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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별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 지음, 최상희 옮김 / 사계절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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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북디자이너가 꿈인 적이 있었다. 기존에 하고 있었던 일은
웹디자인이었지만 책을 워낙 좋아해서 '책의 첫인상이랄 수 있는 겉표지'를 책의 내용을 토대로 아름답게 꾸며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던 시절.
『 여우와 별 』도 예전에 꾸었던 꿈의 한 조각을 떠올리며 읽게 된
책이다. 무엇보다 기존에 내가 읽어왔던 책과는 확연히 다른,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기도 했고. 『 여우와 별 』은 '펭귄 클로스바운드
클래식' 북 디자이너인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가 쓰고 그린 첫 책이라 한다. 원서의 느낌을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표지는
백박 천양장으로, 내지는 최고급 친환경 종이 문켄지를 사용했다 한다. 책장을 넘겨보면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패턴
형식의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고, 몇 가지 색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색채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담고 있는 『 여우와 별 』은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내용은 여느 서사 못지않게 깊은 울림을 준다.
깊고 어두운 숲 속에 살고 있는 작고
겁 많은 여우에게 유일한 친구는 별이었다. 별빛의 도움을 받아 여우는 딱정벌레도 사냥하고 토끼도 사냥하며 수풀 사이를 쏜살같이
내달리곤 했다. 별과 함께 라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비가 와도 구름 사이로 별을 불러내어 빗방울과 함께 춤도 추곤 했다. '반짝이는 별만 있다면 여우는 행복했다. 언제까지나 그럴 것만 같았다.'
여우의 커다란 두 눈동자엔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별은 사라지고,
여우가 머물렀던 숲은 다시 어둡고 스산해졌다. 땅 속 깊은 곳에 몸을 숨긴 채 여우는 어둠뿐인 공간에서 별이 다시 뜨길 꿈꿨지만 어둠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땅 속에 찾아 든 수많은 딱정벌레들을 상대로 어둠과 맞서 싸운 후 맛있게
딱정벌레도 먹고 기운을 차린 여우는 다시 별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가시덤불과 토끼, 나무들에게 별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고, 그렇게 별을 찾아 헤매며 도착한 곳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적막한 숲 속이었다. 여우는 지쳐 잠이 들었고 얼마 후 몸을 적시는 빗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한동안 우두커니 비를 맞고 있던 여우는 가슴속 어딘가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 마음 속 울림에 고개를 든 여우 앞에 펼쳐진 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도 아름답고 찬란한 눈부심 속에서 여우는 자신의 친구인 단 하나의 별도 빛나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여우는 사뿐 사뿐
걷기 시작했다. 그 어딘가로...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겪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고 그려진 『 여우와 별 』 은 조용한 목소리로 잔잔하게, 때론 리드미컬하게 읽힌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아주 어렸을 적,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강아지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온 적이 있다. 겁에
질려 있던 강아지를 밥도 먹이고 목욕도 시켜 주었는데, 그 순간 나를 쳐다보는 강아지의 눈망울 속에 나를 향한 신뢰의 눈빛이 담겨 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다 당시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퇴근 후에 강아지를 보고 집에서 키울 수 없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하셨고, 군 장병 한 분이
찾아와 강아지를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현관문 밖 계단참을 내려가는 군
장병 가슴에 안긴 강아지의 눈빛.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진 것인지,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던 그 눈빛이 나를 향해 뭐라고 말하려 했을지. 당시 어렸던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렇게 강아지를 보내야만 했다. 아주 오래전, 벌써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건,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애정을 갖고 의지했던 대상이라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기억과 함께 가슴속 영원한 별로 남는다. 그리움의 별, 희망의 별, 아픔의 별, 상실의 별 등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루를 살고 앞을 향해 사뿐사뿐 나아갈 수 있는 건, 가슴속 가득히 쌓여진 별들 때문이
아닐까. 아프지만, 슬프지만, 그 작은 빛들이 모여 삶은 더 깊어지고, 이별과 상실의 고통 속에도 분명, 함께
했던 추억이란 이름의 행복 역시 같은 크기로 우리 가슴속에서 언제까지나 빛나고 있을 테니까.
<기존에 있었던 책의 표지를 Re-Design해 보았던 것>
: 론다 번의 시크릿, 하지은 얼음나무
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