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맥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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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감성적인 일러스트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모리사와 아키오의 <쓰가루 백년 식당>, <무지개 곶의 찻집>, <당신에게>라는 세권의 책이다. 읽어야 할 책들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 표지가 아름답다라는 이유만으로 일단 지른 책들이다. 여전히 읽진 못하고 언젠가, 곧 읽어야지하면서 책장 한 켠에 꽂혀있다. 그것이 내가 모리사와 아키오라는 작가를 알게 된 대략적인 경위이다. 그리고 그의 여행 에세이랄 수 있는 '푸른 하늘 맥주' 역시 그 표지의 그림이 나의 감성에 와 닿아 선택하여 읽게 된 책이다.

 

 총 5개의 장에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지금은 마흔을 넘긴 작가 본인의 10대~20대에 모험을 떠난 빛나는 청춘의 기록들이다. 여느 여행 에세이처럼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추천 장소, 추천 맛집 따윈 더더욱 없다. 그저 한 여름 일탈을 꿈꾸 듯 푸른 하늘을 천장 삼아 자신의 애마인 오토바이 혹은 차를 이끌고 간단한 캠핑 도구와 시원한 맥주만 챙겨 무작정 떠난 여행 에세이이다. 발길 닿는 곳이 푸른 바다이거나 신록이 우거진 산이거나 시원한 계곡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산나물과 갓 잡은 생선을 안주 삼아 작렬하는 태양아래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 기분이란! 아마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황홀경일 것이다. 때로는 혼자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장소를 탐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에 맞는 친구와 함께 바다를 누비고, 산을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여행은 결코 감성적이거나 지루하지 않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평범한 상황속에서도 작가나 친구들이 벌이는 상식밖의 언행들은 정말이지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나를 뒤집어지게 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포복절도! 요절복통이다. 책을 읽으면서 웃겨서 눈물이 나온 건 실로 오랜만이였다. 뭔가 허당 개그를 보는 것도 같고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도 같았지만 그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에선 위험천만한 상황들도 꽤 등장한다. 정말이지 지금이야 작가가 멀쩡히 살아 있어서 그런 이야기들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고,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그때 명을 달리 하셨다면 내가 부엌 식탁에 앉아 이 책을 읽으며 이 주말을 웃음으로 보낼 순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버라이어티한 포복절도 어드벤쳐 모험담을 들려주실 작가님께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부디 만수무강하시길 바라는 것이다. 올 여름은 너무 바빠서(내가 아닌 신랑이) 제대로 된 휴가도 못가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멋진 휴가를 다녀온 기분이다. 나도 북적북적한 도심보다는 온전히 자연과 동화되는 장소들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작가와 친구들이 함께 한 여행지들도 대부분 그런 곳들이다. 지명이 일본이다 보니 자세한 위치나 생김새는 빠르게 머릿속에 '이미지화'되진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산하를 생각하며 혹은 그런 풍경이 담겨있던 일본 영화나, 드라마 장면들을 생각하며 내 영혼은 책 속으로 유체이탈하여 그들과 함께 일본의 산하를 누비며 시원한 맥주한잔을 연거푸 들이마신 기분이다. 지금도 사실 기분이 알딸딸한 것이 약간 몽롱하다.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듯 하다. 왜냐하면 작가의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맥주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이곳에 나열하진 않겠다. 나열하는 순간 재미가 반감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한 에피소드에 너무 웃겨서 탈진했다가 TV를 보고 있는 신랑에게 열에 들떠 얘기를 들려줬는데, 초반에는 조금 웃는 듯 하더니 '왜 그렇게 얘기를 재미없게 하냐'는 핀잔에 지금 상당히 의욕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한 여름 푹푹찌는 이 더위에 아직 휴가도 제대로 떠나보지 못하고 뭔가 재미있는 일 없을까? 하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이렇게 노골적으로 추천하는 내가 아닌데, 정말 이 책은 서평을 쓰러 컴퓨터 앞에 앉으러 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혼자 헤벌쭉(아직도 책에서 벗어나지 못함)웃으며 혼잣말로 '진짜 터진다. ('터'앞에 '개'가 생략되어 있다) 터져'를 연발한 본인이다. 허나 작가는 뒷부분에 다짐을 해둔다. 자기는 이렇게 바보같은 에세이도 쓰지만 '정상적인 소설'도 쓰니 꼭 참고해 달라고. 때문에 작가의 강력한 메시지에 그의 정상적인 소설들도 이제 하나씩 꺼내 읽어봐야겠다고 나 역시 다짐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청명감과 유쾌함이였다. 더불어 나의 10~20대의 시절이 작가만큼 무모하진 않았지만 나름 허당기가 있었던 내 청춘, 그 시절이 생각나 그리워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나에게 두번째 눈물을 선사했다. 첫번째가 웃음이였다면 두번째는 감동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에게 묻는다고 한다. "학창시절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그럴 때마다 작가의 대답은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을 것. 스마트폰은 놔두고 혼자 여행을 떠날 것. 마을에서 떨어진 산속에서 혼자 노숙도 해보고, 철저히 고독을 맛보는 시간을 가지세요." 이유는 이렇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가공의 인생'을 뇌 내에서 '유사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경험'함으로써 인간은 성장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설 속에서는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곤 하므로, 그 독특한 경험이 큰 성장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경험으로만 성장하는 생물이기에 다양한 인생을 경험하기 위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소설이든 아니든. '고독한 여행'이 주는 것은 그럼 무엇일까? 자연 속에서 혹독한 비바람을 맞고 지내다 보면 나의 집이 그리워지고, 다른 이와 이야기 나누지 못하는 나날이 길게 이어질수록 가족, 친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좀 더 깊은 고독에 빠지면 내 발밑의 풀벌레들, 소리 없이 서 있는 식물들 모두가 나의 든든한 '지구상의 동료'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의 고백을 빌리자면 젊었을 땐 인간이라는 존재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혼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고독한 여행'을 통해 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과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과 환경들에 감사함을 느끼며 본인 자신도 많이 변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나 어린 아이들을 보면 어쩔 땐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우리 땐 정말 순수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때는 주변에 첨벙첨벙 놀 수 있는 강들도 많고 깨끗했으며, 부모님과 함께 산에 올라가 산나물도 캐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운 자연이 늘 곁에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도 삭막한 환경이 되어버렸으니 그런 환경을 보고 자란 아이들의 심성과 감성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내 유년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찾아 얼마전 동생들과 함께 떠났던 경기도 이천의 한 시골마을은 도로가 깔리고, 새롭게 아파트가 들어서고, 음메~ 소리를 내며 울던 소들의 외양간도 온데간데 없어지고, 길섶에 즐비하게 피었던 돼지감자꽃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 와 버린 것이다. 그때 느꼈던 그 상실감은 역시..겪어본 사람만이 알겠지...푸른 하늘 맥주는 찬란했던 청춘과 그 시절 반짝반짝 빛났던 대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 무모하지만, 아름다웠던 기억의 조각들이다. 작가도 나도 각자의 아름다웠던 청춘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살아가겠지. 그런 기억과 추억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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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꽃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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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둥꽃이라 불리는 한 소녀가 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에 자라는 독초이기도 한 그 꽃의 이름은 그녀 어머니가 붙혀준 예명이다. 그녀의 실제 이름은 엘렌 제가도. 왜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의 딸에게 이런 얄궂은 꽃의 이름을 붙혀 주었는지는 책에 나오진 않지만 그녀의 인생을 예견하기라도 하듯, 그 독초처럼 그녀는 수많은 사람을 독살하는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된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브르타뉴주인데, 이 지방은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 및 기독교 문명과는 전혀 다른 켈트 문화의 뿌리가 깊이 자리잡은 곳이다. 즉, 전설, 미신, 신비주의가 민초들의 삶 구석구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언어도 프랑스어가 아닌 완전히 다른 언어라 할 수 있는 '브르타뉴어'를 사용하는 어쩌면 프랑스와는 다소 다른 이질적인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자란 엘렌 제가도의 유년시절은 이불을 머리깊숙히 덮고 자야할 만큼 무서운 이야기 및 전설들이 어른들의 입을 통해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집에 빗질을 할 경우 그 사자의 영혼이 상처를 입는 다는 둥, 끼익~ 끼익~ 차축이 굴러가는 불길한 소리를 내며 자신보다 큰 낫을 휘두르며 죽은 자들을 거둬 들이는 죽음의 정령 앙카의 이야기라든지, 죽은 자들의 넋이 집안 화병 속 물에 흘러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화병 속의 물을 비워둬야 한다든지 등 그런 이야기와 그 이야기들에 함몰되어가는 어른들의 세계는 어린 엘렌 제가도가 겪기엔 결코 행복한 유년은 아니였을 것이다. 그래서 였을까? 그녀는 스스로 죽음의 전령 앙카의 현신이 된다. 그리고 그녀의 첫 희생양은 다름아닌 자신의 어머니가 된다.

 

 두번째 살인은 집을 떠나 이모가 있는 수도원에 자신을 데려다 준 사람을 독이 든 쿠키로 죽게 한다.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비소를 넣은 음식으로 자신의 이모도 살해한다. 그녀의 고향 브르타뉴주의 플루이네크를 기점으로 뷔브리, 세글리앵, 트레다르제크 그리고 거의 마지막, 수도인 렌을 거쳐 다시 플루이네크까지 오랜 세월동안 그녀만의 살인순례는 지속된다. 그녀는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여러 도시들을 전전하며 사제, 친 언니, 이모,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까지 살인의 향연을 꽃피워 간다.

 

 그러나 당시 창궐했던 콜레라로 인해 그와 비슷한 증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시기와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그녀의 살인은 오랜 시간동안 발각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들이 죽어나간 장소에서 그녀 자신만이 살아나오자 사람들로부터 성녀로까지 추앙받기도 한다. 그녀의살인순례를 따라가다보면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이 웃음이 나올 만큼 해학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팔아 절정의 순간에 남자들을 독이 든 쿠키로 죽이는 장면은 에로티시즘을 넘어 그녀 자신의 광기가 폭발하는 성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가져다 주는 독이 든 음식을 아무런 의심없이 먹고 서서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와중에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자신의 아내가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엘렌의 손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남자이다.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초로의 노인인데, 엘렌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자신을 죽일 것을 알게 되지만 그 자신이 삶에 큰 미련이 없기에기꺼이 그녀의 음식을 먹고 죽음을 맞이한다. 특히 그 둘의 대화 중에서 노인이 엘렌에게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간 '나폴레옹'에 대해 얘기하는데, 엘렌은 '자신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요리사'도 있냐며 놀라는 장면이 있다. 심지어 브르타뉴가 프랑스령이라는 것도 모르는 엘렌의 그 무지함을 보면서 그녀의 그런 무지를 탓하기 보다 그녀가 살고 있던 곳이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같아서 조금은 섬뜩함을 느꼈다.

 ​어쨌든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녀의 살인순례는 결국 발각이 되고, 재판을 통해 그녀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살인을 시작하면서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 사람들의 질문에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은 앙쿠의 사명을 다해야한다는 광기어린 무모함엔 일말의 동정조차도 느껴지지 않아 나 역시 그 재판소의 배심원이 되어 그녀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다 사형 전날 사형간부에게 하는 그녀의 고백은 처음으로 그녀가 가장 인간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친 듯 했다. 그녀의 그 긴 이야기를 읽어나가다보니 나 역시 처음으로 그녀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이유로 그녀가 행한 살인이 정당성을 갖진 않겠지만 말이다. 

 

 장 퇼레의 천둥꽃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중간중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그의 블랙 유머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음침하면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 처음부터 끝까지 엘렌 제가도의 살인순례를 함께 하는 두명의 가발장수인 노르망디 출신 남자들이 등장하는데, 그 모습이 자못 기괴하면서도 해학적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엘렌 제가도와 함께 다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무대위의 주인공은 엘렌 제가도인데 감초역할을 하는 조연처럼 엘렌이 가는 곳곳마다 늘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들로. 그리고 엘렌의 살인이 극대화 될 수록 그들도 점점 브리타뉴화 되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모습과 행동들은 사뭇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더불어 이 책이 주는 광기가 더욱더 충격적일 수 밖에 없는 사실은, 엘렌 제가도(1803~1852)가 자그마치 36명을 독살한,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실존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녀의 단편적인 기록들을 토대로 작가 장 퇼레는 자신만의 상상력을 덧칠하여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나는 이것이 매우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누구든 자기 부모의 불안감 속에 방치된 상황에서는, 그 불안감을 극복하고픈 마음이 생긴다는 거죠. 그런 목적에서 스스로 죽음으로 화할 각오까지 하게 됩니다. 불굴의 존재가 되려는 것이죠. (이하 생략) 내가 바로 앙쿠입니다. 기둥 꼭대기에서 공포를 조성하는 장본인이 바로 나란 얘기죠. 더 이상 내가 두려워 할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내가 곧 두려움이니까요." 

 

- 340page 엘렌 제가도의 고백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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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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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사랑이 그렇게 어려워야 하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 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 악이든 선이든 - 이미 갖고 있는 개념에 비춰 다른 사람을 판단하죠. 사랑도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에 부합하는 것만 사랑이라고 인정해요.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다른 모습은 불편해하고, 그래서 의심하고 의혹을 품죠. 그래서 상대를 비난하죠.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정하죠. 하지만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이한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일 뿐이에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거예요.

- 297page -  

 

 얀 필립 젠드커의 장편소설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은 제목부터 표지까지 참 인상적이였다. 책을 받고 났을 때엔 그 두께감에 적잖히 놀랐다. 약간의 흥분과 설렘을 안고 책을 읽어 나갔다. 두께감에 비해 책 자체의 여백도 꽤 있는 편이였고, 행간의 넓이도 넓어 생각보다 빨리 읽혔다. 물론 얀 필립 젠드커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흡입력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책을 썩 빨리 읽지 못하는 내가 단 이틀만에 이 책을 다 읽어버렸으니 말이다.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었을 때엔 우 바의 정체에 놀랐고, 책 속 우 메이의 많은 가르침에 감명을 받았고, 틴 윈과 미밍의 사랑엔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기약없는 기다림속에서도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고 믿음으로 자신의 생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조금은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색깔의 사랑이라는 것도.

 

 줄리아는 어느 날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위해 어머니가 준 '단서'하나에 의지해 아버지의 고향인 미얀마로 떠난다. 뉴욕의 변호사 출신인, 어쩌면 모든 것을 다 갖춘 삶을 산 아버지가 자신을 포함한 가족 모두를 버리고 왜 미얀마로 떠나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며 상심했을 것이다. 그러한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도착한 미얀마의 소도시 깔로에의 작고 허름한 카페에서 '우 바'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50년전 아버지의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심지어 아버지가 한 때는 장님이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틴 윈은 어릴 적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이웃의 수치부인에게 키워진다. 후천적으로 발병한 장애로 틴 윈은 장님이 되고 이전에 그가 알고 지냈던 세상은 어둠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그런 틴 윈을 수치는 수도원의 우 메이에게 데려가고, 마찬가지로 장님인 우 메이는 틴 윈의 정신적 스승이 된다. 그를 통해 틴 윈은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들을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나간다. 소설 속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미얀마의 소도시 깔로. 그곳에서 온 청력을 기울여 자신의 세상을 한 발 한 발 넓혀나가는 틴 윈의 모습은 인상적이였다. 시각이 온전한 사람들은 결코 들을 수 없는 아주 미세한 소리도 틴 윈은 들을 수 있게 된다. 나비들의 날갯짓 소리, 땅 속 동물들의 달음박질 소리, 심지어는 소리만으로 나무의 종류까지 구별해 낸다. 큰 키와 약간 마른 체형을 가진 틴 윈의 보기좋은 갈색빛 피부, 롱기를 걷어 올려 비로 질퍽해진 땅의 표면을 발바닥의 촉감으로 느끼며 움직이는 모습 등등은 책을 읽어가는 내내 내게 하나의 영상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미얀마라는 곳을 단 한번도 가본적이 없지만 그곳의 환경과 그 속에 살아 숨쉬는 틴 윈의 모습은 마치 내가 그곳을 가본 것처럼 느껴져 계속해서 그곳의 틴 윈의 이미지는 나를 따라다녔다. 수치와 우 메이, 그리고 수도원의 많은 동료들은 친절하고 다정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아니 그보다 틴 윈의 가슴속 깊이 남아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을 끌어 올리기에 그들은 충분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단조롭지만 조용하고 규칙적인 어떤 소리를 듣게 되고 그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에 틴 윈은 운명처럼 미밍이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그가 들었던 그 소리는 미밍의 심장박동소리였다.

 

 미밍은 작고 용기있으며, 현명하고 아주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선척적인 장애로 걷지 못하고 기어다녀야만 했다. 그러나 그 모습조차도 미밍은 전혀 추해보이지 않았다. 미밍은 틴 윈이 그녀를 자각하기 전부터 수도원에서 틴 윈을 보았었다. 그리고 언젠가 틴 윈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을 알았다. 그 둘은 운명처럼 만나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주었다. 그 둘의 만남은 4년 가까이 지속되었고 그 시간속에서 그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매일 매일 틴 윈이 보고 싶었지만 미밍은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다림을 통해 자신들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었으며 그 기다림조차도 미밍은 행복했다. 틴 윈은 미밍을 통해 그녀가 그려주는 세상의 소리들을 더 확장해 나갈 수 있었고, 미밍은 틴 윈의 등에 엎혀 더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었다. 애초부터 그 둘은 둘이 아닌 그저 하나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 둘의 장애는 장애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서로의 아픔을 묵묵히 받아들일 위로가 되어 주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여느 때처럼 틴 윈은 미밍을 업고 비를 피할 오두막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쏟아지는 빗소리에 묻혀 서로의 영역을 갈망하고 붙잡으려는 그들의 몸부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여느 사랑과 다를 바 없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일어설 수 없다고해서 그들이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우리처럼 그들도 사랑을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들만의 색깔로 다르게 채워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폭우속의 격정처럼 틴 윈과 미밍은 헤어지게 된다. 미얀마라는 공간적 배경이 주는 또 한 가지는 바로 그들은 미신을 절대적으로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점성술사의 예언으로 틴 윈의 먼 친척 뻘 되는 고모부는 틴 윈을 데려간다. 틴 윈은 곧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머나먼 수도 양곤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치료를 받아 눈을 뜨게 되고, 더 머나먼 뉴욕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 사이 미밍과 틴 윈은 서로에게 편지를 쓰지만 그 편지들은 중간에서 고모부로 인해 가로채이게 되고 답장을 받지 못함에도 그 둘은 여전히 서로를 잃지않고 사랑을 노래한다. 마지막 틴 윈에게 미밍은 단 한통의 편지를 받게 되지만, 그것은 고모부의 계략으로 씌여진 편지였다. 하지만 미밍은 틴 윈을 원망하지 않았다. 틴 윈은 뉴욕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지만 그건 전적으로 그의 의지는 아니였다. 그러나 미밍에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그 순간에 그를 버틸 수 있게 한 유일한 안식처는 그의 가정이였을 것이다. 이 부분은 줄리아에게 들려주는 우 바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 또한 이해하게 된다. 줄리아 역시 아버지의 배신으로 생각했던 일들이 우 바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가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남자로서 느꼈을 고통과 아픔을 마주하며 그를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들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점차 흐려지고, 아버지는 미밍을 사랑했던 것처럼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과 어머니, 가족들을 사랑했단 걸 알게 된다.

 

 우 바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줄리아는 아버지를 만나게 되길 고대하지만, 우 바는 서두를 필요 없다고 한다. 틴 윈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미밍의 심장박동 소리를 느낄 수 있었고 그녀를 찾아 미얀마로 왔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은 어떻게 되었을까? 마지막으로 우 바에게 줄리아는 한 통의 봉투를 건네 받는다. 그 속엔 어딘가 낯이 익은, 그러나 짐작은 가지 않는 어떤 남자가 미밍옆에 서 있는 사진들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미밍과 그 남자도 늙어가지만 미밍의 아름다움은 여전하고 그 남자도 곧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그 작은 충격을 확인하기위해 우 바에게 달려가지만 우 바는 그저 아무말 없이 웃으며 이야기는 끝난다.

 

 미얀마의 후텁지근한 날씨, 온갖 동물들의 소리가 앞마당에서 들리는 집의 구조들, 미밍이 손수 짠 롱기를 입고 기어가는 모습, 온갖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틴 윈의 집중하는 얼굴 표정, 그리고 미밍의 작은 가슴을 느끼며 그녀를 업고 달리는 틴 윈의 뒷 모습, 빗속을 가로 질러 언덕을 오르는 그들의 모습,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결코 원망하지 않는 그들의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에 영상이 되어 둥둥 떠다녔다. 한편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영화를 본 것처럼 내 가슴은 미얀마의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뜨거워져 진정시키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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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BOOn 4호 - 2014년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월간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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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출범하는 '일본문화 및 문학전문잡지' 격월간 BOON의 첫 창간호가 순조롭게 출발한 가운데 4호가 출간되었다. 7, 8월호 답게 푸른색의 표지는 시원한 바다를 연상케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콘텐츠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같은 경우, 그저 간헐적으로 일본의 문학이나 콘텐츠를 소비하지만 정작 일본이 가지고 있는 그 거대한 콘텐츠 힘의 원천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그 속속들이를 다 알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갈증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 있다면 바로 BOON일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어떠한 콘텐츠로 우리를 무장해제시킬지 BOON속으로 한번 떠나 보도록 하자.

 

 일본뿐 아니라 어쩌면 국내에서 더 많이 사랑받고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여류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이번 '작가를 읽다'에 소개되었다. 사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가오리'라는 물고기였다. 역시나 나만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였나보다. 이 글의 저자 또한 첫 문단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런 아름답지 못한 오해를 풀어주기라도 하듯 일본의 정확한 발음으로는 가오리가 아닌 '카오리' 즉 향기를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그녀의 성과 함께 이름의 전체적인 뜻을 풀어보자면 '물의 나라에서 향기로 직물을 짜다'라는 뜻이 된다. 이름조차도 참 문학적이다. 내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냉정과 열정사이'인데 어쩐지 그녀의 감성코드가 나와는 사실상 잘 맞지 않아 그 뒤로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다. 다만 이 '작가를 읽다'라는 코너를 통해 그녀의 감성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고 그녀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의 작품 <하느님의 보트>, <울 준비는 되어 있다> 등등 까지 한번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작가에 대한 기초적인 배경지식을 갖고 책을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테니까. 이번 코너를 통해 그녀의 작품세계에 조금은 가까워 진 듯한 느낌이다. 기회를 갖고 그녀의 작품들을 하나씩 섭렵해 보아야겠다.

 

 규슈올레 탐방 : 가고시마현, 이부스키 가이몬 코스 부분은 참 즐겁게 읽었는데 아마도 내가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읽은 부분일 것이다. 규슈는 일본 4개 섬 중에서 최남단에 위치한 곳인데 천혜의 자연환경도 그렇고 식재료들도 풍부한, 너무나도 축복받은 땅이였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그 이미지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그러던 차에 우리나라 (사)제주올레와의 업무 협약을 통해 올레 브랜드와 운영 노하우 전부를 수입해 규슈만의 올레길을 만들어 예전의 축복받은 땅의 이미지를 되찾았다. 이곳에 소개되어 있는 규슈 올레길을 떠나보는 것도 일본여행의 즐거운 묘미일 것이다. (또한 일본이 우리나라 제주도의 운영 노하우 등등을 수입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나름 기분이 뿌듯했다.)

 

 이번 호는 첫장도 그렇고 '특집 : 도쿄의 표상학'도 그렇고 도쿄라는 일본의 수도에 대해 조금 깊이 있게 다루었다. 사실상 나도 도쿄는 그저 '일본의 수도' 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 그 이상의 구체적인 것들은 잘 모른다. 도쿄의 행정구역은 23구 26시 5초 8손인데, 실제 도쿄시에 해당하는 지역은 도쿄 23구에 국한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도쿄도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전체, 즉 경기도를 의미하고 서울시에 해당하는 지역이 바로 도쿄 23구이다. (참고로 행정 구역상 도쿄시라는 지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밖에 도쿄에서 가볼만한 곳들을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설명해 놓았는데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만의 여행리스트에 담아놓았다. '특집 : 도쿄의 표상학'은 에도가와 란포의 도쿄 소설을 비롯해 도쿄만 앞바다의 매립지, 오다이바를 토대로 도쿄가 어떻게 세계도시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지 등등 현대의 일본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다만 이 부분은 역사, 정치, 경제가 한대 어우러져 설명이 되다보니 솔직히 쉽게 읽히진 않았다.

 

 연재소설 어항, 그 여름날의 풍경과 기획연재 일본의 요괴 문화 : 설녀부분도 참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연재소설 어항, 그 여름날의 풍경은 미래사회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중 우익세력이 권력을 장악하여 오로지 성장에만 초점을 맞춰 발전시켜 나간다. 겉으론 고도의 황금기를 맞이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청년들의 저임금 노동'이라는 어두운 현실이 지배하고 있다. 배경은 미래지만 어쩌면 지금 현시대의 일본이 갖고 있는 불편한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연재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도 궁금하다. 기획연재의 설녀는 일본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성 요괴들 중 하나인데 그 존재는 여러가지 형태 및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극적 구성이 있는 형식으로 발전, 완성시킨 라프카디오 헌의 '설녀'를 기본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특히 설녀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이미지들은 예들 들면, 팜므파탈 적인 요소라든가 인간의 아이를 낳은 어미로서의 모성애 등은 어쩐지 설녀라는 요괴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 밖에 많은 콘텐츠들이 BOON을 다양하게 장식했는데, 내가 가장 관심있게 본 부분은 일본 추리소설의 심장, 에도가와 란포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심리, 추리쪽이다보니 자연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느꼈던 것인데 '추리소설의 창시자'랄 수 있는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과 너무 흡사해서 늘 의아해 했는데 알고보니 란포 역시 본명은 따로 있고 '에드거 앨런 포'를 존경하고 자신 역시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가가 되리라는 의지를 담아 그의 이름에서 지금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또한 그의 소설 'D언덕의 살인사건'의 배경이 된 단고언덕이 있는데 그 주변을 배경으로 란포가 즐겨 찾던 음식점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살아생전 그가 직접 설계한 2층 자리 주택에는 그의 서고가 있는데 자그마치 약 2만 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그 많은 장서들에 둘러쌓여 글을 썼다고 한다. 란포의 저택은 이케부쿠로에 위치한 릿교대학 근처에 있는데 그의 서고는 직접 방문은 불가하고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확인한 후에 장서 열람은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동료 미스터리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집필이 끝나면 관련 자료들을 모두 처분한 반면 란포는 꼼꼼히 기록하고 보관하는 장서가였다고 한다. 같은 미스터리 작가면서도 이렇게 성향이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였다. 개인적으로 란포의 장서가 부럽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책으로 둘러 쌓인 나만의 방에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전체적으로 이번 호 BOON은 흥미로운 주제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잘 읽혀지지 않는 어려운 부분도 좀 있어서 추후 시간을 좀 더 내어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 마지막 일본 젊은이들의 유행어 부분에서 헤이안 시대 (794-1185)의 여성 가인이 요즘 젊은이들의 문장은 한심해서 한탄스럽기 그지없다라는 부분을 읽었을 땐 정말이지 빵 터졌다. 그때 당시에도 요즘처럼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를 공유하면서 새롭게 언어를 탄생하고 했었나 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유행어이지만, 어쨌든 결론은 언어란 언제든 '변화의 여지'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유행어는 신조어가 되고, 맥이 끊기면 사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쩐지 인생도 그런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살짝 해보았다. 다음에 나올 BOON은 또 어떤 이야기들을 가득 싣고 출범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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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 - 영화 속 디저트부터 만찬까지 한 권에!
정영선(파란달) 지음 / 미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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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책을 '정독'하기는 실로 처음이다. 보통의 요리 레시피 북과 같은 경우 전체적인 구성이라든가, 편집디자인,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만을 발췌해서 읽고, 직접 그 요리를 만들어보는 것이 일반적인 요리책을 보는 경우이다. 그러나 '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는 그런 일반적인 읽기의 경우를 벗어난 아주 독특한 책이다. 분명 각종 요리들에 대한 방법들을 알려주는 레시피 북인데, 이 요리라고 하는 부분에 맛깔나는 양념처럼 영화를 첨가한 책이다. 즉 영화속에 등장하는 요리들을 소개하고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아주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나같은 경우 영화는 무척 좋아하지만 요리는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진 않다. 다만 주부이다보니 관심이 없어도 어쨌든 요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조금씩 관심을 갖고 각종 요리책들을 보면서 만들어보고 배워나가고 있다. 때문에 이런 나에게 너무나도 딱 맞는 요리책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영화와 요리라고 하는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한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기존의 요리 레시피 북과는 차원이 다른 참신한 그 기획력에 감탄하며 이 책을 쓴 저자의 이력이 궁금해졌다. 아니나다를까. 파란달 정영선 작가님은 8년간 방송작가로 일을 했고, 현재는 8년이상 요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즐겨 보는 것은 당연지사. 때문에 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는 이런 작가의 이력과 내공이 아니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책인 것이다.

 

 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는 총 3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등장하는 영화 및 그 영화속의 요리는 총 40가지이다. 물론 저자가 미처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영화 및 요리들은 끝부분에 별도로 실어놓았다. 또한 영화를 소개하면서 그 영화와 관련된 다른 영화들이나, 해당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각 해당 지면에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 40가지 이상의 영화 및 요리들을 알게 된다. 영화는 어찌보면 우리 삶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영화속의 다양한 이야기속엔 당연히 다양한 요리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어떤 영화는 주제 자체가 요리인 영화도 있고, 요리는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그 영화를 보고있노라면 생각나는 요리도 있다. 저자는 이런 여러가지 상황들에 맞게 다양한 요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끔은 영화의 특성상 쉽게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이럴 때 대체가능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소개하여 보다 쉽게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배려한다. 내가 이 책을 종합선물세트라고 표현한 이유는 요리외에도 영화속에 등장하는 가볼만한 장소들도 소개되어 있고, 심지어는 저자가 추천하는 영화 OST까지도 소개되어 있다. 즉 이 책을 읽으면 영화공부, 요리공부, 음악공부, 장소에 대한 여행공부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읽으면서 느끼는 사유의 힘까지 기를 수 있다. 한마디로 일석오조다.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고 앞서 말하기도 했는데 나는 크게 장르를 가리진 않는다. 다만 내가 유독 선호하는 장르가 있긴 하다. (판타지 성향을 갖고 있는 동화적인 이야기들. 예들들면 반지의 제왕, 호빗, 미녀와 야수 등등) 때문에 먹는 것을 편식하듯 영화도 좀 그런 경향이 있다. 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에 등장하는 많은 영화들 중에서 내가 본 영화는 몇 편 안 된다. 대부분의 영화가 잔잔하거나, 오락성이 짙은 영화가 아닌 가볍지만 인생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들이다. 저자의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라든가, 결말을 말해주지 않아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이야기들 때문에라도 여기에 소개된 영화들은 꼭 시간을 내어서 볼 것이다. 더불어 영화속에 등장하는 요리들도(혹은 만드는 과정들) 눈여겨 보면 시각적으로도 꽤 유용한 공부가 될 것이다. 늘 비슷한 패턴의 요리책에 지루함을 느꼈다면 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 일독을 권해본다. 
 

 

 

소박한 요리,

오래된 영화 한 편으로도

삶은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장르, 개봉년도, 러닝타임, 감독, 배우들에 대해 자세히 나와있다.

더불어 영화에 등장하는 혹은 영화를 보면서 만들어 봤으면 하는 요리도 소개되어 있다.


 

 


 

영화중에서도 추천할 만한 OST가 있으면

이렇게 한 면에 소개되어 나오기도 한다.

 

 

 


 

조제의 달걀말이 완성컷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소상히 나와있는 지면!


 

 


 

일전에 내가 감명깊게 본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 영화도 소개되어 있어 반가웠다.


 

 


 

이 케익은 주인공 '월터'의 생일날 동생이 만들어준 케익이다.

저자는 영화속에 등장한 그 케익에 대한 레시피를 공개했다.

물론 영화상에는 레시피가 공개되어있진 않다.

영화를 참고해서 저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만든 레시피이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가볼만한 장소를 소개한 지면이다.

별에서 온 그대 등등 각종 드라마 및 영화속에서 소개된 유명한 '학림다방'이란다.

1956년에 문을 연 유서깊은 곳이다. 꼭 한번 가봐야겠다!!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영화를 통해

소개된 새싹비빔밥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나, 만들어 보고싶은 요리들이 소개되어 있는 장들은

이렇게 책의 모서리 부분을 접어놓았다. 언제고 바로 펴서 볼 수 있도록!!

 

 

 

 

 

책속에 등장하는 영화들 중에서 몇 가지만 모아 보았다.

포스터만 봐도 요리관련 영화란 것을 알 수 있는 영화와

요리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영화 포스터들도 있다.

 

저자는 이런 여러 영화들 속에서 요리라는 요소를 찾아내어

이렇게 멋진 책을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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