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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꽃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천둥꽃이라 불리는 한 소녀가 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에 자라는 독초이기도 한 그 꽃의 이름은 그녀 어머니가 붙혀준 예명이다. 그녀의
실제 이름은 엘렌 제가도. 왜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의 딸에게 이런 얄궂은 꽃의 이름을 붙혀 주었는지는 책에 나오진 않지만 그녀의
인생을 예견하기라도 하듯, 그 독초처럼 그녀는 수많은 사람을 독살하는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된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브르타뉴주인데, 이 지방은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 및 기독교 문명과는 전혀 다른 켈트
문화의 뿌리가 깊이 자리잡은 곳이다. 즉, 전설, 미신, 신비주의가 민초들의 삶 구석구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언어도 프랑스어가
아닌 완전히 다른 언어라 할 수 있는 '브르타뉴어'를 사용하는 어쩌면 프랑스와는 다소 다른 이질적인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자란 엘렌
제가도의 유년시절은 이불을 머리깊숙히 덮고 자야할 만큼 무서운 이야기 및 전설들이 어른들의 입을 통해 집안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집에 빗질을 할
경우 그 사자의 영혼이 상처를 입는 다는 둥, 끼익~ 끼익~ 차축이 굴러가는 불길한 소리를 내며 자신보다 큰 낫을 휘두르며 죽은 자들을 거둬
들이는 죽음의 정령 앙카의 이야기라든지, 죽은 자들의 넋이 집안 화병 속 물에 흘러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화병 속의 물을 비워둬야
한다든지 등 그런 이야기와 그 이야기들에 함몰되어가는 어른들의 세계는 어린 엘렌 제가도가 겪기엔 결코 행복한 유년은
아니였을 것이다. 그래서 였을까? 그녀는 스스로 죽음의 전령 앙카의 현신이 된다. 그리고 그녀의 첫 희생양은 다름아닌 자신의 어머니가 된다.
두번째 살인은 집을 떠나 이모가 있는 수도원에 자신을
데려다 준 사람을 독이 든 쿠키로 죽게 한다.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비소를 넣은 음식으로 자신의 이모도 살해한다. 그녀의 고향 브르타뉴주의
플루이네크를 기점으로 뷔브리, 세글리앵, 트레다르제크 그리고 거의 마지막, 수도인 렌을 거쳐 다시 플루이네크까지 오랜 세월동안 그녀만의
살인순례는 지속된다. 그녀는 이렇게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여러 도시들을 전전하며 사제, 친 언니, 이모,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까지
살인의 향연을 꽃피워 간다.
그러나 당시 창궐했던 콜레라로 인해 그와 비슷한 증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시기와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그녀의 살인은 오랜 시간동안 발각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들이 죽어나간 장소에서 그녀
자신만이 살아나오자 사람들로부터 성녀로까지 추앙받기도 한다. 그녀의살인순례를 따라가다보면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이
웃음이 나올 만큼 해학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팔아 절정의 순간에 남자들을 독이 든 쿠키로 죽이는 장면은
에로티시즘을 넘어 그녀 자신의 광기가 폭발하는 성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가져다 주는 독이 든 음식을 아무런
의심없이 먹고 서서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와중에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자신의 아내가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엘렌의 손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남자이다.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초로의 노인인데, 엘렌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자신을 죽일 것을 알게
되지만 그 자신이 삶에 큰 미련이 없기에기꺼이 그녀의 음식을 먹고 죽음을 맞이한다. 특히 그 둘의 대화 중에서 노인이 엘렌에게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간 '나폴레옹'에 대해 얘기하는데, 엘렌은 '자신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요리사'도 있냐며 놀라는 장면이
있다. 심지어 브르타뉴가 프랑스령이라는 것도 모르는 엘렌의 그 무지함을 보면서
그녀의 그런 무지를 탓하기 보다 그녀가 살고 있던 곳이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같아서 조금은 섬뜩함을 느꼈다.
어쨌든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녀의 살인순례는 결국 발각이 되고, 재판을 통해 그녀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살인을 시작하면서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 사람들의 질문에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은 앙쿠의 사명을 다해야한다는 광기어린 무모함엔 일말의 동정조차도 느껴지지 않아 나 역시 그 재판소의 배심원이 되어 그녀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다 사형 전날 사형간부에게 하는 그녀의 고백은 처음으로 그녀가 가장 인간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친 듯 했다. 그녀의 그 긴 이야기를 읽어나가다보니 나 역시 처음으로 그녀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이유로
그녀가 행한 살인이 정당성을 갖진 않겠지만 말이다.
장
퇼레의 천둥꽃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중간중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그의 블랙 유머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음침하면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 처음부터 끝까지 엘렌
제가도의 살인순례를 함께 하는 두명의 가발장수인 노르망디 출신 남자들이 등장하는데, 그 모습이 자못 기괴하면서도 해학적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엘렌 제가도와 함께 다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무대위의 주인공은 엘렌 제가도인데 감초역할을 하는 조연처럼 엘렌이 가는 곳곳마다 늘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들로. 그리고 엘렌의 살인이 극대화 될 수록 그들도 점점 브리타뉴화 되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모습과 행동들은 사뭇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더불어 이 책이 주는 광기가
더욱더 충격적일 수 밖에 없는 사실은, 엘렌
제가도(1803~1852)가 자그마치 36명을 독살한,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실존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녀의 단편적인 기록들을 토대로 작가 장 퇼레는 자신만의 상상력을 덧칠하여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나는
이것이 매우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누구든 자기 부모의 불안감 속에 방치된 상황에서는, 그 불안감을 극복하고픈 마음이 생긴다는
거죠. 그런 목적에서 스스로 죽음으로 화할 각오까지 하게 됩니다. 불굴의 존재가 되려는 것이죠. (이하 생략) 내가 바로 앙쿠입니다. 기둥
꼭대기에서 공포를 조성하는 장본인이 바로 나란 얘기죠. 더 이상 내가 두려워 할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내가 곧 두려움이니까요."
- 340page 엘렌 제가도의 고백 中 -