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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도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1
신시은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평점 :
아직 일본에 비해 국내 '추리장르문학'이 크게 인정받고 있다거나, 많은 양의 작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 그 위상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나의 경우도 일본이나 기타 다른 나라의 추리소설들을 많이 접하는 편인데, 그래서일까? 국내의 추리장르소설이 새롭게 출간되면 '희귀하고 소중한 작품'을 보듯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들게 된다. 이번에 펼쳐 든 소설은 황금가지 출판사의 '밀리언 셀러클럽' 한국편인 신시은 작가의 <해무도>라는 작품이다. 책의 겉표지만 놓고 보더라도 벌써 어딘가 오싹한 느낌이 들면서 시선을 잡아 끌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것은 신시은 작가의 나이가 94년 생으로 2017년 현재 24살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 <해무도>를 집필했을 당시엔 약관의 나이 20살이었다고 한다. 정말 뭐라도 될 사람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그 시절 나는 무얼 했나. 이러려고 나이만 먹었나 자괴감 들어; 어쨌든 앞으로 신시은 작가의 행보가 기대되고 더불어 한국장르문학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무척 뿌듯하다.
망망대해 위로 짙게 드리운 희뿌연 안개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외딴섬 해무도. 이곳에 전해내려오는 전설 같은 괴담이 있는데, 짙은 해무가 낀 날 영산의 할미 구렁이 귀신이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영산 혈곡에는 백발의 귀신 노파가 자식의 원수를 갚기 위해 떠돌고 있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오죽 그 원한이 강한지 영산엔 산짐승의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이렇듯 신시은 작가의 <해무도>는 '한국괴담'과 '본격추리소설'이라는 두 가지 맛깔나는 양념을 버무린 작품이다. 최근에 읽은 '화가'라는 작품도 그렇지만, 일본에 전해내려오는 민담이나 괴담 등을 작품에 잘 버무려서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풍을 탄생시킨 '미쓰다 신조' 작가님이 생각나기도 했다.
외딴섬 해무도, 12살의 어린 초희가 한 남자를 만나는데 남자의 행동과 말투가 어딘지 수상쩍다. 그에게서 달아나려는 초희. 그러나 곧 짙은 해무가 깔리기 시작하고 초희는 난감한 듯 남자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현재. 주인공이자 대학교수인 '치수'는 아내로부터 자신의 스승이었던 '정교수'의 부고 소식을 듣는다. 정교수가 살았던 한옥저택은 해무도에 있는 곳으로 20년 전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며 당시 치수도 이곳에 있었다. 두 사람이 머리가 잘린 채 죽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귀신 노파의 짓이라며 두려워했고 정말 귀신의 짓인지, 사람의 짓인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채 미결로 남아 있던 것이다. 과거의 끔찍한 기억이 그를 두렵게 만들었지만 결국 치수는 해무도로 떠난다. 그리고 정교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온 두 딸 주경과 주연. 동생인 주연은 아버지를 모셔왔지만, 언니인 주경은 아버지를 증오해 왔으며, 아버지 사후 재산문제에서 배제될까 두려워 장례식장에 참석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시신에서 머리가 사라졌음을 알게 된 주연은 그것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다며 한옥저택이 있는 해무도로 떠날 결심을 하고, 장례식장에 혼자 남기 두려웠던 주경 역시 주연과 함께 해무도로 떠난다.
해무도에 도착한 치수는 20년 전 살인사건을 함께 겪은 선장을 만나는데, 그는 치수에게 당장 이곳을 떠나라고 말한다. 그래도 기어이 가려는 치수에게 선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어떠한 이유로 섬을 떠났어도,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한옥저택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정교수의 집인 한옥저택을 가려면 영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이곳 영산은 귀신 노파의 전설이 스며있는 곳으로 자정을 넘기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피할 방법을 알고 있는 자신의 아들 '성구'를 길잡이로 붙여준다. 이렇게 두 사람은 영산을 넘게 되나 중간에 치수의 사고로 시간이 지체되고, 조금씩 내리던 눈발은 점점 거세져만 간다. << 사실 어떤 직접적인 경험 없이도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무서울 때가 있다. 호러 소설이나 잔인한 범죄추리소설 등을 읽을 때 가 그렇다. <해무도>의 경우 텍스트만으로는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러나 치수와 성구가 눈이 내리는 겨울밤, 귀신 노파 전설이 스며있는 영산을 넘어가는 장면을 읽을 땐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다. 아마도 그날의 내 경험이 없었다면 크게 무섭진 않았을 것이다. 작년 추석 때 강원도 산골에 있는 친정집을 방문했을 때이다. 낮에는 모든 것이 자연친화적이라 너무 좋았다. 공기도 맑고, 커다란 산속에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은 몸속까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늦은 저녁, 조금은 심심했던 신랑과 나는 산책을 하기로 했다. 밖을 나오니 주위는 숨 막히도록 고요했고, 가로수 불빛들은 도시와는 다르게 뜨문뜨문 켜져 있었다. 낮에 보았던 웅장한 느낌의 산세는 깊은 어둠 속에 잠겨있어서 뭐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무서웠다. 뭐랄까? 어떤 거대한 존재가 위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듯한 느낌? 자연에 압도당하는 느낌과 함께 나의 상상력까지 더해져 현기증이 날 정도로 너무 무서웠다. 분명 탁 트인 공간인데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세에 폐소공포증을 느꼈달까? 두려움을 안고 신랑 옆에 꼭 붙어서 걸었는데, 벌레들의 날갯짓 소리나 울음소리가 너무도 또렷하고 크게 들려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가 저 멀리 가로등 불빛이 바지직 소리를 내며 꺼졌는데, 텅. 텅. 텅 어둠이 점점 나에게로 다가오는 느낌과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랑과 나는 소리를 지르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미친 듯이 집 쪽으로 뛰어갔다. 어두운 산을 병풍처럼 옆에 두고서도 무서웠는데, 산 중앙을 그것도 이런 무시무시한 전설이 깃든 산속을 걸어간다는 것은 정말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던 것이다.>> 어쨌든 치수 때문에 다시 돌아가지 못한 성구는 어쩔 수 없이 치수와 함께 겨우겨우 한옥저택에 도착하게 된다.
한편, 선장은 돌아올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하기 시작한다. 어느덧 30살이 넘은 초희도 함께 있는데, 때마침 주경과 주연이 배를 타고 해무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각자의 사정과 이유로 한옥저택을 가려는 사람들. 그러나 눈발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이라 영산으론 갈 수가 없기에 선장을 비롯한 4명의 사람들은 배를 타고 한옥저택으로 향한다. 먼저 한옥저택에 도착한 치수와 성구는 아무도 없는 한옥저택에 발이 묶인다. 장례식이 당연히 이곳에서 진행될 줄 알았던 치수는 적잖이 당황하게 되고, 저택 주변을 둘러보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자국을 보고, 기이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선장과 함께 저택에 도착한 4명의 사람들. 결국 저택에서 발견되는 '정교수의 머리... 폭설과 더불어 이젠 파도까지 심해지면서 뱃길도 막혀버린다. 악천후 속에 이곳 한옥저택 해무도에 고립된 7명의 사람들, 그리고 발생하는 살인사건.
과거 20년 전 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일말의 죄책감 속에 치수는 탐정 노릇을 자처하게 되고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선장, 재산문제가 얽혀있는 주경, 남들과 다르게 이곳까지 왜 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초희 등등 그리고 치수 자신까지 포함해서 누구나가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상황.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과 범인의 정체. 결국 이 모든 것은 20년 전 그때의 살인 사건이 단초가 되었던 것인데... 마지막,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끝난 가운데 신지은 작가는 괴담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겨 준다. 그것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이른 봄이 돼서 해무가 끼모, 영산에 사는 할미 구렁이가 내려온 데이. 그 구렁이는 사람 고기를 묶을라꼬 내려오는 긴데, 구신 노파 형상을 하고 해무가 낀 틈을 봐가꼬 바다에 나섰는 사람을 영원히 데려가뿐데이. 알았제?"
"하, 할매요, 내 무섭심더."
"하모, 또 있데이. 새벽에 혼자 돌아다니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와도 뒤돌아 보지 말고 도망가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