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 BOOn 4호 - 2014년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월간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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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출범하는 '일본문화 및 문학전문잡지' 격월간 BOON의 첫 창간호가 순조롭게 출발한 가운데 4호가 출간되었다. 7, 8월호 답게 푸른색의 표지는 시원한 바다를 연상케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콘텐츠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같은 경우, 그저 간헐적으로 일본의 문학이나 콘텐츠를 소비하지만 정작 일본이 가지고 있는 그 거대한 콘텐츠 힘의 원천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지, 그 속속들이를 다 알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갈증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 있다면 바로 BOON일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어떠한 콘텐츠로 우리를 무장해제시킬지 BOON속으로 한번 떠나 보도록 하자.

 

 일본뿐 아니라 어쩌면 국내에서 더 많이 사랑받고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여류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이번 '작가를 읽다'에 소개되었다. 사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가오리'라는 물고기였다. 역시나 나만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였나보다. 이 글의 저자 또한 첫 문단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런 아름답지 못한 오해를 풀어주기라도 하듯 일본의 정확한 발음으로는 가오리가 아닌 '카오리' 즉 향기를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그녀의 성과 함께 이름의 전체적인 뜻을 풀어보자면 '물의 나라에서 향기로 직물을 짜다'라는 뜻이 된다. 이름조차도 참 문학적이다. 내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냉정과 열정사이'인데 어쩐지 그녀의 감성코드가 나와는 사실상 잘 맞지 않아 그 뒤로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다. 다만 이 '작가를 읽다'라는 코너를 통해 그녀의 감성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고 그녀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의 작품 <하느님의 보트>, <울 준비는 되어 있다> 등등 까지 한번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작가에 대한 기초적인 배경지식을 갖고 책을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테니까. 이번 코너를 통해 그녀의 작품세계에 조금은 가까워 진 듯한 느낌이다. 기회를 갖고 그녀의 작품들을 하나씩 섭렵해 보아야겠다.

 

 규슈올레 탐방 : 가고시마현, 이부스키 가이몬 코스 부분은 참 즐겁게 읽었는데 아마도 내가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읽은 부분일 것이다. 규슈는 일본 4개 섬 중에서 최남단에 위치한 곳인데 천혜의 자연환경도 그렇고 식재료들도 풍부한, 너무나도 축복받은 땅이였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그 이미지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그러던 차에 우리나라 (사)제주올레와의 업무 협약을 통해 올레 브랜드와 운영 노하우 전부를 수입해 규슈만의 올레길을 만들어 예전의 축복받은 땅의 이미지를 되찾았다. 이곳에 소개되어 있는 규슈 올레길을 떠나보는 것도 일본여행의 즐거운 묘미일 것이다. (또한 일본이 우리나라 제주도의 운영 노하우 등등을 수입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나름 기분이 뿌듯했다.)

 

 이번 호는 첫장도 그렇고 '특집 : 도쿄의 표상학'도 그렇고 도쿄라는 일본의 수도에 대해 조금 깊이 있게 다루었다. 사실상 나도 도쿄는 그저 '일본의 수도' 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 그 이상의 구체적인 것들은 잘 모른다. 도쿄의 행정구역은 23구 26시 5초 8손인데, 실제 도쿄시에 해당하는 지역은 도쿄 23구에 국한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도쿄도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전체, 즉 경기도를 의미하고 서울시에 해당하는 지역이 바로 도쿄 23구이다. (참고로 행정 구역상 도쿄시라는 지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밖에 도쿄에서 가볼만한 곳들을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설명해 놓았는데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만의 여행리스트에 담아놓았다. '특집 : 도쿄의 표상학'은 에도가와 란포의 도쿄 소설을 비롯해 도쿄만 앞바다의 매립지, 오다이바를 토대로 도쿄가 어떻게 세계도시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지 등등 현대의 일본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다만 이 부분은 역사, 정치, 경제가 한대 어우러져 설명이 되다보니 솔직히 쉽게 읽히진 않았다.

 

 연재소설 어항, 그 여름날의 풍경과 기획연재 일본의 요괴 문화 : 설녀부분도 참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연재소설 어항, 그 여름날의 풍경은 미래사회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중 우익세력이 권력을 장악하여 오로지 성장에만 초점을 맞춰 발전시켜 나간다. 겉으론 고도의 황금기를 맞이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청년들의 저임금 노동'이라는 어두운 현실이 지배하고 있다. 배경은 미래지만 어쩌면 지금 현시대의 일본이 갖고 있는 불편한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연재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도 궁금하다. 기획연재의 설녀는 일본에 존재하는 수많은 여성 요괴들 중 하나인데 그 존재는 여러가지 형태 및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극적 구성이 있는 형식으로 발전, 완성시킨 라프카디오 헌의 '설녀'를 기본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특히 설녀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이미지들은 예들 들면, 팜므파탈 적인 요소라든가 인간의 아이를 낳은 어미로서의 모성애 등은 어쩐지 설녀라는 요괴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 밖에 많은 콘텐츠들이 BOON을 다양하게 장식했는데, 내가 가장 관심있게 본 부분은 일본 추리소설의 심장, 에도가와 란포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심리, 추리쪽이다보니 자연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느꼈던 것인데 '추리소설의 창시자'랄 수 있는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과 너무 흡사해서 늘 의아해 했는데 알고보니 란포 역시 본명은 따로 있고 '에드거 앨런 포'를 존경하고 자신 역시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가가 되리라는 의지를 담아 그의 이름에서 지금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또한 그의 소설 'D언덕의 살인사건'의 배경이 된 단고언덕이 있는데 그 주변을 배경으로 란포가 즐겨 찾던 음식점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살아생전 그가 직접 설계한 2층 자리 주택에는 그의 서고가 있는데 자그마치 약 2만 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그 많은 장서들에 둘러쌓여 글을 썼다고 한다. 란포의 저택은 이케부쿠로에 위치한 릿교대학 근처에 있는데 그의 서고는 직접 방문은 불가하고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확인한 후에 장서 열람은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동료 미스터리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집필이 끝나면 관련 자료들을 모두 처분한 반면 란포는 꼼꼼히 기록하고 보관하는 장서가였다고 한다. 같은 미스터리 작가면서도 이렇게 성향이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였다. 개인적으로 란포의 장서가 부럽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책으로 둘러 쌓인 나만의 방에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전체적으로 이번 호 BOON은 흥미로운 주제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잘 읽혀지지 않는 어려운 부분도 좀 있어서 추후 시간을 좀 더 내어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 마지막 일본 젊은이들의 유행어 부분에서 헤이안 시대 (794-1185)의 여성 가인이 요즘 젊은이들의 문장은 한심해서 한탄스럽기 그지없다라는 부분을 읽었을 땐 정말이지 빵 터졌다. 그때 당시에도 요즘처럼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를 공유하면서 새롭게 언어를 탄생하고 했었나 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유행어이지만, 어쨌든 결론은 언어란 언제든 '변화의 여지'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유행어는 신조어가 되고, 맥이 끊기면 사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쩐지 인생도 그런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살짝 해보았다. 다음에 나올 BOON은 또 어떤 이야기들을 가득 싣고 출범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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