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본깨적 - 평범한 직장인이 대체 불가능한 프로가 되기까지
박상배 지음 / 다산3.0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넘어진 곳에서 일어서려면 우리를 넘어뜨린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합니다.

삶을 바꾸고 싶으면 지금의 삶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 구본형


현장 본깨적이란, 현장에서 보고, 깨닫고, 적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왜 본깨적인가?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현장에서 살아남아 제대로 된 노후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청년 실업률 증가, 경기 침체 등 현실은 녹록지 않고, 마음과 미래는 불안하다. 현장 본깨적은 그 불안함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지금 현재 당신이 몸담고 있는 현장에서 찾고자 한다. 바로 <영원한 현역>으로 남는 것. 평균 52세를 기준으로 경쟁력에 밀려 퇴직을 강요당하거나, 퇴직 후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경우가 많은데, 현장의 <영원한 현역>으로 남기 위해선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좇아 <현장 본깨적>속으로 길을 떠나보자.

 

<현장 본깨적>은 <왜 본깨적인가>에 대한 장과, 업무력, 실행력, 현장으로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본깨적을 해야하는 이유와 나이에 따른 일의 4단계, 100세 현역들에 대해 설명한다. ​50세가 넘어서까지 여전히 내가 해왔던 직업을 갖고 현장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 누구나 드는 의문이고, 불안함일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의 나이로 여전히 현역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 READY 업무력

제2장 업무력에선 <성과의 차이를 만드는 업무 실행력 8주 프로젝트>에 임하기 앞서 <자신의 업무력>을 점검할 수 있는 장이다. 먼저 독서 본깨적으로 의식 수준을 점검해 보는데, 저자는 <의식 수준 향상을 위한 추천도서> 20권을 초급, 중급 단계별로 구분해 놓았다. 자신의 독서수준을 고려하여 순차적으로 읽어나간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의식 수준을 깨닫고, 의식이 변하기만 해도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그것은 곧 성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을 '선택적 지각'이라고 하는데, 일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아이젠하워의 원칙> 즉, 업무를 쪼개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알고있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도식화하니 좀더 실질적으로 다가와 도움이 되었다.

 

 

업무를 쪼개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파악했다면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쓰레기 업무>를 구분하는 것이다. 위 표를 보고 나의 직업과 관련하여 업무들을 대입해 보았더니 은근히 중요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내가 잘할 수 없는 일들에 매달렸던 경우가 꽤 많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시간낭비인지. "원하는 성과를 내려면 모든 일을 끌어안지 말고 버려야 할 일은 버려야 한다. 숲 속에 큰 나무를 키우려면 큰 나무 사이에 있는 작은 나무를 솎아내야 한다. 일을 할 때도 내가 하는 일 중 큰 나무가 무엇이고 작은 나무는 무엇인지 알아봐야 한다. 그다음 과감하게 작은 나무를 버려야 한다."

 

우리가 성과를 내기위해선 <Project>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업무를 프로젝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가벼운 예로 단순포장 업무를 생각해보자. 아무 생각없이 반복적으로 포장만 한다면 이것은 노가다일 뿐이지만, 꼼꼼한 포장으로 올 연말까지 상품 훼손 5퍼센트 줄이기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포장을 한다면 이는 더 이상 노가다가 아닌 <프로젝트>가 된다. 포장 중 상품을 덜 훼손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와 같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넘쳐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Stress>부분인데 웹디자이너로 몸담고 있는 나의 경우, <중요한데 내가 잘할 수 없는 일>들에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두려움까지 느끼기도 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물론 나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역시나 실행력이 문제였을 뿐) <현장 본깨적>에서도 이야기한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스트레스 영역에 있던 일을 프로젝트 영역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 저자 또한 OA를 못해서 자신의 무능함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몇 달 동안 집중적으로 배우고 익혀 어느 정도 자료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줄었다 한다.

마지막 <Hobby>부분이다. 중요하진 않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아마 누구나 꿈꿀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 그러나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생계와 연결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나 역시 웹디자이너로 업을 삼고 있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독서과 글쓰기이다. 이것을 업으로 삼을 수가 없는 것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해서 (어쩌면 당장)돈이 벌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취미를 성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종종 전혀 다른 세계와의 부딪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SET 실행력

제3장에선 실행력을 키우기 위한 핵심 키워드로 3가지를 제시한다.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실행력 장에선 총 12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인상 깊게 읽은 테마 부분만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다. <자기규정이 곧 실행력이다>에선 실행력을 높이려면 부정적인 자기규정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잠시 책 읽기를 중단하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대부분이 부정적인 내용들이었다. 유유자적(어떤 의미론 좋을 수도 있겠지만;), 의지력 부족, 끈기 부족, 남에게 의지하려는 성향 (남 = 남편 등X 먹고 있는 ㅠ), 본인 관심 밖의 일에 대해선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 어른을 별로 공경하지 않는 것, 남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것 등등 하.. 감자 캐듯 계속 나오는 것이다.

 

이런 나의 부정적인 자기규정을 바꾸지 않으면 성과를 제대로 낼 수도 없을 뿐더러 인생조차도 우울해 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과도한 자기 긍정도 위험하다고 하니 "건전한 자기규정을 바탕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주변에서도 도와주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기규정은 오히려 주변 사람을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부정적이지도, 과장되지도, 허황되지도 않은 건전한 자기 규정만이 행동을 변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일주일 중 하루는 다르게 살기>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평소의 나대로 살다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쯤은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보는 것'이다. 이유는 변화를 통해 더 크게 성장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고 한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크다는 것. 때문에 의식적으로라도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보는 것'은 변화에 대한 내성을 주기위함이다. 우리 뇌의 전두엽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학습하는데 관여를 하는 부분인데, 특히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활성화 된다고 한다.

<확실한 성과를 내는 8주 프로젝트> 보통 신년이 되면 신년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것들론 다이어트, 금연, 영어공부와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처음 마음가짐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서 계획들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경우를 많이들 경험하곤 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닌데, <현장 본깨적>에선 작심삼일을 떨쳐낼 비장의 무기로 8주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다. 위 표의 양식을 참고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일단 8주 동안 이루려는 목표를 적고, 가능한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게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전술부분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적는다.

 

긴 기간을 설정하고 목표를 세우면 다소 욕심을 부리게 되고, 지나치게 많은 목표를 세우기도 하고, 현실 가능성이 없는 과한 목표를 세워 결국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간을 8주로 한정하면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거품을 뺄 수 있다. 물론 모든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기간은 아니다. 때문에 8주 안에 이룰 수 있는 목표만 선택하고 집중하면 된다. 자격증 시험공부와 같은 것이 대표적일 수 있고, 성과나 실행이 긴 것들 (영어공부, 다이어트, 책 읽기 등등)은 8주라는 간격으로 나누고 세분화해서 목표를 쪼개면 될 것이다. 중간중간 작은 성과들은 자신감을 줄 것이고, 마지막 어느 순간엔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꿈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 GO 현장으로

마지막 4장 <현장으로>에선 저자 자신과, 저자의 멘토 강규형 대표, 한현모 대표, 김수용 대표 등 자신의 현장에서 어떻게 현장을 장악하고, 성과를 끌어 올렸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을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장이다. 30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페이지로 읽기에 부담이 없었고, 일과 성과,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현재 나는 현장을 떠나있는데, 현장이라는 것이 비단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가정이나 나의 인생 역시 내 삶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위 책에서 읽고, 보고, 느낀 것들을 토대로 모든 일들을 실행하고 성취해 나간다면 나의 가정과, 나의 인생이 어제보단 나은 삶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민음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은 이장욱 작가님의 <천국보다 낯선>이라는 작품이다. 두꺼운 하드 커버지에 시선을 사로잡는 독특한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내용도 참 독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접하게 된 정세랑 작가님의 <보건교사 안은영>. 제목만 보면 도대체 어떤 내용의 소설일까? 싶을 정도로 독특한데, 표지 또한 귀여운 듯 섬뜩한 느낌이 공존하는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결국 읽게 되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총 10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있으며, 안은영은 제목 그대로 M고등학교의 보건교사이자 퇴마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오! 개인적으로 이런 소재들을 큰 거부감 없이 좋아하는 편이라 문득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이우혁 작가님의 <퇴마록>이 생각나기도 했다. 뭔가 한국괴담과 어우러진 진중하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스토리와, 악에 맞서 싸우는 퇴마사의 활약을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엇! 뭐지? 다소 가볍고 엉뚱하면서도 약간은 유치한 듯 느껴지는 이 분위기는? 뭔가 불안하다. 불안해. 그도 그럴 것이 안은영 그녀가 사용하는 무기가 <비비탄 총>과 <플라스틱 장난감 칼>이다. 일단 여기서 1차 멘붕. (물론 아이들 장난감 같은 이 무기로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기들에 그녀 나름의 힘이랄 수 있는 어떤 '기'를 주입해서 싸우긴 하지만 말이다.) 책 구입 시 미처 확인해 보지 못했던 (강렬한 앞표지에 너무 집중했나 보다.) 책 뒤표지의 소개 글을 읽어보니 <본격 학원 명랑 미스터리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이라고 떡하니 쓰여있는 것이 아닌가. 아... 내가 생각했던 느낌의 책이 아니구나 싶었지만 일단 끝까지 읽어보기로 했다.


첫 에피소드는 학교 지하에 봉인되어있던 압지석(壓池石)의 봉인이 해제되면서 거대한 잉어같은 생물이 학생들을 위협하는 장면인데, 보건교사 안은영이 그 생물을 퇴치하고, 학생들을 구하는 내용이다. 이때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이 있는데, 같은 학교 한문교사이자 설립자의 손자인 홍인표이다. 어렸을 적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긴하지만, 안은영은 홍인표 주변에 보호막 같은 거대한 아우라가 형성되어있는 것을 보게 되고, 그의 손을 잡는 것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한다. 이런 스킨십 덕분일까? 보건교사 안은영과 한문교사 홍인표는 썸을 타는 사이가 된다.

'꼭 죽은 사람들만 보는 건 아니었다. 산 사람들이 더 기분 나쁜 걸 많이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이 학교 떠다니는, 공기 가득한 나체의 환영들 같은 것 말이다. 아아, 사춘기 애들은 정말 싫어. 은영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면 깔때기 칼로 휙휙, 아이들의 야한 상상을 휘저어 없앴다.  벌써부터 취향이 가지가지기도 하지. 그러니까 결국 은영이 보는 것은 일종의 엑토플라즘,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다.' - 14page


'해가 갈수록 더 느끼는 점이지만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고르는 것 같다. 사명같은 단어를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수긍하고 받아들였다기보단 수월한 인생을 사는 걸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게 맞겠다. 병원에 있을 때는 힘든 파트만 다녀서 지금보다도 더 너덜너덜했다. 몇 년쯤 하고 나니 새벽의 병원 복도에서 기나긴 싸움을 하는 게 박찼다. 그래서 대학 때 따 놓은 보건교사 자격증을 활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호러와 에로 중에 고르라면, 단연 에로다.' - 15page

학원 명랑물이라 그런가? 사춘기 아이들이 내뿜는 정제되지 않은 기운들을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에로에로 에너지로 표현하고 있다. 정세랑 작가의 표현력과 발상엔 나름 감탄을 하기도 했는데,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있었던 사춘기 시절. (하..까마득하구나..벌써 ㅠ) 남녀공학이라 가까이서 남학생들을 상대할 수 있었는데, 한바탕 체육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몰려드는 남학생들의 몸에 밴 찐득찐득한 땀 냄새가 교실을 가득 채웠고, 이에 질세라 터지듯 발설되는 음담패설까지 숨 막히도록 어질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했던 남학생에 대해선 나름의 환상을 품기도 했었던 그 시절. 보건교사 안은영은 그들의 이런 질척질척한 에로에로 에너지를 싫어하면서도 보건실로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서슴없는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 비록 내가 생각했던 느낌의 책은 아니었지만 분명 정세랑 작가만의 유쾌하고 쾌활한 분위기가 있는 책이다. 소재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신선하다. 다만 읽으면서 뭔가 살갗을 간지럽히는 미묘한 느낌과 함께 좀처럼 이 소설 속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 수 없었던 건 내 개인적인 성향과 취향 때문이겠지.


일단 가장 아쉬웠던 것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보여주었던 약간의 궁금증과 긴장감이 (스케일 면에서도) 뒤로 갈수록 점점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알록달록하고 팽팽한 풍선 하나를 손에 들고 걷고 있는데, 점점 바람이 빠지면서 그 형태를 잃어버리는 느낌이랄까? 물론 커다란 사건 뒤엔 조금은 일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들로 호흡을 변화시켜준다는 점에선 괜찮을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론 보건교사 안은영과 홍인표의 활약을 더 기대했던 터라 실망도 컸던 것 같다. <오리 선생 한아름>, <레이디버그 레이디>, <온건 교사 박대흥> 등의 에피소드에선 보건교사 안은영이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한다 하더라도 큰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다. <레이디버그 레이디>에선 뭔가 엄청난 존재와의 조우를 기대했던 나에겐 다소 실망적이었다. (그동안 스릴 넘치고 자극적인 것들을 읽다 보니 그럴 수도 ㅋ) 뭔가 나타날 듯, 보일 듯 떡밥을 던져주긴 하지만 결국, 어떤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의뢰인 본인 마음의 병이었던 것으로 결론이 나버려서, 긴장감에 흘렸던 땀들이 예기치 않은 강력한 바람에 의해 증발하듯 허무하고도 서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전학생 옴>에피소드의 주인공 백혜민이 옴잡이라는 설정은 독특하고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옴을 먹고 사명을 다하면 때이른 죽음을 맞이하여 환생하는 존재, 옴잡이. <온건 교사 박대흥>에피소드는 앞서 말했듯 안은영이 등장하진 않지만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나름 의미 있게 읽은 부분이기도 하다. 교사 본연의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선택이 아닌, 기득층의 정당성을 부여할 목적으로 편찬되고 집필된, 즉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적 판단을 강요하는 선택에 있어서 작가 정세랑은 <박대흥>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주술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그들을 교장에게 보내버리는 ㅋ : 이 부분은 정말 읽어봐야 함)


아쉬움을 간직한 상태로 마지막 장을 덮고, <작가의 말>부분을 읽었는데, 이 말을 읽는 순간 소설 전체에서 내내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 한 번쯤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뭐랄까? 괜히 작가에게 무례하게 군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래 쾌감, 어쩔 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긴장감이나, 진중함이라는 무게를 걷어내고 가볍게, 유쾌하게, 유치하게 굴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너무 무겁게만 소설을 대하려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작가님께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흰 옷자락이 펄럭일 때는 잠시 흠칫했지만, 손전등을 들고 춤을 추고 있었던 건 보건 선생이었다. 한 손에는 손전등, 한손에는 웬 무지개 색 깔때기를 들고 허공을 정신없이 휘젓고 있었다. - 24page

그리고 철망에 붙어 선 보건 교사는 뭔가를 향해 장난감 총을 격하게 쏘고 있었다. 인표가 서둘러 아래를 내려다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비비탄 총에 어울리지 않는 격발음이 들리긴 했다. "이 못생긴 새끼,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 36~37page


나에게 2차 멘붕을 안겨주었던 <보건교사 안은영>의 전투씬인데 <작가의 말>을 읽기 전까진 눈살을 찌푸리고 읽었었는데, 다시금 읽어보니 웃음이 날 정도로 안은영 그녀가 사랑스럽기도 했다. 상상 속이긴 하지만 내가 안은영이 되어 에로에로 에너지를 끊임없이 발산하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비비탄 총>을 연신 쏘아대거나 (반동으로 어정쩡한 스쿼트 자세가 되기도 하고 ㅋ) <장난감 칼>을 미친 듯이 휘두르는 모습을 그려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날은 화창했고, 푸른 하늘 끝 그 어딘가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했던 사춘기 시절의 내 모습이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차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님의 <관 시리즈> 두 번째 소설 <수차관의 살인>이다. 책을 읽고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후에 바로 서평을 써야 하는데, 나의 게으름 탓인지 자꾸만 뒤늦게 서평을 쓰게 된다. 누군가 말했던가? 완전한 독서란 읽기와 쓰기가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뒤늦게라도 쓰게 된 지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다만 아주 큰 단점은... 점점 기억이 흐릿해진다는 것이다. <관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었던 전작 <십각관의 살인>은 섬과 육지라는 두 공간이 교차되면서 서술되었는데, 이번 작품 <수차관의 살인>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이 교차되면서 서술된다.


일단 수차관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구체적인 형태가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진 않았다. 분명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단어는 아니니까. 내가 아는 상식과 한국어판 표지를 통해 대략적으로 유추해 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일본어판 표지를 보게 되었는데 (한국어판 표지에 비해 조금 촌스럽긴 했지만;) 와우! 수차관이 건물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어 바로 이해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책에 등장하는 서양식 고성 저택의 분위기를 좀 더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세 개의 거대한 수차가 돌아가는 수차관의 저택 역시 천재 건축가 <故 나카무라 세이지>의 작품이다. 이곳의 주인은 천재 화가이며 '마음의 눈'으로 보고 캔버스에 옮긴 환상의 풍경들이 미래를 예시하기도 하다는 환시자(幻視者)로 일컫는 <故 후지누마 잇세이>의 아들 <후지누마 기이치(41살)>이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재능을 물려받진 못했지만 사업으로 큰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12년 전 자동차 사고로 불구의 몸이 되고,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살아간다.


가면.

그렇다, 내게는 얼굴이 없다.

나는 내 저주스러운 맨 얼굴을 감추기 위해 일상생활을 할 때도 가면을 쓴다.

이 저택 주인의, 원래 있어야 할 얼굴을 본뜬 하얀 가면.

살에 착 감기는 고무의 감촉.

살아있는 얼굴에 쓰는 차가운 데스마스크


<후지누마 기이치>는 기묘한 고성의 저택에서 자신의 아버지 <故 후지누마 잇세이>의 제자였던 <故 시바가키 고이치로>의 딸 <후지누마 유리에(19살)>를 아내로 맞이하여 세상과 단절된 채 은둔생활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축적해 놓은 부를 이용해 아버지의 작품들을 모두 사들인다. 그가 세상과 유일하게 소통하는 시기는 일 년에 딱 한 번인데, 바로 아버지 <故 후지누마 잇세이>의 기일이다. 이날만큼은 몇몇 지인들을 고성의 저택에 초대해 <故 후지누마 잇세이>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일년 전, 1985년 9월 xx 일 이날도 여지없이 네 명의 사람들이 작품 감상을 위해 고성의 저택을 찾는다. 미술상 <오시이 겐조>, 미술학 교수 <모리 시게히코>, 외과 병원장 <미타무라 노리유키>, 절의 부주지인 <후루카와 쓰네히토>이다. 더불어 이들은 <故 후지누마 잇세이>의 유작인 <환영군상>을 보길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후지누마 기이치>는 이 그림만은 공개하기를 거부하는데...


고성의 저택 밖으론 음산한 폭풍이 휘몰아치고, 세 개의 거대한 수차관은 고성의 저택 내부를 울리듯 공명하며 우르릉, 우르릉 불길한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1985년 9월의 밤, 사건은 일어난다. 저택 가정부의 의문의 추락사, 도난당한 그림, 소각로에서 토막 난 채 발견된 피살자, 저택 밀실에서 증발한 용의자 등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지만 결국, 토막 난 피살자는 <마사키 신고>로 밝혀지고, 그림을 훔쳐 증발한 용의자는 절의 부주지인 <후루카와 쓰네히토>로 밝혀지며 사건은 일단락된다. <마사키 신고>는 <故 후지누마 잇세이>의 제자로 유망한 화가였지만 12년 전 사고로 붓을 꺾고, 수차관에 머물고 있던 <후지누마 기이치>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 년 뒤 1986년 9월 xx 일 마찬가지 이유로 고성의 저택을 방문하게 된 그날의 사람들. 그 가운데 반가운 인물이 있다. 전작 <십각관의 살인>에 등장했었던 인물 <시마다 기요시>이다. 일 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지인 <후루카와 쓰네히토>의 결백을 밝혀내기 위해 방문했다고는 하나, 어쩐지 이 기묘한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자체에 더 흥미를 느끼는 듯 도하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발생하는 연쇄살인사건! 일 년 전 악몽이 기묘한 고성의 저택에 불길한 기운으로 퍼져 나간다.


<시마다 기요시>는 전작인 <십각관의 살인>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달리, 본격적으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기 위해 단서들을 하나씩 추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변화된 그의 행동엔 이유가 있다. 바로 작가의 후기!


삽각관의 살인은 커다란 한 방으로 승부 한,

말하자면 기습적인 놀라움을 노린 작품이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본격 미스터리>의 경향이 조금 더 강한

즉, 주어진 단서를 이용해 진상을 논리적으로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미결이 된 경우를 제외하곤 결국, 모든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마련인데 <수차관의 살인>역시 탐정 역할을 자처한 <시마다 기요시>의 활약으로 진짜 범인이 밝혀지고,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인간의 탐욕스러운 욕망과 질투, 잔혹함이 불러온 참극.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만이 가진 참으로 비극적인 능력이랄까. 개인적으로 참 흥미진진하게 본 작품인데, 꽤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기도 하다. 트릭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거나, 누가 범인인지 뻔히 보인다거나, 등등 혹평을 여럿 보기도 했으나, 아마 그분들은 이런 장르의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한 분들일 것이고, 나는 아직 초보 독서가이기 때문에 (뭘 읽든 한창 읽는 맛이 좋을 때라 ㅋ) 그냥 무조건 별 다섯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보이는 <故 후지누마 잇세이>의 유작 <환영군상>의 실체를 보았을 땐 정말 소름 끼쳤다. 아......... 이 작품은! 이 마지막을 위한 것이었구나 싶었다. <故 후지누마 잇세이>가 왜 환시자(幻視者)로 불렸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후덜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2-1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다 읽고나자마자 리뷰를 써야 합니다. 자꾸 리뷰 작성을 미루면 줄거리와 책에 대한 느낌들이 점점 잊혀집니다. 엘리카님 리뷰의 초반부에 언급되는 ‘완전한 독서‘의 의미가 마음에 듭니다. 누가 얘기한지 몰라도 저랑 생각이 비슷합니다. ^^

별해무 2017-02-20 07: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데 왜 그게 잘 안 되는지...ㅠㅠ 서평쓰는 게 너무 어렵네용 ㅎㅎ
 
해무도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1
신시은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 일본에 비해 국내 '추리장르문학'이 크게 인정받고 있다거나, 많은 양의 작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그 위상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나의 경우도 일본이나 기타 다른 나라의 추리소설들을 많이 접하는 편인데, 그래서일까? 국내의 추리장르소설이 새롭게 출간되면 '희귀하고 소중한 작품'을 보듯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들게 된다. 이번에 펼쳐 든 소설은 황금가지 출판사의 '밀리언 셀러클럽' 한국편인 신시은 작가의 <해무도>라는 작품이다. 책의 겉표지만 놓고 보더라도 벌써 어딘가 오싹한 느낌이 들면서 시선을 잡아 끌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것은 신시은 작가의 나이가 94년 생으로 2017년 현재 24살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 <해무도>를 집필했을 당시엔 약관의 나이 20살이었다고 한다. 정말 뭐라도 될 사람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그 시절 나는 무얼 했나. 이러려고 나이만 먹었나 자괴감 들어; 어쨌든 앞으로 신시은 작가의 행보가 기대되고 더불어 한국장르문학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무척 뿌듯하다.  

 

망망대해 위로 짙게 드리운 희뿌연 안개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외딴섬 해무도. 이곳에 전해내려오는 전설 같은 괴담이 있는데, 짙은 해무가 낀 날 영산의 할미 구렁이 귀신이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영산 혈곡에는 백발의 귀신 노파가 자식의 원수를 갚기 위해 떠돌고 있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오죽 그 원한이 강한지 영산엔 산짐승의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이렇듯 신시은 작가의 <해무도>는 '한국괴담'과 '본격추리소설'이라는 두 가지 맛깔나는 양념을 버무린 작품이다. 최근에 읽은 '화가'라는 작품도 그렇지만, 일본에 전해내려오는 민담이나 괴담 등을 작품에 잘 버무려서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풍을 탄생시킨 '미쓰다 신조' 작가님이 생각나기도 했다.


외딴섬 해무도, 12살의 어린 초희가 한 남자를 만나는데 남자의 행동과 말투가 어딘지 수상쩍다. 그에게서 달아나려는 초희. 그러나 곧 짙은 해무가 깔리기 시작하고 초희는 난감한 듯 남자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현재. 주인공이자 대학교수인 '치수'는 아내로부터 자신의 스승이었던 '정교수'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정교수가 살았던 한옥저택은 해무도에 있는 곳으로 20년 전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며 당시 치수도 이곳에 있었다. 두 사람이 머리가 잘린 채 죽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귀신 노파의 짓이라며 두려워했고 정말 귀신의 짓인지, 사람의 짓인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채 미결로 남아 있던 것이다. 과거의 끔찍한 기억이 그를 두렵게 만들었지만 결국 치수는 해무도로 떠난다. 그리고 정교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온 두 딸 주경과 주연. 동생인 주연은 아버지를 모셔왔지만, 언니인 주경은 아버지를 증오해 왔으며, 아버지 사후 재산문제에서 배제될까 두려워 장례식장에 참석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시신에서 머리가 사라졌음을 알게 된 주연은 그것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다며 한옥저택이 있는 해무도로 떠날 결심을 하고, 장례식장에 혼자 남기 두려웠던 주경 역시 주연과 함께 해무도로 떠난다.


해무도에 도착한 치수는 20년 전 살인사건을 함께 겪은 선장을 만나는데, 그는 치수에게 당장 이곳을 떠나라고 말한다. 그래도 기어이 가려는 치수에게 선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어떠한 이유로 섬을 떠났어도,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한옥저택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정교수의 집인 한옥저택을 가려면 영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이곳 영산은 귀신 노파의 전설이 스며있는 곳으로 자정을 넘기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피할 방법을 알고 있는 자신의 아들 '성구'를 길잡이로 붙여준다. 이렇게 두 사람은 영산을 넘게 되나 중간에 치수의 사고로 시간이 지체되고, 조금씩 내리던 눈발은 점점 거세져만 간다. << 사실 어떤 직접적인 경험 없이도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무서울 때가 있다. 호러 소설이나 잔인한 범죄추리소설 등을 읽을 때 가 그렇다. <해무도>의 경우 텍스트만으로는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러나 치수와 성구가 눈이 내리는 겨울밤, 귀신 노파 전설이 스며있는 영산을 넘어가는 장면을 읽을 땐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다. 아마도 그날의 내 경험이 없었다면 크게 무섭진 않았을 것이다. 작년 추석 때 강원도 산골에 있는 친정집을 방문했을 때이다. 낮에는 모든 것이 자연친화적이라 너무 좋았다. 공기도 맑고, 커다란 산속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은 몸속까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늦은 저녁, 조금은 심심했던 신랑과 나는 산책을 하기로 했다. 밖을 나오니 주위는 숨 막히도록 고요했고, 가로수 불빛들은 도시와는 다르게 뜨문뜨문 켜져 있었다. 낮에 보았던 웅장한 느낌의 산세는 깊은 어둠 속에 잠겨있어서 뭐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무서웠다. 뭐랄까? 어떤 거대한 존재가 위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듯한 느낌? 자연에 압도당하는 느낌과 함께 나의 상상력까지 더해져 현기증이 날 정도로 너무 무서웠다. 분명 탁 트인 공간인데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세에 폐소공포증을 느꼈달까? 두려움을 안고 신랑 옆에 꼭 붙어서 걸었는데,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나 울음소리가 너무도 또렷하고 크게 들려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가 저 멀리 가로등 불빛이 바지직 소리를 내며 꺼졌는데, 텅. 텅. 텅 어둠이 점점 나에게로 다가오는 느낌과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랑과 나는 소리를 지르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미친 듯이 집 쪽으로 뛰어갔다. 어두운 산을 병풍처럼 옆에 두고서도 무서웠는데, 산 중앙을 그것도 이런 무시무시한 전설이 깃든 산속을 걸어간다는 것은 정말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던 것이다.>> 어쨌든 치수 때문에 다시 돌아가지 못한 성구는 어쩔 수 없이 치수와 함께 겨우겨우 한옥저택에 도착하게 된다.  


한편, 선장은 돌아올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하기 시작한다. 어느덧 30살이 넘은 초희도 함께 있는데, 때마침 주경과 주연이 배를 타고 해무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각자의 사정과 이유로 한옥저택을 가려는 사람들. 그러나 눈발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이라 영산으론 갈 수가 없기에 선장을 비롯한 4명의 사람들은 배를 타고 한옥저택으로 향한다. 먼저 한옥저택에 도착한 치수와 성구는 아무도 없는 한옥저택에 발이 묶인다. 장례식이 당연히 이곳에서 진행될 줄 알았던 치수는 적잖이 당황하게 되고, 저택 주변을 둘러보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자국을 보고, 기이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선장과 함께 저택에 도착한 4명의 사람들. 결국 저택에서 발견되는 '정교수의 머리... 폭설과 더불어 이젠 파도까지 심해지면서 뱃길도 막혀버린다. 악천후 속에 이곳 한옥저택 해무도에 고립된 7명의 사람들, 그리고 발생하는 살인사건.

과거 20년 전 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일말의 죄책감 속에 치수는 탐정 노릇을 자처하게 되고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선장, 재산문제가 얽혀있는 주경, 남들과 다르게 이곳까지 왜 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초희 등등 그리고 치수 자신까지 포함해서 누구나가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상황.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과 범인의 정체. 결국 이 모든 것은 20년 전 그때의 살인 사건이 단초가 되었던 것인데...  마지막,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끝난 가운데 신지은 작가는 괴담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겨 준다. 그것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이른 봄이 돼서 해무가 끼모, 영산에 사는 할미 구렁이가 내려온 데이. 그 구렁이는 사람 고기를 묶을라꼬 내려오는 긴데, 구신 노파 형상을 하고 해무가 낀 틈을 봐가꼬 바다에 나섰는 사람을 영원히 데려가뿐데이. 알았제?"

"하, 할매요,무섭심더."

"하모, 또 있데이. 새벽에 혼자 돌아다니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와도 뒤돌아 보지 말고 도망가래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님의 <십각관의 살인>은 책 소개에도 나와있지만 당시 일본 미스터리계의 주류였던 '사회파 추리 스타일'에 반기를 들고 추리 문학 고전기의 본격 미스터리로 돌아가고자 했던 '신본격 운동'의 효시가 되는 작품임과 동시에 데뷔작(1987년 발표)이기도 하다. 신본격 추리소설이란 '트릭'을 중시하는 소설이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시마다 소지, 우타노 쇼고, 오리하라 이치, 아야츠지 유키토 등이 있다. 신본격과 본격의 차이는 '시대'라 할 수 있다. 1900년대를 본격이라 하며 대표적인 작가로는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 등이 있으며 1980년대 이후에 나온 본격은 신본격이라 부른다. 이와 다르게 트릭의 비중보다는 사회적 이슈나 병폐를 다루는 추리소설을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작가로는 미야베 미유키와 마쓰모토 세이초가 있다. 쉬운 예로,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이상, 개인적으로도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늘 궁금했던 '본격'이니 '신본격'이니 하는 용어들을 조사하여 정리해 보았다.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님의 '관 시리즈'는 <십각관의 살인>을 시작으로 <수차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 <인형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흑묘관의 살인>, <암흑관의 살인>, <깜짝관의 살인>, <기면관의 살인>으로 완결되었고 국내에 <깜짝관의 살인>만 아직 출간되지 않은 상태이다. 소설의 시작은 한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은 찾아올 것이다. 아무런 의심도, 두려움도 없이, 자신들을 포획하고 심판할 그 십각형의 덫 속으로...

과연 이 남자의 정체는 누구이며, 무엇을 계획하고 있으며, 그 의도와 목적은 무엇인가? 궁금증을 동반한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소설의 배경은 '츠노시마'라는 무인도이며 이곳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수수께끼의 천재 건축가가 만든 '청옥부'라는 건물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반년 전 모종의 사건으로 '나카무라 세이지'와 그의 부인, 고용인 부부 등이 처참하게 살해되었으며 청옥부 역시 불에 탔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청옥부'의 별관인 10개의 변으로 이루어진 기묘한 십각관 형태의 건물뿐이다. 일곱 명의 K 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회원인 '엘러리', '아가사', '카', '르루', '포', '올치', '반'은 여름방학을 맞아 일주일 예정으로 이곳 '츠노시마'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들은 실명이 아닌 미스터리 연구회의 전통에 따라 작가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하는데, 작가의 '본격추리문학' 황금기에 대한 진한 향수가 드리워진 것이라 한다. 기본 설정 역시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잠깐 옆길로 세자면, 나는 이들이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요즘 나온 책들은 잘 읽고 있으면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 살아남은 고전작품들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잘 안 읽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장르문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추리문학의 고전이랄 수 있는 엘러리 퀸, 아가사 크리스티, 심지어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등등 걸출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제대로 완독하지 못했다. 2017년도에는 독서의 폭도 넓히고, 고전 작품들도 자주 접해 봐야겠다. >>


어쨌든, 이렇게 섬으로 떠나는 일곱 명의 등장인물들 외에 육지에 남아있는 인물들도 있다. K대학 미스터리 회원이었지만 현재는 탈퇴한 '가와미나미'와 '모리스'라는 인물이다. '가와미나미'는 수상한 편지를 받게 되는데, 내용은 이렇다. '네놈들이 죽인 치오리는 나의 딸이었다.' 반년 전 죽은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편지였는데, 그렇다면 나카무라 세이지는 살아 있단 말인가? '가와미나미'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동생인 '나카무라 코이지'를 찾아가는데, 그 역시 이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코이지'의 집에 놀러와 있던 '시마다 기요시'는 이 기묘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결국 '시마다 기요시'는 섬으로 떠난 친구들을 걱정하는 '가와미나미'와 함께 '츠노시마'에서 벌어졌던 반년전 살인사건의 진실을 좇기 시작하고, '모리스'는 안락의자 탐정 역할을 자처하며 함께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반면, 섬에 도착한 일곱 명의 미스터리 회원들은 조금씩 기괴한 건축물에 적응해가고,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 십각형의 홀에 모인 일곱 명의 회원들 앞에 살인을 예고하는 이상한 조각들이 발견된다. 그 조각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제1피해자', '제2피해자', '제3피해자', '제4피해자', '최후의 피해자', '탐정', '범인'.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범인이고, 누가 탐정이 된다는 것인가? 약간의 두려움 속에서도, 자기들 중 누군가의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해 버리지만,  그 카드패의 명명처럼 제1피해자가 생기고, 제2피해자가 생기기 시작한다. 동료들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살해당하는 와중에 언제 자신의 순서가 될지 모를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 속에 그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을 데리러 올 배는 일주일 뒤에나 올 예정이고, 거친 폭우와 파도로 뒤엉킨 '츠노시마 섬'은 고립무원 그 자체일 뿐이다.


<십각관의 살인>은 이렇듯 육지와 섬이라는 공간을 번갈아가며 반복 교차되는 '이중 구조'를 취하고 있다.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 고립무원의 '츠노시마 섬'의 인물들과 사건을 추리하는 육지의 인물들이 반복 교차되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꼭짓점에 도달하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십각관 내부의 밀실트릭이 공개되며, 범인의 의도와 목적, 정체까지 밝혀진다. 개인적으로 범인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 인물이 이 인물과 동일인물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다만 범인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고, 범인의 의도도 약간은 억지스럽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고, 모든 사람의 원한의 크기나, 생각, 의도는 다 제각각이기도 하니...


마지막으로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님의 '관 시리즈' 중 현재 <시계관의 살인>까지 읽어 본 나로서, 이 시리즈 나름의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첫 번째, 일본 곳곳에 '나카무라 세이지'의 독특한 건축물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것! (물론 그러니까 '관 시리즈'겠지만) 두 번째, 무서운 살인사건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호기심으로 늘 그 현장에 항상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 세 번째, 범인은 절대 완벽하지 않다는 것! 나중에 모든 진상과 트릭이 밝혀질 때 예상치 못했던 범인의 실수가 매 시리즈마다 나타난다는 것! 네 번째, 범인은 경찰과 같은 조직에 의해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 다섯 번째,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님의 트릭은 엄지척이라는 것! 이상 조금은 긴 서평이 되었는데, 앞으로 남은 관 시리즈도 조금씩 정주행해야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