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맥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감성적인 일러스트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모리사와 아키오의 <쓰가루 백년 식당>, <무지개 곶의 찻집>, <당신에게>라는 세권의 책이다. 읽어야 할 책들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 표지가 아름답다라는 이유만으로 일단 지른 책들이다. 여전히 읽진 못하고 언젠가, 곧 읽어야지하면서 책장 한 켠에 꽂혀있다. 그것이 내가 모리사와 아키오라는 작가를 알게 된 대략적인 경위이다. 그리고 그의 여행 에세이랄 수 있는 '푸른 하늘 맥주' 역시 그 표지의 그림이 나의 감성에 와 닿아 선택하여 읽게 된 책이다.

 

 총 5개의 장에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지금은 마흔을 넘긴 작가 본인의 10대~20대에 모험을 떠난 빛나는 청춘의 기록들이다. 여느 여행 에세이처럼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추천 장소, 추천 맛집 따윈 더더욱 없다. 그저 한 여름 일탈을 꿈꾸 듯 푸른 하늘을 천장 삼아 자신의 애마인 오토바이 혹은 차를 이끌고 간단한 캠핑 도구와 시원한 맥주만 챙겨 무작정 떠난 여행 에세이이다. 발길 닿는 곳이 푸른 바다이거나 신록이 우거진 산이거나 시원한 계곡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산나물과 갓 잡은 생선을 안주 삼아 작렬하는 태양아래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 기분이란! 아마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황홀경일 것이다. 때로는 혼자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장소를 탐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에 맞는 친구와 함께 바다를 누비고, 산을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여행은 결코 감성적이거나 지루하지 않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평범한 상황속에서도 작가나 친구들이 벌이는 상식밖의 언행들은 정말이지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나를 뒤집어지게 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포복절도! 요절복통이다. 책을 읽으면서 웃겨서 눈물이 나온 건 실로 오랜만이였다. 뭔가 허당 개그를 보는 것도 같고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도 같았지만 그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에선 위험천만한 상황들도 꽤 등장한다. 정말이지 지금이야 작가가 멀쩡히 살아 있어서 그런 이야기들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고,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그때 명을 달리 하셨다면 내가 부엌 식탁에 앉아 이 책을 읽으며 이 주말을 웃음으로 보낼 순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버라이어티한 포복절도 어드벤쳐 모험담을 들려주실 작가님께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부디 만수무강하시길 바라는 것이다. 올 여름은 너무 바빠서(내가 아닌 신랑이) 제대로 된 휴가도 못가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멋진 휴가를 다녀온 기분이다. 나도 북적북적한 도심보다는 온전히 자연과 동화되는 장소들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작가와 친구들이 함께 한 여행지들도 대부분 그런 곳들이다. 지명이 일본이다 보니 자세한 위치나 생김새는 빠르게 머릿속에 '이미지화'되진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산하를 생각하며 혹은 그런 풍경이 담겨있던 일본 영화나, 드라마 장면들을 생각하며 내 영혼은 책 속으로 유체이탈하여 그들과 함께 일본의 산하를 누비며 시원한 맥주한잔을 연거푸 들이마신 기분이다. 지금도 사실 기분이 알딸딸한 것이 약간 몽롱하다.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신 듯 하다. 왜냐하면 작가의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맥주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이곳에 나열하진 않겠다. 나열하는 순간 재미가 반감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한 에피소드에 너무 웃겨서 탈진했다가 TV를 보고 있는 신랑에게 열에 들떠 얘기를 들려줬는데, 초반에는 조금 웃는 듯 하더니 '왜 그렇게 얘기를 재미없게 하냐'는 핀잔에 지금 상당히 의욕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한 여름 푹푹찌는 이 더위에 아직 휴가도 제대로 떠나보지 못하고 뭔가 재미있는 일 없을까? 하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이렇게 노골적으로 추천하는 내가 아닌데, 정말 이 책은 서평을 쓰러 컴퓨터 앞에 앉으러 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혼자 헤벌쭉(아직도 책에서 벗어나지 못함)웃으며 혼잣말로 '진짜 터진다. ('터'앞에 '개'가 생략되어 있다) 터져'를 연발한 본인이다. 허나 작가는 뒷부분에 다짐을 해둔다. 자기는 이렇게 바보같은 에세이도 쓰지만 '정상적인 소설'도 쓰니 꼭 참고해 달라고. 때문에 작가의 강력한 메시지에 그의 정상적인 소설들도 이제 하나씩 꺼내 읽어봐야겠다고 나 역시 다짐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청명감과 유쾌함이였다. 더불어 나의 10~20대의 시절이 작가만큼 무모하진 않았지만 나름 허당기가 있었던 내 청춘, 그 시절이 생각나 그리워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나에게 두번째 눈물을 선사했다. 첫번째가 웃음이였다면 두번째는 감동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에게 묻는다고 한다. "학창시절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그럴 때마다 작가의 대답은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을 것. 스마트폰은 놔두고 혼자 여행을 떠날 것. 마을에서 떨어진 산속에서 혼자 노숙도 해보고, 철저히 고독을 맛보는 시간을 가지세요." 이유는 이렇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가공의 인생'을 뇌 내에서 '유사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경험'함으로써 인간은 성장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설 속에서는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곤 하므로, 그 독특한 경험이 큰 성장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경험으로만 성장하는 생물이기에 다양한 인생을 경험하기 위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소설이든 아니든. '고독한 여행'이 주는 것은 그럼 무엇일까? 자연 속에서 혹독한 비바람을 맞고 지내다 보면 나의 집이 그리워지고, 다른 이와 이야기 나누지 못하는 나날이 길게 이어질수록 가족, 친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좀 더 깊은 고독에 빠지면 내 발밑의 풀벌레들, 소리 없이 서 있는 식물들 모두가 나의 든든한 '지구상의 동료'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의 고백을 빌리자면 젊었을 땐 인간이라는 존재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혼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고독한 여행'을 통해 내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과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과 환경들에 감사함을 느끼며 본인 자신도 많이 변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나 어린 아이들을 보면 어쩔 땐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우리 땐 정말 순수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때는 주변에 첨벙첨벙 놀 수 있는 강들도 많고 깨끗했으며, 부모님과 함께 산에 올라가 산나물도 캐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운 자연이 늘 곁에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도 삭막한 환경이 되어버렸으니 그런 환경을 보고 자란 아이들의 심성과 감성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내 유년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찾아 얼마전 동생들과 함께 떠났던 경기도 이천의 한 시골마을은 도로가 깔리고, 새롭게 아파트가 들어서고, 음메~ 소리를 내며 울던 소들의 외양간도 온데간데 없어지고, 길섶에 즐비하게 피었던 돼지감자꽃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 와 버린 것이다. 그때 느꼈던 그 상실감은 역시..겪어본 사람만이 알겠지...푸른 하늘 맥주는 찬란했던 청춘과 그 시절 반짝반짝 빛났던 대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탄생한 무모하지만, 아름다웠던 기억의 조각들이다. 작가도 나도 각자의 아름다웠던 청춘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살아가겠지. 그런 기억과 추억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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