상에 당선되던 날 신랑과 함께 펑펑 우셨다는 작가님. "글을 쓰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인간 같아요. 마누라로서, 엄마로서 하는 역할이 있겠지만, 나는 '소설가 정유정'의 삶이 가장 중요해요. 그 자체로 '나'라고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거든요. 가족이 위기에 닥치면 당연히 제 역할을 해야겠지만, 일상을 살고 있을 때 저는 이기적입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만이
유일하게 존재감을 주는 걸 어떡하겠어요."
작가님의 책상 위 작업노트를 공개했다. 직접 그린 지도들이 가득한 스케치북. 공간적 배경을 장악하기 위해 직접 그린다는, 수채색연필을 이용한
지도들이다. 스케줄 노트도 있다. 시간적 배경을 장악하기 위한
노트란다. 새 작품 하나에 들어가는 노트만 평균 십여 권. 엔터테인먼트로
훌륭하면서도, 동시에 기법 면에서도 웰메이드인 소설. 느슨하고 태만한 순문학보다 정교하고 재미있는 웰메이드 장르 소설을 잘 쓰는 게 꿈이라는
정유정 작가의 말씀.
<탐독>을 통해 10인의 '나를 바꾼 단 한 권의 책'을 만난 것, 그들 모두의 '영롱한
삶의 한 면을 공유'하게 된 즐거움까지. <탐독, 을 탐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 이제 다시 책을 읽으러 가야겠다. <나를
바꾼 단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많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단 0.5cm만이라도 내 마음이, 내 삶이 변화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 있고 행복하단 걸 알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