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로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
정주행하고 있는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님의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 <미로관의 살인>이다. 기존의 두 작품 <십각관의 살인>, <수차관의 살인>이 섬과 육지, 과거와 현재라는 이중적 교차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미로관의 살인>역시 소설과 소설 속 소설(즉, 액자소설)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관 시리즈> 기존 작품들에서 '탐정'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시마다 기요시>에게 어느 날, 한 권의 책이 배송된다. 발송인은 <시시야 가도미>로 책의 내용은 1년 전 일어났던 '미로관의 참극'을 쓴 것이다. 당시 <시마다 기요시>는 이 사건과 관련된 경험자이기도 했다. 작가인 <시시야 가도미>는 책의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으며, 탐정 역할을 했던 <시마다 기요시>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음을 밝힌다.
이제 독자들은 소설 속의 소설인 <시시야 가도미>의 <미로관의 살인>을 통해, 1년 전 일어났던 살인사건과 조우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보통의 액자소설의 경우 스토리를 통해 액자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아야츠지 유키토>의 <미로관의 살인>은 실제 책 중간에 <시시야 가도미>의 <미로관의 살인>이 '물리적인 형태'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시야 가도미>의 <미로관의 살인>이 끝나는 마지막 장에 인지, 몇쇄, 지은이, 출판사 등의 정보가 실제 책과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 그 예인데, 심지어 같은 장 마지막 부분엔 * 이 페이지는 잘못 끼어든 것이 아닙니다.라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순간 책이 주는 긴장감을 잠시 잊고, 피식 웃어 버렸다. 이런 귀여운 디테일이라니.
추리소설계의 원로 대가이자 미로관의 주인인 <미야가키 요타로(60)>는 자신의 환갑잔치를 맞아 사람들을 초대한다. 초대된 인물은 다음과 같다. 추리작가이자 후배인 <기요무라 준이치(30), <후나오카 마도카(30)>, <하야시 히로야(27)>, <스자키 쇼스케(41)>와 평론가인 <사메지마 도모오(38)>, 추리소설 마니아 <시마다 기요시(37)>, 그의 오랜 전담 편집자인 <우타야마 히데유키(40)> 마지막, 남편 따라 함께 미로관으로 오게 된 아내 <우타야마 게이코(33)>까지 총 8명이다.
<故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기괴한 건축물인 미로관에 모인 사람들. 그러나 <미야가키 요타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신 그의 비서인 <이노 미쓰오(36)>가 <미야가키 요타로>의 자살소식과 함께 그의 유언을 전한다. 내용인즉, 4명의 추리 소설가들에게 최고의 추리소설을 쓰라는 것. 심사는 <우타야마 게이코>를 제외 한 3명의 사람들이 하고, 1등이 된 사람에게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넘겨 주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을 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고, 이는 앞으로 있을 연이은 살인 사건과 무관치 않다. <미노타우로스>로 불리는 응접실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된 <스자키 쇼스케>를 필두로 나머지 추리 소설작가들이 자신들이 쓴 소설 속 표현대로 하나씩 살해되고, 유일하게 열쇠를 가지고 있던 비서 <이노 미쓰오>마저 종적을 감추고, 전화선까지 끊기며 미로관은 완벽한 밀실 상태가 된다.
*
정신을 차리니 어두운 미궁을 홀로 방황하고 있었다.
온통 회색으로 칠해진 좁은 통로, 울퉁불퉁한 벽면에서 흔들리는 희미한 불빛.
바닥에 길게 뻗은 자기 그림자가 걸을 때마다 크게 흔들리며 형태를 바꾸고,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발소리에 맞추어 괴상하게 춤을 추었다.
'...... 여기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곧게 뻗은 긴 복도가 아득한 저편에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아...... 여기는?'
*
자신의 방조차 찾기 어려운 복잡하게 얽힌 미로관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언제 살해당할지 모를 공포와 불안감 속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시마다 기요시>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씩 단서들을 조합하여, 밀실 트릭과 범인을 밝혀냄으로써 <시시야 가도미>의 <미로관의 살인>은 끝을 맺는다. 그러나 소설이 끝난 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밝혀지는 반전과 진짜 범인. <시시야 가도미>의 <미로관의 살인>은 진범에게 읽히기 위해 썼던 것인데, 사실 소설 속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진범이 아니었던 것. 작가인 <시시야 가도미>는 진범을 알고 있었고, 이 사실이 세간에 밝혀지진 않았으나 소설 속 함축적 표현들을 통해 진범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미로관의 살인>은 앞선 <십각관의 살인>, <수차관의 살인>에 비해 공간적 특성을 훨씬 더 잘 살린 작품이다. 더불어 범인 감추기를 위한 서술트릭 또한 한몫했는데, 이는 사실 평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수께끼의 저자 <시시야 가도미>그는 누구인가? 하는 것인데, 이 또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반전과 반전의 연속, 밀실 속 물리트릭과 서술트릭의 조화. 한순간도 독자를 책 속에서 놓아주지 않는다. 이 작품 역시 별 다섯! ★★★★★
- ps
<아리아드네의 실>
: <아리아드네>로 불리는 넓은 홀 앞에 <아리아드네의 실꾸리>를 들고 있는 동상이 있다. <시마다 기요시>는 이 동상이 상징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밀실트릭을 밝혀낸다. 개인적으로 이와 관련된 신화를 찾아 정리해 보았다. < 아테네 최고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다이달로스>가 조카를 살해한 죄로 아테네에서 추방당하여 크레타 섬으로 건너왔다.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은 그를 크게 환영하였고, <다이달로스>는 보답으로 인공의 암소를 바쳤다. 그런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미노스 왕>에게 선물한 황소에게 욕정을 느낀 <파시바 왕비>는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다이달로스>가 만든 인공 암소의 몸속으로 들어가 황소와 교미를 했고 그 결과, 몸은 사람에 머리는 소인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태어나게 했다. <미노스 왕>은 이 괴물을 부끄럽게 여겨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라비린토스라는 지하 미로를 만들게 했는데, 한 번 사람이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미노타우로스>는 그 안에 갇혀 <미노스 왕>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인들이 공물로 받친 사람들을 먹고살았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어 크레타 섬으로 건너온다. 그리고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와 사랑에 빠지고,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라비린토스에 들어갈 즈음 실꾸리를 건네준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그녀가 건네준 실꾸리 덕분에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오게 된다. 즉, 신화 속 <아리아드네의 실꾸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포인트.> 여러모로 <미로관의 살인>은 신화까지 곁들여 재미뿐 아니라 지적 호기심도 충족시켜 준 멋진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